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2015 국제현대무용제MODAFE(2) 리뷰(I) Dietirich·김광민·한창호·김지욱
주목 끈 몇 개의 신작들
이지현_춤비평가

 한국현대무용협회(회장 김현남 한국체대교수)가 주최하는 MODAFE는 올해의 슬로건으로 ‘춤, 삶을 수놓다’를 걸고 개막작으로 스펠바운드컨템포러리 발레단의 〈Four Season〉을, 폐막작으로 꽁빠니 111의 〈Plan B〉를 선정하였다. 다소 여성적이고 감성적인 표현인 ‘삶을 수놓다’처럼 2015 모다페는 적은 예산 속에서 작년보다는 소박하지만 조금 더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듯하다.
 모다페가 이미 줄임말로 고유명사화 되어 익숙해진 상황 속에서 모던댄스 페스티벌의 의미가 지금의 상황에서 어떻게 개념을 가져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고라도, 이 축제는 관객들에게 최첨단이라고 거드름 부리지 않으면서도 차분하고 친절하게 현대무용에 대해 차근히 펼쳐 보여주는 축제가 된다면 지금의 지형도속에서 컨템포러리 댄스를 조망하는 새로운 축을 담당하는 의미 있는 자리를 가지게 될 것이다.
 해외작 초청에 치우치기보다는 한국 작가들에게 기존작을 다시 한 번 다듬어 발전시키는 무대를 제공하여 레퍼토리의 안정화에 기여하는 것을 중심으로 하고, 여력이 허락하는 한 중요한 작가들을 선정하여 주제에 맞는 제작과 협력제작을 도모한다면, 젊은 신진들의 무대인 스파크 플레이스와 더불어 5월에 우리나라를 찾는 많은 해외 프리젠터들에게 우리 작품들을 선보이는 알찬 축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축제를 통해 의미 있는 신작과 기존작의 발전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축제의 미덕이었다.
 


 생체와 사체 사이의 새로운 몸

 

 5월 28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있었던 〈Thalamus〉(Urs Dietirich 안무, 출연)는 무대 중앙에 관과 비슷한 사이즈의 정육면체를 가로로 누윈 단(壇)만이 유일하게 몸과 공간을 설정한다. 반사되는 썬스라스를 끼고 카라없는 점퍼를 입은 우어스는 무대 위에서 시간과 공간에 대한 제압력을 보여주는 것으로 작품을 시작하였다.

 



 원래 thalamus는 뇌의 시상(視床)- 간뇌의 일부로 외부의 신경충격을 대뇌피질로 전달하는 기능-을 일컫는다. 춤에서 육체적 감각은 절대적인 것으로 치부되지만 불교에서 감각은 반야심경에 나와 있듯이 감각기관도 없고, 감각대상도 없으며 대상과 기관이 만나는 그 경계도 없는 것으로 본다. 그러므로 ‘시상’을 통해 감각된 것으로 뇌에 보고되어 우리가 감각하는 내용이라는 것은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이 아닐 가능성이 큰 것이다. 심지어 감각도 그런데 그것의 총합인 인간이 조각으로 흩어질 수 있다는 것은 불교 진리의 핵심인 것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잇듯이 우어스가 이 작품의 기본으로 삼은 텍스트는 티벳 승려 소걀 린포체의 “... 우리는 더 이상 우리가 진짜 누구인지도 우리가 동일시 해야할 특성이 무엇인지도 모르게 되어 버렸다... 우리는 작은 조각들로 부서져 사방으로 흩어져 버린다...” 인데 불교철학의 핵심인 아공(我空)사상을 잘 표현한 언술로,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그것 조차 모든 것의 조합이고 중첩이지 본질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그래서 결국 작은 조각으로 부서져 버릴 수 있다는 것, 그러므로 어느 누구도 안정적이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폴크방무용학교에서 공부했던 경력을 가지고 수잔 링케의 코치를 받아 이 작품을 만든 우어스는 다른 탄츠테아터 작품 속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확보한 아티스트인 만큼 뚜렷하게 스타일리쉬한 작품을 보여주었다.
 몸에 대한 극도의 통제력은 마치 부토처럼 생체와 사체사이를 오가는 방법을 터득한 듯, 마법스럽다. 몸은 순간 마네킨처럼 물질이 되었다가 다시 살아 움직이기를 자연스럽게 반복한다. 썬그라스는 그런 느낌을 더욱 가중시키는데, 불교적 깨달음, 현자의 관조를 썬그라스와 그에 반사되는 조명으로 포착해 낸 그의 감각이 훌륭하다. 그 썬그라스와 ‘정지와 움직임’을 오가는 단절적 동작들은 ‘생체인 몸에 대한 숭배’에 지루해져 있는 우리들에게 새로운 지점을 선사하였다. 그는 단에 걸터 앉기와 서기, 돌기, 단 뒤로 사라지기 등 몇가지 않되는 동작과 구성으로 충분한 환상(illusion)- 인간존재를 차원적으로 바라보기-을 창조한다.
 30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썬그라스에 마스크를 더하고, 점퍼를 벗어 뒤집어 입는 등 몇 개의 단락으로 구분짓는 것은 그다지 새로운 의미창출에는 성공적이지 못하였으나 극도의 절제를 통해 춤이 철학적일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 전 세계적으로 몇 안되는 작품 중 하나인 것만은 분명하다. 자신만의 스타일 창조라는 모던댄스의 과제와 탄츠테아터의 접점 사이에 우어스가 위치하고 있다.



