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한국 현대춤 해외진출을 위한 M극장의 시도들
춤 공연 교환의 상호주의와 국제포켓댄스플랫폼
이만주_본 협회 회원 / 춤비평

춤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시원을 같이 하지만 한국 춤의 역사는 실로 유구하다. 1935년, 고구려 옛 서울인 집안에서 발견된 무용총. 그 이름은 고분 내벽에 춤 그림이 그려져 있어 그리 붙여졌다. 한 명이 악기를 연주하고 일곱 명의 합창단이 노래 또는 구음을 합창하는 가운데 전체적으로 춤을 이끄는 한 명의 지휘자(영무)의 춤에 따라 다섯 명의 무용수가 같은 꼴의 춤사위로 춤을 춘다. 무용의상도 천의 색깔과 무늬, 모양새를 디자인한 것이 역력하다. 지휘자와 무용수들이 서 있는 순서가 옷의 모양새와 색깔과 상관없는 무작위인 것 같은가 하면 의식적인 조합의 안무로 보여져 궁금증을 자아낸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에는 이미, 적어도 1천5백 년 전에 공연 형태의 춤이 존재했음을 고구려 시대에 제작된 무용총 벽화가 증명한다.

그런 긴 역사에 기인함인지 4년제 대학과 2년제 대학의 60여개 무용학과에서 매년 2천여명의 졸업생이 배출된다. 전통춤 공연까지 치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며 1년에 이루어지는 창작 무용 공연만 1,500 건을 웃돈다. 가히 춤의 강국이다. 미국을 제외하면 세계에서 연중 춤 공연이 가장 많이 이루어지는 나라라 할 수 있다. 오늘날 한국의 춤 예술은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공연이 국내에서 이루어질 뿐, 해외 공연은 그리 많지 않다. 과연 우리가 자부심을 갖는 만큼 한국의 춤예술이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지를 자문해 보면 그 답은 시원치 못하다. 춤예술 역시 한국은 그 풍부함에 상응하는 만큼의 주목과 평가를 국제적으로 받지 못하고 있으며 세계의 변방 취급을 받고 있다. 일부 무용수나 발레리나의 경우 외국의 유수 무용단에서 수석 무용수로 활약한다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 해당무용단이 시키는대로 역을 해내는 단원일 뿐이다.

독일 뒤셀도르프 탄츠하우스(Tanzhaus)의 설립자이자 예술감독인 베르트람 뮐러(Bertram Mueller)가 한 말이 생각난다. “한국의 무용이 번성하고 있다면 피나 바우쉬까지는 아니더라도 국제적으로 명성 있는 무용가가 몇은 있어야 하지 않는가? 일본만 해도 이름을 들으면 알 수 있는 부토의 대가가 있는데 한국은 왜 그렇지 못한가?” 그의 이야기를 전적으로 수긍하지는 않지만 우리가 한번 되새겨 볼 만한 말이다. 우리에게 수많은 무용가가 있다고 하나 국제적으로 유명하거나 주목받는 안무가는 거의 없다.


 

 

 

한국의 춤예술이 성장하고 있다 하더라도 타 문화에 영향을 주지 못하고 한반도 안에서만 고립된다면 요즘과 같은 국제화 시대에 별 의미가 없다. 오늘날 한류라는 이름으로 대중예술은 오히려 전세계로 진출하고 있으나 우리 고급예술에 있어서의 수출입 역조현상은 답보상태에 있고 춤예술도 예외가 아니다. 고가의 공연료를 지불하고 외국의 무용단을 초청함에 반해 우리의 경우 공연료는커녕 초청받는 것도 활발치 못하다. 한국 춤의 해외 진출 모색과 국제적 역량을 갖춘 안무가를 키우고 배출하는 것이 우리 춤예술계의 절실하고 시급한 과제이다.

5년 전인 2006년 5월, 서울 강남구 개포동 주택가에서 문을 연 춤전용 M극장은 그간 놀라운 발전을 이루어 한국 컨템퍼러리 댄스의 산실을 넘어 춤 공작소가 되었고 한국 창작 무용의 허브(Hub)가 되었다. 연간 100여 개의 새로운 창작 무용의 레퍼토리를 무대에 올린다는 것은 세계의 내로라하는 춤전용극장과 같은 수준임을 뜻한다.

지난 5년간 짧은 시간 안에 국내적으로 획기적인 성장을 이룩한 M극장은 올해, 한국 춤의 국제화와 해외진출이라는 면에서 괄목할 만한 발전을 보이고 있다. M극장은 외국의 춤극장, 무용단과 교류할 때 ‘상호주의’와 ‘호혜평등의 원칙’에 입각하여 대등한 입장에서 똑같은 기회를 갖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 가시적인 예로 작년 11월, 독일 본(Bonn)의 이름 있는 독립 소극장인 발잘극장(Theater Im Ballsaal)과 제휴관계(International Partnership)를 맺고 앞으로 모든 면에 있어 동등한 차원에서 협력하기로 했다.


 

 

 

지난 6월 7-9일, 올해로 3회째를 맞아 M극장에서 열린 국제포켓댄스페스티벌에 발잘극장 소속의 코쿤무용단(Cocoon Dance Company)이 참가하여 두 번 공연한 것과 마찬가지로 상호교류 프로그램에 의해 올해 11월, 우리 무용단이 발잘극장에 가서 같은 조건으로 공연하게 되어 있다. 역시 이번에 공연한 핀란드의 포리무용단(Pori Dance Company) 경우는 M극장의 국제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핀란드의 안무가 한 명, 무용수 두 명이 M극장에 와 묵으며 한국의 무용수 세 명과 공동작업을 해 초연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이와 마찬가지로 2012년 4월 우리 안무가와 무용수들이 핀란드에 가서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의해 핀란드 무용수들과 함께 역시 똑같은 방식으로 공동작업을 해 공연하기로 되어 있다.
M극장은 제3회 국제포켓댄스페스티벌 기간 중인 지난 6월 8일, 소극장 규모로서는 한국 최초로 ‘댄스플랫폼(Pocket Dance Platform)’을 열었다. 이는 소극장에서 이루어진 한국 춤의 작은 견본 시장(Mini Dance Mart, 독일어로는 Tanzmesse)이라 할 수 있는데 소규모이었지만 매우 뜻 깊은 행사였다.

