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집중기획_ 공공 무용단 운영 무엇이 문제인가
김채현_춤비평가

주먹구구식 운영, 예술성 높일 조직부터 갖춰야

- 공공 무용단 여론조사 이후(3)



 공연예술은 개인보다 조직의 비중이 크다. 아니 조직의 비중이 절대적이다. 공연예술에 수반되는 예술감독이란 명칭에서도 이미 조직이 암시된다. 개인의 예술인 문학이나 미술에서 예술감독이란 개념은 우스꽝스럽다.(다만 미술 가운데서도 설치, 미디어, 퍼포먼스 아트에서는 예술감독 개념이 흔하다.)
 공공의 공연예술 단체, 즉 공공무용단은 원천적으로 필요한 조직을 공공의 차원에서 보장받는다. 다시 말하여, 공공무용단의 조직은 민간무용단과 마찬가지로 예술적으로 필수적인 조직인 동시에 공적으로 보장된 조직이다.
 여론조사를 재론하면, 양질의 공연(춤 작품과 레퍼토리)을 제공해야 한다는 핵심 과제 측면에서 공공무용단에 대한 평가가 저조하다. 공공무용단이 설립과 운영을 공적으로 보장하는 조직을 갖추고 있음에도 예술활동이 저조하다는 사실은 궁극적으로 조직에 문제가 있음을 나타낸다. 일례로, 지난 글에서 짚어졌듯이, 공공무용단이 개인 무용단처럼 사조직 같은 인상을 준다는 여론이 적지 않다. 이런 점에선 공조직의 사조직화를 시정해야 한다.
 공조직의 사조직화 뿐만 아니라 조직 내의 무사안일이 공공무용단을 좀먹고 있다. 단원들이 근무 시간을 대충 채우려 한다든가 걸핏하면 노조를 내세워 근무 조건과 신분 보장을 왜곡시킨다는 뒷담화가 춤 현장에서 무성하다. 이런 상황에서 예술감독은 내부에서 무리 없는 방향과 타협하기 일쑤이고 무사안일이 안착할 것은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설령 작품 활동에서 유능하다는 예술감독을 선임하더라도 막상 단원들이 수용하지 않는다면 선임하지 않은 거나 다름없다. 공공무용단의 예술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서 유능한 예술감독의 선임이 손꼽히지만, 지금 현장에서 보면 적절한 대책일지 의문스럽다. 유능한 예술감독을 무능하게 내려 앉히고 무용단 내의 무사안일과 비정상을 암묵적으로 용인하는 풍토를 없애지 않는 한, 그렇다는 말이다.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다, 조직이 능사가 아니다라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조직을 제대로 갖추지도 않은 채 사람만 강조하는 것은 지금의 공공무용단을 위한 대책으로서는 매우 미흡하다.

 



 현시점에서 공공무용단에 시급히 요구되는 과제는 공적으로 보장된 조직을 재정비하는 작업이다. 유능한 예술감독을 선임하는 일, 예술감독이 소신껏 창의력을 발휘하는 일, 무용단이 공공성을 강화하며 정체성을 견지하는 일이 이전에도 더러 시도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공무용단에 대한 평가가 갈수록 저조한 것은 재정비 작업이 단편적이었던 데에다 특히 제도적으로 미흡했던 데서 그 원인이 짚어진다.
 이제는 구속력 있는 재정비 작업이 나와야 한다. 이 재정비 작업의 궁극 방향은 공공무용단의 예술성을 높이는 데 있으나, 공조직의 사조직화를 막고 무사안일을 제어할 대책과 함께 추진되어야 한다. 이런 취지에서 작품 개발에 관한 명문(明文) 규정이 제안되었었다. 지난 글에서, 우리 공공무용단이 작품 개발 규정을 갖추지 않은 탓에 작품 창작과 레퍼토리 선정 과정이 매우 불투명하고, 예술 작품 및 예술 활동에서의 지향점과 단체의 정체성도 분명치 않게 만드는 부작용도 크다고 지적하였다. 그래서 임명되는 예술감독의 역량에 따라 단체의 수준과 진로가 널뛰기할 가능성이 크며, 급기야 유능한 예술감독을 맞이하는 것이 공공무용단에서는 우연한 행운처럼 되어버렸다고 소개하였다. 주체적이어야 할 공공기관이면서도 유능한 관리책임자를 의도한 대로 뽑지 못하고 겨우 행운에 기대야 하는 그 공공기관이 딱할 뿐이다.
 작품 개발 규정은 규정일 뿐이지 작품이 아니다. 다시 말해, 규정이 능사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첫 단추로서는 매우 중요해 보인다. 공공무용단의 작품 개발 규정을 예시해본다면, 아마도 작품개발위원회 구성과 운영이 주축을 이루는 방향으로 정리될 것 같다. 우선, 이 위원회는 무용단 내부인만으로 아니면 외부인을 추가해서 구성될 것이다. 작품개발위는 작품과 레퍼토리 개발 과정에서 예술감독의 임의적 취향으로 인해 단체의 예술성이 퇴락하거나 단체의 정체성이 실종되는 사태를 예방하는 데 주력해야 할 듯싶고, 더 적극적인 역할이 가능할 경우 예술감독의 상상력-창의력을 강화하거나 함께 힘모아 작품 개발에 나설 수도 있을 것이다.
 구속력 있는 재정비 작업으로서 또 하나 제안되는 방안은 중장기 계획이다. 개인적으로, 국내에서 공공무용단의 중장기 계획을 접해본 기억이 없다. 작품 및 관객 개발을 위한 예술적 전략을 중심으로 대개 3년 이상에 걸친 계획을 중장기 계획이라 일컫는데, 그것이 내부적으로나마 있다면 다행이다. 그러나 공식적으로는 물론 사적으로도 접해본 기억이 없었던 것으로 미루어 내부적으로도 있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이 상황에서, 국내 공공무용단의 계획은 그나마 정기 공연과 일정한 행사로 구성된 연간 계획이 거의 전부일 것으로 보인다. 그 같은 초단기의 단편적 계획으로 공공무용단이 발전을 기하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공공무용단은 단장(= 예술감독)이 갑작스레 교체되어도 운영에서 발전적 연속성을 가져야 한다는 점에서도 중장기 계획은 필수적이다.

