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국립국악원 무용단 ‘가무합설’
歌와 舞를 결합한 ‘가무합설’,
전통춤 종목의 의미망을 합설한 공연을 기다리다
김영희_전통춤이론가

국립국악원(원장 김영운) 무용단의 기획공연 ‘가무합설’(歌舞合設)이 10월 11~12일 풍류사랑방에서 있었다. 공연 제목에 가(歌)와 무(舞)를 놓았으며, “노래가 들리는 춤, 춤이 보이는 노래를 찾아갑니다”라는 홍보 문안으로 보아 노래와 춤의 긴밀한 결합을 의도했으리라 짐작했다. 프로그램은 〈오양선〉, 〈처용가무〉, 〈동동〉, 〈학춤 – 초혼조(招魂鳥)〉, 〈구음살풀이 - 향음(響音)〉, 〈나비홍고승무〉로, 제목들이 익숙한 듯하면서 무언가 새로운 시도와 해석들이 엿보였다. 전반의 세 작품은 궁중무 종목 중에서, 후반의 세 작품은 민속춤 종목 중에서 가무합설을 시도한 것이다. 그리고 무용단의 김혜자(예술감독 직무대행) 안무자가 〈오양선〉과 〈동동〉을, 최병재 안무자가 〈처용가무〉와 〈나비홍고승무〉를, 김태훈 안무자가 〈학춤 – 초혼조〉와 〈구음살풀이- 향음〉을 재구성 내지 안무작업을 했다.



국립국악원무용단 ‘가무합설’ 〈오양선〉 ⓒ국립국악원



첫 프로그램은 〈오양선〉으로, 원본 〈오양선〉은 5인의 무원과 죽간자가 등장하여 각각 구호와 치어, 창사를 하며 춤추는 당악정재이다. 이 공연을 위해 원본 오양선의 동선 중 5인 일렬 배열과 선모를 중심으로 한 사우(네 모퉁이)의 배열로 구성했고, 춤사위에 큰 변화는 없었다. 눈에 띄는 변화는 죽간자와 선모가 창사할 때 손으로 가렸던 입을 그대로 노출시킨 점이고, 무대 배경의 병풍에 창사 가사를 띄웠다. 창사는 기존의 구호, 치어, 창사의 내용을 함축하여 새롭게 한글로 작창하였다고 한다. 그동안 정재 공연에서 창사를 한문 원문으로 1구(句) 정도만 간단하게 노래했으나, 한글로 창사를 하니 내용이 비교적 전달되었다. 짧은 낭송도 있었다. 선모는 백진희가, 협무는 김혜영, 이명희, 김영애, 박지애가, 죽간자는 오솔비와 김현결이 맡았다. 창사는 객원으로 정혜인, 정선영, 원혜정이 했다. 이렇게 창사를 풀어서 표현한 점은 정재 공연에서 새로운 시도였고, 정재의 폭넓은 감상을 위해 필요한 작업이라고 본다.



국립국악원무용단 ‘가무합설’ 〈처용가무〉 ⓒ국립국악원



막간에 거문고 연주가 있은 후 〈처용가무〉가 시작되었다. 창사 가사가 무대 배경에 띄워지면서, 상수에서 흑 처용이 등장하였다. 처용이 큰 걸음으로 나오다가, 전대창사와 함께 한삼춤이 함께 추어졌으니, 무릎디피춤처럼 깊게 굴신했다가 다리를 크게 들어 뒷걸음으로 춤추었다. 그리고 세령산으로 장단이 바뀌면서 중앙에서 정면을 향해 춤추었고, 사방으로 몸을 돌려 한삼을 뿌리며 춤사위를 이어갔다. 오방 처용 중에 흑처용으로 춘 이유는 조선초에 오방처용무로 재구성되기 전에는 한 명이 흑포(黑布紗帽)를 착용하고 추었기 때문일 것이다. 춤은 김서량이 추었고, 조남훈(객원)의 창사가 묵직하게 울려퍼졌다. 춤의 후반부에서 후대창사의 노래가 동반되었으니, 한삼을 크게 뿌리며 좌전(左轉) 우전(右轉)을 하며 무대를 크게 돌면서 활달하게 춤추었다. 창사와 결합하려는 시도는 좋았으나, 한문 창사의 경우 고려해야 하겠다.



