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국립발레단 (1) 에세이 비평
푹 삭아 아우라가 풍겨나는 무르익은 무대를 기다리며
이순열_춤비평가

 첫 대면은 언제나 우리를 설레게 한다. 무용에 관심이 있는 사람치고 우베 숄츠(Uwe Seholz, 1958-2004)나 글렌 테틀리(Glenn Tetley, 1926-2007)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겠지만, 우리 무대에서 그들 작품이 소개되는 것은 이번 국립발레단의 정기공연(10월 16-19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
 이 정기공연은 이들의 작품을 우리 무대에서 처음으로 접하게 된다는 점에서 뿐만 아니라, 발레리나 강수진이 아닌 예술감독 강수진의 역량을 본격적으로 보여주는 첫 무대라는 점에서도 관심과 기대를 모았다.
 숄츠와 테틀리가 모두 슈투트가르트 발레단과 인연이 있어(숄츠는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서 마르시아 하이데의 사랑을 받으면서 성장했고, 테틀리는 존 크랭코의 뒤를 이어 1974년부터 1976년까지 예술감독으로 일했다) 한국의 국립 발레단이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복제품이냐고 비아냥대는 소리도 없지 않았다. 그렇다 한들, 이들과의 첫 만남에 무슨 장애가 되랴.
 ‘어느 섬이라서 외따로 떨어진 채 홀로 온전하겠느냐’고 존 돈(John Donne)은 말한다. 우리의 문화예술계는 오랫동안 외딴 섬으로 고립되어 오다가 겨우 얼마 전부터 우물 안에서 벗어났지만, 아직도 국지성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한 상태다.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지각을 깨뜨리면서 소용돌이쳐 솟아오르는 교향곡 7번처럼 이번 공연이 계기가 되어 막혔던 모든 통로가 트여 도처에 길이 뚫리는 신호탄이었으면 좋겠다.  

 우베 숄츠의 작품이 우리 무대에서도 공연되기를 간절히 바랐던 것은 58년생의 그가 57년생의 나초 두아토와 함께 20세기의 유럽을 주도해온 안무가라는 탓도 있지만, 2005년 그의 사망 일주기의 추모 공연에서 선보인 <대 미사곡>이 너무 신선했기 때문이다.
 슐츠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거나, 누구의 어떤 작품이 공연될지 아무런 사전 정보도 없이 객석에 앉았다면 <교향곡 7번>은 열락의 물결이 넘실거리는 춤의 축제로 우리에게 다가 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대가 클수록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바라게 된다. 소설을 영화로 만들 경우, 원작이 심오하면 할수록 영화 만들기는 더욱 힘들어진다. 음악과 무용의 관계도 비슷하다. 나초 두아토의 <멀티플리시티>인들 어찌 바흐의 음악에 필적하는 춤이라고 우길 수 있을 것인가.
 지각(地殼) 깊숙한 곳에서 들끓는 열기로 부글거리면서 용솟음치는 베토벤의 점층 구조는 숄츠의 안무에서 그 밀도가 희석되어 간간히 맥이 풀려 있었다. 게다가 전(全) 악장이 똑같은 세트와 의상으로 일관되어 다양성이 결여되고 말았다. 발레단원들은 조금은 낯선 숄츠의 무용 언어를 짧은 시간에 잘 소화했지만, 좀 더 깊은 곳에서 내면의 춤을 꽃피웠으면... 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그렇기는 해도 숄츠가 베토벤의 교향곡 7번으로 안무를 시도했고, 국립발레단이 그 춤을 우리 무대에 올렸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할 이유는 여전히 충분하다. 바그너가 ‘무용의 성화’(聖化)라고 열광했던, 춤으로 가득찬 이 음악에 숄츠 이외의 누구도 춤의 의상을 입히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은 씁쓸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망각의 숲속에 잠든 춤’을 뜨거운 입맞춤으로 이 음악에서 눈뜨게 한 숄츠에게 우리는 찬사를, 그리고 비록 미흡한 점은 있다 해도 그 성과를 우리 관객에게 전해준 국립발레단에게도 치하를 보내 마땅하다.

