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봄날의 해변, 특별한 놀이에 관한 메모
제4회 부산 국제 즉흥춤 축제
노영재_춤이론

지난 4월 16~18일 제4회 부산국제즉흥춤 축제(공동 예술감독 장광열․박은화)가 개최되었다. 11주년을 맞은 서울 국제 즉흥춤 축제와 연계하여 지방 춤 문화에 활력을 불어넣고 즉흥춤에 대한 이해와 저변확대를 위해 개최된 이번 축제에는 네덜란드, 프랑스 등지에서 활동하는 외국 즉흥춤 전문가와 재외 무용가, 국내 춤꾼, 연주가 등 총 50여명이 함께 했다.

 축제 프로그램은 자연과 함께하는 즉흥, 빈 공간에 뛰어들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잼 공연, 참가자들이 오고 가며 오버랩되는 속에서 몸에 대한 여러 시각을 관찰할 수 있는 릴레이 공연, 신체 접촉을 통한 감각적이고 물리적인 반응을 경험할 수 있는 접촉 즉흥 등 다채로운 체험의 장을 제공하였다. 관객들이 함께 하는 공연과 함께 한편으로는 어린이, 일반인, 전문인 등 세분화된 대상을 상대로 한 즉흥 워크숍들을 통해 즉흥춤의 교육적, 학문적 가치를 알림으로써 더욱 축제의 내실을 다졌다고 본다.





 


 무엇보다 부산 국제 즉흥춤 축제를 조금 더 차별화 시킨 것은 지역적 특성을 활용한 야외 공연으로, ‘자연과 함께 하는 해운대 모래 즉흥공연’이란 긴 제목 하에 이는 축제의 서막을 장식했을 뿐 아니라 즉흥춤의 ‘열린’ 개념을 함축적으로 드러낸 의미 있는 행사이기도 하였다.

 4월 16일 오후 2시, 오프닝을 알리는 간단한 소개와 함께 무대 없는 빈 백사장에 앞 쪽에 뮤지션들이 자리 잡고 천천히 음악을 연주하며 분위기를 만들고 박은화(현대무용단 ‘자유’ 예술감독)와 무용수들은 하나 둘 사방에서 백사장으로 들어가며 다양한 움직임들을 구현해 내었다. 예상한 것처럼 사전에 미리 만들어 놓은 안무는 없었다.


 

 

 


 움직임만큼이나 모래는 특히 이 공연을 이끌어 나가는데 있어 중요한 요소가 된다. 모래의 질감과 느낌은 너무도 다양하다. 부드럽기도 하고, 메마르기도 하며, 무겁기도 하고, 하나의 형태로 안주하지 않기에 자유롭기도 하고, 물을 만나면 어둡고 끈적끈적하기도 하기도 하다. 이 자체가 움직임의 속성과 닮아있기도 하지만, 몸을 무한하게 시각화하는데 기여하는 듯 느껴졌다. 이는 ‘자유롭게’ 움직이고자 하는 몸을 속박하고, 신체의 일부분을 감춤으로써 일종의 그로테스크한 단절을 가져다주고, 역동적인 몸의 경로를 그려내기도 하였다. 바꾸어 말하면 무용수들을 더욱더 즉흥적으로 자극하여 반응하게 하는 흥미로운 과정을 보여주었다.

 

 

 

 


 모래나 바닷가의 탁 트인 공간은 즉흥춤 공연에 있어 참여자들이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던 부분이었겠지만 미처 예상치 못했을 강한 바람 또한 인상적이었다. 바람으로 인해 공간 속에 형성되는 강한 저항들은 곳곳에서 움직임의 파열을 가져다주고, 몸과 동작의 방향에 따라 독특한 느낌과 이미지를 자아내었다. 사람들은 때때로 자연 속에서 한없이 작아진다고도 하지만 이 순간은 자연과 함께 해서 더 풍요로웠던 것 같았다. 습관적으로 공연이 이루어지는 장소를 내내 응시하다 문득 백사장 전체를 멀리 내다보았다. “춤 공연 보러오세요!”라고 광고하며 관객들을 의자에 모시기보단 이 야외 공연은 해변을 거니는 행인들을 찾아가고, 궁금함을 자아내어 그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였다. 그리고 이 ‘즉흥적인’ 관객들은 공연자들처럼 자유롭게 관찰하고, 이동하며, 예고도 없이 장면에 뛰어들기도 하면서 하나의 풍경을 이루고 있었다.

 

 

 

 


 즉흥춤은 90년대부터 이미 서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공연의 형태로 발전하고 있으며 전통적인 춤 장르를 초월하여 교육적, 학문적 성과 또한 풍부해지고 있다. 국내에선 서울을 중심으로 소개되어지던 것이 어느덧 부산에서도 4번째 축제를 치렀다. 일회성의 공연이 아닌 배움과 실험이 공존하고,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놀이터’를 만난다는 것은 더없이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즉흥춤의 탈장르화와 공동체적 놀이를 추구하는 자유로운 성향을 되짚어볼 때 아직은 더 연구하고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부분들도 많다. 때론 현대춤 전공자들의 전유물이라는 선입견도 있으며, 전공자 스스로 자발적인 움직임에 대한 불편함도 있다. 안락한 감상을 기대하고 오는 관객들의 혼란도 있기에 이처럼 능동적이고 다양성을 함축한 축제는 지역 춤 발전에 중요한 의미로 다가오며, 답습되는 춤교육에 있어서도 반성과 진취적 과제를 함께 던져 주는 것 같다.

2011. 05.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