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이이슬 〈상상 이상〉
자기 시선이 더해져야 할 사랑의 초상
김채현_춤비평가

사랑과 무관한 드라마, 영화, 연극이 얼마나 될지 싶게 세상에 사랑의 담론은 그 추천작들 이상으로 차고도 넘친다. 그래도 실전에서 사랑은 예사 과제가 아니어서 그 해법도 절실할 것이다. 사랑의 해법은 무엇인가? 오늘날엔 답 없음. 이이슬의 〈상상 이상〉에서도 사랑은 순탄하지 않고 그로 인한 갈등과 혼돈의 늪은 깊다. 여기서 관객들이 대면하는 것은 사랑의 어느 사연이 아니라 사랑 일반의 세태이다. 특히 오늘 젊은 세대가 생각하는 사랑을 직설적으로 그려내며 동원하는 춤 구도가 오밀조밀해서 관심을 요한다(서강대메리홀 소극장, 12월 10-11일).

제목의 상상(想相) 이상(異想)은 서로를 생각하는 데 있어 다르게 생각하는 바가 있다는 뜻이다. 사랑을 하는 개개인들에 뿌리박은 탓으로 1인칭 단수로 진행된다고 선명하게 말해지는 사랑의 속성상, 서로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 이상할 리 없다. 〈상상 이상〉은 사랑을 미화하기보다 하나 되기가 여의치 않은 사랑의 어긋남을 솔직하게 부각해내는 데 중점을 둔다. 사랑을 대하는 눈길로서는 상당히 차가운 편이다.




이이슬 〈상상 이상〉 ⓒ김채현




어떤 억지스런 사랑을 이이슬은 이렇게 묘사한다. 나란히 사이좋게 앉은 두 사람이 갑자기 자세를 고쳐 앉아 마주 보다가 팔을 뿌리치자 한 사람은 쓰러지고 한 사람은 서서 내려다보는 태도이다. 이어 두 사람은 손을 잡을 듯 말 듯 한 끝에 팔을 고리처럼 연결해서 뜀박질을 하다가 엉켜붙어 서로를 피하는 여러 모습을 이어간다. 이들 장면에서 조명은 전혀 변화가 없고 반주 음악이라 해야 점점이 튕겨지는 금속성 소리가 꽤 건조하게 들릴 뿐이다. 여기서 두 사람 사이에 교차하는 감정은 화해보다는 부조화에 다다르기 일쑤여서 억지스런 분위기는 쌓여간다. 두 사람의 아기자기한 몸동작들에서 기대함 직한 화기애애한 관계와는 거리가 멀다. 오늘의 특히 젊은 세대에게서 빚어질 사랑의 정감을 현실의 실상대로 예시한 대목으로 보인다.

 




이이슬 〈상상 이상〉 ⓒ김채현




근대 사회 이후 사랑은 삶의 의미를 지지하는 축으로서 매력적으로 수용되고 이상화되어왔다. 또한 종교가 물러서는 빈자리를 사랑이 채우는 현상에 주목하여 사람들은 사랑을 새로운 종교에 비견하곤 한다. 이럴 경우 사랑하는 각자는 저마다 그 종교의 전당으로 화할 것이고 또 사제가 될 것이다. 하지만 사랑을 위한 해법으로서 꽤 강력할 결혼도 든든한 해법이 아니라는 것을 오늘날의 이혼율은 정직하게 보고한다. 이처럼 고전적 사랑과 근현대의 사랑 사이에는 천양지차가 있다. 사랑의 풍속은 변하였다.

로미오와 줄리엣 식의 사랑은 물론 영원히 가능할 것이다. 왜냐면 사랑은 가슴에서부터 싹이 트므로. “저 밝게 빛나는 두 볼의 광채가 저 별들을 부끄럽게 만들겠지.(로미오) 가문의 반목이 사랑을 저지하거나 사회적 규범이 사랑을 가로막는 확률이 거의 사라진 문명에서 그러나 다른 근현대적 요인들이 사랑을 일상적으로 방해하는 것이 현실이다. 두 사람 사이에 신성시되고 유토피아로 다가오는 사랑일지라도 언제까지 지속될지 누군들 확신할 수 있을까. 그래서 실전에 나서는 그 순간부터 사랑에는 더 해법이 요구될 테지만 근현대의 사랑은 사정이 팍팍하다. 세대가 흐를수록 사랑은 피로감이 가중될 듯하다. 사랑의 초상은 그러하고, 〈상상 이상〉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이슬 〈상상 이상〉 ⓒ김채현




〈상상 이상〉의 무대는 출연자들이 특이하게 상모의 물채를 머리에 매달고서 엉거주춤 발걸음을 옮겨다니는 모습으로 열려진다. 전체 공연에서는 연회색 의상과 쥐색 양말을 착용한 4사람(남성 1인, 여성 3인)이 등장한다. 그들은 입에 붉은 줄을 물었고, 그 줄들은 무대 옆 대기 공간에 묶여 있다. 입에 물린 붉은 줄은 입과 연관된 것을 은유하는 구실을 할 터인데, 점차 전개되는 무대 양상과 공연 의도에 비추어 붉은 혀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네 사람의 출연자들이 종종걸음을 잘게 옮길수록 줄들이 길어지고 엉키는 광경은 혀로써 내뱉는 말과 말들이 붉고 날카롭다는 것을, 개인 개인 사이에서 소통이 그다지 원활하지 않다는 것을 강하게 시사한다.