 이번 공연의 두 번째 작품에서 테틀리를 만날 수 있었다는 것도 우리에게는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미국 태생이면서도 유럽에서 더욱 높이 평가되었던 테틀리는 우리 시대에 그 흔적을 깊이 새기고 갔다.
 발레의 ‘뻗어남’에 그래험류의 ‘응축’이라는 심지를 꽂아 새로운 무용언어를 창안한 안무가로 알려진 그를 가리켜 데이빗 앨런은 ‘우리들의 상상력에 불을 붙여 우리를 변신케 하는 안무가’라고 높이 평가했다.
 ‘무용은 인간이 지닌 가장 심오한 언어’라고 그는 말한다. 그리고 그는 안무를 통해 우리의 의식 깊숙한 곳곳에 내재된 ‘그 심오한 언어’를 끊임없이 찾아내려 한다. 그 발굴 작업의 가장 두드러진 성과중 하나가 <봄의 제전>이다. 

 



 <봄의 제전>은 죽어가는 대지를 천도하거나 우리의 마지막 숨결까지 쏟아 부어 소생시키려는 일종의 씻김굿이다. 이 씻김굿에도 테틀리의 ‘심오한 언어’는 곳곳에 상감(象嵌)되어 있다. 그 중 하나가 <달에 홀린 삐에로>라든가 <스핑크스>에서 극대치를 보여준 관능적인 아름다움을 춤으로 그려낸 육체언어이다.  

 그리고 웬만한 무용수들에게 그것을 섬세하게 부각시키지 못했다고 탓한다면 가혹한 일일 것이다. 처음 대하는 테틀리의 생소한 무용언어, 들끓는 대지의 맥박이 고동치면서 불꽃 튀듯이 작열하는 이 씻김굿의 드라마를 국립발레단 단원들은 적어도 기능적인 면에서는 잘 소화해냈다.
 그러므로 제이슨 라일리(Jason Reilly,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격정적이면서도 섬세하고 육중해 보이면서도 나비처럼 유연한 몸짓으로 관능적인 바람을 풍기는 연기를 보지 않았다면 우리의 무용수들도 별로 흠잡을 데가 없었을 것이다.
 까다로운 관객들조차도 새로운 무대를 접할 때마다 발레 단원들의 기량이 거듭 향상되어 왔음을 체감했을 것이고 이번 무대도 예외는 아니다. 그렇지만 나는 국립발레단원들에게 요구하고 싶다. 다음에도 또 다시 새로운 작품에 도전하여 기능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좀 더 성숙한, 푹 삭아 아우라가 풍겨나는 더욱 무르익은 무대를 보여 달라고.
 스타니슬라프키가 주장했던 대로 예술가가 아니라면 요구할 것이 아무것도 없지만, 예술가에게는 끝없이 많은 것을 요구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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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_ 국립발레단 <교향곡 7번><봄의 제전> (2) 리뷰



‘변화’의 바람, ‘제의’ 형식의 흥미로운 조합

방희망_춤비평가


 국립발레단은 제156회 정기공연으로 우베 숄츠의 <교향곡 7번>과 글렌 테틀리의 <봄의 제전>을 국내에 처음 소개했다(10월16-19일, 평자 19일 관람). 강수진 예술감독 취임 이후 국립발레단에 불어온 변화의 바람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는 점에서 반가운 단비 같은 무대였다.
 그간 국립발레단이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나 마츠 에크 등 해외 안무가들을 초빙하여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된 고전 <로미오와 줄리엣>, <카르멘>을 공연한 적은 있었다. 그러나 이야기 구조에 기대지 않고 전개하는 새로운 개념의 모던 발레를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슈투트가르트 발레단과 인연이 있는 우베 숄츠, 글렌 테틀리의 작품을 선보임으로써 강수진 예술감독이 가진 카드가 국립발레단에 어떤 풍성함을 안겨줄지 기대된다.
 베토벤의 <교향곡 7번>과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바탕으로 안무된 두 작품은 각각 40분의 러닝 타임을 갖고 있어 한 무대에 꾸미기 좋다는 이유만으로 커플링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음악적인 색깔도 작곡 연대도 완전히 다른 두 작품의 뚜껑을 열어보니 둘 다 일종의 ‘제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조합이었다. 

