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안은미 〈여자야 여자야〉
상투적 자기인용 그리고 공공무용단의 책임
김채현_춤비평가

국립현대무용단 초빙으로 안은미가 안무한 〈여자야 여자야〉는 한국 근대 신여성을 위한 헌사(獻詞)이다(국립극장 하늘극장, 8. 24~27.). 이 신여성에는 모던걸을 비롯하여 당대에 깨인 의식으로 세상 속 자신을 자각하고 몸부림친 여성들이 포함된다. 이번 공연을 접하고서 한번 짚어보니 신여성의 자기 각성을 역사적 현상으로서 춤화한 춤 공연작이 의외로 드물다는 사실을 새삼 인지하게 된다. 이는 〈여자야 여자야〉가 다소 돋보이도록 하는 점이다.

공연 무대는 공연 전부터 노출되어 있었다. 원반 모양의 하얀 조각들이 정면의 벽 전체를 모자이크 식으로 빼곡이 장식한 무대는 시원스러움을 연출하였다. 그 아래 바닥에 깔린 검은 천 한 모서리에서 어느 파마머리의 여성 노인이 조용히 바느질하는 모습부터 눈에 들어온다. 한복을 차려입고 조신하게 앉아 묵묵히 바느질에 열중하는 노인의 거동, 그것은 지금의 중장년층들에게는 익숙한 모습으로서 과거를 살아온 이땅 여성들의 삶을 은연중 되새겨보도록 하는 정경 아닌가. 공연은 댕기동자(또는 댕기소녀?)가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무대를 주유하며 손에 쥔 플래쉬로 무대 여기저기를 비추는 것으로 시작한다. 롤러스케이트와 플래쉬는 암전 속 어둠을 뚫고 나타나면서 앞으로 무대 위에서 전개될 상황을 강하게 예고하는 것처럼 등장하였다.



안은미 〈여자야 여자야〉 ⓒ국립현대무용단/옥상훈



공연 서두에 삭발 의식이 진행되는데 그 상징성은 분명하다. 검정 구두를 신고 점박이 원피스를 착용한 안은미가 긴 가발 차림에다 케이스를 들고 비틀걸음으로 입장한다. 케이스에서 가위를 꺼내어 자기 머리카락을 자르더니 관객에게도 잘라줄 것을 청하였고 이어 안은미는 다른 출연자의 것도 잘라 가방 속에 쓸어담는다. 시기적으로 그 시대 전에 구한말의 단발령(斷髮令)이 있긴 하였으나 쪽진머리에서 단발머리로 변신하는 것이 당대 여성(과 인간)들에게는 일종의 결단이자 탈바꿈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으며, 단발은 신여성의 기본 용모이기도 하였다. 이 절차 후에 〈여자야 여자야〉의 서사들이 전개되므로, 삭발의식은 신여성 혹은 다른 여성(!)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로 부각된다.

전체적으로 〈여자야...〉는 공연 도입부에서 장옷에다 몽당치마를 걸친 여자가 남자와 서로 맞절하며 혼례를 치르는 장면에서부터 공연 말미에 어느 신여성을 인력거에 태워 모시고서는 ‘우리 언니님들 감사합니다’는 말씀을 올리며 행진하는 장면에 이르기까지 일제강점기의 신여성에 초점을 맞춰 전개되었다. 공연에서는 나혜석, 유관순 등 신여성 시대 선구자들의 많은 이름이 가나다 순으로 한참 거명되는 순간이 있고, 1922년도의 어느 잡지 기사 이미지가 벽에 투사될 동안 ‘나도 남자처럼 살아보겠다’고 다짐하는 낭송, 인간적인 삶을 위해 애쓴 자기 이름을 기억하기를 바라는 어느 선구자의 선언, 자신의 억울한 처지를 세상에 고하는 어떤 유언, 벽에 한가득 비치는 선구자들의 이름, 여성해방을 강조하는 신문 기사 등 당대 신여성의 진취적 활동상을 전하는 역사 속 구체적 재료들 역시 일제강점기의 것이다. 1945년 일제강점기가 끝장남으로써 신여성이 일단 과거의 현상이 되었을지라도, 공연에서 신여성에 초점을 모으면서 근현대 여성의 치열한 처지를 통털어 환기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안은미 〈여자야 여자야〉 ⓒ국립현대무용단/옥상훈



