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현장 진단 부산국제무용제의 향방
높아진 평균점, 휴양지 축제로서의 정체성 찾아야
장광열_춤비평가

2023년 6월 2일부터 4일까지 개막 공연과 프랑스 무용단의 부산하늘연극장공연, 포럼, 그리고 해운대해수욕장 야외무대 공연까지, 현장에서 지켜본 제19회 부산국제무용제(운영위원장 신은주)는 예년과는 여러 면에서 달라져 있었다.

‘춤과 하나로, 부산과 세계로'라는 주제로 열린 올해 부산국제무용제에 주최 측이 밝힌 참가단체는 40여개. 이중 해외 참가단체는 프랑스, 캐나다, 아르헨티나를 비롯해 아시아권(카자흐스탄, 필리핀, 타이완, 싱가포르) 4개 등 총 7개 단체였다.

가장 눈에 띈 것은 질 높은 작품을 통한 공공성의 실현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있는 점이었다.



제19회 부산국제무용제 해운대특설무대 객석의 모습 ⓒ2023 부산국제무용제



7월 3일과 4일 해운대해수욕장 특설무대에서 펼쳐진 메인 공연 프로그램들 중 아르헨티나 Pelin과 Miguel Calvo의 탱고 작품은 댄서들의 고난도의 테크닉과 유려한 움직임으로, 필리핀 Bacolod City Masskara Festival Dance Group은 화려한 의상과 컬러풀한 소품을 활용한 스피디한 움직임의 변형을 꾀한 민속적인 색채가 강한 컨템포러리댄스(안무 Jesus Segundo Cabalcar)로 야외공연 작품으로서의 경쟁력 면에서 단연 돋보였다.



아르헨티나 Pelin & Miguel Calvo ⓒ2023 부산국제무용제



필리핀 Bacolod City Masskara Festival Dance Group ⓒ2023 부산국제무용제



서울교방의 〈결〉(김지영 안무)은 소리꾼 김보라의 다채로운 구음과 만나면서 한국의 전통춤인 검무를 기저로 한 새로운 유형의 컨템퍼러리댄스로서의 가능성을 확연하게 보여주었다. 군무와 2인무의 적절한 매칭을 통한 다양한 움직임 조합을 통해 발레의 확장성을 보여 준 정형일발레크리에이티브의 〈Edge of Angle〉(안무 정형일), 댄서들의 의한 몸의 변주가 어디까지 가능할지를 보여 준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바디 콘서트 리믹스〉(안무 김보람), 의상과 장식을 통한 강렬한 비주얼과 춤을 결합한 안은미컴퍼니의 〈만경창파〉(안무 안은미), 현대적인 리듬과 전통 국악을 뒤섞은 음악과 여기에 김재덕의 소리와 하모니카 연주를 여섯 명 댄서들의 움직임과 버무린 모던테이블의 〈다크니스 품바〉(안무 김재덕)는 휴양지 페스티벌로서의 부산국제무용제의 정체성을 확연하게 보여준 일등 공신들이었다.



정형일발레크리에이티브 〈Edge of Angle〉 ⓒ2023 부산국제무용제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바디 콘서트 리믹스〉 ⓒ2023 부산국제무용제



안은미컴퍼니 〈만경창파〉 ⓒ2023 부산국제무용제



6월 4일 부산 하늘연극장에서 단독 공연으로 선보인 프랑스 에르베쿠비컴퍼니의 〈낮이 밤에 빚진 것〉(안무 Herve Koubi)은 흰색 레깅스 위에 로인클로스(Loincloth· 허리띠까지 두르는 한 장의 옷)를 입고 상반신을 탈의한 채 춤추는 열 두명 남성 무용수들의 아크로바틱한 움직임과 힙합 등 스트리트댄스, 그리고 순수무용까지 조합한 댄서들의 에너지가 눈을 즐겁게 했다. 제목 ‘낮이 밤에 빚진 것’은 알제리 출신의 소설가 야스미나 카드라의 동명 소설 〈낮이 밤에 빚진 것〉에서 따왔다.



에르베쿠비컴퍼니 〈낮이 밤에 빚진 것〉 ⓒ2023 부산국제무용제



다음으로 눈에 띈 점은 초청된 해외단체들의 School Visit 프로그램이었다. ‘아시아 춤을 만나요‘를 내 걸고 필리핀과 타이완, 카자흐스탄에서 온 무용단체들이 참가한 이 프로그램은 국제 무용축제가 개최 지역의 주민들을 위한 교류를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하는지를, 또한 해외 초청단체를 통한 춤의 확장을 어떤 형태로 해야 하는지를 가시적으로 보여준 바람직한 시도가 아닐 수 없다.



 

해외초청단체들의 School Visit 프로그램 ⓒ2023 부산국제무용제



6월 3일 부산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에서 열린 개막식과 개막공연은 실내 공연장이 아닌 해운대 특설무대에서 행해진 것이 더욱 나을 법했다. 개막공연 참가 단체가 해운대특설무대에서 똑 같은 작품을 공연한데다 무엇보다 휴양지 축제를 표방한 부산국제무용제의 정체성을 더욱 강하게 부각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제19회 부산국제무용제 포럼 ⓒ2023 부산국제무용제



내년이면 20주년을 맞는 부산국제무용제를 앞두고 부산국제무용제 조직위원회는 3일 오전 해운대구 펠릭스바이 STX 호텔 6층 세미나실에서 제19회 부산국제무용제 포럼을 개최했다. ‘부산국제무용제 20주년,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비전’을 주제로, 국제무용 축제를 통한 지역문화예술 발전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평자는 ‘공연예술 축제의 성공적인 운영사례’라는 제목의 발제를 통해 프랑스 몽펠리에 무용축제의 질 높은 프로그래밍, 보스턴 탱글우드음악제의 지역 오케스트라 협력을 통한 프로그램 운용, 오스트리아 Impuls Tanz의 200여 개 워크숍 연계 축제 운용 사례 등을 소개하면서 부산국제무용제의 향방을 모색할 때 참고할 것을 제안했다.