M극장을 설립하고 국제포켓댄스페스티벌을 이끌고 있는 이숙재 예술감독은 이번 포켓댄스플랫폼의 취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제 개포동 주택가에 숨어 있는 M극장과 국제포켓댄스페스티벌은 입소문을 타고 국제적으로 알려져 유럽의 무용단이나 중국의 춤기획자로부터도 공연하고 싶다는 제의가 들어옵니다. 그러나 국제 춤페스티벌을 열어 외국의 무용단을 초청해 보았자 모두 수준 높은 공연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우리는 그들에게 좋은 일만 하는 것이지 우리 무용단이 해외에 초청 받는 일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국제페스티벌 대부분이 실속 없이 퍼주기만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초청 교류에는 최소한 상호주의가 필요하고 한국의 무용단들이 해외로 진출하려면 외국 무용단을 초청하기보다 외국 축제나 극장의 예술감독, 기획자들을 초청하여 우리의 춤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 효과적이며 생산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와 같은 취지에서 비록 소극장이지만 이번 포켓댄스플랫폼을 열게 된 것이지요."

6월 8일 오후 1-3시까지 M극장 2층에서 필자에 의해 영어로 진행된 이 플랫폼에는 여섯 명의 외국의 예술감독과 춤기획자(참석자 아래 참조)가 참석한 가운데 한국의 대표적인 30-40대 촉망받는 여섯 안무가의 프리젠테이션으로 이루어졌다.

이날 발표자인 장구보(구보 댄스 캄퍼니 예술감독), 장미란(로즈 댄스 캄퍼니 예술감독), 정선혜(칼미아 그룹 대표), 태혜신(카르마프리 무용단 예술감독), 한효림(한효림 무용단 예술감독), 홍선미(NU홍선미무용극단 대표)는 그들의 대표적인 춤 작품과 무용예술철학을 자신이 직접 영어로 또는 통역자의 통역에 의해 소개했다.

예술가가 국제적으로 도약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작품의 질과 수준이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필요한 것이 자신의 작품 세계를 깊이와 조리 있게 표현하고 홍보하는 능력이다. 시쳇말로 자기의 작품을 어떻게 포장하는가에 따라 국제적인 주목과 각광을 달리 받게 된다. 그러나 한국의 무용가들은 그 실력에 비해 국제적인 포장능력이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소극장에서 처음 시도되는 국제 춤플랫폼인 만큼 다소 차질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모든 발표자들은 안무를 여러 번 해본 때문인지 정해진 20분을 정확히 지키며 기대 이상의 역량을 발휘했다. 그들 모두에게 색다른 경험이 되었으며 이와 같은 경험의 계속되는 축적으로 국제적인 무용가로 한층 더 발돋움하리라 여겨진다.

진행자인 나는 각 참가 무용가들의 발표 사이사이에 외국 참석자들에게 “서양의 음악과 춤은 심장의 박동과 연관이 있지만 한국의 춤은 들숨, 날숨, 멈춤인 호흡과 관계가 있음”과 일본 ‘부토’에 대응하는 ‘한국 창작춤(Changjak-choom)’에 대해 설명했다. 또 “문화에는 우열이 있을 수 없음을 전제한 후, 일본의 문화가 긴장(Tension)의 문화인 반면 한국의 문화는 이완(Relaxation)의 문화라는 점(이어령), 일본의 문화가 ‘의도된 꾸며진(Contrived) 문화’인 반면 한국의 문화는 ‘자연스런 무심결의(Casual) 문화’라는 점(동양미술사학자 Alan Carter Covell)”을 소개했다.

이번 춤 플랫폼의 가시적인 성과는 당장에는 알 수 없었으나 참가한 우리 무용가들에게 국제적인 유익한 경험이 되었으며 외국 참석자들은 놀라움과 함께 만족을 표시했다. 한국 현대 창작 춤(Contemporary Dance)의 해외진출을 위한 M극장의 이와 같은 일련의 노력들은 우리 무용계를 위해 매우 의미 있는 시도라 여겨진다.


 

 

 

필자는 이번 플랫폼을 진행하면서 이제 댄스 페스티벌 이라는 단어는 식상하고, 댄스 플랫폼이란 용어 사용도 세계적으로 흔한 마당에 ‘접속장치’를 뜻하는 컴퓨터 용어인 인터페이스(Interface)를 사용하여 아예 세계에서 최초로 포켓댄스인터페이스(Pocket Dance Interface)라는 이름을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해외(Buyer측) 참가자:
KwongWailap / 중국 광동현대무용축제 (Guang Dong Modern Dance Festival) 프로그램 디렉터
Yoshiko Swain / Hukuoka Fringe Dance Festival 예술감독
Neo Kim Seng / 싱가포르 국립박물관 공연예술 담당
Rafaele Giovanola / 독일 본(Bonn) 발잘극장 예술감독
Liisa Nojonen / 핀란드 포리(Pori) PDC Festival 예술감독
Sagi Gross / Sagi Gross Dance Company 예술감독

(게재 사진은 모두 국제포켓댄스플랫폼 행사를 담았다. )

2011. 07.
사진제공_이만주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