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조혜정 〈갈라테이아〉
한국춤의 동시대성을 추동하는 젊은 춤꾼들(3)
최찬열_춤비평가

인류 문명이 쌓아온 지적 유산은 사실상 보편적인 것이 아니다. 이것은 애초부터 남성에 의한, 남성을 위한 것이다. 대표적으로 그리스신화는 끝없이 여성이란 존재자를 지우려 했다. 그 결과 거기에 등장하는 갈라테이아처럼 피그말리온이라는 남성 창조자에게 순응하는 온순한 여성이 만들어진다. 착하고 아름답고 부드러우며 순종적인 그녀는 남성 중심 사회의 완벽한 여성상이다. 하지만 조각가 피그말리온이 물질을 빚어 만든 조각상 갈라테이아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올해 ‘평론가가 뽑은 무용가 초청공연’ 첫날 무대에 오른 조혜정의 〈갈라테이아〉(7월 15~16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는, 이런 갈라테이아를 남성의 눈길에 의해 대상화되는 존재자가 아니라, 자율적이면서도 독립적인 여성의 전형으로 내보이며 여성 주체성을 문제시하는 공연이다.



조혜정 〈갈라테이아〉 ⓒ조혜정에이치엠



튕기는 듯한 현악기 선율 음이 울려 퍼지면서 조명 빛이 서서히 들어오면, 무대 중앙에 제법 큰 사각 조명이 들어와 있고, 그 안에 여성 춤꾼 한 명(조혜정)이 서서 객석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다. 하얗고 긴 반투명 스커트에 살색 상의를 매치해 입고 선 그의 모습이 흡사 사각 좌대 위에 세워진 잘 다듬어진 조각상처럼 보인다.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조각상 갈라테이아이다. 피그말리온이 만든 것으로 알려진 이 형상물은 이른바 여성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상징물이다. 하지만 춤 만든 이가 보기에 이는 남성 조각가의 능동적인 힘이 가해져 만들어진 형상물, 곧 수동성의 상징이기도 하다. 두 손을 흉곽에 올린 채 선 그녀가 호흡을 깊이 들이마셨다가 내뱉기를 반복한다. 물질-여성에 불과한 조각상에 숨이 차며 서서히 여자 사람으로 변하는 모습이다. 생기가 들어찬 몸통을 위아래로 움직이던 그녀는 곧이어 몸을 곧추세우더니 두 팔을 늘어뜨리며 상반신을 뒤로 휙 젖히고, 허리를 틀어 몸통을 슬며시 옆으로 움직이다가 두 팔을 높이 들며, 마치 기지개를 켜며 잠에서 깨어나는 사람처럼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러다 한 팔로 급작스럽게 갈비뼈 부근을 털어내듯 비비고, 이리저리 움직이며 주변을 살피듯 바라보다가, 팔다리와 몸통을 유연하게 놀리는 움직임을 지속한다. 물질-여성에 불과한 조각상이 변화하여 온전한 여자 사람의 꼴을 갖추어 나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묘사하는 장면이다.



조혜정 〈갈라테이아〉 ⓒ조혜정에이치엠



그러다 사각 조명 빛을 벗어나려는 듯 그 가장자리로 빠르게 기어가고, 다시 일어나 두 팔을 휘젓고, 펄쩍펄쩍 뛰는 진취적인 동작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이를테면 조혜정은 수동적인 몸을 능동적인 몸으로 바꾸려는 의지가 드러나는 움직임을 주로 구사하며 자기 몸의 잠재적 역능을 활성화하고, 그 힘으로 자기를 가두는 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다. 특히 흉곽을 두 손으로 거칠면서도 빠르게 비비고, 문지르는 이 공연의 시그니처 동작이 그녀의 이러한 심정을 상징적으로 드러내 보이고, 거부하듯 팔다리를 휘젓고, 저항하듯 몸통을 비틀고 뒤로 젖히는 등 외부에서 가해지는 힘과 주어진 상황에 저항하면서 어딘가로 뛰쳐나가려는 듯한 동작이 두드러져 보이는 강렬하면서도 빼어난 솔로 춤이다.



