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99아트컴퍼니 〈침묵〉
말할 수 없는 것을 증언하는 춤
최찬열_춤비평가

2016년 초연됐던 99아트컴퍼니의 〈침묵〉이 억압과 폭력의 굴레에서 오랜 시간 침묵했던 한 실존 인물에게 초점을 맞추었다면, 2022년 대학로예술극장 무대에 오른 〈침묵〉(12월 3~ 4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은 일반화된 폭력에 노출된 모든 이의 아픈 데를 감싸 주며, 위로하고 어루만져서 달래는 춤판이다. 이를 위해 99아트컴퍼니의 안무자 장혜림은 폭력의 ‘현시 불가능성’이라는 테제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주지하듯 아우슈비츠와 같은 포로수용소의 극한 비인간적 폭력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는 자신이 당한 폭력을 증명할 수 없어 침묵으로 내몰렸다. 왜냐하면 아우슈비츠라는 실재가 그들이 전하고자 하는 모든 말이나 언어, 문장들 속에서는 빠져서 없거나 모자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하듯이 구사일생 살아남은 자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들은 침묵한다. 그러나 장혜림은 이번 공연 〈침묵〉에서 그들의 침묵이 또 하나의 증언이 될 수 있음을 주목한다. 이를테면 장혜림의 〈침묵〉은 말할 수 없는 것을 증언하며, 현시 불가능한 것이 존재함을 현시하는 춤 공연이며, 따라서 춤은 침묵의 몸짓 기호가 될 수 있음을 역설한다.

주위가 온통 검어 흰 바닥이 마치 눈처럼 유난히 돋보이는 블랙박스형 극장 무대 한편에 낡은 피아노 한 대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사방이 어둑어둑한 컴컴한 설원에 내버려진 쓰다가 만 한 대의 피아노가 연상되는 장면이다. 검은 의상 차림의 연주자(강다니엘)가 다소곳이 등장해 피아노 외관을 벗겨내기 시작한다. 먼저 피아노 뚜껑을 열고 건반과 페달 위 상판 등을 분리해 무대 옆에 치운다. 그리고 속이 훤하게 들여다보이는 피아노 앞 좌석에 그가 앉으면서 공연은 시작된다. 아마 속이 다 보이는 피아노에서 울려 퍼지는 선율은 말해질 수 없는 말을 품은 이의 속마음을 대신하는 말이리라.






99아트컴퍼니 〈침묵〉 ⓒ99아트컴퍼니




관객이 보기에 무대 오른편 뒤쪽에서 춤꾼들이 일렬로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등장한다. 이는 마치 아득히 보이는 눈 덮인 광활한 대지를 가로질러 가는 기차처럼 보인다. 그들은 무대 왼쪽에 일렬로 서있고 한 춤꾼(장서이)이 오른쪽 무대 앞으로 나와 선다. 잠시 객석을 응시하던 그는 양팔을 차례로 가슴으로 올렸다가 무대 바닥에 비스듬히 앉아 허공을 무심히 바라본다. 그러다 야생의 대지를 느끼듯 무대 바닥에 드러누워 팔을 휘저으며 뒹굴고 두 손을 모아 주변의 공기를 들이마시듯이 깊이 호흡하며 사뭇 진지하게 움직인다. 자연과 대지의 소중함과 그것을 대하는 이의 엄숙한 마음이 전해지는 동작이다. 그러다 그는 두 손이 묶인 듯 손목을 교차한 양손을 허공에 치켜들고, 다시 온몸으로 주위를 느끼듯 진중하게 움직인다. 그리고 그는 언뜻 먼 곳을 응시한다. 그 순간 그는 공포에 질려 숨기라도 하듯 긴박하게 몸을 움츠리고 동시에 조명이 컷아웃 된다. 순식간에 온 극장이 컴컴해진다. 실존이 처한 억압적 상황을 환유적으로 드러내는 묶인 손동작과 자유와 해방을 갈구하는 듯 문득문득 위로 향하는 시선, 그리고 대지와 자연을 온몸으로 느끼고, 깊이 호흡을 내쉬면서 생명의 귀중함을 전하는 간결한 움직임 등으로 짜진 일련의 움직임은 이번 공연의 전체 메시지를 압축해 보여주는 상징적인 솔로 춤이다. 분명하고 깔끔하게 의미를 드러내는 세련된 도입부 장면이다.




