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2023 모다페_ 국립현대무용단 〈정글- 감각과 반응〉
진지한 움직임 탐구, 빈약한 레퍼런스
김혜라_춤비평가

모다페와 국립현대무용단(이하 국현)의 공동 개막작이자, 국현 예술감독으로 취임한 김성용의 신작 〈정글-감각과 반응〉(10.4., 아르코예술극장대극장)에 기대와 관심이 모아졌다. 작년 모다페에서 선보인 〈아이 튜브(i tube)〉 대작(국립극장 대극장)을 제작하는 스케일과 코로나 19시기 민첩한 행보로 댄스필름 〈무엇이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가〉(샌프란시스코 댄스필름 페스티벌 공식경쟁작 선정)를 비롯하여 대구시립무용단 감독으로서 크고 작은 15편 이상의 작품을 창작했다. 5년이란 최장기간 예술감독직을 마치고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나 김성용은 국현 감독의 이름을 걸고 신작을 내 놓았다.

김성용은 자신이 개발한 ‘프로세스 인잇(Process Init)’에 기반한 움직임 철학으로 ‘무용의 본질’을 밝히려 한다고 소개한다. 의식적으로 여타 요소를 지양하며 순전한 몸으로 감각하고 반응하는 움직임으로만 무대를 구성하겠다는 것이다. 〈정글-감각과 반응〉은 ‘정글’이라는 공간적 이미지를 설정해 댄서들 스스로의 몸을 일깨우고 반응하는 몸, 다시 말해 상징과 기호를 내세워 사유하는 방식이 아니라 몸짓의 즉발적인 형태를 구현하는 현상학적인 몸에 몰두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움직임의 기제를 찾아 나선 여행자이기를 자처하며 잠재된 (댄서)자아의 세계를 최대치로 열어 보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예술의 과제를 감각의 발생에서 포착하듯(들뢰즈) 김성용은 (감각을 표상의 틀로 이해하기 보다는) 감각을 발생시키는 내부 기저를 탐색하며 움직임 발굴에 집중하려 했다.



국립현대무용단 〈정글- 감각과 반응〉 ⓒ황인모



전체적으로 정글이란 이미지에서 생성되는 움직임 반응과 정글 같은 현실을 연상하게 하는 관계 구조로 작품이 펼쳐진다. 전반부는 정글의 단면을 압축해 놓은 분위기가 조성된다. 울창한 숲의 단면을 묘사한듯 둥그런 리본 꾸러미가 무대 위에 매달려 있고, 새와 물소리가 전자 사운드로 입혀져 청명하나 긴장감이 도는 자연 환경이 마련된다. 알록달록한 타이즈를 입은 무용수들은 각자 도생하듯 무작위적이고 불연속적인 이동과 동작을 한다. 이들은 생존과 죽음의 두려움이 중첩된 상황에 직면한 정글이란 이미지에 부응한다. 게다가 자신의 춤내력을 모아 예측불허한 상황에서 반응하는 댄서들 몸 자체가 정글임도 시사한다.

정지와 지속, 고요와 격렬, 침잠과 발작 같은 신체 반응에서 점차 댄서들의 행동은 정서적인 반응으로 이행된다.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한 댄서의 히스테릭한 몸짓은 공동체에서 형성됨 직한 본능적인 힘의 과시로 극성을 띤다. 두 쌍에서 세 쌍으로 관계가 모이고 흩어지며 언뜻 보기엔 부족집단 같기도 하고 한편으론 치열하게 사는 현재 사람들의 모습으로도 연상하게 된다. 서사와 은유를 내세우지 않으나 댄서들의 접촉 시간과 이동 반경이 넓어지며 체적되는 움직임 형상(Gestalt)이 자연스럽게 얽히고설킨 사회적 인간들로 보이는 것이다. 하여 서로 다른 개인의 내밀한 감각적인 반응으로 인지되기 보단 안무가의 의지와는 달리 모던댄스 특유의 집단적 동일성으로 의미를 점철해가는 군무로 보인다. 어떤 낯선 움직임이나 기류가 감지되기 보단 천편일률적인 자기 복제로 공간의 용적만 넓힌다는 인상이다.