 

 



 우베 숄츠의 <교향곡 7번>은 베토벤 음악이 가진 활달함과 진취성을 그대로 시각화한 수작이었다. 그가 세트와 의상에 대한 영감을 받았다는 미국 화가 모리스 루이스(Morris Louis)의 작품 〈Beta Kappa〉(이 외에도 일련의 시리즈가 있다)는 선명한 색상의 선들이 서로를 간섭하거나 방해하지 않고 나란히 V자로 모여드는 이미지이다. 산 또는 폭포가 힘차게 내달리는 인상을 주는 그 그림을 배경으로 가져옴으로써 세부적인 묘사 없이도 대자연의 광활한 심상이 고스란히 전해졌고 베토벤의 음악에 딱 맞아떨어졌다. 균형 잡히고 조화로운 질서 속에 뛰노는 신인류, 미래 종족의 제의와 잔치랄까(베토벤의 교향곡 7번에 대해서는 이미 바그너가 ‘무곡(舞曲)의 극치’라 불렀고 마르크스는 ‘유목민의 결혼식 또는 기념 축제’, 음악비평가 베커는 ‘주신제’(酒神祭)라 표현한 바 있다).  

 채도 높은 세트에 비해 밝고 가벼운 레오타드 의상은 무용수들을 SF영화 속 유영하는 우주인처럼 보이게 했고, 악상에 따라 정교하게 구축된 안무는 첨단공학의 구조물이 착착 펼쳐지듯 유연했다. 1악장에서 여성 무용수를 스플릿(Split)된 자세에서 주욱 잡아끈다던지 3악장에서 빛으로 이루어진 원으로 모여드는 모습 등 유머러스한 장면도 가미되어, 희노애락 애오욕의 강렬한 감정의 진폭 없이 이성적으로 편안하게 감상하는 재미를 선사하기도 했다.
 이은원과 이재우는 경쾌한 연기와 함께 난도 높은 리프팅을 안정적인 호흡으로 소화하면서 국립발레단의 주역으로 착실히 자리매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체격조건 때문에 다른 작품에서는 튀는 느낌이었던 이재우가 오히려 이 작품의 색깔과 맞아 포인트 역할을 톡톡히 해낸 것은 다행스럽다.
 그리고 의도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커튼콜 때 무용수들끼리 팔을 엇걸어 일자 대형을 이루어 인사하면서 가슴에 그려진 무늬들이 모여 사람 인(人)자를 만든 것은, ‘협동과 조화의 미덕’이라는 작품의 여운을 지속시키는 깔끔한 마무리여서 더욱 인상 깊었다.
 2부에 올린 글렌 테틀리의 <봄의 제전>은 니진스키의 러시아 슬라브족 원시제의 컨셉트에서 민족적인 색채를 지우고 더욱 더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 인류의 보편적이고 근원적인 제의로 확장한 작품이다. 앞선 <교향곡 7번>의 세트가 상상력의 여백을 두었다면, <봄의 제전>은 여러 개의 봉을 세워 천정까지 높은 나무들이 우거진 어두운 밀림을 연출하였다. 

 

 



 여기에 등장한 청년 ‘제물’은 아직 때가 묻지 않은 초창기 인류의 모습을 대표하는 것 같았다. 뽀앵트(Pointe) 대신 발끝을 위로 향하게 들어 올리는 플렉스(Flex) 자세가 반복적으로 강조되면서 대지와 밀착된 걸음마를 표현했다. 또한 고대 그리스의 그림에서 익히 보았듯 뼈와 근육의 흐름이 잘 드러나는 옆으로 뒤튼 자세, 이제 막 깨어나기 시작한 힘을 가늠해보는 물구나무 자세 등이 제시되는데, 이로인해 순수하고 싱그러운 육체의 건강함과 신비로움이 잘 전달되었다.  

