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흥, 멋에 스미다〉
춤사위로 하나 되어 다른 춤적 기호를 넘어서다
권옥희_춤비평가

대구출신이거나 대구에서 활동하고 있는 중견 춤꾼들의 전통춤 무대가 있었다. 〈흥, 멋에 스미다〉(달서아트센터 청룡홀, 12월 3일). 지난해에 이어 두번째 전통춤판(대구무용협회 주관)으로, 주연희의 〈승무〉를 시작으로 이준민의 〈달구벌 입춤〉, 서상재의 〈선살풀이〉, 추현주의 〈대구검무〉 그리고 백경우의 〈사풍정감〉, 김진희의 〈진도북춤〉에 이어 마지막 김용철의 〈소고춤-권명화류〉의 순서로 총 일곱 명의 춤꾼들이 무대에 올랐다.

춤판이 깔렸다고 하기에 민망한 무대 조건에 의기투합, 출연진들이 사비를 털어 악사반주에 춤을 얹었다고. 스스로의 감정을 자극하고 춤 정신을 재촉하기 위한 수단이었겠지만, 춤을 보는 관객들의 흥을 높이 올리고, 고양시키기에도 좋은 선택이었다.

이들에게 ‘대구’라는 단어가 차지하는 의미는 무엇일까. ‘대구’라는 익숙한 무대에서 감정을 추슬러 올리고 춤으로 힘을 얻고, 그 힘이 다시 자신의 춤과 정신에 가속력이 되길 바라는 자리(고향)의 은유일까. 아니면 툭툭하고 담백한 경상도 춤어법을 같은 자산으로 가졌다는 춤의 동질성일까. 아니면 그 어느 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인 오로지 춤을 말하기 위한 것일까. 필자는 어느 것에 해당하는지 말할 수도 짐작할 수도 없다. 더 정직하게 말하자면 어느 것이 자칫 모든 것을 가릴 수 있기에, 어쩌면 어느 것 때문에 모든 말이 무위에 빠질 수 있어 짐작하지도 말하지 않기로 한다. 모쪼록 모든 계산과 상식, 현실적 조건을 넘어서서 춤사위로 하나가 되어, 어떤 것을 위해 애쓴 끝에 서로 다른 춤적(문화적) 기호를 넘어서게 되리라고, 기대하는 수밖에.




주연희 〈승무〉 ⓒ대구무용협회




첫 순서로 오른 주연희의 〈승무〉. 자진염불로 시작, 법고와 당악을 거쳐 뒷굿거리에서 마무리 되는 춤. 굿거리(자진굿거리와 굿거리) 일부를 줄여 올렸다. 춤은 담백했다. 지난 해 스승(이애주)을 여의고 난 뒤여서 일까. 무심한 듯, (스승을) 삼가하는 마음이 오롯이 객석으로 전해졌다. 장삼을 흩뿌린 뒤 어깨사위로 걸어 어르는,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호흡에 단정한 춤 선이 눈에 띄었다.

반면 ‘이애주류’ 춤 기법이 짙은 북가락과 당악 부분은 볼 때마다 화들짝 놀라게 된다. 염불과 타령, 굿거리로 담담하게 이어지던 에너지와 춤선이 갑자기 잡념이 확 들이친 것 같이 급격하게 변하는 춤태의 범속함. 춤은 뒷굿거리에서 다시 주연희의 단아한 정서로 마무리되었다. 정신이 다르면 춤도 다르다. 고 한영숙선생과 이애주선생의 춤이 그렇듯(특히 북가락, 당악부분)주연희도 오롯이 춤으로 자신을 추스르며, 끊임없이 단단하게 자신만의 춤의 형식을 빚어 올릴 때 비로소 자신의 춤 언어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이준민 〈달구벌 입춤〉 ⓒ대구무용협회




이준민의 〈달구벌 입춤〉. 다른 춤을 보고 있나 잠깐 의심하였다. 교방춤의 호흡과 정서가 아닌, 툭툭한 춤태로 빚는 이준민의 〈달구벌 입춤〉은 또 다른 정서로, 보는 맛이 있었다. 어깨를 으쓱, 내내 웃음을 띤 고개 짓은 마치 둥글둥글 애쓰며 살아온 세상살이의 진화가 춤에 배어든 것 같은, 질박한 춤이었다. 예컨대 바닥에 놓인 수건을 입으로 물어 올리는 동작에서도 애조는커녕, 물어 올린 수건을 이내 손으로 옮겨 잡고 앞으로 턱! 내딛는 버선발에서 강단을 본다.




