춤, 현장

국립국악원 무용단의 정재 작업을 고민한 ‘즐거운 토론회’
김영희

 국립국악원이 2013연중기획으로 처음 마련한 ‘즐거운 토론회’가 국립국악원 대회의실에서 2회에 걸쳐 열렸다. 작년 11월 국립국악원 무용단의 정기공연 <전통의 경계를 넘어 – 궁중무용의 변주> 이후, 국립국악원 무용단의 정재 관련 활동방향에 대해 국악원 내외의 의견을 청취코자 무용단과 학예연구실의 주관으로 진행되었다.
 3월 7일(목)에 ‘정재와 창작’이라는 주제로 열린 첫 번째 토론에서 3인의 발제가 있었다. 김태원(한국춤비평가협회 공동대표)은 「궁중무용 무적(舞的) 자산의 창조적 활용을 위한 제언」에서 전통을 보존하는 국립국악원 무용단의 위상을 설명하고, 우리 춤에서 고전은 무엇인가를 제기했다. 그리고 궁중무용의 새로운 보여주기와 재구성적 작업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김채원(국립국악원 학예연구관)은 「국립국악원의 정재 전승양상-정기공연을 중심으로」에서 1952년부터 1976년까지 정재 공연 실태, 1977년부터 2004년까지 정재 재연 작업, 그리고 이후의 정재 변용 작업을 정리했다. 성기숙(한예종 교수)은 「궁중정재의 미학적 특징과 현대화 가능성」에서 정재의 현대화 가능성을 위해 극장 공간에 맞는 연출과 구성의 변화와, 정재의 공연원리와 공연문법을 아는 전문인력의 양성이 필요하며, 현재 관객의 심미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하였다.
 4월 4일(목)에 ‘정재의 전승과 창작’이라는 주제의 두 번째 토론에서도 3인의 발제가 있었다. 이흥구(국립국악원 원로사범)는 「국립국악원 정재의 춤사위 변천」에서 국립국악원 현행 정재에서 음양의 원리가 잘못 적용되고 있는 점과, 춤사위의 재현을 위해서는 홀기에 기록된 작은 글자의 주(注)를 전후 시기의 기록과 함께 읽어야 함을 설명했다. 하루미(국립국악원 무용단 지도위원)는 「정재를 활용한 창작사례 1: 1990년대~2005년 국립국악원 무용단을 중심으로」에서 <화평지무>(문일지 안무, 1990), <농발무>(이흥구 안무, 1996) <화고지무>(하루미 안무, 2005), <축연지무>(하루미 안무, 2005), <빗돌맞이춤>(하루미 안무, 2005)의 창작사례를 설명했고, 심숙경(국립국악원 무용단 안무자)은 「정재를 활용한 창작사례 2: 2005년 이후 국립국악원 무용단을 중심으로」에서 <태평만년지무>(계현순 안무, 2010), <정음만무>(하루미 안무, 2010)와, 정기공연이었던 ‘고을사 월하보에’(2007), ‘전통의 경계를 넘어-정재의 변주’(2012)를 설명하였다. 그리고 토론자로 김영희(우리춤연구가), 박은영(한예종 전통원 교수), 이종숙(한양대 강사), 이종호(국립국악원 무용단 안무자), 장승헌(전문무용수지원쎈터 상임이사)이 참여하여, 국립국악원 무용단의 정재 전통의 계승과 창작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정재와 창작’이라는 주제로 열린 첫 번째 토론회에서 정재의 창작이 가능하냐 그렇지 않느냐가 주요 쟁점이었지만, 이미 국립국악원 내에 정재 재구성, 정재 창작의 사례가 있었다. 김채원의 발표에서 재현정재, 재창작정재, 창작정재의 예를 설명하였고, 하루미 역시 1950년대부터 정재 공연과 관련하여 안무·구성, 재현안무, 재구성안무, 정재안무, 구성안무 등의 용어가 사용되었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정재의 창작과 관련한 용어들이 무용단 내에서 다양하게 사용되었음은 정재의 재현부터 창작까지 다양한 수준의 정재 창작 과정이 있었음을 반증한 것이다.
 조선시대 정재의 역사를 돌아보아도, 조선 초 조선건국을 내용으로 한 정재의 창제가 있었고, 영정조 연간에는 민간의 연희물들이 궁중에 들어가 궁중정재로 재탄생되었으며, 순조 대에는 28종목의 정재가 창작되었다. 또한 연향에 따라 정재 구성에 변화가 있었으니, 정재 창작이 가능하냐 그렇지 않느냐에 대해서는 싱겁게 결론이 났다.
 그리고 첫 번째 토론에서 정재의 재현과 창작의 다양한 편차에 대한 의견들을 기반으로, 주최측은 이에 대한 용어들을 정리했다. ‘1. 재현: 이전 시대의 각종 홀기, 원로 전승자들의 정재 작품 등의 근거를 토대로 과거에 행해진 춤의 형태에 가깝게 다시 만들어 보는 행위. 2. 재구성: (1) 전승되는 특정 춤의 기본 틀을 유지하면서 공연의 성격, 무대환경 들을 고려해 일부 구성에 변화를 주는 행위. (2) 전승되는 특정 춤의 어떤 요소를 활용해서 전통적인 어법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변화를 추구하는 행위. 3. 창작: 정재를 충실하게 익힌 안무자와 무용수들이 정재의 양식적 특징을 기반으로 하여 새로운 주제와 내용, 새로운 움직임을 만들어 내는 행위.’ 로 구분하였다.