 이어지는 남성 군무는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이 주는 박력과 희열에 차올라 집단적으로 구르고 뛰면서 점차 야수성을 드러낸다. 그러나 희생 제의에 대한 구체적인 동기는 제시되지 않는다. 그렇게 모호한 상태에서 급박하게 맞은 희생 제의는 논리적인 설명을 들 수 없기 때문에, ‘생각하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본능을 가진 동물일 수밖에 없는 인간’에 대한 기묘한 슬픔을 안겨주게 된다.
 여성 무용수들의 분량이 들어가 있지만 역할이 상대적으로 미미하고, 남성 군무 위주로 진행되는 이 작품 속에서 인류 역사에서 전쟁을 일으켜 온 쪽은 힘을 가진 남성들이고 그것을 막을 수 없었다는 무력감까지 함께 느껴져서일지도 모르겠다.
 앞선 <교향곡 7번>의 안무가 그러했듯, 글렌 테틀리의 <봄의 제전>도 원래의 줄거리를 가급적 배제한 채 순음악적인 영감에 최대한 초점을 맞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원래 춤곡의 리듬이 내재되어 정련된 질서를 갖추기 용이했던 <교향곡 7번>에 비해 변칙적인 박자 사용으로 격한 혼란을 유도하는 <봄의 제전>은 무용수들에게 더욱 높은 음악성과 강도 높은 훈련을 요구한다.
 지난 3월 <라 바야데르>의 황금신상 역으로 캐릭터 댄스에 재능이 있음을 알렸던 솔리스트 김윤식이 ‘제물’ 역으로 선전하였으나, 군무진은 후반부로 갈수록 점차 나아지긴 했지만 공연 일정의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무겁고 둔탁한 움직임을 보였다. <교향곡 7번>에 비해서는 아직 국립발레단의 몸에 맞춤으로 딱 들어맞는다는 평가를 내리긴 어렵다. 고전 레퍼토리에 익숙한 단원들에게서 더욱 원초적인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려면 다른 컨템포러리 작품들을 다양하게 소화하면서 ‘틀’이 해체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번 공연은 전체적으로는 기존 국립발레단의 작품들과 확연히 다른 색깔의 신작을 맞이하여 단원들이 흘린 땀의 무게를 짐작할 수 있는 진지한 무대였다. 객석에서 아낌없이 터져 나온 박수와 함성은 관객들도 그간 모던 발레의 신세계를 간절히 기다려왔음을 방증하는 것이었다.
 국립발레단이 2015 시즌 레퍼토리로 발표한 작품 리스트에 여전히 <지젤>과 <백조의 호수>, <돈키호테> 등의 고전이 자리 잡고 있는 가운데 이번 <교향곡 7번>과 <봄의 제전>도 포함되어 있다. 민간 발레단이 컨템포러리 발레 레퍼토리 확보에 적극적인데 비하면 모험을 하려 하지 않고 안정적인 선택을 거듭하는 국립발레단의 행보가 오히려 뒤처진 느낌이다.
 내년 <교향곡 7번>과 <봄의 제전> 재공연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보다 훨씬 규모가 작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올리는 것으로 예정되어 있다. 이번에 거의 전면을 다 사용하다시피 했던 무대를 어떻게 축소시킬지가 궁금하다.
 또 하나, 관객의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두 작품이 가진 분위기가 상이하다보니 하룻밤 공연 안에서 결과적으로는 인류의 문명이 퇴보, 비극적으로 역행하는 방향으로 배치된 인상을 준다. 물론 무대장치를 전환하는 문제, 겹쳐서 출연하는 군무의 분장과 체력 안배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하자면 이번과 같은 순서가 합당할 것이나 주제 의식의 전달이라는 측면에서는 거꾸로 배치하여 공연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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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_ 국립발레단 <교향곡 7번><봄의 제전> (3)
인터뷰_ 오디션 통해 주역으로 전격 캐스팅 된 신혜진 정은영 전호진



힘들었지만 무용수로서의 성장에 자양분이 되길


클렌 테들리 안무의 <봄의 제전>에는 오디션을 통한 무용수들의 파격적인 캐스팅이 화제가 되었다. 폭발적인 에너지를 요구하는 군무 사이에서 특별한 솔로춤과 2인무를 보여주는 주역에 캐스팅된 3명 무용수들 중 2명은 놀랍게도 국립발레단의 연수 단원이었다. 기대 이상의 호연을 보여준 3명의 주인공들을 공연 후에 만났다.(편집자 주)



장광열 객원 안무 시스템이 잘 정착되어 있는 외국 발레단의 경우는 안무가에 의한 오디션을 통한 배역 결정이 보편화 되어 있습니다. 이번 국립발레단 정기공연은 드물게 이 같은 절차를 거쳐 댄서들의 캐스팅이 진행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공연 전 <봄의 제전> 캐스팅이 발표되었을 때 매우 의아해 했습니다. 만만치 않은 기량과 표현력이 필요한 배역인데 놀랍게도 연수 단원으로 활동하는 댄서들이 포함되어있었기 때문이었지요. 우선 자신들에 대한 소개부터 해주기 바랍니다.