서상재 〈선살풀이〉 ⓒ대구무용협회




서상재의 〈선살풀이〉, ‘선살풀이’는 벼린 칼날이 허공을 가르는 듯한, 아름답고 서늘한 기운을 뿌리는 첫 시작과, 그 기운과 정조를 세련되게 가지고 노는 것이 춤의 질을 가르는 작품이다. 타고난 춤감각과 유연한 성정을 가진 춤꾼이 춤 날을 채 벼리지 않은 채, 뭉툭하게 추어냈다. 춤은 부채를 들고 활개를 치듯 뛰고 이동하면서 마침내 춤몸이 풀어지면서 가벼워졌다. 스승의(장유경류) 춤과 같을 필요는 없으나, 춤에 내재된 의미와 형식에 대한 연구는 필요하다.




추현주 〈검무〉(권명화류) ⓒ대구무용협회




추현주(추현주 DO무용단 대표)의 〈검무〉(권명화류). 노랑색 저고리에 색동 한삼, 검정색 쾌자에 붉은색 치마의 전복을 입었다. 절을 한 뒤, 무대 앞 중앙에 놓인 검을 향해 춤을 추며 앞으로 나섰다가 뒤로 물러나기, 양손바닥을 앞으로 보였다가 위로 드는 맨손 춤사위의 반복은 마치 기(氣)를 피워 올리는 의식 같았다. 얼굴을 위로 들어 뒤로 살짝 젖히는 동작과 장단이 바뀌자 앞으로 스윽 나서는 이채로운 춤사위에서 교방춤 계열임을 확인한다. 춤은 크게 선을 그린 뒤 칼을 바닥에 찍듯 하다가 다시 전방위로 휘두르는 검날에 베어진 조명 조각이 날아다니며 번쩍, 빛을 뿌린다.

몸을 살짝 뒤로 젖혀 들었다가 이내 돌아 숙이며 도는 연풍대는 날렵하고 유연했다. 굿거리 한 장단에 검으로 바닥을 짚으며 하는 간결한 마무리는 검무와 잘 어울렸다. 춤을 섬세하게 잘 춘다.




백경우 〈사풍정감〉(이매방류) ⓒ대구무용협회




백경우(27호 승무, 97살풀이 이수자)〈사풍정감〉(이매방류). 교방춤으로 체득된 이매방춤 계열 특유의(동작을 파고들 듯한) 섬세한 춤사위를 보는 맛은 있으나 ‘한량무’의 호방함이 옅었다. 부채를 들고 걸어 나와 인사를 하듯 악사들에게 살짝 몸을 기울였다가 이내 멀리 시선을 두고 중앙으로 이동, 앉아서 부채를 펼쳐 머리 위로 들었다가 일어서는 춤의 시작은 풍경이 실재하건 실재하지 않건 간에, 그것을 생각하고 춤으로 옮겨 놓으려는 선비의 정조임을 그려보여 준다. 한 번도 곧게 펴지 않는, 굽은 등으로 추는 춤태에 춤을 보는 내내 덩달아 긴장되고 불편했다. 스승의 춤을 이어 추건, 백경우의 자신의 해석이건 〈사풍정감〉에서의 ‘한량’의 해석은 짐작컨대 선비가 춤으로 써야할 것과 쓰지 못할 것을 잘 다스리는 과정의 이야기가 아닐지.




김진희 〈진도북춤〉(박병천류) ⓒ대구무용협회




김진희의 〈진도북춤〉(박병천류), 몰아치는 장단이 무대를 한차례 휘감은 뒤에 등장하는 김진희의 춤은 단단했다. 잠시 춤을 멈추고, 장단을 기다렸다가 호흡을 툭 떨어트리는, 경상도 특유의 툭툭한 춤사위와 흥으로 무장한 춤에 보는 마음이 흔들.

