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주연희ㆍ정미숙
오롯한 춤의 내공, 승무와 함께 하다
송성아_춤비평가

한해를 마감하는 끝자락에 영남의 중진 춤꾼 주연희와 정미숙의 춤판이 있었다. 국가무형문화재 27호 승무 이수자 주연희는 경상북도 김천에서 유년기를 보냈고, 최동선에게 춤을 배웠다. 최동선은 국악예술학교(現 국립전통예술중‧고등학교) 출신으로 박귀희(국가무형문화재 23호 가야금병창 예능보유자, 1921-1993)와 한영숙(국가무형문화재 27호 승무, 40호 학무 예능보유자, 1920-1990)에게 기악과 노래와 춤을 배웠고, 1990년 이후 이애주(국가무형문화재 27호 승무 예능보유자, 1947-2021) 춤을 사사하기도 했다. 선생의 이 같은 이력으로 인해, 어린 주연희는 자연스럽게 한성준-한영숙-이애주로 이어지는 춤을 접했으며, 대구가톨릭대학교 무용학과 진학 이후 본격적으로 이애주 춤을 사사해 오늘에 이른다.

국가무형문화재 97호 살풀이춤 이수자 정미숙은, 한 가지 춤을 고집스럽게 춘 주연희와 달리, 보다 다양한 춤과 조우한다. 고등학교 시절 김진홍(부산시무형문화재 14호 동래한량춤 예능보유자)에게 춤을 배워 경성대학교 무용학과에 진학한다. 마침 한국창작춤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창무회 출신 최은희가 한국무용전공교수로 부임하면서 전국 각지의 탈춤을 두루 섭렵했으며, 밀양백중놀이의 오북춤과 범부춤을 배우기도 했다. 그리고 대학 졸업 후 이매방(국가무형문화재 27호 승무, 97호 살풀이춤 예능보유자, 1927-2015) 춤을 접하기 시작했고, 2004년 살풀이춤 이수자가 된다. 이후 한 가지 춤만을 고집하지 않고, 김진홍의 지전춤, 권명화의 소고춤, 조흥동의 진쇠춤 등을 익혀 춤판에 올렸으며, 경성대학교 무용학과 한국무용전공 출신들이 주축이 된 춤패 배김새 초대 회장(1985-1989)으로 여러 창작 작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주연희 〈태평무〉 〈살풀이〉 ⓒ주연희



주연희 춤판은 12월4일 포스트극장기획공연의 하나로 마련되었다. 유인상(전통음악그룹 판 예술감독) 장구반주로 진행되었고, 주요 레퍼토리는 한영숙에서 이애주로 이어진 태평무, 살풀이, 완판 승무이다. 이중 세간의 이목을 끈 것은 45분 길이의 완판 승무이다. 1980년대 한영숙이 정리한 것으로, 문화재 지정 초기에 비해 “길이가 길이지고 완만하게 정리되어 승무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틀을 세운 것”1)이다. 현재 이애주가 직접 시연한 동영상이2) 남아 전해지는데, 주연희가 선보인 것이 바로 이것이다.

 



주연희 〈승무〉 ⓒ주연희



완판 승무는 경기도 대풍류 음악을 사용한다. 그리고 반주 장단에 따라 염불과장, 자진염불과장, 타령과장, 자진타령과장, 굿거리과장, 자진굿거리과장, (짧은)굿거리과장, 법고과장, 당악과장, (뒤)굿거리과장으로 구분한다. 이중 가장 느린 염불과장은 7개 마루(단락)3)로 구성된다.

복무(伏舞)로 시작하는 염불과장의 첫 번째는 합장하여 절을 하고 좌우를 살펴 일어나는 것이다(마루1).

두 번째는 세 걸음 전진하고 세 걸음 물러나는 삼진삼퇴(三進三退)를 2회 반복하는 것이다(마루2).

세 번째는 학이 날개를 펼치듯 양손을 벌렸다가, 손목을 안과 밖으로 놀리며(엎고 제치며) 전진 한다. 그리고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듯 두 손을 힘껏 뿌리고, 땅에 엎드려 장단을 탄다. 장단타기는 어깨춤, 지수기, 어르기라고 하는데, 한참을 어르다가 일어나 원래 자리로 되돌아온다(마루3).

