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서울무용센터 입주예술가 서태리
근대적 안무의 유령적 효과를 벗어나기 위한 주체화 과정 탐구
한석진_무용학자

‘안무’ 또는 ‘코레오그래피’라는 용어는 프랑스 무용가이자 무보기록자 라울 오제 푀이에(Raoul-Auger Feuillet)의 책 〈코레오그래피〉(Chorégraphie)〉(1700)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피에르 보샹(Pierre Beauchamps)이 창안한 무용기보법을 담고 있는 푀이에의 이 책 제목은 춤을 의미하는 ‘코레오’와 쓰는 행위를 지칭하는 ‘그래피’를 결합한 단어로서, 무보 체계로 춤을 쓰는 행위를 말한다. 푀이에의 책은 이후 1706년 영문판 역서에서 존 위버(John Weaver)에 의해 ‘오케소그래피’(Orchesography)‘’로 번역되었다. 오케소그래피는 사실 1589년 투아노 아르보(Thoinot Arbeau)가 쓴 책 〈오케소그래피〉(Orchésographie)에서 사용되었던 용어이다. 이 책은 춤 스텝 그림과 설명, 음악, 에티켓 등을 포함한 르네상스 궁정춤 지침서였다.

아르보와 푀이에에게 안무(코레오그래피 또는 오케소그래피)란 춤을 기호로 쓰는 행위를 의미하며, 이러한 점에서 춤 창작을 지칭하는 안무의 현대적 의미와 차이를 지닌다. 안무는 아르보에게는 공연 후 춤을 기록하는 글쓰기, 푀이에에게는 공연 전 춤을 창작하는 글쓰기를 지칭하지만 둘 다 근본적으로 안무를 통해 춤이 온전히 재생산되길 원했다. 즉 그들에게 안무란 춤추는 주체가 더는 현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유령처럼 계속 작동하도록 만든 매체라고 볼 수 있다. 무용수는 안무라는 매체가 지시하는 명령을 정확하게 실행하고, 독립적 자아의 자기충족적 상태 속에서 운동성을 발생시켜야 한다.

서태리 안무가는 안무의 어원적 정의를 채택하여, 기호를 통해 춤을 ‘창작’하고 ‘기록’하는 작업을 진행한다. 음악의 악보 구성을 분석해 창작하고 자신만의 무보법을 창안하여 기록한다. 이 남겨진 기록물은 안무가가 부재할 때도 무용수이 통제된 상태에서 실행될 수 있도록 고안된 결과물이다. 여기서 근본적인 질문이 발생한다. 안무의 재생산을 둘러싼 저자성이 정치적으로 전복되고 있는 지금 왜 근대적 주체성과 운동성을 생산하는 과정을 실행하려는 것일까? 포스트구조주의적 담론 속에서 저자의 원본성은 의심 받고, 자율적이고 자기중심적 운동성을 추구하는 근대적 주체가 내재하고 있는 지배적 이데올로기는 폭로되고 도전받아 왔다. 따라서 서태리의 근대적 안무 개념의 채택과 접근이 가져오는 미학적 효과 또는 정치성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서태리 〈2인무를 벗어나는 하나의 몸〉 ⓒ2023 서울문화재단



2023년 서울무용센터 1기 입주예술가인 서태리가 6월 23일 서강대학교 메리홀에서 선보인 〈2인무를 벗어나는 하나의 몸〉은 그동안 지속한 음악과 춤, 무보와 안무 간의 관계 탐구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다. 전작과 단순히 같은 주제를 공유하고 있는 것 이상으로 이전 작품에 대한 이해 없이 지금의 작품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어쩌면 ‘하나의 몸’의 다른 파트라고도 할 수 있다. 서태리는 2020년 〈하나의 몸으로 2인무 안무하기〉에서 바흐의 인벤션 10곡을 분석하여 10개의 2인무를 만들었다. 대위법을 사용하는 바흐의 인벤션은 주제 선율을 두 개의 성부가 연주하는데 독립적이면서도 상호작용하면서 조화를 만들어낸다. 안무가는 음악의 구조를 만드는 규칙을 움직임 동선, 타이밍, 방향 등을 구성하는 안무법에 대입하여 창작한다.



