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김부경 〈논개삼첩〉
논개를 모티브로 보여준 다채(多彩)
김영희_전통춤이론가

‘김부경의 춤 논개삼첩(論介三帖)’이 11월 25일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있었다. 김부경은 진주교방굿거리춤 이수자이며 서울교방의 동인으로, 설향무용단을 이끌고 있는 중견 전통춤꾼이다. 공연 타이틀 ‘논개삼첩’은 진주 기생 논개를 모티브로 하여 3편을 엮었다는 의미로, ‘진주’라는 지방색, ‘기생’이라는 직업과 삶, ‘논개’라는 인물의 서사가 여러 상상을 일으킨다. 특히 임진왜란 중 진주성에 들어온 일본 장수를 끌어안고 진주남강에 빠진 논개의 서사는 강렬하여 의기(義妓)로 기억되며, 소설 영화 드라마 춤 등으로 작품화되었다.

김부경은 ‘논개삼첩’을 4부로 설정하여 ‘나를 소지하다’에서 〈논개별곡〉(김경란 안무), 〈쌍승무〉(조갑녀류 김경란 재구성), ‘결을 품다’에서 〈구음검무〉(김부경 재구성), 〈연정가〉(김혜윤 안무), ‘흥으로 꽃을 피우다’에서 〈화란춘고〉(김부경 안무), 〈설장고춤〉(성윤선 안무), ‘춤으로 노래하다’에서 〈진주교방굿거리춤〉(경남무형문화재)으로 구성했다.





김경란 안무 〈논개별곡〉




첫 춤이었던 〈논개별곡〉은 논개의 제사 때 김수악(1926~2009)이 추었던 〈논개살풀이〉를 서울교방의 김경란 대표가 재구성한 살풀이춤이다. 처연한 구음이 춤을 부르기 시작하니 김부경은 양손에 쥔 수건을 한 손에 모으고 천천히 팔을 들어 올렸다. 수건을 길게 사용하여 여운을 남기거나, 양손을 높이 들어 수건을 받쳐올린 동작들이 자주 보였다. 또 4등분으로 짧게 잡아 왼쪽 어깨 위에서 잘게 뿌리기도 했다. 동살풀이로 넘어가면 수건을 양손에 나눠잡아 사선으로 팽팽하게 잡는 대목은 논개의 긴장감이 서려 있는 듯하다. 이러한 수건 사위들이 원초적인 느낌을 준다. 그리고 〈논개별곡〉에서 수건을 두 번 던졌다. 먼저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진 수건은 논개의 몸인 듯하고, 마지막에 던져져 무대 앞에 선연히 모습을 남긴 수건은 논개의 마음인듯하다. 수건을 앞에 놓고 무릎세워 앉은 자세로 수건을 바라보며 춤을 마쳤다. 김부경의 수건사위들은 군더더기 없이 능숙했고, 감정은 극히 절제되었다. 푸른 조명과 흰 치마저고리, 정제된 표현으로 풀어낸 김부경의 〈논개별곡〉이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조갑녀류 김경란 재구성 〈쌍승무〉




〈쌍승무〉는 남원권번 출신 조갑녀(1923~2015)가 2010년 전후에 다시 내놓은 승무를 근래 서울교방의 김경란 대표가 재구성한 춤이며, 이 공연에서 서정숙과 이상연이 추었다. 십여년 전 내놓았던 승무는 관객에 다소곳이 인사 후 담백하게 추는 승무였다. 근래 재구성한 〈쌍승무〉는 두 춤꾼이 나란히 똑같은 순서로 추지 않고, 캐논 식으로 시차를 두거나, 동작을 주고받기도 한다. 북가락은 화려해졌으며, 북틀을 이동시켜 위치와 각도를 바꾸기도 하고, 북놀음을 이중주로 치기도 했다. 구성이 이처럼 변하고보니 춤꾼이 오롯이 끌어갔던 승무의 주제나 호흡이 흐려졌다. 전통춤 특히 민속춤의 재구성은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본래 그 춤의 주제가 흔들린다면 재고할 필요가 있다.