정은영: 저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을 졸업하고, 올해 2월 연수단원으로 입단해서 7월에 준단원이 됐고, 공연 후에 있었던 정단원 시험을 통해 이번에 정단원이 됐습니다. 아직 정단원 계약을 안했으니 준단원이라고 해야겠네요. <봄의 제전>에서 ‘대지의 여신’으로 5회 공연 중 1회 출연했습니다.

전호진: 저는 <봄의 제전>에서 ‘제물’ 역을 맡았었고, 세종대학교를 졸업하고 2014년도에 연수단원으로 국립발레단에 입단했습니다. 이번 공연이 끝나고 지난 주 실시한 준단원 오디션을 통과해서 이번에 준단원이 되었습니다.

은영씨와 호진씨가 연수 배역 결정을 위한 오디션을 보았을 때는 연수단원 신분이었겠네요. 정은영씨는 팸플릿에 보니 현재 국립발레단 최연소 여자 무용수이자 최장신(174센티) 무용수라고 소개되어 있더군요. 전호진씨는 <봄의 제전> 안무가 글렌 테틀리를 대표하는 안무 트레이너인 브론웬 커리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아 주역인 ‘제물’ 역에 캐스팅 된 것으로 들었습니다.
신혜진: 저는 세종대학교 출신으로 대학교 4학년이었던 2009년에 인턴으로 입단했고, 준단원을 거쳐 정단원이 됐습니다. 현재 그랑 솔리스트를 맡고 있습니다. 전에 솔리스트까지는 했었는데 이렇게 주역을 맡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솔직히 아직 얼떨떨 합니다. 이번에 했던 <봄의 제전>에선 ‘대지의 여신’ 역을 맡았습니다.

국립발레단의 경우도 댄서들의 등급이 다른 메이저 발레단들처럼 정해져 있긴 하나 새로운 레퍼토리가 공연될 경우 오디션을 통해 댄서들을 캐스팅하도록 한 것은 프로페셔널한 제작 시스템을 가동시켰다는 점에서 공감이 갑니다. 공연 후 대체적으로 호평을 받은 만큼 무용수로서 여러분들의 존재감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힘들었던 공연인 만큼 공연 후에 느끼는 소회도 남다를듯 한데요.
신혜진: 아까도 말씀 드렸듯이 사실 아직까지도 얼떨떨합니다. 몸도 아직 <봄의 제전>을 해야만 할 것 같구요. 이제 <호두까기인형> 시즌이라 연습에 들어갔는데 몸이 아직은 클래식 발레를 하기에는 준비가 안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돌이켜보면 조금 더 잘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아쉬움이 들지만 정말 행복하고 재미있게 무대에 섰던 것 같습니다.
전호진: 전 5회 공연 중 한번 출연 했었습니다. 처음에는 한 번도 벅차다는 생각에 걱정됐었는데 끝나고 나니까 후련하기도 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좀 더 잘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듭니다. 저도 <봄의 제전>하고 다시 클래식을 하려니 몸이 잘 안 잡히는 것 같아요. 이번 작품을 하면서 몸에 힘을 빼는 연습을 많이 해서 다시 몸에 힘을 주려니 뜻대로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정은영: 전 한 작품을 올리면 그 작품에만 집중을 하고 공연이 끝나면 금방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더 잘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 보다 무대 위에서 연습한 것을 다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공연 후 일주일 뒤에 준단원 승급 오디션이 있어서 <봄의 제전> 공연이 끝나고 이틀 밖에 못 쉬었지만 그때 다 잊어버렸습니다.(웃음)

이번에 출연했던 작품의 경우 지금까지 해왔던 국립발레단의 작품들과는 그 스타일이 많이 다른데 어떤 점이 제일 어려웠고, 어떤 점에서 더 성장했다고 생각하는지요?
신혜진: 제일 어려웠던 점은 아무래도 움직임의 스타일이 기존에 해왔던 것과는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작품은 동작만으로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부분이 많았는데 이것 역시 쉽지 않았습니다. 발레는 마임도 많이 있고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이 정해져 있는데,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동작만으로 감정을 표현해야 돼서 어느 부분에서 감정을 표현하고 터트려야 하는지 처음에는 감이 잘 오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클래식 발레와 다르게 감정을 몸에서 끌어낼 수 있는 부분을 많이 배운 것 같습니다. 또 발레에서 사용하지 않는 근육을 사용했던 것 자체가 무용수에게는 큰 이익이었던 것 같습니다.