네 번째는 매가 하늘을 향해 솟구치는 모습을 묘사한 “봉솟음”으로 시작한다. 장삼을 유려하게 놀려 양 어깨에 울러 멘다. 이어 두 손을 벌리며 장단을 타다가 원래 자리로 되돌아온다(마루4).

통상 짧은 승무는 어르기나 지수기를 축약하거나 생략한다. 또한 오체투지(五體投地)를 하듯 거듭 땅에 엎드리고 되돌아오기(마루5), 학처럼 날개를 펼쳐 걷고 되돌아오기(마루6)를 생략한다. 주연희는 이들을 온전히 보여준 다음 마지막 일곱 번째 마루로 넘어간다. “봉솟음”으로 시작하고, 온몸을 던져 뿌리며 땅에 엎드린다. 그리고 일어나 양손을 힘차게 뿌리고 북 앞으로 이동한다(마루7).

인사하기(마루1), 삼진삼퇴(마루2), 땅에 엎드려 어르기(마루3), 서서 양손 펴며 어르기(마루4), 오체투지 하듯 거듭 엎드리기(마루5), 학처럼 날개 펴고 걷기(마루6), 뿌려 엎드리고 다시 일어나 양손 뿌리기(마루7)로 이어지는 염불과장에서 단일한 이야기구조나 명료한 인과관계를 발견하기 어렵다. 전통춤 형식론을 연구하는 필자는 이애주와 몇 차례 인터뷰를 가진 바 있다. 그는 우리 춤 구성과 관련하여, 인과관계가 불투명한 몇몇 단락이 병렬적으로 이어진 옴니버스스타일(omnibus style)임을 인정한다.

 



주연희 〈승무〉 ⓒ주연희



그런데 승무 전체 구성은 어떤 사연과 감흥을 내포한 서정적 서사(또는 서사적 서정)가 있어, 기승전결(起承轉結) 또는 춘하추동(春夏秋冬)으로 구분할 수 있다4)고 밝힌다. 그렇다면 염불과장은 발단 또는 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전통사회에서 봄은 입춘(立春)으로 시작하며, 음력 1월에서 3월에 해당한다. 매서운 추위로 얼어붙은 땅 위에서 새로운 농사, 달리 표현하면 새 생명을 잉태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시기로, 고통과 희망, 어둠과 환함이 공존한다고 할 수 있다. 주연희는 한배(속도)를 한껏 늘린 장구 반주에 맞춰 진중한 움직임을 이어간다. 그리고 어르는 대목을 중심으로 조용히 요동치는 고통(마루3), 매화 같은 화사함(마루4), 건강한 투지(마루7)를 선사한다.

자진염불과장은 북 앞에서 춤을 추는 대목이다. 염불과 동일한 리듬 꼴(rhythm pattern)이지만, 속도가 빠른 자진염불장단(반염불, 도드리)으로 진행된다. 리듬 꼴이 같다는 점에서 염불과장으로 간주되기도 하지만, 앞뒤에 위치한 염불과장과 타령과장을 연결하는 브리지(bridge) 구실을 한다. 이후 자진타령과장과 자진굿거리과장도 동일한 역할을 일임한다.

한층 생기를 더한 타령과장은 4개 마루로 구성된다. 첫 번째는 노동의 흥겨움을 표현한 것으로, 밭일을 하는 아낙처럼 옹골차게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한다. 그러다 제자리 앉아 어깨춤을 추기 시작한다. 정적으로 진행된 염불의 어르기와 달리, 엎고 제치는 수법과 함께 길게 이어지는 어깨춤은 강약의 대비를 이루며 역동적으로 전개된다(마루1).

두 번째는 마루 안에 작은 마루(小마루, 小단락)5)가 2개 있어 짜임새가 복잡하다. 먼저 무게 중심을 앞과 뒤로 옮기며 흥겹게 지순 다음 천천히 돌아 원래 자리로 되돌아온다(小마루1). 그리고 양손을 아래위로 치는 “가세치기”를 한다. 상하치기라고도 하는데, 이것을 반복하며 전진했다가 원래자리로 되돌아온다(小마루2). 짧은 승무는 도입에 해당하는 앞부분(小마루1)을 생략한다. 그러나 완판 승무는 이 모두를 온전히 보여준다.