국립국악원무용단 ‘가무합설’ 〈동동〉 ⓒ국립국악원



세 번째로 올려진 〈동동〉의 원본 정재는 〈아박무〉이다. 2인이 아박을 들고 간간이 치면서 춤추며, “아으 동동다리”의 후렴구가 이어지는 노래 ‘동동(動動)’을 창사로 부르는 정재이다. 〈동동〉의 춤은 그대로였지만, ‘동동’의 노래에 집중하여 재구성했다. 기존의 〈아박무〉에서 중무 2인이 창사를 하며 춤추었던 점이 연출의 큰 변화였다. 2인이 아박을 드는 대목부터 아박을 허리에 끼고 춤추다가 내려놓는 대목까지 ‘동동’의 십이월사(十二月詞)가 불려지는 가운데 춤이 추어졌다. ‘십이월사’는 한글 가사로 조일하(국립국악원)가 원숙하면서 낭랑하게 불렀다. 그리고 이날의 〈동동〉에서 후대인들의 춤에 안무를 더해 꾸민 점이 구성의 묘미를 보여주었다. 2인무를 유재연과 백미진이, 후대인은 이윤정, 이도경, 임동연, 권덕연이 춤추었다.



국립국악원무용단 ‘가무합설’ 〈학춤 - 초혼조(招魂鳥)〉 ⓒ국립국악원



그리고 〈학춤 - 초혼조(招魂鳥)〉는 동래학춤에 노래를 결합하면서 학춤에 원망이 가득한 넋을 춤추는 스토리를 담은 춤이었다. 박상주, 전수현, 윤종현이 춤추었고, 강길원(국립민속국악원)이 판소리 적벽가의 ‘새타령’ 대목을 부르며 춤이 시작되었다. 이 새타령은 중국에서 삼국이 겨루던 시기에 적벽대전에서 패하여 죽은 위나라의 군사들이 자신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조조를 원망하는 내용이다. 이 소리를 타면서 2명의 춤꾼이 무대 하수와 객석 우측으로 각각 등장하였다. 이어서 1명이 객석 좌측에서 등장한 후에 “귀촉도 귀촉도”의 가사에서 3인 군무로 전환했다. 장단이 굿거리로 넘어가면서 김태영의 구음이 들어갔다. 부산 동래학춤의 구음은 주로 동래권번 출신의 여성 창자가 했으나, 이 작품에서는 남성 구음을 얹은 것이다. 이후진행된 춤은 기존 동래학춤의 춤사위들이 추어졌다. 일열로 무대 전면으로 날개짓을 한 후에 잠깐 각자의 허튼춤이 있었고, 시차를 두어 힘찬 날개짓으로 학 두 마리가 퇴장한 후 마지막에 남은 학이 여운을 남겼다. 학춤에 적벽가의 새타령을 결합하여 비애(悲哀)와 호방(豪放)을 함유한 새로운 학춤을 선보였다.



국립국악원무용단 ‘가무합설’ 〈구음살풀이 - 향음(響音)〉 ⓒ국립국악원



〈구음살풀이 - 향음(響音)〉은 살풀이춤에 소리를 더한 춤이었다. 11일에 양선희가, 12일에 장민하가 추었다. 필자가 본 11일에 김태영(진도씻김굿 이수자)이 구음을 했던 바, 구음에는 이따금 가사가 들렸는데 망자를 보내는 씻김굿에서 부르는 소리의 가사였다. 일반 살풀이춤에 구음을 넣을 경우 그냥 입소리로 가사가 없지만, 김태영의 구음에는 언뜻 “세월아 이내청춘 다 늙는다.~”, “이 세상 나올적에 아버님전 뼈를 타고 어머님전 살을 빌어” 등의 가사들이 춤에 중첩되어 감정의 골이 깊게 느껴졌다. 살풀이춤에 ‘향음(響音)’이라는 부제를 붙여 노래 가사 위에 얹혀서 추어지는 살풀이춤을 색다르게 감상하도록 시도한 작품이다. 양선희의 춤은 자신의 학습을 토대로 새롭게 구성한 살풀이춤이었다. 보통 수건을 떨어뜨리고 집어올리는 대목에서 양선희는 수건을 떨어뜨리지 않고 목을 감싸듯 수건을 걸치고 앉아서 손사위로 표현했다. 또한 양 팔에 수건을 넓게 펴들고 빠르게 돌면서 걷는 새로운 동작 장면도 있었다. 춤꾼은 감정을 극대화하지 않았으나, 구성진 소리가 춤의 정조를 물들였다.