 치밀함의 저력

 

 5월 23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된 〈Interaction〉(김광민 안무, 홍경화 김광민 출연)은 소통을 주제로 내밀한 두 사람사이의 관계를 그려낸 작품이다. 2012년 〈Person (You & I)〉로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서울댄스컬렉션에서 안무상을 받은 이후 춘천마임축제, 하이서울페스티벌, 고양호수축제, 안산거리예술축제 등에 초청받으면서 무용계 외의 많은 관객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것으로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는 김광민의 최근작인 이 작품은 15분 내내 어느 한 순간도 긴장을 풀지 않게 짜여진 치밀함이 탄성을 자아내게 하였다.
 남녀 듀엣의 진행이 어느 순간에는 어떤 모양을 갖기도 하고, 어느 순간에는 주고받거나 연결되는 것으로 이어나가면서 각각의 부분은 균등하게 긴장을 만들어내고 이어나간다. 몸집도 비슷한 남녀 무용수는 거의 한덩이리처럼 교감하고 호흡을 맞추면서 한치의 오차를 허락하지 않는데 동작의 정교함까지 더해져서 연습의 양과 반복의 힘을 상상하게 된다. 공연시 시종일관 긴장유지력이 정말 훌륭한데 거기에 ‘여백’까지 더할 수 있다면 상당한 저력을 갖추고 있는 안무가가 성장하고 있음이 확실하다.

 




 사색, 움직임, 존재의 세 층위의 조화

 

 5월 24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된 온앤오프무용단의 <가을에서 겨울로>(한창호 안무, 출연)는 바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 2악장을 반복하여 반주로 사용하는 작품으로 한창호의 고백적인 솔로작품이다. 여기서 고백적이라 함은 작품과 추는 사람이 이야기라든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과 분리 되어 있지 않으며 자신의 존재에 그려진 무늬를 그대로 무대의 춤화했다는 의미이다.
 제목에서처럼 자연과 계절, 그것이 그대로 투영된 인간의 삶, 그리고 춤을 추는 한창호가 몸의 자연성을 중심으로 하나로 연결되어진다. 음악의 깊이와 흐름이 작품을 탄탄하게 지탱해주고 그 위에 한창호가 조심스럽게, 경건하게 자신을 펼쳐 보인다. 첼로의 저음과 바이올린의 주고받음처럼 사색과 동작의 길항의 끈을 적절히 조율하면서 한창호는 시종일관 그 중심에 ‘존재’를 놓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음악의 구조와 춤의 직조가 하나처럼 잘 맞아떨어져 사색과 움직임, 존재의 세 층위가 다 잘 보여졌다.
 마치 한국춤에서 살풀이나 승무가 나이를 먹고 무르익어 가면서 맛을 내듯이 한창호의 솔로는 그렇게 나이와 함께 더 깊이 익어갈 작품으로 보여진다. 보다 섬세하게 켜켜히 자신과 삶을 담아갈 작품으로.

 




 예의바른 냉소주의자

 

 5월 28일 아르코예술극장대극장에서 공연된 <그는 누명을 썼다>(김지욱 안무)는 형광등 조명이 냉정하게 간격을 맞춰 내려와 있는 무대에 흰옷을 상의, 하의, 긴팔, 짦은 팔 등으로 각각 다르게 입은 무용수들이 머리에 종이봉지를 쓰고 한 사람을 중심으로 긴장을 모아간다.
 상투적으로 하얀 취조실이 된 것이 아쉽지만 자유와 구속, 의심과 조여옴 등은 움직임과 구성으로 논리적으로 풀어내어 졌다. 동작의 구성과 변주가 세밀하게 잘 조직되어 있었고, 별로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 긴 머리의 두 남자가 머리를 풀고 머리카락을 만지면서 과장스럽게 잘난척을 하거나 어이없게 행동함으로써 무대를 횡단하고 들어가고 김지욱의 솔로가 군무에서 빠져나와 작품의 중심에 서면서 작품은 점점 하나의 색깔을 띠기 시작한다.
 그 색은 다름 아닌 ‘예의바른 냉소’이다. 김지욱은 동작의 논리성을 아주 잘 알고 그것을 자신의 스타일대로 잘 풀어갈 줄 안다. 그리고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구조위에 적절한 위치에 올려 놓을 줄도 알고 있다. 그런 짜임새를 갖출 수 있는 몇 안되는 안무가 중 하나이다. 거기에 이 현실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잃지 않고 그것을 한단어로 압축할 줄도 아는 것처럼 보인다. 자기가 살고 있는 이 세계와 현실을 한마디로 압축하여 작품으로 보여줄 수 있다면 분명히 ‘작가’의 요건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그가 들려주는 한마디가 ‘냉소’인 것. 온통 관계를 흔들어 놓는 의심과 오해, 그것에 대한 타인에의 폭력은 우리 생활 곳곳에 만연해 있음에 대해 그는 정확히 거리를 두고 냉소하고 있었다. 그래서 작품이 끝난 후에 오래도록 그 냉소가 마음에 남아 있다.
 작품의 상투적인 패턴이라는 것이 그의 안무의 발목을 잡는 것이라면, 그것은 어느 정도 공부하고 자유로워지는 것이 그에겐 필요하겠다 싶다. 예술은 너무 예의를 차리지 않아도 용서가 되는 땅이니까.

2015. 06.
사진제공_국제현대무용제(MODAFE 2015)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