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2023 스파프
평년작 속 미진한 국내 춤공연작
김채현_춤비평가

지난해 2022 스파프(SPAF, 서울국제공연예술제)의 가장 이색적인 공연으로 평자는 컴퍼니 엑스와이(XY)의 〈뫼비우스〉를 꼽은 바 있다. 19명의 출연진들이 인간탑쌓기를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하면서 집단의 몸으로 해낼 장면 장면을 이어가는 공연물로 관심을 샀다. 그 와중에 서커스 장르를 무대화하면서 서커스 이상의 공연물을 지향하는 의도가 엿보였다. 〈뫼비우스〉의 그 창작자 라시드 우람단은 2023 스파프에서 〈익스트림 바디〉(극한의 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로 개막 공연을 장식하였다. 이번 〈익스트림 바디〉는 프랑스 샤요국립무용극장의 명의로 발표되었으며, 우람단은 2021년부터 이 극장의 예술감독으로 있다 한다.





샤요국립무용극장 〈익스트림 바디〉 ⓒ2023 SPAF/옥상훈



서커스로 단련되어 집단의 몸만으로 승부를 거는 방식은 〈익스트림 바디〉와 〈뫼비우스〉에서 공통된 시그너처 기법으로 유사하다. 그런데 〈익스트림 바디〉에서는 고공(高空) 줄타기꾼(higliner)과 암벽타기 클라이머를 추가하여 〈뫼비우스〉와는 조금 유다르게 복합적인 공연을 지향하였다. 무대 정면의 벽에는 실내 암벽 등반 설비가 설치되어 있어 출연자들은 그것을 잡거나 딛고 공연을 전개한다. 줄타기꾼과 클라이머가 고공에서 수행하는 실제 모습을 담은 영상을 간간이 벽에다 비추고 고공의 상황에서 겪는 느낌들을 진지하게 토로하는 이런저런 나레이션이 곁들여진다. 무대 허공에는 줄타기가 설치되어 출타기꾼이 출연자들의 탑쌓기를 돕거나 변주를 가하는 장면도 삽입된다. 전체적으로 〈뫼비우스〉에서 집중적으로 연출되던 다양한 탑쌓기 작업이 〈익스트림 바디〉에서 줄어든 탓인지 강렬함은 덜하였다. 반면에 고공을 향해 몸으로 도전하는 극한의 실존 상황을 몸들의 서커스와 혼합함으로써 〈뫼비우스〉에 비해 복합적인 정서를 재촉한 점에서 춤과 가까워지는 변화를 보였다.



프랑크 비그루 〈플레쉬〉 ⓒ2023 SPAF/옥상훈



프랑크 비그루의 공연작 〈플레쉬〉(살,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는 자동차 충돌 사고직후의 짧은 순간을 형상화하기를 의도하였다. 무대에는 자동차 엔진 3개가 공중에 매달려 있고 공연 중에 아주 느리게 아래위로 이동하여 위치를 바꾸곤 한다. 사람 형상을 한 두 생물체가 등장하는데 그들 역시 매우 느려서 거의 정지한 상태를 유지한다. 초현실적인 느낌이 강한 가운데 음향과 조명은 뚜렷한 변화를 보이면서 공연을 이끄는 핵심 요소로 보였다. 창작자 역시 작품의 중추가 음악임을 분명하게 언급하였다. 〈플레쉬〉는 춤 공연작으로서는 감도가 높지 않은 편이었고, 여러 음색을 동반하는 음악의 흐름을 특히 환각의 면에서 수용할 경우 내밀한 공명(共鳴)이 나름 감지됨 직한 공연이다.



무오비 〈마치 내가 나를 놓친 것처럼〉(As if, I have missed myself) ⓒ2023 SPAF/옥상훈



〈익스트림 바디〉의 형식, 〈플레쉬〉의 느낌은 국내 춤무대에선 보기 드문 유형에 속한다. 〈마치 내가 나를 놓친 것처럼〉(As if, I have missed myself,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또한 그러해서, 이 같은 색다름이 체계적 근거를 갖춰 지속된다면 다음 해의 스파프를 기다리게 하는 동인으로 작용할 듯하다. 〈마치 내가 나를...〉이 그려내는 이인(離人) 장애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유체 이탈과는 질적으로 다른 소수자의 특이하되 간과할 수 없는 증세로 보인다. 자신을 낯설어할 만큼 자기 몸-마음으로부터 분리된 느낌은 자기 마음과 마음과 분리, 자기 몸과 마음의 분리 또는 불일치 등의 증세로 요약될 것 같다. 이는 자기 외부를 향하여 사물이나 사람에 대한 지각 판단을 교란시키면서 몸의 작용뿐 아니라 자긍심과 사회성을 저하시키는 부작용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오비 〈마치 내가 나를 놓친 것처럼〉(As if, I have missed myself) ⓒ2023 SPAF/옥상훈



