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주빈컴퍼니 〈귀신날〉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 그러나 소재주의의 함정
김혜라_춤비평가

한국춤을 기반으로 전통의 소재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젊은 창작자들의 발랄한 작업을 종종 보게 된다. 전통의 요소를 모티프로 하나 우리 것을 인식하는 방식이 무겁거나 인위적인 소재의 차용이라기 보단 자신이 수용 가능한 범주에서 자연스럽고 개성 있게 접근해 흐뭇할 때가 있다. 관객과의 소통에 방점을 둔 동작과 기술을 연구하고 타장르와의 적극적인 협업으로 새로운 시공간을 연출하려는 융합적인 태도도 젊은 세대들의 한 특징이다. 김주빈도 한국춤의 동시대성을 견인하며 무속적인 요소를 오늘의 소통 방식으로 균형감 있게 변용하는 편에 속한다.

제주도 굿판에서 영감을 받고 북청사자놀음의 사자탈을 소재로 김주빈 식으로 재해석한 〈새다림〉에서 컨템퍼러리 한 한국창작을 나름 펼치려는 의지를 보였다. 이번 신작 〈귀신날〉(12.23. 아르코예술극장대극장)도 전통적인 세시 풍속, 민속 놀이, 전래동화를 토대로 아크로바틱 몸쓰기와 한국춤을 접목하는 의욕적인 시도를 하였다. 우리의 세시 풍속보다 핼로윈(Halloween)이 익숙한 요즈음에 음력 1월 16일을 이르는 ‘귀신날’에서 착상하여 온갖 귀신을 모아 그들의 입장도 변호하며 한바탕 놀아보자는 취지는 여러모로 경쾌한 발상이다. 여기에 ‘해님과 달님’이란 전래동화에서 비정한 호랑이의 입장과 온갖 귀신들까지 등장한 판타지 무용극으로 연말 분위기에 어울린다.



주빈컴퍼니 〈귀신날〉 ⓒJUBIN COMPANY/신귀만



로비 곳곳에 놓인 투명한 비닐 넋전부터 무대와 극장이 귀신들과 공존하며 사는 현장임을 연출한다. 오케스트라 박스 아래로 여성이 떨어지고 수십명의 죽은 영혼들이 올라오는 첫 장면이 상당히 무대의 스산한 정서를 압축적으로 대변한다. 익명의 원혼들이 무더기로 등장하는 순간 전체 분위기가 비장하게 보일만큼 압도적이다. 인해전술의 힘인지 꽤나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군무진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 어느 즈음에서 집단적 발언을 하는 인상이고 이어 귀신들만의 집성지로 안내하는 임무도 수행한다. 한 눈에도 놋다리밟기 형상을 만든 군무진은 등을 내어주고, 객석 측면에서 등장한 죽은자는 귀신들이 모인 특별한 공간으로 이들을 지르 밟고 올라간다. 달이 차오르고 이지러지는 형상의 과정이 투영된 놋다리밟기 형상은 죽음과 겨울을 건너 새로운 세상(공간)으로 나아가는 통과의례로 원형적 상징성이 잘 부각된다.





주빈컴퍼니 〈귀신날〉 ⓒJUBIN COMPANY/신귀만



새로운 귀신들의 세상이 열린다. 진지했던 분위기가 전환되며 캐롤이 나오고 컬러풀한 의상을 입은 다양한 캐릭터의 귀신들은 마치 연말파티 같이 자축하는 분위기다. 중력과 상관없는 비현실적인 세상을 상기하려 기괴한 포즈와 몸으로 제단을 쌓는다. 과거 귀신날에는 바깥 출입을 삼가 했다고 전해지니 입장을 바꿔보면 이 날 만큼은 귀신들이 활개를 치는 축제일 수 있다는 안무가의 역발상이 신선하다. 내레이터가 등장하며 동화 ‘해님과 달님’이 신체극 형태로 형상화된다. 호랑이에게 팔 다리가 잘려 나갈지언정 아이들을 보고 싶어 머리만이라도 집에 가려는 어미의 심정과 지혜롭게 호랑이를 피한 오누이 이야기가 연극적으로 잘 묘사된다. 연이어 다시 ‘해님과 달님’ 이야기는 호랑이의 입장에서 재구성된다. 악한 캐릭터로 전경화 된 동화를 비틀어 보려는 의도로 이해되나, 권선징악의 가치체계를 무화 할 만큼 결정적이지 않아 보이는 호랑이의 심정을 비중 있게 다룬 의도가 궁금해졌다. 호랑이는 단지 살기위해 어미를 잡아먹었다며 억울함을 토로한다. 죽은 어머니와 호랑이의 각기 다른 죽음에 대한 입장 변론이 대조적으로 제시된다.