〈여자야...〉는 안무자 안은미의 스타일로 구성되었다. 이번에도 하얀색, 검은색, 빨간색, 노란색, 푸른색, 초록색 등 원색 계열 색상이 의상과 무대에서 시선을 끌었다. 아울러 일상의 물건들이 소도구로 변신하는 것도 그런 스타일에 속할 것이다. 수시로 등장하는 휴대용 메가폰은 당대의 남녀들이 꽉 막힌 세상을 향해 항변을 외치며 사이렌을 울리는 도구로 쓰이다가 답답한 가슴을 한스럽게 쳐서 울리는 소리를 증폭해서 전달하는 등 그들의 대변자 구실을 하였다. 자전거는 남성이 여성을 태워가는 보수적인 용도로 등장하고 나중에는 (여성해방을 주장하는 내용을 담은 듯한) 전단을 살포하는 행동주의적 수단으로 쓰인다. 그리고 파이프 모양의 검은색 장대에 의지하여 남녀 집단은 억눌린 감정을 행동으로 표출하며 또 장대는 세상의 그 무엇을 겨냥하여 쏘아서는 무대를 난장판으로 돌려치는 수단이 된다. 이처럼 물건의 일상적 용도를 벗어나 자유로이 전용하는 것은 안은미 스타일의 특징 가운데 하나다.



안은미 〈여자야 여자야〉 ⓒ국립현대무용단/옥상훈



〈여자야...〉에서 여자가 자신의 정체성과 사랑을 찾아 나서면서 깨인 남성들도 그에 동조하는 기색을 뚜렷하게 나타낸다. 함께 배회하고 방황하는 모습에다 함께 질곡 또는 장애를 헤쳐가며 몸부림치는 모습이 중첩되며, 급기야 그들은 장대(긴 막대)에 의지해서 또는 쌍부채를 쥐고 춤추는 여성들에게 남성들이 통쾌하게 가담하여 모두들 해방감을 만끽하는 장면을 펼쳐보인다. 특히 쌍부채 부분에서 남녀 출연자들이 옷을 일부 벗어 수영복 차림처럼 맨살을 드러내자 해방감은 더 고조되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움직임에 어떤 제한을 두지 않았어도 〈여자야...〉는, 당연한 말로서, 컨템퍼러리 계열의 동작이 주를 이룬다. 안은미의 환각적이면서 튀는 감성과 조명에 힘입어 움직임은 일견 에너제틱한 감을 담았고 때로는 경쾌하였다.



안은미 〈여자야 여자야〉 ⓒ국립현대무용단/옥상훈



〈여자야...〉는 한국인이라면 대개들 아는 신여성의 여러 면면들을 담았다. 전체 맥락은 신여성이 겪는 질곡, 그것을 헤쳐나가는 몸부림, 그리고 남녀들의 해방감의 분위기 차례로 전개되었다. 그런 와중에 파노라마 식으로 소개되는 면면들에서 안무자가 방점을 찍은 것이 어느 부분인지는 뚜렷하지 않다. 안무자는 대개들 아는 역사적 상식 또는 재료에다 자신의 감성을 투입하여 그 면면들을 새 느낌으로 접하도록 하는 데 치중한 것으로 보인다. 공연에서 새 느낌의 보편적 역할을 참작해보면 이런 작업이 무가치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신여성에 대한 안무자의 해석이 당대 현상에 관한 일반 상식과 아주 흡사했고, 드물은 신여성의 자각을 소재로 했었어도 안무자 고유의 해석이 사실상 누락된 것은 크게 재고되어야 한다. 때문에 〈여자야...〉의 공연 의의를 과연 얼마나 찾을 수 있을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못잖게 〈여자야...〉에서 재고되어야 할 점은 자기 인용의 문제이다. 이번 공연에서 무대 정면의 원반 장식, 의상, 색감, 구성 방식 등은 안무자 안은미의 기존 공연작들에서 자주 그리고 으레 접해온 유형의 것들이어서, 창작된 새로움보다는 기시감(旣視感; 데자뷔)을 유발하는 면이 훨씬 강하였다. 이에 따라 〈여자야...〉는 신여성을 소재로 한다는 점을 빼놓으면 안은미 공연을 접해온 시각에서는 사실상 신선감은커녕 느낌과 연출 면에서 상투성에 맴돈 공연작이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예컨대 논문에서 출처가 표기되지 않은 자기 인용은 당연히 윤리에 저촉된다. 논문과 공연의 논리와 관행이 어찌 동일하겠는가마는 확실히 말할 수 있는 점은 있다. 즉, 공연에서는 자기 인용이 잦을수록 신선감과 신뢰성을 저해하는 부작용을 스스로 유발한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자기 인용이 심해지면 자기 복제가 습관화될 것이고 급기야 공연작들은 작업장에서 찍어내어지듯 만들어질 터이다. 크게 말해서, 예술에서 아쉬운 창의성을 창의성으로 상쇄하는 진정성은 미흡한 채 번번이 남다른 유난스러움에 기대거나 기존의 결과물을 재활용하는 자세는 그리 탐탁하지 않다.