〈마치 내가 나를...〉은 이탈리아 단체 무오비의 Fabio Liberti, Emanuele Rosa 두 남성의 공동 안무와 출연으로 진행된다. 작품 소재의 성격상 두 사람의 젠더는 동일해야 타당할 것이다. 공연 시작 전부터 한 남성은 완전히 탈의해서 의자에 등을 대어 돌아앉았고 착의한 남성은 멀리 떨어져 바닥에 앉아 있다. 정면무대의 3면에는 회색조의 그물망 블라인드(공연 종반에 스크린 구실을 함)가 드리워졌다. 전체 진행에서 두 남성은 똑같이 하얀 티와 쇼츠를 입거나 벗는 모습과 피부에 단단히 부착된 투명 랩을 마치 피부 각질을 제거하는 것처럼 (소리가 나도록) 뜯어내는 과정을 몇 차례 연출한다. 비슷한 용모의 두 남성은 떨어졌다 합체하기를 반복하며 이인 현상을 은유하고 공연 종반에서는 두 사람의 앉은 모습 영상 이미지들이 여러 각도, 여러 크기로 블라인드 스크린에 불규칙적으로 떠다니듯이 투사된다. 이처럼 공연은 몸과 마음으로부터의 이탈로 인한 자기 분열과 합체 현상을 출연자들의 시각을 쫓아 가시적으로 그려낸다. 평이해 보이는 전개와는 달리, 개개인의 정체성은 다면적이고 때문에 일관된 단일의 정체성-자아 관념 자체가 억압이라는 사실을 탈의를 무릅쓰고까지 들이미는 절실한 몸짓, 〈마치 내가 나를...〉을 돋보이게 한 것은 그것이었다.

올해 스파프에서 국내 춤공연작은 5편이었다. 재공연작인 2편을 제외한 3편은 현대무용 계열에 속한다.(스파프에서 국내 춤공연작이 현대무용 계열만 선정된다는 통념은 이제 수정될 때가 되었다.) 3편 가운데 허성임의 〈내일은지금이고오늘은어제이다〉(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는 과정공유로라는 드문 방식으로 40분 남짓 공연되었다. 말하자면 다음에 완성작을 낼 목적으로 이번 공연 직후 관객과 오픈 톡을 가져 의견을 종합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지난해에 국립현대무용단에서의 공연이 국내에서 마지막으로 있었던 허성임의 공연에서 그 사이에 달라졌을지도 모를 새로운 면을 만나는 것은 일단 유보되어야 하였다. 다만 이번 과정 공유의 3인무 공연에서는 전에 선보이지 않은 것으로 기억되는 상체 위주의 움직임을 반복하며 새 포맷으로 작품을 구상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최강프로젝트 〈이들은 그냥 존재한다〉 ⓒ2023 SPAF/옥상훈



최강프로젝트의 〈이들은 그냥 존재한다〉(국립정동극장세실)는 고착된 정체성을 탈피하기를 의도하였다. 하얀색으로 처리된 무대는 넓은 실내 거실의 분위기를 발산하고 거기서 어느 커플 남녀의 듀엣이 전개된다. 공동안무자들(강진안·최민선)이기도 한 두 남녀의 캐주얼한 의상도 흰색이다. 무대 벽면 쪽으로 설치된 문으로 두 사람은 등퇴장하며 천장 가까이 벽에는 조그만 송풍구 같은 구멍이 뚫려 있다. 그리고 공연장에서 배부된 팸플릿은 전지 크기의 종이를 접은 것으로서 각 면은 흑백으로 처리되었다.



최강프로젝트 〈이들은 그냥 존재한다〉 ⓒ2023 SPAF/옥상훈



그 전지에는 다음의 구절들이 적혀 있다. 일부 소개한다. “그림자 다시 흩어진 공중 엉클어진 면 엇나간 선. 머리카락이 예술 일곱 번 움직인다. 발등의 힘줄이 오른쪽으로 움직인다. 뿜어낸 공중. 그림자 연기... ... ... 연기. 장면이 문장을 연다. 문장을 창문이 연다. 이제 구겨질 수 있는 종이. 은외침. 윤곽. 드러난 오른쪽...” “그림자. 그림 사람. 그림 사람은 몸을 펼치고 싶다. 몸은 그림을 펼치고 싶다. 펼친 그림. 점과 점 사이. 엉킨 선을 따라 간다... ... ... 멈추기 위한 움직임. 달리며 걷기. 조각을 세운 사람. 어제의 부분을 입는다. 조각의 조각을 든다. 부분의 부분을 본다. 내일의 조각을 걸친다. 그림을 펼친 사람...” “그것이 말하는 방법. 말을 지운다. 그렇게 그리는 법. 검정 입체. 하얘진. 오른쪽 어깨의 점이 움직인다. 발생해 있는 윤곽. 은문답...” “그림자 그림. 그림과 그림자가 함께 앉아 있다. 그림과 그림자가 함께 서 있다. 그림자는 그림에 입체감을 안긴다...” 산문시를 연상케 하는 이들 글귀가 깨알같이 인쇄된 것 이외에 전지에는 공연 개요는 물론 해당 글귀를 소개하는 말도 없다. 네 부분으로 나눠진 이들 글귀는 임의대로 읽어도 무방할 것이고 공연 내용과 직결될 것은 물론이다.