국립현대무용단 〈정글- 감각과 반응〉 ⓒ황인모



분위기 전환. 무대 위 장치 사이로 빛이 반사되며 어떤 변화를 암시한다. 찬란한 빛의 음영 아래 지체들의 생명력이 발현되는 아름다운 순간이 포착되리라 예상했다. 그러나 덩치만 큰 둥그런 장치가 제 몫을 해내지 못한다. 단지 기울어지거나 오르락내리락 할 뿐 새로운 감각의 미묘한 발생과정(상황)을 유도하는 데 결정적이지 않다. 의도적으로 여러 무대 요소를 간소화했다 믿었으나 유일한 오브제의 역할이 모호하다. 초반의 긴장감이 희석되고 평이하게 약속된 시퀀스로 시간이 흘러간다. 움직임의 반복과 변이 속에 생성되는 춤언어의 유의미성이 모래알처럼 흩어져 버리는 것 같다. 정글이란 공간의 이질성, 현실적 삶에 빗대어 볼 연상성, 생명체 개개의 숙명을 내포한 댄서들의 존재성이 좀처럼 특별하지 않다. 숱한 접촉으로 움직임은 가속화되나 균일해져 가는 엇비슷한 동작들의 공회전 같다. 따라서 여타 기존의 작업과 다른 감각적이고 구성적인 차이가 무엇인지! 반문해 보게 된다. 잠깐이긴 했으나 20여명의 댄서가 자체 발광하듯 무리에서 튕겨 나오는 엔딩 장면에서 앞선 지루한 시간이 다소 보상된다. 불꽃같은 에너지가 폭발하듯 생을 지속하려는 야생적인 힘의 촉발이었다.



국립현대무용단 〈정글- 감각과 반응〉 ⓒ황인모



이 작품은 대구시립무용단 재임시 만들었던 작품과 자연스럽게 연계되어진다. 전작 〈프로세스 인잇〉(댄스필름관람)에서 김성용은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무대에서 직접 설명한다. 댄서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동작이 구성됨과 동작 단위(머리위의 중심점, 허리둘레, 신체 부위 간의 마찰, 지속적인 이완)가 프레이징 되는 과정을 렉처 퍼포먼스 형식으로 조명한다. 하나의 과정이 결과물로 존재할 수 있음을 입체적으로 확인시킨 작품이었다. 여기에서도 몸을 감각하는 인식에 초점을 맞춰(정글이란 부제를 달고) 댄서의 자발성과 즉흥성에 기인한 유용한 메소드로 ‘프로세스 인잇’이 주목된다. 전작과 신작 모두 과정(process)에 상당부분 중점을 두어 댄서들과 긴밀하게 소통하며 작품을 함께 완성했다 강조하는 것이다. 댄서 자신의 몸을 알아가며 고유한 경험과 지극한 정서가 묻어나는 (재현적이거나 관성적인 동작 만들기에서 탈피해 보려는) 훈련법이 작업 과정에서는 의미 있는 접근이나 결과를 요하는 무대에서 이 세심한 면면이 잘 포착되진 않는 것이 맹점이다. 개성 있는 움직임의 현현이라 하나 미세한 개인적인 표현의 강도와 반응의 변형을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물론 실제적인 감각 반응들을 둔감하게 인지하는 필자의 탓이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말이다. 설득력 있었던 전작에서 렉처를 걷어내고 움직임에만 더욱 집중하려 했건만, 감각적인 반응으로 펼쳐내는 날 것 같은 산도의 유효 시간이 길지 않다. 생의 치열함을 빗대어 ‘살아있음’을 방증하려 한 작업이라 하나 그 논지를 끌고 갈 전환적인 전략이 ‘움직임’ 하나로 공략하기엔 설득력이 부족하지 싶다. 미처 감각하지 못했던 미지의 풍경(정글)을 찾아 감각의 한계를 실험하고 움직임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하려 했으나 기대만큼 와닿지 않았다.



국립현대무용단 〈정글- 감각과 반응〉 ⓒ황인모



작품은 제목대로 ‘감각하고 반응’하는 기표에만 몰두한다. 감각이란 속성 자체가 지속성과는 거리가 있으나, 한 시간을 ‘감각과 반응’이란 표면적인 주제로 끌고가기엔 작업을 관통하는 감각논의에 대한 레퍼런스(감각 발생론의 조건만 제시됨)가 빈약하다. 따라서 치열하게 움직이나 감각이란 신체 역량의 무궁한 가능성으로 확장하지 못했고, 오늘의 시점에서 감각을 일깨우는 일이 어떤 당위로 주목해야 하는지 답을 찾기가 어려웠다. 모던댄스가 영위해 온 기나긴 역사에서 움직임은 주요한 명제였고, 김성용도 움직이는 몸연구에 몰입했으나 우리(관객)의 감각(지각, 정서)까진 활짝 열어 젖히진 못했다. ‘춤의 본질’을 찾아 순수한 움직임의 발생을 진지하게 탐구하려 했고 허황되진 않으나 그 방향성이 다소 자족적인 인상을 갖게 한다. 움직임 발굴 의도와 댄서 개인의 정서 발견 과정에 과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아닐까?(프로세스 인잇) 창작의 최전선을 감당해야 하는 국현에서 출사표를 낸 작품이라 하기엔 대구시립무용단에서 발표했던 전작의 속편 같은 인상을 저버리기 어렵다. 새 술은 새 부대에!

김혜라

춤웹진 편집위원. 춤미학과 비평을 전공하였고 2012년 한국춤비평가협회를 통해 비평가로 등단했다. 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심의전문위원으로 할동하며, 〈춤웹진〉에 정기적으로 평문을 기고하고 있다.​​​​​​​

2023. 11.
사진제공_국립현대무용단, 황인모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