조혜정 〈갈라테이아〉 ⓒ조혜정에이치엠



다음 장면에서는 갈라테이아의 분신들이 이러한 의지를 군무로 되풀이해 보인다. 다소 몽환적이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가 감도는 배경음이 흘러나오면서 조명 빛이 밝아지면, 무대 여기저기에 하얀 로맨틱 튀튀에 살색 상의를 차려입은 춤꾼-조각상들이 갖가지 포즈를 취한 채 서 있다. 그중 무대 중앙에 서 있는 한 명이 두 손으로 갈비뼈 부근을 거칠게 비비다가 몸통을 뒤로 젖히고, 엎드려 기면서 앞으로 나오고, 또 한 손으로 연이어 가슴부위를 거칠게 치는 등 다소 도발적인 움직임을 이어가다가 다른 한 명의 춤꾼-조각상에 다가간다. 그리고 둘이 차례차례 시그니처 동작을 반복한다. 그리고 이들을 따라 다른 이들도 그 동작을 되풀이해 보여준다. 몸과 몸이 감응을 주고받으며, 하나가 먼저 미몽에서 깨어나고, 다른 이들도 그녀를 따라서 덩달아 각성하는 모양새다. 그래서 이들 모두는 이쁜 의상을 입고 귀엽고 앙증맞은 조각상 모습을 한 채 깔끔하고 세련된 군무를 펼쳐 보이지만, 상황을 받아들이지 않고 물리치듯 팔을 거칠게 내리치고, 또 무언가를 외면하듯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가 앞으로 나아가는, 반항적이면서도 도전적인 춤에는 자기들의 피동적인 처지를 뿌리치고 극복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묻어 있다.



조혜정 〈갈라테이아〉 ⓒ조혜정에이치엠



그러다 한 명의 춤꾼이 두 손으로 자기 몸을 거칠게 문지르며 격하게 저항하는 동작을 하다가 무대 왼쪽으로 자리를 옮기면, 다른 이들도 그녀 주위로 모여든다. 제법 큰 조명 빛 안에 모인 그들이 다 같이 같은 곳을 응시하고, 팔과 몸통을 주로 구사하는 움직임으로 짜진 아기자기한 군무를 이어가는 중에, 한 명의 춤꾼이 튕겨 나가듯 빛을 벗어나 어둠 속으로 잠겨 들더니 재빠르게 다시 무리에 합류한다. 그러다 또 한 명의 춤꾼이 무리에서 뛰쳐나가 쓰러지면, 망설이고 주저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던 나머지 춤꾼들이 연이어 그녀 곁으로 달려가 쓰러진다. 그리고 무대 중앙 쪽으로 자리를 옮긴 그들이 몸을 좌우로 흔들면서 서 있으면, 그들과 떨어진 곳에서 격하게 시그니처 동작을 반복하던 한 명의 춤꾼이 뒤늦게 거기에 합류한다. 곧 누군가 무리에서 떨어져 나가는 일이 발생하면, 그는 놀란 듯 금방 무리로 다시 섞여 들거나, 반대로 무리가 그에게 다가가 그들은 이내 온전한 하나의 집단을 이루는 형국이 반복된다. 말하자면 그들은 비록 여럿이지만, 몸에서 몸으로 전해지는 감응을 통해 연결된 하나의 집단적 신체를 고수하며 여성 주체로 거듭나기 위한 수행적인 군무를 펼치는 것이다. 감응의 관계로 맺어진 개별적인 몸과 몸이 집단적 신체를 이뤄 또 다른 우리로, 혹은 어떤 다른 무엇으로 변화할 가능성을 타진하는 군무이다.



조혜정 〈갈라테이아〉 ⓒ조혜정에이치엠



종반부의 춤과 군무도 이전과 비슷한 경향을 보이지만, 그중에서 조혜정의 두 번째 솔로 춤과 그에 이어서 펼쳐지는 군무가 특히 인상적이다. 붉게 물든 하늘-막을 배경으로, 그 바로 앞에서 좌에서 우로, 굳세고 당차게, 고난을 헤치고 돌진하는 이처럼 이동하던 그녀가 무대 중앙에서 몸통을 격정적으로 흔들고 머리채를 휘날리며 몸부림치다가 입고 있던 스커트를 벗어든 채 다시 보무당당하게 나아간다. 강인한 여성성이 어필되는 여전사 같은 몸짓이다. 이윽고 무대 오른쪽에 다다른 그녀가 옷을 든 손을 높이 들자, 하늘-막이 열리며 재차 집단이 등장하고, 빨간 스커트로 갈아입은 그녀들의 군무가 곧바로 이어진다. 붉은 조명 빛 아래 붉은 스커트를 입은 여성들의 열정적인 춤이 펼쳐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 춤은 단지 보이기만을 위한 춤이 아니다. 또 춤추는 몸은 남성 눈길의 욕망의 대상이 되는 관능적 몸이 아니다. 외려 여성 주체성을 씩씩하고 활기차게 드러내는 이 춤은, 이른바 수동성을 떨쳐낸 집단적 신체의 잠재적 역능이 발현되는 능동적인 군무로 보인다.







