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부산국제무용제_ 에르베 쿠비 〈낮이 밤에 빚진 것〉
진화된 스트릿 춤, 몸에 새겨진 혼종의 문화
김혜라_춤비평가

제19회 부산국제무용제 폐막작으로 프랑스 폴내셔널슈페리어드당스(Pole National Supérieur de Danse)의 부안무가인 에르베 쿠비(Hervé Koubi)의 〈낮이 밤에 빚진 것〉(What the day owes to the night)(6.3일 영화의 전당 하늘연극장)을 선보였다. 2005년 광안리 해변 무대에서 시작한 부산국제해변무용제는 2008년 현재 명칭으로 바뀌었고, 대중성과 공공성을 지향한 축제의 성격을 갖추어 왔다. 그간 해운대 특설 무대는 다양한 국가와 단체의 민속춤과 전통춤류, 발레와 현대춤 같은 다채로움으로 시민들과 여행객들이 즐기는 프로그램 구성에 중점을 두었다. 포괄적인 춤 성격과 장르를 수용한 버라이어티 한 축제이나 반면 전문적인 프로덕션의 결여와 여타 축제와의 차별성의 문제가 제기되어 왔다. 가시적인 변화가 더디게 보였던 무용제가 이번 에르베쿠비댄스컴퍼니의 아시아 초연 전막 공연 유치로 한 단계 진보한 것으로 판단된다. 단지 부산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현대무용 관객유치가 척박한 현실에서 부산국제무용제 운영위가 공적지원금을 넘어 유료관객을 확보하여 자생력을 키우려는 의지로 보이기 때문이다.



에르베 쿠비 〈낮이 밤에 빚진 것〉 ⓒ2023 부산국제무용제



에르베쿠비댄스컴퍼니는 1999년에 결성된 단체로 13개국 30여명의 다국적 댄서(알제리안, 불가리안, 모로칸, 이탤리언, 프렌치 등)들로 구성되어 있다. 프랑스 북부 칼레를 중심으로 유럽과 북미에서 주요 활동을 하고 있으며, 주요 작품은 〈낮이 밤에 빚진 것〉(2013), 〈야만인의 밤〉(2015~2016), 〈소년은 울지 않는다〉(2018), 〈오디세이〉(2019~2020) 그리고 여성 댄서 15명과 비디오 작업으로 만든 〈실피드〉(2019)가 있다. 잘 알려진 바 없었던 안무가인 에르베 쿠비를 공연 전에 만나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알제리 태생으로 프랑스 깐느에서 성장했고, 스위스 로잔 콩쿨 설립자인 로젤라 하이타워(The Centre International De Danse Rosella Hightower)와 마르세이유 오페라(The Opéra de Marseille)에서 수학 및 활동을 했다. 16세에 발레학교에 들어갔으나, 알제리 전쟁기간 중 프랑스로 이주한 부모의 바람으로 엑상프로방스 대학에서 생물학과 무용을 공부하며 약학박사가 되었다.





에르베 쿠비 〈낮이 밤에 빚진 것〉 ⓒ2023 부산국제무용제



발레리노 출신인 안무가의 작품은 의외로 발레적인 요소보다는 아크로바틱 동작과 이슬람 수피댄스와 무술적인 요소(카포에이라)가 한 눈에 들어왔다. 우리가 흔히 스트릿 춤에서 보는 현란한 비보잉, 브레이크, 덤블링, 리프팅 같은 기술이 작품의 주요 메소드인 것이다. 여기에 수피즘의 종교적이고 명상적인 요소가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알제리와 프랑스의 전통, 여기에 스트릿 감성이 융합된 작품은 안무가가 실제로 자신의 유전적 뿌리를 찾아 떠난 여행에서 만들어 진 작업이다. 프랑스인이라 생각했던 에르베 쿠비는 아버지가 임종하기 전에서야 비로소 자신이 알제리 출신임을 처음 알게 되었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의 일환으로 고향인 알제리를 여행하기로 결심했고, 현지에서 만난 북아프리카 댄서들과 본 작품을 만든 것이다(2010년). 당시 25세였던 안무가가 만난 알제리의 댄서들은 대부분 스트릿 춤만을 출 줄 알았고, 극장 무대에 한 번도 서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반면 안무가는 저명한 발레학교에서 엘리트 교육을 받았기에 그가 경험했던 세상과는 첨예하게 다른 사람과 춤과 문화를 만나 서로 충돌하며 흡수하게 된다. 자전적인 경험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작품 세계는 두 그룹(알제리와 프랑스)이 만나는 여정을 묘사하고 있고, 격정적인 충돌과 방황으로 힘을 발산하며 이어 연대의 군무로 마무리되는 피지컬한 서사의 장이다.