최강프로젝트 〈이들은 그냥 존재한다〉 ⓒ2023 SPAF/옥상훈



공연에서 여성은 관객을 응시한 상태에서 입을 벌리거나 오므리는 동작을 자주 해보였고 간혹 손을 잡거나 마주 보는 순간들도 있으나 커플은 각자 등퇴장을 번갈아하는 편이었고 때때로 바닥에 쓰러져 짧은 시간 누워 있는 동작을 반복하였으며 암전이 잦았다. 위의 글귀들에서는 연상이 끊임없이 연상을 유발하는 식의 의식의 흐름이 상상되며, 이를 감각과 연결하여서는 지속적인 유동의 상태를 긍정하는 경험이 진행될 법하다. 〈이들은 그냥 존재한다〉 공연이 이러한 느낌을 재현한 것인지, 혹은 관객 스스로 이런 느낌을 체험할 계기를 제시한 것인지, 어느 쪽에 초점을 두었는지는 불투명하다. 더욱이 공연이 제3의 느낌 또는 경험을 의도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어느 쪽이든 작품 소개대로 ‘끊임없이 흐르고 바뀌는 상태’에서 몸이 유동적이고 (때로는) 신선하다는 자각을 공연은 의도하고 소통하려고 했을 터이지만, 공동안무자들은 무대와 객석 사이의 소통에 여러모로 무리가 따르지 않았을지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안은미컴퍼니 〈웰컴투유어코리아〉 ⓒ2023 SPAF/옥상훈



〈웰컴투유어코리아〉(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는 인도네시아, 베트남, 태국, 필리핀의 안무자들이 안은미와 협력해서 만든 공연작이다. 이 공연 개막을 기다리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국 경제를 움직이는 데서도 절대 역할을 하는 아시아인들에게 한국사람들은 웰컴에 어떤 어감을 담았으며, 앞으로 어떤 어감을 담아야 마땅한가. 이 공연은 안은미컴퍼니가 그 나라들의 안무자를 초청하여 만들었으며 그 초점은 한국 사회의 더 나은 내일의 길을 모색하는 데 맞춰진 것으로 소개되었다. 그 나라들 출신으로 한국에 거주하는 각 3~5명의 일반인들과 안은미컴퍼니 단원 6명이 출연진을 구성하였다. 〈웰컴투...〉는 한국에 대한 인상(베트남), 한국에서의 직장생활(필리핀), 한국에서의 생활 감정(태국), 자기 나라 농경 문화의 고유한 가치(인도네시아)를 각 안무자의 시각에서 표현하고 색동무늬와 한국 정서 등을 배합해서 진행된다. 안은미 공연에서 으레 보아온 원반 장치가 벽면을 꽉 채운 무대에서 색색깔의 아시아적 의상과 소도구는 무대를 말하자면 축제 분위기로 물들였다. 아시아 5개국의 친선 무대의 인상이 강한 데에다 산만했던 것은, 이 공연이 70분 정도의 시간에 많은 것을 넣고 나열한 데에다 그로 인하여 한국 거주 해당 아시아인들에게 한국(인)이 무엇인지 하는 점이 흥미롭게 또는 명료하게 부각되지 않은 때문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스파프 무대에서 〈웰컴투...〉 류의 협력작이 올려지기 위해서는 구성과 주제가 더 다듬어졌어야 했던 것이다. 이것은 무대 출연진이 춤 비전문인이 다수라는 사정에서 기인하기보다는 일테면 드라마투르기 류의 접근이 강하게 고려될 필요가 있음을 의미한다.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 『뿌리깊은 나무 샘이깊은 물』(1)을 비롯 다수의 논문, 공저,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국립무용단 60년사>(2022년 간행, 국립무용단)의 편집장으로서 편집을 총괄 진행하고 필진으로 참여하였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으며 한국저작권위원회, 국립극장 자료관, 국립도서관 등에 영상 복제본, 팸플릿 등 일부 자료를 기증한 바 있다.​​​​​​​​​​​​​

2023. 11.
사진제공_2023 SPAF, 옥상훈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