 






이이슬 〈상상 이상〉 ⓒ김채현




공연 초반부터 줄들이 뒤얽힌 상황에서 그들 사이의 감정 나누기는 좀체 엿보이지 않으며, 반면에 상대방의 줄을 밟거나 몸을 웅크려서 하는 오리걸음질, 벌레처럼 기어다니기 같은 움직임들이 반복해서 이어진다. 흔히 사랑이 숙성할 단계로 상승하면서 혀는 밀어(密語)를 양산(量産)한다. 사랑이 식을 무렵부터 혀는 세 치 혀로 날을 세우고 언성마저 높여갈 것이다. 그러한 경향을 직설적으로 반영하겠다는 듯이 붉은 줄을 과장된 혀로 등장시키는 이런 발상은 어떤 면 저돌적인 바가 있다. 이 같은 결기는 〈상상 이상〉을 끌어가는 내적인 힘으로 보인다.

 






이이슬 〈상상 이상〉 ⓒ김채현




소담한 무대 공간에도 불구하고 〈상상 이상〉에는 퍽 복합적인 구도들이 등장한다. 앞서 설명한 상모 매단 사람들의 배회 대목을 비롯하여 팔짱을 끼고 즐겁게 놀기, 얼굴을 맞대어 밀착하기, 상대방과 팔을 고리처럼 연결해서 이동하기, 몸을 스치듯이 밀착하다가 엎드려 마주 보기, 바닥에 누운 두 몸이 치켜든 양발을 서로 맞대어 돌리기, 알아들을 수는 없으나 자기 주장인 것은 분명한 언어로써 다투기, 둘이서 탐색하다가 격하게 맞붙기, 혼자 또는 집단의 격렬하게 쓰러져 구르기, 상모 쓴 머리를 좌우로 정신없이 휘젓기와 같은 장면 장면들이 간단없이 이어졌다 사라진다. 안무자의 공연 경력에 비해 무대에서 펼쳐지는 정경은 다채로운 편이다.

 






이이슬 〈상상 이상〉 ⓒ김채현




공연 후반부에서 형광색이 입혀진 상모의 초리들만이 어둠 속에서 오랫동안 원을 그리며 휘날려진다. 상모의 물채에다 초리를 연결하여 머리를 전후좌우로 오래 휘저어 사랑의 혼돈감이 부각된다. 사랑의 두근거림과 희열은 간데없고 그것은 골치 아픈 현기증으로 시각화된다. 굳이 젊은 세대에 한정될 현상이라 단정할 필요도 없이 많은 사랑들의 결말은 그러할 것이다.

상모의 활용도에서 이이슬은 상식을 넘어섰으며, 안무자도 여기에 신경을 기울였던 것 같다. 공연 전반부에서는 머리에 상모의 물채와 장식이 얹혀졌고 후반에서는 여기에 초리가 더해졌다. 흔히 상모에서는 그것을 돌릴 적의 희열감이 도드라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상상 이상〉에서 상모의 물채와 장식은 희열감을 암시하는 데 머물러서는 결국 열기가 식어버린 어떤 억지 사랑들을 은유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상모 돌리기에서 그 즐거운 절정은 초리가 수행하지만, 〈상상 이상〉에서 초리는 혼돈의 결정체로 어지러이 휘날려질 뿐이다.

 






이이슬 〈상상 이상〉 ⓒ김채현




〈상상 이상〉은 사랑의 세태를 꾸밈없이 진단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사랑의 세태를 세밀하게 묘사하는 이이슬의 작업에서는 젊은 세대 가운데서도 흔치 않은 조형적 구성력이 발견된다. 여기서 더 나아가 보면, 밀어와 갈등이 꼬리를 무는 〈상상 이상〉에서 더 요구되는 것은 작품 전개에서 내세워야 할 시선이었다. 말하자면 안무자가 개성적으로 드러낼 시선이 필요했고, 그것은 초점으로 확대되어야 할 점이었다.

세대를 불문하고 우리 주변의 적지 않은 안무자들이 간과하고 놓치는 것이 개성적 시선, 초점, 임팩트이기도 하다. 밀어와 갈등 들이 얽히고설킨 사랑의 리좀들(뿌리 줄기)에서 안무자가 중점을 둔, 아니면 안무자가 밀어붙여서 부각해내려는 리좀이 확연하지 않은 면이 있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공연에서 사랑에 관한 인식은 상식을 옮긴 춤 버전을 맴도는 감이 짙었다. 안무자가 사랑의 현상을 개인사, 개인들 간의 관계에 국한해서 판단하는 상식적 관점을 벗어나 다른 분야의 연구를
폭넓게 활용해볼 이유도 여기서 찾아진다 하겠다. 지난 봄 이이슬이 〈오라〉에서 맘껏 과시하고 시선을 모았던 집중적 형상력을 자기 시선 측면에서 확대해나가길 기대한다.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 『뿌리깊은 나무 샘이깊은 물』(1)을 비롯 다수의 논문, 공저,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국립무용단 60년사>(2022년 간행, 국립무용단)의 편집장으로서 편집을 총괄 진행하고 필진으로 참여하였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으며 한국저작권위원회, 국립극장 자료관, 국립도서관 등에 영상 복제본, 팸플릿 등 일부 자료를 기증한 바 있다.​​​

2023. 1.
사진제공_김채현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