김부경 재구성 〈구음검무〉




〈구음검무〉는 4인 검무로 재구성했다. 툇마루 끝에 자리한 김보라 연주자가 “길에는 이슬이 많기도 하여라”라며 짧은 시구를 낭송하고 깊게 울리는 구음을 시작했다. 앉았던 2인과 서 있던 2인이 각자 방향에서 한삼춤을 추었고, 타령으로 넘어가자 2열 2대로 만나 쌍어리와 대무를 했다. 한삼을 벗은 후에는 정면 무대로 동선을 바꾸었고, 앉아서 롱검(弄)劍)을 하더니 드디어 칼을 획획 돌렸다. 느린타령으로 장단이 바뀌자 천천히 일어나 4인 일렬로 무대를 가로지르며 기운을 축적했고, 잦은 타령으로 넘어가 빠른 칼사위 대무가 펼쳐졌다. 연풍을 돈 후 칼을 내리꽂으며 〈구음검무〉가 끝났다. 춤 서두에 낭송한 시는 검무의 춤꾼이 행로(行路) 중에 있음을 암시했으며, 이는 간단하면서 효과적으로 춤이 문학 텍스트와 결합한 사례였다. 김보라의 구성지면서 현대적이기도 한 구음은 여러 대목에서 춤의 포인트를 잡아 주었다. 또한 김부경의 재구성은 4면 무대와 1면 무대를 적절히 배합하며 4인 검무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김부경 안무 〈화란춘고〉



성윤선 안무 〈설장고춤〉




〈화란춘고〉는 김부경과 4인이 군무로 춘 장고춤이다. 어깨에 맨 장고를 왼쪽으로 살짝 기울여 열채로 장단을 치며 춤가락을 내는데, 굿거리는 ‘꽃이 피었네’라는 노랫가락으로 추었다. 끝 무렵 장단 하나를 넷으로 나누어 오금을 주며 자진발로 춤추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자진모리는 ‘꽃타령’의 노랫가락으로 궁채를 꺼내서 추었다. 노랫말의 느낌을 가능한 춤가락으로 표현했다. 설장고는 이채 장단으로 풀었지만, 춤사위에 맞추어 장단이 편집되었다. 이는 장단에 능통해야 가능한 일이다. 장고 타법을 현란하게 구사하기보다 춤사위를 펼치는데 중점이 되었으니, 장구통을 돌려 왼 허리에 붙이고 뒷걸음으로 도는 대목이 특이하다. 장고를 맨 방식, 설장고 장단의 구성, 노랫가락, 교방춤과 신무용 스타일의 춤사위까지 갖가지 요소와 스타일이 혼합된 흥미로운 장고춤이었다. 시각적 청각적으로 다채로웠고, 관객의 호응이 컸다.




〈교방굿거리춤〉을 추는 김부경




마지막 프로그램 〈교방굿거리춤〉은 김부경의 춤 중에 관객들이 가장 아끼는 춤이다. 그녀의 이 춤이 진득하면서 화사하고 설레게 하기 때문이다. 잦은모리에서 김유나, 문성희, 장혜리, 정수민, 두미지와 함께 군무로 펼쳤는데, 제자들과 판을 벌린 김에 순서를 약속하지 말고 진하게 흐드러진 대목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김부경 춤판의 피날레를 장식했다.

그녀의 대표 종목들을 한 무대에서 볼 수 있었고, 무대 안팎을 정성스럽게 준비한 공연이었다. 그런데 ‘논개삼첩’은 서울교방의 대표적인 공연 타이틀이다. 서울교방의 김경란 대표가 김수악 예인을 중심으로 사사했기에 〈교방굿거리춤〉, 〈진주검무〉, 〈논개살풀이〉는 일찍부터 서울교방의 주요 레퍼토리였다. 이 춤들을 꿰는 타이틀로 ‘논개삼첩’을 지었고, 이미 서울교방의 동인들이 각자의 개성대로 공연한 바 있다.