 이 용어 정리는 궁중정재의 재현부터 창작까지 그 층위를 구분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었다. 그리고 궁중정재의 재현과 창작의 경계를 구분하는데 있어서 그 기준점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한다. 즉 ‘전통적인 어법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 ‘정재의 양식적 특징을 기반으로’라는 대목이 그것이다. 이는 정재의 창작과 관련한 핵심적 사안임과 동시에 궁중정재의 예술적 특징을 규명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정재에는 예악정신을 구현하는 사상체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재 작품에 따라 다양한 주제와 소재, 인물이나 상황들이 있다. 주제에 있어서 유교 통치이념에 기반한 왕가의 번영과 장수의 기원 뿐만이 아니라, 선가(仙家)적, 풍류적, 탐미적 주제의 정재도 다수 있다. 또 춤으로만 구성되지 않고, 노래나 놀이가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되어 있다. 전개방식에 있어서는 구체적 인물이나 사건이 드러나는 무용극의 전개방식이 아니라, 역사적 인물과 상황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또한 궁중무용만이 갖고 있는 춤사위, 배열도와 동선이 있으며, 정재가 주로 표현하는 특징적인 정조(情調)들이 있다. 이러한 내용과 형식들이 궁중정재만이 갖고 있는 ‘정재의 전통적인 어법’, ‘정재의 양식적인 특징’이며, 이에 대한 규명을 통해 궁중정재에 대한 이해와 창작의 가능성은 더욱 확대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정재의 전통적인 어법, 정재의 양식적 특징이 무엇인지에 대한 규명은 한국춤 전체의 미적 특징과 정체성을 폭 넓히기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한국춤의 미적 특징에 대한 이해는 대개 민속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한(恨)이나 흥(興), 신명, 정중동(靜中動), 애이불비(哀而不悲) 등의 개념들은 1960,70년대 민속예술의 발굴로부터 도출된 한국춤의 미적 특징이다. 민속춤에 대한 발굴과 미적 특징에 대한 연구가 속속 진행되는 사이, 궁중무에 대한 관심과 연구는 상대적으로 느리게 진행되었다. 홀기나 의궤에 대한 번역과 연구가 시작된 후, 『조선후기 궁중연향문화』 1, 2, 3권(한국정신문화연구원 편, 2003)이 출간되면서 궁중정재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성과가 처음 나왔다고 할 수 있다. 궁중정재에서 볼 수 있는 장엄(莊嚴)하고, 전아(典雅)하고, 미려(美麗)한 아름다움 역시 한국춤의 미적 특징으로 돌아보아야 한다. 궁중정재의 미적 특징을 포함한 궁중정재의 전통적인 어법, 정재의 양식적인 특징에 대한 연구와 이해는 국립국악원 무용단 뿐만이 아니라 춤계 전체가 관심 있게 지켜보아야 할 과제라고 하겠다. 이번 토론에서 김태원이 제기한 ‘우리 춤에서 고전(古典)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의식도 궁중정재에 대한 관심을 국악원 내에 가둬두거나 맡겨두기만 할 것이 아니라, 춤계 전체, 예술계 전체에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라고 본다.
 이번 토론회의 출발이었던 궁중무용의 변주에 관한 문제의식은 국립국악원 무용단의 정재 공연의 흐름에서 현재적 단계이다. 전체 공연환경의 변화, 국립국악원 예술정책의 방향, 정재 관련 연구성과와 수준을 배경으로 무용단은 정재와 관련한 예술적 고민을 제기한 것이다. 이에 대해서 무용단을 둘러싼 기구들과 관련 종사자들은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토론회 과정에서 제기된 문제들 - 홀기에 기록되지 않은 춤사위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무용단원들에 대한 궁중무 이론 교육은 진행되는가, 궁중무와 민속춤을 아우르는 무용단의 운영 프로그램이 타당한가, 음악이 따라오지 않는 궁중무 공연의 문제는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국립국악원으로서의 위상에 합당한 무용단의 장기 전망은 무엇인가 등의 문제들도 정재 공연의 올바른 방향과 질적 향상을 위해 함께 해결책을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국악원이 정재의 방향에 대해 처음 토론한 자리였고, 무용단의 고민이 진하게 배어난 자리였다. 

본 협회 회원, 우리춤연구가

2013. 05.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