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최수진 〈Alone〉 · 이루다 〈블랙 볼레로〉
춤 작품에서 춤이 보이지 않는다
정옥희_춤비평가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국내초청작인 최수진의 〈Alone〉(9월 9-10일, 대학로 쿼드극장)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예술과기술융합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제작된 작품이다. Chat GPT가 생성한 텍스트와 AI 음악생성프로그램 Mubert가 생성한 음악, 그리고 이제는 상당히 대중화된 기술인 프로젝션 맵핑 등이 활용되었다. 최신 기술들을 발 빠르게 무용에 접목했으니 ‘예술과 기술의 융합’이라는 지원사업의 취지에 충실한 작품이라 하겠다. 그러나 예술성과 기술성의 균형은 쉽지 않은 일이어서, 〈Alone〉 역시 기술주도적 예술작품의 딜레마를 안고 있었다.



최수진 〈Alone〉 ⓒ국제무용협회 한국본부_제26회 서울세계무용축제



〈Alone〉은, 제목에서 명백히 드러나듯 현대인의 외로움을 다룬다. 남녀 무용수(최수진, 신영준) 두 명이 서로와 별다른 관계를 맺지 않은 채 각자의 영역에서 머문다. 란제리 풍의 의상으로 등장했던 최수진이 중반부 여전사 같은 모습으로 돌아와 혼자만의 세상 속에서 허우적댄다면 신영준은 다소 타자적 존재로 남아 최수진의 고립을 부각시킨다. 발레와 실용무용처럼 호흡이 짧은 장르의 베이스를 지닌 두 무용수가 독무 몇 개로 45분의 작품을 끌어가기란 여간 힘들지 않을 것이다. 짧은 독무들을 유기적으로 엮는 연출의 논리가 중요해진다.



최수진 〈Alone〉 ⓒ국제무용협회 한국본부_제26회 서울세계무용축제



쿼드극장의 블랙박스 공간은 하얗고 길쭉한 무대를 양쪽에서 바라보는 패션쇼장 형식으로 구조화되었다. 이러한 공간 구성은 단 두 명이라는 적은 숫자의 출연진을 보완하는 한편 바닥에 투사되는 텍스트와 이미지에 집중케 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무대 양쪽에서 양 방향으로 투사되는 텍스트는 프로젝션 맵핑으로 강렬했고 비중도 꽤 컸다. 하지만 객석 세 줄 중 둘째 줄에 앉았음에도 잘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맞은편의 관객 표정이 더 잘 보였다. 몇 번 자세를 비틀며 읽으려 노력하다가 어느 순간 멈추었다. Chat GPT가 생성한 텍스트는, Chat GPT가 생성했다는 점 외엔 그리 특별할 게 없었기 때문이다. 이리저리 시도해보면 이내 파악하듯 Chat GPT의 특징은 그럴싸함이다. 연관된 단어를 엮어 일인칭 독백 풍의 문장을 구성하지만 다른 단어로 얼마든 대체될 수 있는 그럴싸한 무드. 누구의 것도 아닌 외로움에 감흥을 느끼기란 쉽지 않다.



최수진 〈Alone〉 ⓒ국제무용협회 한국본부_제26회 서울세계무용축제



인공지능은 〈Alone〉의 협업자다. 첫 장면에서 최수진이 무대에 들어서면 바닥에 ‘안녕, 반가워’라는 텍스트가 투사된다. ‘내 감정을 완성해줘’라는 명령어에 Chat GPT가 일인칭 독백의 글을 써내려가고 최수진은 느리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런데 감정을 ‘표현’하거나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완성’해달라는 명령어가 의미심장하다. 개인 내면에 이미 완성된 감정이 존재하고 이를 끄집어내는 것이 아니라 기계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비로소 구체화되고 완성된다는 점은 감정의 주체를 인격 너머로 확장시킨다. 마찬가지로 〈Alone〉은 예술작품의 창작 주체를 안무가 개인에서 여럿으로 분산시킨다. 조명, 의상 등 전통적인 협업자 외에 기술감독, 예술감독, 영상감독, AI개발자, 그리고 인공지능에게 일임함으로써 작품의 창작자를 확장한다.



최수진 〈Alone〉 ⓒ국제무용협회 한국본부_제26회 서울세계무용축제



하지만 이러한 확장이 무용작품 창작의 본질적인 전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인공지능이 생성한 결과물을 안무가/연출가 최수진이 선택, 통제, 편집, 배치하여 상당히 정교하게 합을 맞췄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Alone〉은 Chat GPT나 Mubert가 실시간으로 텍스트와 음악을 쏟아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생성된 데이터를 안무가의 의도에 따라 협업자들이 이리저리 편집하여 가공한 결과다. 결국 기존 작품과 다른 점이라곤 작품의 요소를 인간이 처음부터 창작했는가 아니면 생성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았는가이다. 이 점에서 의문이 든다. 뒤샹의 〈샘〉이 나온 지 100여 년이 지난, 4차산업혁명과 큐레이션이 기초산업을 뛰어넘는다는 오늘날 이 차이는 유효한 것인가? 예술가들은 이미 이러저러한 툴의 도움을 받고 있지 않나? 예술가는, 아니 인간은 무수한 가능성 중에서 선택하고 이에 책임지는 자가 아닌가?

기술의 신박함과 달리 〈Alone〉은 모더니즘적 전통을 따르는 작품이다. 1960년대 머스 커닝험이 통제불가능한 방식으로 이질적인 요소들을 공존시켰다면 〈Alone〉에선 모든 요소가 안무가/연출가의 통제 하에 조합되었기 때문이다. 그 틀 안에서 일부 요소를 인공지능에게 일임했다 해서 예술적 결정권이 인공지능에 양도된 것은 아니다. 야채를 사와 다듬었든, 밀키트를 사왔든 그 결과의 책임은 요리사가 져야 한다. 조급한 기술중심주의는 기술 자체를 볼거리 삼지만 유효기간이 너무 짧다.