주빈컴퍼니 〈귀신날〉 ⓒJUBIN COMPANY/신귀만



또 다른 에피소드로 장면이 바뀐다. 출근길 지옥철에 탄 사람들 몸 위로 처녀귀신과 총각귀신이 등장하며 일상공간에서 사람들과 함께 그들도 사랑하며 사는 삶을 보여준다. 눈알귀신, 대지의 여신 등 각종 귀신들이 회전무대에서 독백하듯 자전적인 고백을 하는 인상이다. 퀸의 ‘I want to break free’ 노래에 맞춰 귀신들은 한을 떨쳐 내려는 살풀이를 하다가 다같이 모여 리프팅이나 어깨위로 올라가 탑을 쌓으며 균형을 잡는 아크로바틱 동작에 주력한다. 역동적인 시퀀스와 대조되게 보름달 거울에 비춰진 납작하게 누운 군무진의 실루엣이 오묘한 분위기를 이내 조성한다. 현실적인 일상공간에서 다시 귀신들이 사는 공간으로 전환되지 싶었다. 해님과 달님과 총각귀신과 처녀귀신의 이야기가 애초 ‘귀신날’에서 착상한 모티프와 어떤 지점에서 상관성이 있는지 애매해 관점이 분산된다.

다시 내레이터는 호랑이의 억울한 입장을 변론하고 호랑이만 행복하지 않는 전래동화를 인지시킨다. 개인적으로 수많은 한이 서린 귀신들의 이야기 보다 호랑이의 입장을 반복적으로 주지시키는 설정이 다소 이해하기 어려웠다. 무대 뒷벽에 설치된 비닐 커튼은 투명 넋전과 동화 속 밧줄로 연장시킨 오브제와 함께 귀신들의 잔치는 클라이맥스에 이른다. 비닐을 활용한 현란한 퍼포먼스와 일사불란 하게 피날레를 장식하는 군무로 귀신들의 잔치는 마무리된다.



  

주빈컴퍼니 〈귀신날〉 ⓒJUBIN COMPANY/신귀만



〈귀신날〉은 어렵지 않고 형식적인 구성도 다양하게 고민하였기에 볼거리가 많은 공연이다. 생동감 있는 우리 음악과 한국적인 소재를 적극 활용하고, 벨기에 컨템퍼러리 서커스 씨어터(Peti Dish)와 협업을 통해 한국적인 것과 서구의 연극적 요소에서 접점을 찾으려 애를 썼다. 그럼 직한 여러 시도에도 빈틈이 있다. 특히 강강수월래를 형상화한 장면은 전반부 놋다리밟기와는 달리 개연성이 부족해 빈번한 한국적인 소재의 활용가치가 식상해 보였다. 또 하나 서커스적 요소의 차용이 왜! 현대적이라고 말하는 지도 생각해 봐야 하겠다. 최근 들어 춤계에서 빈번하게 아크로바틱 요소를 차용하며 동작 표현에서 변화를 모색하나 대부분 온몸이 긴장될 정도로 절정을 보이는 기술적인 동작 구현에도 못 미치고, 정신을 무력화할 만큼 신체적 한계에 도전하는 숨막히는 경이로움으로 몰입감을 주는 정도가 아닌 어정쩡한 차용이기에 그다지 새롭거나 현대적이지 않다고 본다. 아크로바틱 동작과의 표면적이 결합이 아닌 전체 작품의 맥락과 서사에 어떻게 들어맞는지가 중요하다. 1970대 소위 유럽의 아트 서커스나 태양의 서커스 이후 현대 서커스 단체는 자극적이거나 볼거리 위주의 곡예보단 드라마적 주제와 기예로 균형을 맞추고 있다. 위험한 극한의 신체성과 총체극적 리얼리티 미학을 추구하기에 현대적인 서커스로 인정받는다