세 번째 역시 소마루가 2개이다. 앞은 도입이고, 본격적인 것은 뒤이다. 명료하게 좌우치기를 하고, 양손을 펼친 다음 사뿐히 돌아 원래자리로 되돌아오는 것이다(小마루2). 앞선 마루2와 비교할 때 구성이 흡사하고, 내용에 있어서도 상하치기와 좌우치기로 상호 짝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 네 번째는 무릎을 굼실대며 흥겹게 지수고, 다채로운 걸음으로 진진하였다가 북 앞으로 오기이다(마루4).

염불과장이 봄이라면, 타령과장은 여름이다. 전통사회에서 여름은 입하(立夏)로 시작하며 음력4월에서 6월에 해당한다. 농사가 본격화되는 노동의 시기로 모내기, 씨뿌리기, 세벌 김매기를 한다. 주연희는 노동의 몸짓과 어깨춤(마루1), 상하치기(마루2), 좌우치기(마루3), 다양한 걸음으로 전진하기(마루4)를 탄력적인 장단에 맞춰 여유 있게 이어간다. 그리고 어깨춤이나 지수기를 통해 일하는 사람의 흥취를 정제된 표현으로 그려낸다.

자진타령과장을 북 앞에서 진행한 다음, 가장 화려한 굿거리과장으로 넘어간다. 4개 마루로 구성되며, 첫 시작은 꽃봉오리가 살포시 피어나는 모습(開花)을 모사하고, 화사하게 어르는 것이다(마루1).

두 번째는 타령의 상하치기와 유사하다. 단 상하치기 이후에 꽃봉오리가 살포시 피어나는 개화와 어르기를 연이어 한다는 것에서 차이가 있다(마루2).

세 번째 역시 타령의 좌우치기와 유사하다. 그런데 小마루가 2개 있어 짜임새가 복잡하다. 먼저 좌우치기를 하고 원래 자리로 되돌아온다(小마루1). 그리고 좌우치기를 변형하여 반복하고, 개화, 어르기, 원래 자리로 되돌아오기를 순차적으로 한다(小마루2).

마지막은 小마루가 3개 있어 짜임새가 가장 복잡하다. 앞은 도입이고(小마루1), 뒤는 종결에 해당한다(小마루3). 가장 핵심은 중간에 위치한 대목으로, 나비가 날 듯 판 전체를 감싸며 돌고, 순간 날개를 활짝 펼쳐 어르다가, 다시 꾀꼬리 마냥 어여쁘게 앉아 어르는 것이다(小마루2).

굿거리과장은 가을이다. 전통사회에서 가을은 입추(立秋)로 시작하고, 음력 7월에서 9월에 해당한다. 각종 곡식과 열매를 수확하는 때로, 쾌청한 날씨와 더불어 풍요로움이 가득한 시기라 할 수 있다. 주연희는 개화(마루1), 상하치기와 개화(마루2), 좌우치기와 개화(마루3), 나비나 꾀꼬리와 같이 어여쁘게 노닐기(마루4)를 유려하게 풀어간다. 표정을 지운 얼굴은 단아하고, 조용히 어르는 자태는 쾌청한 가을 들녘 어디선가에 볼 법한 작은 꽃과 같다. 아쉬움이 남는 것은 나비와 꾀꼬리가 노니는 대목(마루4의 소마루2)이 전면에 부각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짧은 승무를 할 때, 도입이나 종결에 해당하는 小마루를 생략한다. 그리고 법고과장 앞에 위치한 자진굿거리과장과 (짧은)굿거리과장을 생략한다. 주연희는 이 모두를 흐트러짐 없이 보여준 다음, 법고과장으로 넘어간다. 자진굿거리(3소박4박자)에서 자진모리(빠른 3소박4박자)로 이어지는 북 가락은 힘차고 또렷하며, 풍성한 울림을 만들며 퍼져간다.

일반적으로 법고 다음은 (뒤)굿거리과장이다. 그런데 한영숙류는 그 사이에 당악을 추가한다. 무속장단인 당악(빠른 2소박4박자)에 맞춰 ‘전진하고 후퇴하고 북을 치는’ 패턴을 여러 번 반복하는 것으로, 이애주는 법고와 당악을 묶어 법고과장6)이라고 한다.