특히 부산국제무용제가 휴양지 페스티벌로서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1996년 스페인 휴양지 그랑 카나리아섬에서 시작한 컨템포러리 페스티벌인 마스단사(MASDANZA) 축제를 적극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우수한 안무가와 작품 발굴을 위한 안무경연대회, 대중 춤 경연 외에 지역 주민들을 위한 프로그램과 익스텐션 투어(Extension Tour · 외국 참가팀을 그냥 돌려보내지 않고 인근 7개 섬을 연계해 해당 지역 주민에게 공연을 보게 하고 현지 무용가들과 네트워킹을 갖도록 한다)등은 부산국제무용제가 반드시 보완해야 할 점이기 때문이다.

예술감독을 선임하지 않고 운영위원장이 그 임무를 대행하는 현행 부산국제무용제의 운영 체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예술과 행정을 분리하고, 다년 임기의 예술감독을 선임해 예술감독이 질 높은 프로그램과 축제를 통한 확장성, 네트워킹 확충 등 휴양지 무용축제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네트워킹과 축제 프로그램의 확장과 관련 부산국제무용제 축제 기간 중에 국내외 공연 관계자들의 참여 확대와 해외 초청 팀의 경우, 마산 울산 창원, 더 나아가 대구까지도 협력할 수 있어야 할 것이며 부산시립무용단, 부산문화재단 같은 공공 기관과의 연계도 필요할 것이다.

3월부터 7월에 걸쳐 나누어 치러지고 있는 콩쿠르와 메인 프로그램, 안무경연대회, 안무가 캠프 등 흩어져 있는 프로그램도 일정 기간 안으로 통합 조정해 치러질 필요가 있다.

부산국제무용제는 공적 지원금을 받고 있는 축제인데다 20여 년간 개최 해 온 역사 등 여러 면에서 부산 지역 무용계와 더 적극적으로 연계되어야 한다. 곧 부산국제무용제가 부산 지역 무용계의 생태계 변화에 일조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를 위해서는 부산지역 내 공공 단체들과 지역 무용가들과의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부산국제무용축제 내내 부산 지역 지도급 무용가들의 모습이 많이 눈에 띄지 않은 점, 부산시립무용단과 부산국립국악원무용단 등 부산 지역 공공 무용단과 창원시립무용단, 울산시립무용단 등 부산과 인근 지역의 공공 무용단이 참여하지 않은 점 등은 아쉬웠다.



제19회 부산국제무용제 포럼 ⓒ2023 부산국제무용제



내년 20회째를 맞는 부산국제무용제는 국내외 무용예술의 변화 양상을 반영, 다시 정비 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부산국제무용제가 가질 수 있는 차별성, 독창성을 강하게 구현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여타 무용축제에서 하고 있는 유사한 프로그램은 과감하게 중단할 필요가 있다. 장소특정 형 공연과 부산이 갖고 있는 자연 환경을 활용한 기술과의 융합 프로그램 개발도 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축제를 통한 공공성의 실현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부산을 찾는 관광객들과 시민들에게 공연 감상의 기회를 많이 제공하는 것만으로 공공성을 획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지역의 관객들과 예술현장이 양질의 프로그램으로 의미 있는 관계 만들기를 통해 공공성을 실현한다면, 이는 금상첨화일 것이다.

이를 위해 부산국제무용제는 우선 휴양지 페스티벌이란 분명한 콘셉트를 견지하고 다양한 관객들이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을 우선 만들어야 한다. ‘축제’를 통해 무용계를 뛰어넘어, 지역 주민, 대한민국의 국민들을 향하도록 축제의 방향을 잡아야 한다.

축제를 통한 글로컬리즘(Glocalism)의 구현도 그중 하나이다. 부산국제무용제는 관객과의 장기적 관계 형성과 국내외 아티스트, 유관기관과 유기적인 파트너십을 맺고 협력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부산국제무용제의 새로운 미션은 바다를 활용한 휴양지 축제로서의 정체성을 반영한, 인간과 자연의 상호 공존을 담은 친환경적인 생태적 가치, 질 높은 예술작품의 서비스를 통해 사회, 경제 등 누군가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예술적 가치, 공간과 자원을 활용한 창작 작업과 관객 창출을 통해 지역 경제에 기여하는 경제적 가치 추구를 그 중심에 두어야 한다.

장광열

1984년 이래 공연예술전문지 월간 〈객석〉 기자와 편집장으로 활동했다. 1995년 국제공연예술프로젝트를 설립 〈Kore-A-Moves〉 〈서울 제주국제즉흥춤축제〉 〈한국을빛내는해외무용스타초청공연〉 등 국제교류 프로그램을 정례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정책평가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국제교류 위원, 호암상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춤비평가, 한국춤정책연구소장으로 춤 현장과 소통하고 있다.​

2023. 7.
사진제공_부산국제무용제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