이루다 〈블랙 볼레로〉 ⓒ한국발레협회_K-발레레퍼토리 시리즈



최수진의 〈Alone〉처럼 이루다의 〈블랙 볼레로〉 역시 시각적 요소가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K-Ballet 레퍼토리 시리즈(한국발레협회가 주최)로 공연된 〈블랙 볼레로〉(9월 24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는 2010년의 데뷔작을 확장한 버전이다. 15분 내외의 라벨의 원곡에 20분 정도를 더해 중편 작품으로 확장했다. 13년 전의 작품을 다듬어 유효한 레퍼토리로 보유하려는 노력은 레퍼토리가 좀처럼 축적되지 않는 한국 발레계에서 소중한 행보다.

이루다는 보기 드물게 스타일이 뚜렷한 발레 안무가이다. 짙은 아이라이너와 ‘블랙토’ 무용단, 그리고 〈블랙 스완〉과 〈블랙 볼레로〉 등 온통 검다. 가죽, 비닐, 쉬폰 등 다양한 질감의 검은색 의상과 과장되고 장식적인 실루엣에 헤비메탈 및 고스족의 미감이 뚜렷하다. 〈블랙 볼레로〉 역시 검은색과 흰색의 대비를 통해 빛과 어둠, 원시성과 문명, 화합과 분열의 이분법을 중첩시킨다.





이루다 〈디스토피아 3-중독〉 ⓒ국제무용협회 한국본부_제26회 서울세계무용축제



프롤로그에 검은 드레스 차림의 이루다가 작품의 시점을 제시한 후 살색 언더웨어만 입은 남성으로 시작된다. 전작 〈디스토피아 3-중독〉도 살색 언더웨어 차림의 남성이 등장하며 시작되는데, 인류의 보편 형상을 남성으로 설정하는 선택이 여성안무가로서 아쉽다. 한 명의 남성은 곧 여러 명의 여성들로 분열되며 군무를 이룬다. 이후 무용수들은 다양한 조합과 대형으로 파워풀한 에너지를 형상화한다.

〈블랙 볼레로〉는 영상과 조명이 끌고 가는 작품이다. 첫 장면부터 끝 장면까지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영상이 배경막에 투사된다. 검정과 흰색의 이미지들은 파도, 세포분열, 우주, 기하학적 도형 등의 그래픽 이미지와 무용수의 춤을 여러 각도에서 찍고 편집한 영상들로 다채롭다. 여기에 아르코 대극장의 무대를 이리저리 구획 짓는 다양한 조명이 사용되었다. 몇 초 단위로 조명이 바뀌며 무용수의 등퇴장을 지시하고 공간을 조율한다. 시청각적 자극에 빈틈없다.



이루다 〈블랙 볼레로〉 ⓒ한국발레협회_K-발레레퍼토리 시리즈



문제는 이러한 연출이 동어반복적이라는 것이다. 최근 연출 중심적 무용작품이 그러하듯 조명이나 영상, 장치, 텍스트 등으로 주제를 강조하다보니 동일한 장면에서 메시지가 중복되어버린다. 좋은 소리도 여러 번 들으면 잔소리가 된다. 〈블랙 볼레로〉의 영상은 그 자체로 완결성을 지녔고 강력하다. 이 압도적인 영상이 춤으로부터 관객의 시선을 빼앗아간다. 게다가 무용수 주변을 프레임화하고 장면을 연출하는 조명이 분초 단위로 전환되다 보니 움직임의 지속성을 보기가 어렵다. 영상과 조명이 전면에 나서는 사이 춤은 뒤로 밀려난다.

춤의 순수성이나 장르 본질주의를 주장하는 건 아니다. 다만 모든 것이 자극적인 가운데 춤이 예리한 육체성을 잃고 일러스트레이션으로 납작해진 점이 두드러진다. 게다가 〈볼레로〉 아닌가. 〈볼레로〉야 말로 춤의 역사에서 움직임의 지속성이 가진 힘을 폭발시키기를 계보로 구축해 온 작품이다. 〈블랙 볼레로〉는 세련된 미장센과 화려한 조명 변화로 에너지를 증폭시키지만 각 장면의 호흡이 짧고 초점이 분산되다 보니 좀처럼 점화되지 않는다.



이루다 〈블랙 볼레로〉 ⓒ한국발레협회_K-발레레퍼토리 시리즈



지금껏 〈Alone〉과 〈블랙 볼레로〉에 대해 쓰면서 춤 자체는 다루지 않았다. 의식적인 선택이다. 춤 이외 요소들에 방점을 둔 작품들이라 춤을 다룰 짬도 없었거니와 안무나 움직임 수행이 작품의 주도권을 지니지 못했기 때문에 굳이 다룰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춤 작품의 중심이 춤이 아니다 보니 춤 비평의 중심도 춤이 아닌 셈이다. 대신 눈이 아플 정도로 강렬한 시각적 자극만 잔상으로 남았다. 춤 작품에서 춤만 돋보일 필요는 없지만 춤이 도통 기억나지 않는다는 점이 아쉬울 따름이다.

정옥희

춤 연구자 및 비평가. 이화여자대학교 무용학과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미국 템플대학교에서 무용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유니버설발레단과 중국 광저우시립발레단의 정단원으로 활동했다. 현재 Dance Chronicle 자문위원이며 이화여자대학교 무용과 초빙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 『진화하는 발레클래스』(2022), 『이 춤의 운명은: 살아남은 작품들의 생애사』(2020)가 있다.

2023. 10.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