북 놀음에서 춤으로 휘몰아치는 법고과장은 겨울이라고 할 수 있다. 전통사회에서 겨울은 입동(立冬)으로 시작하고, 음력 10월에서 12월에 해당한다. 한해를 마감하고 새롭게 도래할 봄을 기다리는 시기로,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고 복을 기원하는 각종 굿이 즐비한 때이다. 주연희의 풍성한 북 가락은 한해를 마무리하는 의례와 같고, 전진후퇴하며 반복적으로 내딛는 걸음은 벽사(辟邪)를, 사이사이에 내려치는 북소리는 진경(進慶)을 연상시킨다.

전통춤 일반의 엔딩은 소략하다. 승무의 마지막 (뒤)굿거리과장 역시 단출한 편이어서, 판을 감싸 도는 연풍대와 인사하기로 마무리된다. 소극장을 빼곡히 메운 관객은 오랫동안 기립박수를 보냈고, 초연했던 춤꾼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삼십년 세월을 함께 한 선생의 죽음 이후에 가진 두 번째 춤판이고, 홀로 선 그녀가 마음을 다해 준비한 무대였다. 특히 완판 승무는 한성준 ‧ 한영숙 ‧ 이애주 춤이 집약된 역사적 축적물이다. 이 춤의 많은 부분이 주연희로 이어졌음을 확인해 볼 수 있는 자리였다.

 



  

정미숙 〈살풀이〉 〈진쇠춤〉 ⓒ정미숙



정미숙 춤판은 12월14일 부산민속예술관 송유관에서 펼쳐졌다. 젊은 연주자 최정욱(부산시립관현악단 상임단원)의 장구 반주로 진행되었고, 주된 레퍼토리는 이매방류 승무와 살풀이춤, 조흥동의 진쇠춤이다. 이 중 가장 주목을 끈 것은 승무이다. 작년까지 그의 춤판에서 잘 볼 수 없었던 레퍼토리였고, 불과 몇 주 전에 국가무형문화재 승무 이수자로 선정되었기 때문이다.

한영숙류 승무는 마루를 중심으로 짜임새가 명확하다. 그런데 이매방류는 마루에 대한 구분이 분명하지 않다. 다만 음악에서 마루를 구분하는 방식에 따라, 6장단을 단위로 염불과장의 마루를 구분한다. 그렇다면 이매방류는 일정한 내용을 담은 고유한 단락이 부재하는가? 그렇지는 않다. 전승주체들은 마루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지만, 춤 길이 쭉 이어지다가 맺어지는 대목들이 있다고 설명한다. 즉 몸의 인식(段落感)에 기초하여 구분되는 단락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여기에 주목하여, 2년 남짓 현장조사를 진행했는데, 흔히 이수자용이라고 불리는 승무(20-23분)는 염불과장 4개 단락, 타령과장 4개 단락, 굿거리과장 4개 단락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정미숙 〈승무〉 ⓒ정미숙



먼저 염불과장은 한 맺힌 인간의 절 드림과 일어서기로 시작한다(단락1). 삼진삼퇴와 유사하게 앞과 뒤로 걷고, 진중하게 자리를 잡아 자락을 펼친 다음 또 다시 앞뒤로 걷는다(단락2). 한껏 맵시를 내며 장삼을 놀리고(단락3), 모든 굴레를 벗어던지듯 온 몸을 쓸어 장삼을 뿌려 던진다. 이후 뿌려 던지기는 매우 드라마틱하게 변형 반복되는데, 한손 뿌려 던지기, 상체 젖혀 뿌려 던지기, 앉아 뿌려 던지기로 이어진다. 그리고 말미에 북 앞에 선다(단락4).

인사하기(단락1), 삼퇴(단락2), 장삼놀음(단락3), 뿌려 던지기(단락4)로 이어지는 염불과장은 한영숙류에 비해 단순하지만, 매우 인간적이고 극적이다. 그리고 자태나 맵시를 중요하게 여겨 비정비팔(非丁非八)의 디딤새와 태극라인을 그리는 수법(手法)을 강조한다. 정미숙은 한과 굴레를 벗어던지는 몸짓(뿌려 던지기)을 감정의 과잉 없이 차분히 풀어낸다. 그리고 디딤새와 수법은 투박하지만 맵시가 있어, 잘 빚은 막사발을 연상시킨다.