북을 멘 어깨로 흥을 돋운 뒤, 뛰는 듯 걷고 머무르는가 하면 다시 북을 두드리며 무대를 휘감아 도는, 온몸으로 악사들과 북가락을 주고 받아내는 춤에 연륜이 배어 있다. 고요하게 멈춰 섰다가 다시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아 선 뒤 객석을 바라본다. 일본에서의 유학, 서울 대구를 오가며 적지 않은 시간동안 춤과 함께 좌충우돌하며 다져진 단단한 내면이 춤에 드러난 무대였다.




김용철 〈소고춤〉(권명화류) ⓒ대구무용협회




김용철(천안시립무용단)의 〈소고춤〉(권명화류). 권명화류를 ‘근간’으로 한 김용철의 ‘소고’춤이었다. 잿빛 바지에 흰색 저고리, 초립을 썼다. 굿거리장단의 덧배기춤을 중심으로 자진모리, 동살풀이, 휘모리 장단의 구조를 띤 춤은 김용철의 독특한 ‘예술성이 발현된 독창성 강한 춤’이었다.

소고를 들고 등을 보이고 서 있다가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아서 발을 툭, 앞으로 치듯 놓으며 한 걸음 슥 나서면 구음(공성제)이 따른다. 소고를 마치 신물(神物)인 양 다루며 퉁! 한 번 치고는 자진모리장단에 몸을 싣고 날 듯 춤을 추다 툭, 순간 멈춰 선다. 고개를 갸웃, 어깨를 들썩 마치 재간을 부리며 날 듯 놀 듯 추는, 해학(?)어린 춤이었다. 소고로 얼굴을 가리는가 하면, 거울을 들여다보듯 소고를 들고 한참을 노는가 싶더니 냅다 옆으로 눕는다. 이어 한 쪽 다리를 공중으로 쳐들고, 소고로 가렸던 얼굴을 살짝 내민다.

날 듯, 놀 듯 추는 춤과 구음의 정조가 어긋나며 춤이 살짝 떴다. 날아갈 듯 극단에 이르려는 표현에 단단한 (전통춤) 형식의 절제가 필요하다.

전통춤 해석에 있어서 그 내용과 형식은 늘 같지 않다. 특히 무대마다 춤을 거듭 확인하고 의심하면서 자신의 춤이 상투적이 되는 것을 스스로 경계하는 김용철에 있어서는. 그는 거듭 생각하고, 해석하는 작업을 통해 신중하게 춤 실험을 하고, 무대에 오른다. 춤적 감수성은 늘 지워졌다가 다시 회복되는 사람의 감수성이다. 지혜로운 춤꾼이라 문제를 풀어낼 것이다.

춤 얘기만 해보자. 전통춤은 춤마다 가지고 있는 원형적 특성이 있다. 그 특성을 유지하되, 자신의 해석에 바탕한 개성 있는 춤을 춰야 한다. 왜 이 춤을 배우고 추는지 스스로에게 묻는 과정도 없이 어떤 ‘류’나 ‘파’의 계통을 따르며 마치 복사하여 붙인 듯한(가능하지도 않지만) 춤을 추구하는 것. 문제다. 춤꾼은 늘 자신의 춤을 통해 하고자 하는 말들이 춤적 상투성을 남용하는 것은 아닌지, 또 그렇게 보이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흥, 멋에 스미다〉 에 오른 춤꾼들이 춘 춤 하나하나는 대구 전통춤의 현실을 거느리고 더 나은 시간으로 한 걸음을 옮겨 디딘, 또 다른 춤적 실천의 자리였다.

권옥희

문학과 무용학을 전공했다. 자유로운 춤, 거짓말 같은 참말로 춤이 춤으로 진실(춤적 진실)을 말하는 춤을 좋아한다. 스스로 자유로워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춤을 만드는 춤작가와 무용수들을 존경한다. ​ ​ ​ ​​​​​​​​​​​

2023. 1.
사진제공_대구무용협회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