 



 공공무용단에서 중장기 계획이 일반적이지 않은 현상은 일종의 관행처럼 굳어져 왔다. 현직에 재임 중인 예술단장 입장에서는 공공무용단이 자신에게 가급적 일임하는 편을 선호할 것이므로 중장기 계획을 족쇄로 여길지도 모른다. 단원 입장에서도 어떤 의무적 과제로서 부담스러울 것 같다. 이런 터에 공공무용단 내에서 중장기 계획을 달가워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지금껏 경험에 비추어, 규정도 계획도 부실한 터에 공공무용단이 예술성을 높이리라 기대하긴 쉽지 않다. 부실한 공기업도 이렇지 않을 것이라 하겠으나, 번드르르한 계획과 이사회와 경영진 등 세부 규정을 갖춘 부실 공기업도 없지 않을 것이다. 공공무용단에서 규정과 계획이 부실한 이면에는 각자 나름의 주관적이면서도 자의적인 운영을 선호하는 내부 분위기가 강하게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의미에서 공공무용단은 상당 부분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생각되며, 주먹구구식인 그만큼 공공무용단 운영은 폐쇄적이 될 것이다.
 공공무용단의 폐쇄성은 작품 공연 활동에서도 엿보인다. 공공무용단과 민간무용단, 어디를 막론하고 단체의 예술성에 대해 최종 책임은 예술감독에게 있다. 당연하다. 누가 예술감독을 맡든 공공무용단은 대체로 창작을 토대로 평가가 판가름 난다. 우리 공공무용단의 관행 속에서 예술감독은 수시로 창작(재안무 포함)에 임해야 한다. 예술감독에게 창작을 일임하는 방식을 탈피해서 공공무용단이 객원 안무를 의뢰하는 경우가 조금씩 나타나곤 한다. 그래도 예술감독 아니면 내부의 중견급 단원이 공연-창작을 소화해내는 것이 상례이다.(내부 창작력을 진작하기 위해 80년대의 서울시립무용단처럼 단원들의 발표 또는 안무를 적극 권장한 경우도 있었다.)
 공연 활동에서 폐쇄성이 굳어진 데에는 예산, 빡빡한 운영 규정 등의 측면에서 그만한 사정이 없지 않았던 것 같다. 반면에 안무력-창의력에서 비교되기를 주저하는 비정상적 풍토나 독점 의식 같은 요소가 공연 활동에서의 폐쇄성을 조장한 점도 간과해선 안 될 일이다. 이제 간헐적으로 시도되는 객원 안무나 융복합 공연 같은 이벤트는 공공무용단의 개방성과 예술성을 제고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므로 보다 적극적으로 권장되어야 한다.
 이와 연관해서 외부에서 주목받는 민간무용단의 안무작을 공공무용단이 사들이는 방법도 고려하게 된다. 외부의 주목작은 그 실물이 구체적으로 제시되고 1차 검증된 안무작일 터여서 어떤 점들에선 객원 안무작보다 훨씬 안전할 것 같다.(공공무용단의 객원 안무작이 크게 실망을 산 사례는 근래에도 있었지 않은가.) 이런 주목작을 대상으로 저작권만 인수하거나 객원 안무까지 맡기거나 여러 방법이 있을 것이다. 민간의 창작과 공공의 조직을 연계하는 작업은 공공무용단의 예술성을 높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또한 이런 방식은 민간 안무자를 발탁하고 민간의 공연 활동을 활성화하는 효과도 낳을 것이다.

2015. 07.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