에르베 쿠비 〈낮이 밤에 빚진 것〉 ⓒ2023 부산국제무용제



뿌연 조명 아래 10여명의 남성 댄서들이 뭉쳐있다. 안개가 피어오르듯 그들은 서서히 무대 바닥으로 번져 나가 서성인다. 마치 어딘가를 향해 걷는 여행자 내지는 구도자 같다. 흰 로인 클로스(loin cloth)를 입고 아프리칸 특유의 근육질 몸에서 풍기는 에너지로 무대는 꽉 차 보인다. 점차 헤드스핀과 핸드스핀, 몸을 던지는 역동적인 동작들이 시간차를 두고 펼쳐진다. 그러나 아찔한 긴장감 저변에는 갈급하고 절박한 정서가 깔려있다. 육중한 몸에서 구사하는 날렵함과 경건함과 고요한 움직임 사이를 성스러운 바흐의 곡과 전통적인 수피음악이 매개한다. 수피댄스의 곧고 일정한 속도의 단아한 턴과 자유분방하고 역동적인 스트릿 춤의 턴이 다른 지향점으로 만나 이국적이고 생동적이며 현재적이다. 무아지경에 도달하려는 구도적인 이슬람의 전통춤과 현존을 가장 솔직하고 즉발적으로 표현하는 스트릿 춤의 오묘한 융합, 여기에 발레다운 선형이 묻어나는 댄서들의 몸에서 혼종 된 춤과 문화를 보게 된다.





에르베 쿠비 〈낮이 밤에 빚진 것〉 ⓒ2023 부산국제무용제



다종의 춤과 음악이 서로 결합되고 침투되어 구성된 춤에는 안무가나 댄서들이 경험한 춤적 자산이 집약되어 있다. 이슬람과 카톨릭 풍의 음악에 비트 있는 드럼과 전자음악의 결속으로 단순한 스트릿 춤이 드라마틱한 의미를 확보하게 된다. 낮과 밤이 그렇고 달이 차오르면 이지러지듯이 모이고 흩어지는 삶의 운행을 춤과 음악으로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것이다. 후반부에는 두 그룹이 리프팅을 수행하는 일에 전력을 다한다. 아마도 서로 다른 문화의 존중과 현재성을 의미할 수도 있다. 특히 작품의 하이라이트로 한 댄서가 무리의 등과 어깨를 딛고 높이 올라가나 이내 떨어진다. 순간 모든 댄서가 떨어지는 댄서를 받아내는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무심하게 보면 협력 군무로 지나칠 수도 있으나, 필자는 마치 이카루스의 추락 같은 비극적인 역사와 현실을 딛고 함께 살아가자는 메시지로 해석해 본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으나, 아랍어로 한 댄서가 에르베 쿠비의 시를 읊으며 정적한 무드로 마무리짓는다.





에르베 쿠비 〈낮이 밤에 빚진 것〉 ⓒ2023 부산국제무용제



아마도 안무가는 많은 춤 어휘를 구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알제리 현지에서 만난 댄서들이 체득한 스트릿 동작을 중심으로 그들에게 익숙한 춤으로 만들었다. 구태여 추상적인 이미지나 상징도 정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그것이 오히려 필자에게는 현지 댄서들에 대한 존중이자 절충의 미덕이라 생각해본다. 알제리 작가인 야스미나 카드라(Yasmina Khadra)의 동명 소설(한 소년이 한 가족에서 다른 가족으로 옮겨지는 이야기를 다룸: Google검색)에서 영감을 받은 〈낮이 밤에 빚진 것〉은 “‘낮’과 ‘밤’이 대립적인 관계도 아니고,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알제리 문화와의 적대성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알제리와 프랑스는 지리적으로 문화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공존하며 살아가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안무가의 “춤이 정치와 역사를 넘어 자신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다”는 말도 인상적이었다. 식민이란 근대사를 겪으며 문화의 혼종과 정체성의 혼란을 겪은 세대들의 역사는 기록되지 않았어도, 공동의 유산으로 존재하며 살아있는 몸에 새겨져 있음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이 작품이 컨템퍼러리 시각으로 보면 대단히 선도적이라 할 수는 없겠으나, 그럼에도 스트릿 춤과 의식무가 융합되어 진화된 예술적인 스트릿 춤의 한 모델이 될 수는 있겠다.

김혜라

춤웹진 편집위원. 춤미학과 비평을 전공하였고 2012년 한국춤비평가협회를 통해 비평가로 등단했다. 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심의전문위원으로 할동하며, 〈춤웹진〉에 정기적으로 평문을 기고하고 있다.​​​​

2023. 7.
사진제공_부산국제무용제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