자진염불과장에서 타령과장으로 넘어가면서 흥겨워진다. 농번기에 아이를 업은 아낙처럼 풀썩 주저앉아 어르고, 뒤로 물러난다(단락1). 맵시 있게 상하치기를 하고(단락2) 좌우치기를 한다(단락3). 이어 흥겨운 장삼놀음과 함께 진진 한다(단락4). 이러한 단락과 단락, 춤사위와 춤사위 사이에는 엎고 제치거나 감고 푸는 동작이 있어 움직임의 묘미와 흥취를 고조시킨다.

아낙의 어르기(단락1), 상하치기(단락2), 좌우치기(단락3), 장삼을 놀리며 전진하기(단락4)로 이어지는 타령은 한영숙류와 매우 유사하다. 여기서 정미숙은 자신의 특징이었던 역동적인 걸음과 선명한 강약대비(大衫小衫)를 부각시키지 않는다. 대신 동작과 감정의 과잉을 제거한 자연스러운 몸짓을 조용히 드러낸다.

자진타령과장에서 굿거리과장으로 넘어가면서 춤의 분위기는 화사해진다. 살포시 돌아 엎드리고, 만개(滿開)한 꽃을 모사하듯 장삼을 감고 뿌린다(단락1). 곱게 돋음새를 하며 상하치기를 한다(단락2). 이윽고 몸통을 유연하게 젖혔다 숙이며 연풍대를 하고, 북 앞으로 간다(단락3). 장삼 속에 있던 북채를 껴내 뒤로 물러나고, 다시 북 앞으로 되돌아온다(단락4).

꽃을 모사하듯 엎드려 감고 뿌리기(단락1), 상하치기(단락2), 연풍대(단락3), 북채 껴내 물러나고 되돌아오기(단락4)로 이어지는 굿거리과장은 한영숙류에 비해 짧고, 구성과 내용에서도 차이가 있다. 예순인 그가 무릎이 좋지 않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앞머리(단락1)를 생략한다. 이로 인해 다소간 급하게 전개된다는 인상을 주었으며, 굿거리의 정취가 온전히 전달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 하겠다.

 



정미숙 〈승무〉 ⓒ정미숙



이매방류 승무의 백미는 법고과장이다. 작고한 선생의 북 놀음이 여전히 전설처럼 회자되는데, 기본 골격은 자진굿거리(3소박4박자), 자진모리(3소박4박자), 휘모리(2소박4박자)이다. 정미숙은 북 가락을 화려하게 변주하지도, 미친 듯 내달리지도 않는다. 대신 장단의 맛을 온전히 살리며, 강단 있게 밀어붙여 묵직한 해방감을 선사한다.

한바탕 북 놀음 이후 짧은 굿거리과장으로 마무리를 한다. 부산에 연고지를 두고, 오랜 동안 활동한 정미숙은 끊임없이 자신을 반추하며 노력하는 춤꾼이다. 이번 춤판 역시 20년 넘게 연마한 승무를 정성스럽게 다듬어 새로운 레퍼토리로 추가했다. 이전처럼 넘치는 기운으로 촘촘히 디딤새를 박거나, 화려하게 감고 풀지는 않는다. 대신 한결 자연스러워진 몸짓은 투박하지만 맵시가 있어, 여타 이매방 춤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미감을 부여했다.

일본 전통예술 일반은 전승과정에서 일체의 변용을 허용하지 않는다. 반면 한국 전통예술 일반은 변화하면서 전승된다.7) 즉 ‘전승의 기본 틀’은 유지하되, 전승자의 ‘개성적 변용’을 허용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전승방식을 고려할 때, 전통춤 전공자는 전승의 기본 틀에 대한 치열한 탐구와 창조적 개성 실현을 위한 각고의 노력이 요청된다고 할 수 있다.

