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홍은예술창작센터 〈춤매뉴얼〉
한 명의 관객만을 위한, 최적화된 춤 서비스
방희망_춤비평가

 홍은예술창작센터 2014 입주예술가 창작발표회인 ‘모모한 예술’의 다섯 번째 프로젝트는 안무가 홍혜전의 홍댄스컴퍼니와 다페르튜토 스튜디오와의 협업인 <춤매뉴얼>(12월 22-27일, 홍은예술창작센터 갤러리H)이었다.
 다페르튜토 스튜디오의 작가 적극이 2012년부터 ‘공연예술의 아카이브’를 주제로 진행해 온 작업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그 아카이브를 공연예술로 만들자는 시도인데, 올 9월부터 홍댄스컴퍼니 측에서 섭외한 14명의 안무가- 최문석, 이동하, 이선아, 박근태, 최진한, 김형민, 안수영, 정정아, 한창호, 김보라, 차진엽, 고블린파티, 류장현-들과 워크샵을 진행하고 글과 영상으로 자료화하였다.

 



 춤 현장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14명의 안무가들은 비공개로 진행된 워크샵에서 한 명 많게는 다섯 명의 관객을 두고 관객의 자세와 움직임, 그 날의 감정 상태 등을 관찰하고 대화하면서 즉석에서 동작을 만들어나갔다. 관객이 이 상황에 부담을 느껴 경직됨으로써, 대상에 대한 관찰이 부자연스러운 결과를 낳지 않도록 배려하고 유도하는 노하우에서 각 안무가들의 개성이 엿보인 점, 그리고 이로써 각 안무가들이 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짚어볼 수 있었던 점이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적극적인 상호작용 없는 대신 혼자만의 용의주도한(?) 분석을 선호하는 작가도 있었고, 안수영처럼 게임과 놀이를 통해서 혹은 김보라처럼 개인적인 이야기를 먼저 털어놓음으로써 친밀감을 높여 교감을 시도하는 작가도 있었다. 안무가들은 이 과정을 통해 자신이 춤을 만드는 방식 혹은 선호하는 경향을 분석하면서 다듬어 자신의 춤매뉴얼을 완성하였고 그것은 한 권의 자료집으로 묶여 전시공간에서 배포되었다.

 



 전시 마지막 날인 27일 오후 3시부터 6시까지는 홍은예술창작센터 2층 전시공간에서 그간 완성시킨 춤매뉴얼을 기반으로 관객으로부터 ‘춤메뉴’를 주문받아 30분 간격으로 시연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하였다.
 이날은 사전에 워크샵을 진행했던 14명의 안무가와는 별도로 밝넝쿨이 춤메뉴 시연을 맡았다. 관객은 1천원을 지불하고 춤메뉴를 예약하고, 예약된 순번에 따라 안무가와 대화를 나누는데 이때 대화 내용을 다른 관객은 멀리서 지켜볼 뿐 바로 들을 수 없다. 대화가 끝나면 안무가는 준비해 둔 음악 중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5분 내외의 노래를 틀어놓고 관객과의 대화에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즉석에서 춤을 펼치는 방식이었다.
 ‘매뉴얼’은 ‘설명서’, ‘지침서’ 등의 뜻을 갖고 있다. 비정형적인 것을 정형화시키고 그 매뉴얼만 습득한다면 누구라도 원하는 결과에 이를 수 있도록 안내하는 역할이다.
 이번 발표회를 앞두고 홍은예술창작센터 측에서 홍혜전, 적극을 인터뷰한 내용( http://cafe.naver.com/hongeun2011/2152)을 참고하면 전시 마지막날의 퍼포먼스를 위해 앞서 도출된 14개의 춤매뉴얼을 숙지한 4명의 팀원이 준비하고 있었지만 결국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춤매뉴얼을 활용하기보다는 자신만의 방법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보편성을 가진 실용적인 춤매뉴얼 개발은 또 다른 작업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봐야겠다.
 완성되어 나온 춤매뉴얼을 실질적으로 활용하는 측면에서라면, 춤매뉴얼 책자에 목차나 찾아보기 등을 넣어 ‘매뉴얼’의 느낌을 더 살렸더라면, 벽면에 투사한 영상에도 ‘골라보기’가 가능하게끔 고려했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이번 작업에서는 부수적으로 얻은 결실이 돋보였는데, ‘춤메뉴’라는 개념이 그것이다. 관객과 단절된 상태에서 완성시킨 작품을 공연장에서 일방적으로 올려 그 후 반응을 보는 방식 말고, 주문하는 한 명의 관객만을 위해 현장에서 그에게 최적화된 춤을 제공할 수 있다는, 어찌 보면 춤을 상당히 적극적인 ‘상품’, ‘서비스’로서 밀고 나갔다는 것이다.
 관객은 자신과 무용가가 은밀히 나누었던 대화 내용이 어떤 방식으로 구현되나 지켜보는 것으로써 서비스의 즐거움도 누리지만 적극적인 평가자의 위치까지 나아갈 수도 있다.
 한편 무용가가 가지고 있는 무형의 자산- 훈련되지 않은 무용 비전공자, 예측되지 않는 관객을 만났을 때도 즉흥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관찰력, 움직임을 추출하는 감각, 적응력 등-까지도 실제적인 현물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이 된다고 개념화했다는 점도 의외의 수확으로 꼽을 수 있겠다(물론 그러기엔 1000원이란 액수는 상당히 적은 금액이지만 말이다).

2015. 01.
사진제공_홍댄스컴퍼니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