주빈컴퍼니 〈귀신날〉 ⓒJUBIN COMPANY/신귀만



한국춤을 전공한 무용단이 해외 컨템퍼러리 서커스 단체와 작업을 하며 새로운 동작을 발굴하고 공간을 연출한 작품에서 일정 부분 흥미로운 면도 있었다. 또한 실제 무용수들과 안무가는 타장르와의 실험이 좋은 경험이 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작품에서 실연자들이 느꼈을 감흥만큼 서커스적 요소가 전체 작품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진 못했다 판단된다. 초반 귀신들의 캐릭터를 표현하는 기이한 포즈나 왜곡된 움직임에서, 중반부에 무용수를 공중에 들어 올려 받으며 함께 호흡을 맞춰 협력하는 정도로 공동체성이 강조되며 제 역할을 어느 정도 했다. 그러나 마지막 피날레에서 비닐에 매달려 휘영 찬란하게 기교를 부릴 때는 고개를 갸우뚱할 만큼 불필요해 보였다. 내용과 무관한 볼거리 위주의 군무는 진부하다. 안무가는 작품에서 보이지 않는 세상 이야기인 귀신들의 모습을 통해 현실의 희로애락을 투영시키려 의도했으나 세 가지 정도로 보인 이야기의 구체적인 관계의 필연성이 명확하지 않아 주제적 의미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각각의 소재는 발랄하고 풍성하나 함께 연합하지 못해 맥락마다 연결망이 듬성하다. 궁극적으로 이 작품이 지향하는 바가 흐려 상대적으로 샘솟는 아이디어가 부유하거나 휘발되어 버려 안타깝다.





주빈컴퍼니 〈귀신날〉 ⓒJUBIN COMPANY/신귀만



한국적인 소재만으론 조밀하지 못한 내용의 함정, 트렌드에 민감한 협업의 함정, 대형 공간을 채우려는 작위적인 군무의 함정에 빠지면 내용은 분산되고 안무가의 진정성이 상대적으로 가벼워 보인다. 소재주의에 경도되면 동원되는 인력이나 새로운 시도도 거품처럼 불필요해 보인다. 소재는 재료이다. 희귀하고 상품가치가 높은 신선한 재료도 일품 요리로 만들어야 그 가치가 빛나듯이 말이다. 무대가 화려한 아이디어의 전시로만 채워지면 경제적인 비용과 물리적으로 노력한 시간에 비해 그 효과는 생각보단 미비하다. 그럴싸하게 덩어리는 커 보이나 막상 한입 깨물면 바스러지는 공갈빵처럼 공허하다.

주빈컴퍼니의 〈귀신날〉은 시기적으로도 적절하고, 우리의 절기를 환기시키며, 안무가의 호기심을 여러 방식으로 구현해 보려는 의욕적인 시도라 생각된다. 독특하고 눈에 띄는 소재를 찾아 연출을 잘하는 것도 김주빈의 능력이다. 전통에 기반한 소재 발굴과 대중(관객)의 코드를 민첩하게 반영하려는 유망한 김주빈이 짜임새 있는 내용으로 좋은 소재들을 선별하는 힘을 키우면 더할 나위 없겠다. 대극장을 채우려는 압박보단 과감하게 비워가는 것도 주제적 의미를 공유할 수 있는 한 방법이 될 지 모르겠다.

김혜라

춤웹진 편집위원. 춤미학과 비평을 전공하였고 2012년 한국춤비평가협회를 통해 비평가로 등단했다. 세종시문화재단 자문위원으로 활동중이며, 중앙대에 출강 중이다.

2024. 1.
사진제공_JUBIN COMPANY, 신귀만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