전승의 기본 틀이란 오랜 전승과정 속에서, 몸에서 몸으로 이어진 가장 일반적이고 본질적인 틀, 달리 표현하면 전형(典型)이라고 할 수 있다. 주연희와 정미숙은 전형을 누구보다 성실하게 체화(體化)한 춤꾼이다. 그들에게 남은 문제는 당대에 대한 깊은 성찰 속에 자신만의 창조적 개성을 춤 속에 오롯이 담아내는 것이라 할 것이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전통춤을 선택한 자의 숙명 같은 과제를 한걸음씩 진중하게 풀어나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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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애주(2022). 『승무의 미학』. 개마서원. 131쪽.
2) 국립문화재연구소(1998). 『승무』, 비디오녹화자료. 국립문화재연구소.
3) 마루는 전통 음악과 춤의 현장에서 널리 사용되었던 단락 명칭이다. 음악의 경우, 성악곡의 하나인 민요는 선창과 후렴으로 구분되는 경우가 많다. 이 각각의 단락을 절(節)이라고 한다. 그리고 산조를 비롯한 여러 기악곡에서 몇몇 장단이 모여 단락을 이룰 때, 장(章)이라고 한다. 이러한 절과 장의 옛 이름이 마루이다. 음악 구성은 낱낱의 음(音)이 아니라, 이들 단락을 중심으로 논의된다. 이 점에서 마루는 구성의 기본 단락인 동시에 음악적 표현력을 확보하는 단락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춤에서 마루를 부각 시킨 최초의 인물은 한영숙이다. 그는 공연조건이나 환경에 따라 춤을 재구성할 때, 기본이 되는 것은 낱낱의 동작이 아니라, 마루임을 강조한다. 그런데 음악 마루와 춤 마루는 다르다. 예컨대 승무 반주음악인 대풍류의 경우, 염불은 6장단, 타령은 12장단, 굿거리는 13장단을 단위로 마루가 일정하게 구분된다. 그런데 한영숙류 승무는 음악과 같지 않다. 3장단 길이의 짧은 것도 있고, 39장단 길이의 긴 것도 있다. 이 점에서 춤 마루는 음악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춤의 내용에 따라 형성된 단락이라고 할 수 있다. 송성아(2022). 「전통춤 구성단락 ‘마루’에 관한 연구: 처용무와 춘앵전을 중심으로」. 『무용역사기록학』, 67. 52쪽.
4) 이애주(2022). 앞의 책. 84쪽.
5) 전통음악과 춤에서 마루는 전승주체의 단락감(段落感)에 의해 구분되는 단락이다. 즉 오랜 세월 음악이나 춤을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전승되고 체득된 느낌에 의해 마루를 구분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영숙류 승무는 이애주에 의해 마루 구분이 비교적 명확하게 제시되며, 앞으로 전진 했다가 원래자리로 되돌아오는 경로를 중심으로 그 구분이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필자는 이와 관련된 인터뷰에서 타령과장 마루2는 앞뒤로 전진 후퇴하는 이동 경로가 2개이다. 그렇다면 이 각각을 마루로 간주해야 하는가를 질문했다. 이애주는 이 각각을 마루 안의 작은 마루, 즉 “小마루”라고 설명했다. 小단락이라고 할 수 있는 小마루는 완판 승무의 두드러진 특징으로, 봉산탈춤의 목중춤, 처용무, 춘앵전에서는 발견하기 어렵다. 이상과 관련하여 다음 글과 책 참조바람. 이애주(1995). 「승무의 구조와 춤사위 연구」. 『한국민속학』, 27호. 장희전(1993). 『살풀이구조분석:한영숙류 기본 살풀이 춤사위 분석을 중심으로』. 서울대학교석사학위논문. 송성아(2016). 『한국전통춤연구의 새로운 방법론』. 부산대학교출판부. 송성아(2022). 앞의 글.
6) 이애주(2022). 앞의 책. 112-113쪽.
7) 채희완(1992). 『탈춤』. 대원사. 97쪽.

송성아

춤이론가. 무용학과 미학을 전공하였고, 한국전통춤 형식의 체계적 규명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표저서로 『한국전통춤 연구의 새로운 방법론: 한국전통춤 구조의 체계적 범주와 그 예시』(2016)가 있다. 현재 부산대학교 인문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로 있다.​​​​​​​

2024. 1.
사진제공_주연희, 정미숙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