서태리 〈2인무를 벗어나는 하나의 몸〉 ⓒ2023 서울문화재단



2020년 작에서 두개의 성부에 해당하는 2인무를 서태리 한 명의 몸으로 수행했다면, 2022년 작 〈하나의 몸으로 2인무 기록하기〉에서는 15개의 인벤션을 바탕으로 구성한 2인무를 서태리와 박지현 두 명의 무용수가 실행했다. 두 명의 마림바 연주가 시작되고 기하학적 형태로 테이핑된 무대 위 무용수들이 등장한다. 바흐의 인벤션이 그렇듯, 공유하는 움직임 프레이즈가 있으나 무용수들은 각기 다른 전개로 움직임을 수행한다. 현대무용 수업에서 흔히 발견할 법한 고전적 테크닉을 바탕으로 한 이들의 움직임은 서태리 안무가만의 특정 스타일을 드러내지 않는다. 움직임 자체의 독자적 성격을 드러내지 않을 뿐더러 무용수들 역시 개별성을 드러내지 않은 채 기계처럼 움직임을 실행해간다. 표현적이거나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무채색의 움직임 시퀀스들은 작품 제목인 〈하나의 몸으로 2인무 기록하기〉에서 ‘기록’이 의미하는 바를 추측하게끔 한다. 두 명의 신체는 무보기록과 더불어 안무가가 남긴 안무 기록물로 보인다. 이후 다른 신체로 실행될 때조차도 안무의 저자성이 침해 받지 않도록 가장 ‘중립적’인 몸으로 통제된 채 실행하길 원했을지 모른다.



  

서태리 〈2인무를 벗어나는 하나의 몸〉 ⓒ2023 서울문화재단



그런데 2023년 작 〈2인무를 벗어나는 하나의 몸〉에서 서태리 안무가는 안무라는 도구를 통해 달성해온 근대성을 스스로 전복시킨다. 안무가의 주체성을 담아낸 안무, 그리고 그 안무를 고정시킬 수 있는 운동성을 발생시키는 무용수 주체는 다양한 장치를 통해 해체된다. 관객은 공연 전 종이를 전달받는다. 기재된 QR코드를 통해 지난 2인무의 무대 동선 이미지를 확인하고 이번 작품이 전작을 기록하여 지속하고자 했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과거의 안무이고, 오늘의 무대에서 볼 수 없는 안무이다”라는 문장을 통해 보다 분명히 근대적 안무 개념을 벗어나고 있음을 드러낸다.

제목에서 밝히듯, 이 공연에서는 하나의 몸(안무가 자신)만이 등장한다. 그 몸이 수행하는 움직임은 과거의 2인무였고 그 안무의 근간이 되는 것은 바흐의 인벤션 악보이다. 하지만 유령처럼 존재하면서 현 무용수 주체를 종속시켰던 과거 안무의 지배적 규범에 순종적으로 따르지 않는다. 움직임 프레이즈와 함께 진행되던 바흐의 음악은 거의 들리지 않고 대신 호흡 사운드로 대체된다. 전작에서 두 명의 무용수가 동작을 수행하면서 발생하는 호흡 소리를 안무가의 목소리로 녹음하고 여기에 맞춰서 움직인다. 또는 안무가 스스로 사운드를 만들어나가면서 동작을 수행하기도 한다. 2인무 움직임 프레이즈를 수행하지만 정교하게 짜인 시퀀스를 기계적으로 실행해나가지 않는다.