국립국악원무용단 ‘가무합설’ 〈나비홍고승무〉 ⓒ국립국악원



〈나비홍고승무〉는 먼저 목어(木魚)를 두드리는 소리에 이어 장단 없는 법고 소리가 짧게 연주되었다. 그리고 동희스님(국가문화재 영산재 전승교육사)의 범패가 낮게 울려퍼지자 최형선, 이정미, 윤은주, 서희정 4인의 나비춤이 추어졌다. 나비춤은 2열로 나누어 제자리에서 추다가 동선을 주어 원형으로 모이거나 꽃을 맞대어 춤추기도 했다. 이어 흑장삼을 입은 최병재의 승무가 추어졌으며, 최광일(피리 정악 이수자)이 태평소를 불었다. 보통 홀춤 승무에서 삼현육각으로 반주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태평소 중심으로 반주하고 현악기는 넣지 않은 것이다. 염불장단에서 흑장삼 소매를 느리고 길게 뿌렸고, 늦은타령에서 잠시 나비춤이 합류하여 함께 추었다. 승무의 굿거리 대목을 추지 않고 법고 치는 대목으로 넘어갔는데, 기존 승무의 북 가락이 아니라 불가에서 치는 법고(法鼓)다. 장단으로 친다면 휘몰이라 할수 있을까, 북을 여러 지점에서 다양하게 치거나, 북판을 치다가 훑거나, 북판과 북테를 빠르게 번갈아 치는 등, 장단 없이도 북 소리와 북채 동작이 현란하다. 마지막에 북테를 두르르 치고 합장하면서 춤을 마쳤다. 불교의식무인 나비춤과 법고, 예인들의 민속춤인 승무를 결합하였고, 범패와 태평소로 음악적 질감을 선명히 하였기에 영산재의 장면들을 이어서 본 듯했다.

그렇게 ‘가무합설’ 공연이 끝났다. 여섯 작품의 무대는 그간 전통춤 공연에서 보았던 것보다 입체적이고 다채로웠다. 궁중무든 민속춤이든 전통춤 공연에서 생략되거나 축약되었던 요소들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정재 종목의 경우 춤꾼의 창사를 노출시키고, 춤출 때 창사도 함께 불러서 노래를 적극적으로 드러냈고, 민속춤에서 〈나비홍고승무〉는 영산재에서 했던 가무악을 가능한 결합하고자 했다. 〈학춤 – 초혼조(招魂鳥)〉와 〈구음살풀이 – 향음(響音)〉는 놀음의 현장에서 했던 춤과 노래의 결합을 시도했다. 이중 〈학춤 – 초혼조(招魂鳥)〉는 새로운 이야기와 정조를 만든 점에서 또 다른 성과가 있었다.

‘가무합설’이 여섯 종목의 전통춤들에 가(歌)를 결합하여 풍성했지만, 사실 전통 연행물들은 이미 가무악이 융합되어 있다. 연출을 맡은 김재리가 “몸짓과의 연결 대상을 확장하여 춤 공연에서 잘 보이지 않거나 무대 위에 누락되어 왔던 개별 요소들을 발굴하고 새로운 관계를 창조한다”고 했듯이, 이 공연은 그동안 춤으로만 간신히 표현했던 춤 종목들을 가와 무를 결합하여 연행한 공연이었다고 하겠다.

그러나 ‘합설(合設)’은 같이 놓는다, 한곳에 합하여 설치한다는 의미이며, 우리 춤의 역사에서 합설한 정재로 〈학연화대처용무합설〉이 있다. 이는 가무악 장르의 결합이 아니라, 작품의 의미망을 새롭게 세우고 연결하여 〈학무〉과 〈연화대〉, 〈처용무〉를 합설한 작품이다. 궁중무에 대한 연구와 재연이 무르익었고, 궁중무의 현재화라든가 질적 발전을 위해 합설로의 접근은 또 다른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국립국악원 무용단이 이를 다시 도모해보기를 바란다. 그리고 진주의 가무악을 기록한 『교방가요』(1865)를 토대로 2022년에 국립국악원 무용단의 색다른 작업도 있었다. 이러한 작업 흐름은 국립국악원 무용단이 전통춤 전반을 기반으로 정재 공연의 재도약 또는 레파토리 확대의 분기점에 있음을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다.

김영희

전통춤이론가. 김영희춤연구소 소장. 역사학과 무용학을 전공했고, 근대 기생의 활동을 중심으로 근현대 한국춤의 현상에 관심을 갖고 있다. 『개화기 대중예술의 꽃 기생』, 『전통춤평론집 춤풍경』등을 발간했고, 『한국춤통사』,  『검무 연구』를 공동저술했다. 전통춤의 다양성과 현장성을 중시하며, ‘검무전(劍舞展)I~IV’시리즈를 기획했고, '소고小鼓 놀음'시리즈를 진행하고 있다. ​​​

2023. 11.
사진제공_국립국악원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