99아트컴퍼니 〈침묵〉 ⓒ99아트컴퍼니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둔탁한 발 구름 소리와 함께 ‘예스, 예스, 예스’란 외침이 메아리처럼 온 극장으로 퍼져나간다. 조명이 들어오면 춤꾼들은 모두 무대 중앙에 모여있고, 이들은 주먹 쥔 두 팔을 벌린 채 서서 손목을 간헐적으로 튕기며 계속 ‘예스’를 외쳐댄다. 반복되는 ’예스'라는 외침은 불가항력적 긍정을 의미할 것이다. ‘예스’를 연이어 외치며 이들은 질서나 체계가 잘 잡혀 조금도 흐트러지거나 어지러운 데가 없는 군무를 이어간다. 이는 자신의 고통스러운 처지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실존의 억압된 상황을 묘사하는 듯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마치 포박당한 채 어디로 끌려가는 듯 팔을 등 뒤에 교차한 채 함께 무대 뒤쪽으로 이동하다가, 고개를 힘없이 아래로 향한 채 무대 양쪽으로 가로질러 다니고, 또 결박당한 두 팔을 뒤로하고 깊이 숙인 허리를 허우적거리며 자포자기한 모습으로 무대 여기저기를 목적 없이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하지만 할 말을 마음속 깊이 삭이면서 마치 신음처럼 토해내는 ‘음, 음, 음’이라는 의성어와 대지를 쾅쾅 굴려 일깨우는 듯한 세찬 발 구름과 말투 그리고 급격하게 꺾이는 손동작과 발동작, 또 거친 호흡을 내쉬며 점점 격해지는 움직임은 그들의 몹시 절실한 심정을 있는 힘을 다하여 애타게 부르짖는 듯하다. 급기야 묶인 두 손을 머리에 위로 올린 채 객석을 향해 단호하면서도 당차게 ‘예스’를 외치는 그들의 눈빛에는 애타는 절규와 강한 저항감이 느껴진다. 그러다가 그들은 때로는 각자 또 때로는 함께 비스듬히 누워 허공을 응시하고 간혹 대지에 귀를 살며시 대는 행위를 하는데, 이러한 움직임에는 자유와 해방을 향한 그들의 깊은 염원이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99아트컴퍼니 〈침묵〉 ⓒ99아트컴퍼니




같은 옷차림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같은 동작과 표정, 같은 뉘앙스의 말과 신음을 토하던 그들이 이따금 다르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각자 느끼는 처절함의 함량이 다른 것일까. 한순간 무리 중 두 명이 매우 다급하고 절실하게 움직이기 시작하고 나머지 춤꾼들은 무대 뒤 벽면 앞에 등을 보이고 선 채 이들을 애써 외면한다. 둘은 간절하고 애절한 움직임을 지속하다가 한 명이 지쳐 쓰러지고, 서서 어렵게 이동하고 있는 다른 한 명의 발목을 잡은 채 끌려가기도 한다. 그러다 다시 일어나 둘은 갑자기 거세게 움직이다 또 쓰러지고, 그들 곁으로 다가온 춤꾼들과 함께 무엇을 찾아 헤매듯이 무대 이곳저곳을 서성인다.

이들은 다시 무대 밖 허공을 응시하고, 바닥에 얼굴을 묻기도 하다가 모두 쓰러진다. 조금 후 한 명의 춤꾼이 얌전히 일어나 무대 오른쪽 위쪽을 바라보며 두 손을 모아들며 간절히 호소하듯 가사 없는 노래를 나지막이 응얼거리기 시작한다. 노래는 점차 합창으로 변주하며 우렁차게 들리고, 바닥에 앉아 엉덩이를 질질 끌며 이동하거나 무릎을 꿇은 채 기어가는 등 군무는 더 강렬하고 처절해진다. 어느 틈엔가 들려오기 시작한 애잔하면서도 긴박한 피아노 선율은 이들의 합창과 합세해 움직임과 공명한다. 긴장감과 간절함을 더해가던 무대는 더욱 절박해진다. 하지만 이들은 다시 먼 곳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손을 들어 가리킨 곳을 향해 함께 사뿐사뿐 걸어간다. 자유와 해방을 향한 희망의 끈을 끝끝내 놓지 않는 것이리라.