대신 무대 위 현전하는 무용수의 주체성을 탐구하는 방식으로 느슨하게 움직임을 수행한다. 고립된 상태로 완벽하게 통제된 몸이 아닌 외부와 관계를 맺고 있는 열린 몸으로 존재한다. 음악과 움직임이 실행되는 정확한 타이밍은 깨지고 동시 발생 규칙 역시 더 이상 작동되지 않는다. 한 장면에서는 암전된 상태에서 안무가 목소리로 녹음된 호흡 소리가 무대 좌우로 들려오면서 2인무의 두 무용수의 개별성을 드러낸다. 더 나아가 관객은 호흡 소리를 듣고 움직임을 상상하게 되고 전작에서 달성하려고 했던 무용수들을 억압하는 근대적 안무의 유령적 효과는 상실되어 버린다.

서태리의 전작들과 〈2인무를 벗어나는 하나의 몸〉에서 보이는 근대적 주체성을 둘러싼 상반된 개념과 접근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전작 중 하나인 〈하나의 몸으로 2인무 기록하기〉에서 보여준 과거 안무의 유령을 쫓는 근대적 주체화 과정은 사실상 안무를 그대로 재현해내는 것의 불가능성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무용수들이 절대적으로 추종하는, 무보체계를 통해 남겨둔 안무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허약한 저자성을 담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태리 안무 구성은 바흐 인벤션의 규칙을 그대로 따르고 있으며, 움직임 프레이즈 역시 자신이 고안했다기 보다는 현대무용의 아카데미 테크닉을 차용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또한 기하학적 구조의 움직임을 실행하라는 안무가의 명령에 강박적으로 순응하는 무용수 주체를 기대하는 안무자의 욕망은 늘 실패하기 마련이다. 안무의 발화적 효과는 늘 그것을 실행하는 무용수의 체화된 경험과 해석 아래 작동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몸으로 2인무 기록하기〉가 저자성의 존재론적 허약성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반면, 〈2인무를 벗어나는 하나의 몸〉은 적극적으로 저자성을 해체하는 방식을 취한다. 바흐 음악은 개별 무용수의 호흡으로 전환되고, 움직임 프레이즈는 시공간 속 현전하는 무용수의 감각에 따라 실행되며, 음악과 움직임의 절대적 상호관계는 깨져버린다. 이렇게 과거 안무의 유령적 효과와 무용수의 자율적 주체성과 운동성은 소진된다.

서태리는 안무의 근대성을 역설적 또는 해체적 방식으로 폭로하고 전복한다. 하지만 안무가가 다루는 안무 개념과 이를 둘러싼 정치학을 퍼포먼스로 구현하는 방법론에 있어서 모호한 부분이 존재한다. 음악과 안무의 관계를 탐색하는 방식은 안느 테레사 드 케이르스마커의 안무 작업이 연상된다는 점을 부정하기 어렵고, 〈2인무를 벗어나는 하나의 몸〉에서 소매틱적 접근을 통한 무용수의 주체성 탐색 방식은 너무 명백하고 손쉬운 방법을 선택했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또 다른 문제로 발견된 지점은 〈2인무를 벗어나는 하나의 몸〉에서 전작들에 펼쳐낸 바흐 인벤션과 2인무의 관계성이 인지되기가 거의 불가능해진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전작을 관람하지 않은 관객들에게 호흡 소리는 바흐 음악 구성과 분리된 채, 독무는 2인무의 흔적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음악과 춤은 그저 개별적 요소로 남아버린다. 안무가가 소진시키고자 하는 음악과 춤 간, 무보와 안무 간의 관계가 있다면, 그 관계가 무엇인지에 대한 단서를 바탕으로 해체되는 과정을 보여줘야만 관객의 능동적인 해석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소 충족되지 않는 서태리만의 안무적 전략의 독자성과 논리성은 끈기 있게 탐구하는 안무가의 이후 작품을 기다리는 이유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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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이 글은 ‘2023년 서울무용센터 1기 상반기 입주예술가 작업 아카이빙’에 실린 기고자의 비평문을 발췌한 것이다.

한석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서 무용이론 전공 예술사 과정 후 영국 서리대학교에서 무용학 박사 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이론과 조교수로 재직중이다.​​​

2023. 8.
사진제공_2023 서울문화재단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