조혜정 〈갈라테이아〉 ⓒ조혜정에이치엠



이들은 삼삼오오 모였다가 흩어지고, 퇴장했다가 곧바로 다시 등장하는 등, 자유스럽게 무대의 안과 밖을 넘나들며 빠른 군무를 이어간다. 주체성을 실현한 온전한 여자 사람의 자발적인 춤이다. 그러다 반듯하게 열을 짓는 등 일사불란한 군무를 통해 자율적이면서도 독립적인 여성 신체성을 구현하던 그녀들이 무대 중앙에 모여 다 함께 허공을 올려다보는 순간, 무대 천장에서 꽤 거친 재질로 보이는 종잇조각 무더기가 한꺼번에 와락 쏟아지며 그녀들을 덮친다. 어쩌면 피그말리온이 갈라테이아를 빚다 생긴 물질의 잉여물일 것이다. 그리고 무대 뒤 어둠 속으로 잠시 사라졌던 그녀들이 다시 나타나 무대를 휘젓고 다니며 생기 있고 힘찬 춤을 한동안 이어가다가, 무대 여기저기 흩어져 널려 있는 잉여물 위에 모두 주저앉거나 쓰러진다. 화양연화와 같은 여성 삶의 찬란한 한순간을 마음껏 누리고 즐기다가, 조금의 미련도 없이 화끈하게 원래의 물질로 돌아가는 모양새다. 무미건조한 춤, 중성화된 춤이 난무하는 시대에 강인한 여성성을 드러내 보이는 춤이 인상적인 대목이다. 무트댄스 현대화의 기대주 조혜정은 무트댄스 메소드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젊고 세련된 감각이 장착된 동시대적 감성으로 무트댄스를 탈-구축하며 메시지가 있으면서도 재미난 공연을 만든 것이다.



조혜정 〈갈라테이아〉 ⓒ조혜정에이치엠



그런데 그리스신화와 달리 이 공연에 구현된 갈라테이아가 남성의 눈길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그에 저항한다는 점에서,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 이 둘의 관계는 우주 생성론을 논한 플라톤의 책 〈티마이오스에〉 나오는 조물주 데미우르고스(dēmiourgos)와 코라(chora)의 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조물주 데미우르고스가 이데아를 본떠 우주 만물을 창조할 때 재료로 삼은 물질이 바로 코라이고, 그는 존재들의 형태와 에너지를 여기에 구현함으로써 야생적인 성향을 지닌 코라를 원형인 이데아에 맞게 다듬어 질서 잡힌 존재자로 만들어 낸 것이다. 하지만 플라톤에 따르면 코라는 자신의 외부에서 가해지는 힘, 곧 이데아라는 틀과 데미우르고스의 손길에 전적으로 순응하지 않는다. 오히려 코라는 그들에게 반항하고 저항한다. 코라는 격정적으로 운동하는 ‘방황하는 원인’으로서 완전히 수동적인 물질이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이미 잉여물을 남기며, 차이를 생성한다. 플라톤은 이러한 물질-코라의 저항과 능동적 힘을 ‘아낭케(ananke)’라는 말로 표현했다. 잉여물을 남기며 틀과 외부적 힘으로부터 탈주하는 물질의 저항과 생성 운동이 항상 존재함을 뜻하는 말이다. 요컨대 조혜정의 〈갈라테이아〉는 이러한 코라의 저항인 아낭케를 물질-여성 조각상 갈라테이아에게 투영해 보여주면서, 갈라테이아로 분한 조혜정의 출중한 솔로 춤과 그의 분신들인 집단적 신체의 역동적인 춤을 통해 여성의 자기실현 의지를 내보인 공연이다.

최찬열

한국춤과 현대춤, 전통춤과 탈춤을 추었다. 국립모스크바대학에서 인류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소속 민족인류학연구소에서 인류학 박사 과정을 마쳤으며, 다시 부산대학교에서 미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지금은 몸의 예술과 인문학에 기반한 통섭적 문화연구에 몰두하며, 춤문화연구소에서 미학과 춤 역사를 강의한다.​​

2023. 9.
사진제공_조혜정에이치엠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