무용수로서의 한계나 본인의 취약점 같은 것은 발견할 수 없었나요?
신혜진: 많이 발견했습니다. 감정표현에 있어서 부족한 부분을 많이 느꼈고, 또 몸이 뻣뻣한 편인데 이번 작품을 하면서 그러한 무용수로서 저의 단점도 더욱 확실하게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그같은 새로운 인식이 앞으로 더욱 훌륭한 댄서가 되기 위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글렌 테틀리 안무의 <봄의 제전>은 워낙 힘든 작품으로 정평이 나있습니다. 사실 전문가의 시각으로 보면 이번 <봄의 제전>은 아쉬운 점이 없진 않습니다. 이 같은 스타일의 작품을 레퍼토리로 많이 보유한 외국의 발레단과 비교했을 때 군무에서 특히 아쉬움이 있었지만 작품의 난이도를 고려했을 때 기대한 것보다 훨씬 좋았다는 평이 많습니다. 호진씨는 어땠나요?  

전호진: 처음에는 그냥 힘들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제일 어려운 작품이 세 번째 솔로인데 그 부분을 처음부터 끝까지 처음 해봤을 때는 정말 하늘이 노래지더군요. 숨이 안 쉬어지고 쓰러질 것 같았습니다. 아무래도 클래식 발레와는 사용하는 호흡이 다르다 보니 더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계속 연습을 하면서 요령도 생겼고, 체력도 많이 늘었습니다. 또 표현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많이 들었었는데 그러면서 나의 문제점을 알게 되기도 했구요. 

 

 



신혜진: 제일 많이 지적받은 것은 파드되 할 때 남자 파트너랑 함께 해야 하는데 혼자 하려고 하는 것이 강해서 파트너와 맞춰가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파트너가 워낙 공연 경험이 많은 댄서(이영철)라 잘 맞춰주어서 그나마 전 좀 편하게 한 편입니다. 포즈, 포즈가 아니라 연결해서 유기적으로 움직이라는, 살아 숨 쉬는 움직임을 하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공연이 많다 보면 많은 부분을 연습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부족한데 이번 <봄의 제전> 의 경우 캐스팅도 여러 팀이고 다른 작품들도 있어서 리허설 시간이 너무 적었어요. 처음 하는 작품이니 만큼 좀더 많은 리허설을 했으면 했는데 그렇지 못한 점이 아쉬웠습니다.  

정은영: 발레는 다 풀업을 해서 춤을 추는데 이번 작품은 동작이 아래를 많이 향하고 있어서 몸을 내리는데 많이 힘이 들었습니다. 또 골반을 사용하는 것이 발레는 다 턴 아웃인데 이번 작품은 모두 턴 인이라서 힘들었고, 감정표현에 있어서도 파트너(김기완)와 함께 아이를 만드는 씬인데 제가 경험하지 못했던 부분이라 더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혜진씨는 그 힘든 역할을 4번이나 공연했는데 체력적으로 문제는 없었나요?  

신혜진: 솔직히 말해서 연습실에서는 너무 힘들었습니다. 앞부분을 하고 솔로를 할 때는 정말 팔 다리가 잘려 나간 느낌이었어요. 공연 때 오케스트라의 라이브 연주가 연습실에서 했던 것 보다 다소 느려져서 조금 더 숨 쉴 수 있는 부분을 찾고, 리허설을 많이 하다보니까 조금 나아졌습니다. 또 하다보니까 하게 되더라구요.(웃음)

연습 과정에서부터 만만치 않은 작품이란 것을 인식했을텐데 체력 강화를 위해 특별히 신경쓴 부분이 있었나요 홍삼을 먹는다던지...
신혜진: 저는 홍삼 같은 것은 안 챙겨 먹고, 너무 힘드니까 집에 가서 밥을 먹고, 한 시간 정도 지나서 또 밥을 먹고 했던 기억이 나네요---
전호진: 저는 약을 많이 먹었어요. 비타민은 종류별로 다 먹고 상어 연골, 홍합을 갈아서 먹고, 오메가, 소고기도 많이 먹었습니다.(웃음)
정은영: 저도 처음엔 특별히 챙겨 먹진 않았었는데 리허설을 온전히 한번 하고 나서 너무 힘들어서 그때부터 신경 쓰서 이것 저것 챙겨먹게 되더군요.