99아트컴퍼니 〈침묵〉 ⓒ99아트컴퍼니




하지만 한 춤꾼이 모은 두 손에 붉은 물을 담고 걸어 나와 흰 무대 바닥에 뿌리면서 상황은 급변한다. 흰 바닥에 떨어진 선명한 붉은 물감은 설원에 흩뿌려진 붉은 피처럼 보인다. 그는 그것을 무대 여기저기에 흩뜨리고 자기의 팔과 다리, 몸에도 묻힌다. 어떤 폭력이 몸과 세상을 잠식해 들어가는 형국을 묘사하는 듯하다. 그 순간 다른 춤꾼들은 손을 잡고 서서히 돌다가 무대 중앙에 모여 이리저리 상체를 흔들며 서 있다. 그러자 붉은 물 혹은 피가 담긴 대접을 든 춤꾼이 다가와 그들에게 그것을 붓는다. 피아노 선율은 빠르고 강하게 흐르며 긴장감을 고조하고, 그것을 배경음으로 삼은 군무는 무릎걸음으로 황급하게 도피하듯 한쪽에 모인다.

고통스러운 상황을 헤어나려고 기를 써서 있는 힘을 다해 애쓰는 듯한 그들의 움직임이 거세질수록 흰 바닥과 춤추는 몸이 붉은 물에 더 오염되고, 이는 세상과 세상에 속한 몸이 어떤 폭력에 점증적으로 잠식당하는 극한적 상황을 묘사하는 것으로 읽힌다. 무언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진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끝없이 환기하는 춤이다. 춤꾼들이 움직인 자리는 피 얼룩으로 더럽혀지고 그렇게 선명한 자국으로 남은 상흔과 같은 흔적은 폭력적 상황이 이미 언제나 ‘있었음’(과 ‘있음’)을 말없이 들춰내 보여준다. 춤은 말할 수 없는 폭력을 증언하는 침묵의 언어이다.




99아트컴퍼니 〈침묵〉 ⓒ99아트컴퍼니




침묵은 말해져야 하는 것을 언어화하거나 문장화할 수 없는 상황에서 힘없이 굴복하는 것이 아니다. 외려 침묵은 폭력적 상황을 폭로하고 증언하는 한 방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침묵은 그와 같은 증언의 방법이 될 수 있는가. 이번 공연 〈침묵〉은 그것이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하나의 몸짓 기호로서 작동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침묵의 춤은 관객의 마음속에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말하자면 침묵의 춤은 말이나 언어, 문장들 사이에 놓인 하나의 심연과도 같다. 그리고 이 심연은 지워지지 않는 하나의 강렬한 감정으로 남아 존속하며 폭력의 역사를 끝없이 환기하며 증언하는 것이다. 장혜림의 〈침묵〉은 발화하는 침묵의 매우 세고 강한 힘에 주목하고 있는 공연이라는 말이다.

마무리 듀엣 춤은 희망의 몸짓으로 보인다. 둘은 군데군데 피가 묻어 폭력에 노출된 몸으로 춤을 추는데, 이들의 격정적인 춤은 폭력에 잠식당한 몸과 오염된 대지를 살리는 치유의 춤 혹은 구원의 춤이다. 그래서일까 무릎을 꿇고 앉아 기도하듯 눈을 감고 한 손을 들어 희구하는 장서이의 간절한 호소에 잔잔하고 평화로운 피아노 선율이 화답한다. 하지만 그 같은 평온함도 잠시일 뿐, 암전 후 다시 드러난 무대는 폭력적 상황을 다시 환기하며 인류 역사 전체에 두루 걸치는 것이 된 폭력이 끝없이 ‘있을 것임’을 암시한다.

공연 내내 폭력적 상황과 맞닥뜨리며 절규하고 저항했던 춤꾼들의 더할 수 없이 처참한 투쟁의 흔적을 공연이 끝난 빈 무대에 고스란히 남긴 99아트컴퍼니의 〈침묵〉은 솔로 춤과 듀엣 춤, 그리고 군무가 목소리와 물감, 그리고 각종 오브제와 알맞게 조화를 이룬 미장센을 통해, 어느 한 구체적 폭력이 아니라 폭력이 있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있을 것이라는 일반화된 폭력의 역사를 증언하는 수작이다. 특히 콘셉트와 의미가 잘 구현되어 밀도감과 몰입감이 있는 무대는 시종일관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최찬열

인류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여러 대학과 대학원에서 춤과 공연예술, 미학과 관련된 과목을 강의했다. 지금은 몸의 예술과 인문학에 기반한 통섭적 문화연구에 몰두하며, 춤문화연구소에서 미학과 춤 역사를 강의한다.​​

2023. 1.
사진제공_99아트컴퍼니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