2016년에 서진주(선무용단 대표)의 ’논개삼첩‘이 성암아트홀에서 올려졌고, 〈교방굿거리춤〉, 〈조갑녀류 승무〉, 〈한영숙류 태평무〉, 〈구음검무〉, 〈한량무〉, 〈진도북춤〉, 〈아박무〉, 〈논개살풀이〉로 구성했다. 이후 김미선(춤공감 숨리 대표)의 ’논개삼첩‘은 국립국악원의 수요춤전 기획으로 2017년 풍류사랑방에서 있었다. 1첩은 〈진주교방굿거리춤〉과 〈쌍승무〉를, 2첩은 〈구음검무〉와 〈박병천류 진도북춤〉을, 3첩은 김지영 안무의 창작춤 〈적상가(赤裳歌)〉와 〈논개살풀이춤〉을 추었다. 장인숙(장인숙희원무용단 대표)의 ’논개삼첩‘은 2021년 국립부산국악원의 수요공감 기획으로 예지당에서 펼쳐졌다. 〈진주교방굿거리춤〉, 〈쌍승무〉, 〈살풀이춤 애린〉, 이미영 안무 〈바람숲〉, 임이조 류 〈한량무〉, 〈구음검무〉로 구성했다. 그리고 김혜윤(윤아트컴퍼니 대표)이 2021년 가을 돈화문국악당에 올린 공연은 ’논개별곡‘으로 공연 제목을 조금 변경했다. 프로그램은 〈교방굿거리춤〉, 〈쌍화검〉, 〈조갑녀류 승무〉, 〈연정가〉, 〈화란춘고〉, 〈논개별곡〉이었다. 서진주, 김미선, 장인숙, 김혜윤은 모두 서울교방의 동인이다.




김혜윤 안무 〈연정가〉




이 공연들에서 공통 종목은 〈진주교방굿거리춤〉, 〈구음검무〉, 〈논개살풀이춤〉이나 〈논개별곡〉이다. 논개를 생각하면, 우선 기생이었기에 연회의 흥을 돋구는 ’교방굿거리춤‘이 떠오르고, 진주성에서 적장을 죽였기에 호국과 상무정신을 배경으로 한 ’검무‘와 연결되며, 의롭게 죽은 논개를 백성들이 모두 기렸으니 논개의 넋을 추모하는 ’논개살풀이춤‘을 추어야 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춤을 어떻게 해석해서 추어내느냐가 각 춤꾼의 개성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공연 포인트이자 감상 포인트인 셈이다. 예를 들어 〈진주교방굿거리춤〉을 진득하게, 또는 화사하게, 또는 명랑하게 출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3 종목 외에 어떤 춤들로 구성하느냐에 따라, 또 어떻게 배치했느냐에 따라 ’논개삼첩‘이라는 타이틀에 대한 각 춤꾼의 해석과 의도도 볼 수 있다. 첩(帖)을 구분한 구성도 있었고, 논개에 자신을 이입할 때 좀 더 긴밀하거나, 그렇지 않고 열어놓은 경우도 있었다. 또 공연 전개를 논개의 결말로 시작하거나, 아니면 논개의 출발로 시작하기도 했다. 논개의 모티브가 두드러지지 않는 춤판도 있었다. 전통춤 공연은 대개 레파토리를 나열하지만, ’논개삼첩‘이라는 타이틀은 매우 흥미진진한 공연 타이틀이다.

김영희

전통춤이론가. 김영희춤연구소 소장. 역사학과 무용학을 전공했고, 근대 기생의 활동을 중심으로 근현대 한국춤의 현상에 관심을 갖고 있다. 『개화기 대중예술의 꽃 기생』, 『전통춤평론집 춤풍경』등을 발간했고, 『한국춤통사』,  『검무 연구』를 공동저술했다. 전통춤의 다양성과 현장성을 중시하며, ‘검무전(劍舞展)I~IV’시리즈를 기획했고, '소고小鼓 놀음'시리즈를 진행하고 있다. ​​

2023. 1.
사진제공_김부경, 옥상훈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