컨템포러리 발레 작품을 해본 경험이 많지 않고 더군다나 이번 <봄의 제전>과 같은 모던 스타일은 더욱 새로운 것이었을텐데 이번에 하면서 너무 힘들어서 더 이상 컨템퍼러리 발레 작품은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신혜진: 힘들어도 하고 싶기는 합니다. 지금까지 클래식 위주로 해왔기 때문에 다른 많은 작품을 접할 수 있는 경험들은 무용수로서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떤 작품이든 기회가 주어진다면 할 것입니다.
전호진: 학교 다닐 땐 콩쿨 준비를 하면서 컨템퍼러리 작품을 짧게 했던 경험이 있지만 이렇게 큰 작품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처음에는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배워가면서 재미를 느꼈습니다. 분명 새로운 매력이 있었습니다.
정은영: 저는 학교 다닐 때 여러 번 경험하면서 컨템퍼러리 댄스에 흥미를 많이 가졌었는데 이번에 이렇게 다시 하게 돼서 참 좋았습니다. 제가 이런 컨템퍼러리 작품을 할 때 더 즐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저에게는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사실 프로페셔널 단체에서는 경쟁이 없을 순 없습니다. 이번에 캐스팅 됐을 때 부담되거나 다른 단원들의 눈치를 보거나 하는 경우는 없었나요?  

신혜진: 솔직히 부담이 안 될 수는 없었지요. 그러나 작품에 대해 생각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서 다른 사람들을 의식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었어요.
전호진: 전 너무 부담됐습니다. 저보다 잘하시는 형들이 많다는 것을 아는데 제가 캐스팅됐다는 것이 미안하고... 그래서 친한 형들한테 너무 부담이 되서 못하겠다고 이야기 했더니 남들 신경쓰지 말고 연습에만 몰두하라는 말에 힘을 얻었습니다.
정은영: 너무 부담되고, 걱정이 컸습니다. 또 이번 연습기간이 생각보다 짧아서 생각할 겨를이 없긴 했지만 리허설 할 때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긴 했습니다. 솔로를 하고 있으면 저를 쳐다보고 있는 시선이 느껴져 그럴수록 작품에 더 집중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강수진 단장님이 부임하고 나서 댄서로서 보기에 어떤 부문에서 발레단에 변화가 생겼는지 궁금합니다.
신혜진: 아무래도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분위기가 많이 딱딱했었는데 정렬 되어있는 분위기라고 할까요? 요즘에는 좀 자유스럽고, 단원들의 표정도 좀 밝아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어떤 배역을 춤추고 싶고 어떤 무용수로 기억 되고 싶은지요?
정은영: 발레가 말없이 춤으로만 전달해야 하는 것이다 보니 움직임만으로도 진심을 전달할 수 있는 무용수이고 싶습니다. 저는 <백조의 호수>에서 오데트 공주를 춤추고 싶습니다.
전호진: 저는 제가 키가 작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군무는 키를 맞추기가 어려우니 좀 더 열심히 해서 솔리스트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이번에 하면서 용기도 얻었고, 계속 열심히 해서 좋은 자리에 서고 싶습니다. 12월에 공연할 <호두까기인형>을 생각해 본다면 ‘중국춤’을 추어보고 싶습니다.

컨템퍼러리 작품에서는 무용수의 체격이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요즘엔 안무가들이 캐릭터 댄스를 잘 활용하고자 하기 때문에 무용수로서 자신만의 개성, 색깔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움직임을 해도 다른 느낌을 만들어내는 무용수가 주목을 받게 되더군요.
신혜진: 저는 믿고 볼 수 있는 무용수가 되고 싶습니다. 제가 나온다고 하면 관객들이 즐겁게 볼 수 있겠다고 생각을 가질 수 있는 그런 무용수요. 예전에 장 크리스토퍼 마이오 안무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마담 캐플렛’ 역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감정이 많이 남아있어서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시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곧 작품 리허설에 들어가야 한다니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해 아쉽습니다. 인터뷰 때문에 점심으로 준비한 샌드위치도 제대로 들지 못했군요. 이번 <봄의 제전> 공연이 무용수로 성장하는데 큰 자양분이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오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2014. 11.
사진제공_국립발레단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