결코 근거 없는 짐작이거나 과장된 소개가 아닌바, 피나 바우쉬는 살아 생전에 스스로 이전 작품에 만족을 표한 경우가 전혀 없고, 새 작품을 할 적마다 이전 판을 아예 무시하고 전면적으로 새로이 시작하였다 한다. 말하자면 피나 바우쉬는 새 작품을 올릴 적마다 그 완성도와는 별개로 새롭게 태어났다고나 할까. 피나 바우쉬의 장수 비결 가운데 하나다. 피나 바우쉬와 작품 성향이 맞지 않은 예술인, 안무자, 관객도 적어도 이 점에서만큼은 피나를 인정해야 할 것이다.

신선한 물은 신선하다. 공연작에서 신선감을 이루는 요인은 복합적이다. 그렇다면 〈여자야...〉의 신선감은 어디서 찾아질 수 있을까. 가사가 다를 뿐 엇비슷한 곡조로 노래를 발표하는 가수도 있을 테지만 그 가수를 따르는 팬덤을 탓할 일은 아니다. 그렇더라도 그 노래의 대중적 의의와 예술적 의의는 구분되어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자기 인용이 가득하고 움직임에서 특이점이 감지되지 않아도 안은미가 (추후로도) 어떤 내용과 형식의 공연을 하든 일단은 개인의 선택과 의지에 맡겨져야 한다. 그러나 〈여자야...〉의 또 다른 심각성으로서 공공무용단의 초빙 공연작임에도 불구하고 신여성을 소재로 한 점 외에는 기존 안은미 스타일의 자기 인용에 안주한 점부터 제기된다.

국립현대무용단이 안은미를 초빙하며 약조한 내용이 이번 공연 결과에 담긴 〈여자야...〉의 내용 및 형식과 일치한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이 심각성에 대한 책임 소재는 어느 쪽에 물어져야 하는가. 신여성 소재를 안은미 식으로 구성하는 것이 컨템퍼러리댄스에 어긋나는 것도 아니며 대중적 호응을 끌어낼 여지도 있을지 모르지만, 예술적 의의는 아주 빈약하였다. 대중적 호응과 예술적 의의, 두 가지를 모두 성취하는 게 바람직스럽고 예술을 하는 누구나 품을 소망이기도 하다. 두 가지를 분리해서 볼 일은 아니고 예술적 의의를 토대로 대중적 호응을 확보하는 것이 예술(단체)의 순리이다. 만에 하나 가령 둘 가운데 굳이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공공단체는 어느 쪽을 택해야 할까. 다시 말해서 민간단체의 공연에서 양해될 수 있는 점들이라 해도 공공단체에서는 인정받기 어렵고 공공단체가 양보할 수 없는 마지노선이 있다. 공사구분(公私區分)이라 해야 할지, 이 기본 상식을 안은미와 특히 국립현대무용단은 되새겨야 한다.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 『뿌리깊은 나무 샘이깊은 물』(1)을 비롯 다수의 논문, 공저,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국립무용단 60년사>(2022년 간행, 국립무용단)의 편집장으로서 편집을 총괄 진행하고 필진으로 참여하였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으며 한국저작권위원회, 국립극장 자료관, 국립도서관 등에 영상 복제본, 팸플릿 등 일부 자료를 기증한 바 있다.​​​​​​​​​​​​

2023. 10.
사진제공_국립현대무용단, 옥상훈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