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2022 대한민국발레축제
발레 서사는 관객의 미적 경험에 민감해야 한다
김명현_춤비평가

발레(특히 고전발레)를 구성하는 3대 요소는 드라마, 기교, 스펙터클이다. 형식미를 강조하는 발란신의 신고전주의적 발레나 추상성을 표현하는 작품이 아니라면 대체로 이 세 가지 요소를 충족시키며, 중요한 것은 드라마다. 드라마를 구성하는 요소들 중 장대한 사건들의 총합인 이야기에 중점을 둘지, 사건들이 관계를 맺는 인과적 사슬이라 할 플롯에 중점을 둘지, 아니면 연기적 표현성에 중점을 둘지에 따라 작품마다 차이를 드러내긴 하겠지만 장면적 연출이나 스펙터클도 드라마적 효과를 위해 고안된다는 점에서 드라마의 구축은 발레 작품에서 핵심요소라 하겠다. 드라마 구축을 위해 인물이나 사건들을 배치하거나 묘사하는 행위를 선택하는 방식이 내러티브인데, 이는 다시 시적 묘사나 설명적 묘사로 나뉜다. 하나의 방식을 선택할 때 다른 가능성은 배제되므로 작품의 내러티브를 선택하는 방식에 따라서 드라마성은 강화되거나 약화된다.

지난 6월 11-26일 열렸던 제12회 대한민국발레축제에서 공연된 작품들 중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이하 〈안중근〉), 〈로미오와 줄리엣〉, 〈Nothing〉을 대상으로 이에 대한 논의를 전개해보고자 한다. 〈안중근〉은 2015년 창작산실에서 초연되었고, 2021년 예술의전당 광복절 기념 제작 사업으로 전막 버전으로 확장되어 발표된 바 있고, 이번에 다시 발레축제에 초대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조선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여 민족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안중근의 독립운동가로서의 활동과 그의 죽음을 그리는 보기 드문 남성 서사물로서 주목을 끌었다. 올해의 〈안중근〉은 전년에 비해 현대적 동작의 개발과 각 장면의 사실성 면에서는 발전을 보였다. 어이없을 정도로 무신경한 연출력을 보였던 독립군의 활동장면이나 단지동맹 장면도 다소 구체성을 확보하며 훨씬 설득적으로 그려졌다. 그러나 안중근이라는 영웅 캐릭터의 구축과 그의 행동을 정당화하여 관객들에게 공감을 이끌어내는 내러티브의 구축에 있어서는 여전히 미흡했다.




M발레단 〈안중근,천국에서의 춤〉 Ⓒ예술의전당/김일우




우선 안중근이라는 영웅을 그리는 남성 서사로서 〈안중근〉은 그가 영웅이기 전에 지극히 인간적인 한 남성으로 그리고자 했다고 밝히기는 했지만 안중근의 내면 표출에 기울어진 캐릭터 구축은 그의 입체적인 성격을 구성하지 못하고 오히려 매우 유약하게 느껴지게 했다. 독립군의 활동을 지휘하는 기능적 측면과 그것을 표현할 어휘적 표현은 빈약했고, 인간적 고뇌와 두려움까지 표현하는 연기력도 매우 제한적이었다. 특히 감옥에서의 장면이나 사형에 임박한 상황에서의 그의 몸짓은 신파적 흐느낌이 강해서 시대적 감성과도 맞지 않았다. 그의 안타고니스트로 등장한 이시다 쪽이 오히려 더 구체적인 캐릭터를 보였다.

전반적 전개에 있어 이전의 평가에서 큰 패착으로 지적되었던 고전발레의 형식성에서 탈피하지 못했고, 〈스파르타쿠스〉를 모델로 하여 주인공 안중근에 대립하는 인물로 이토 히로부미 대신 일본 경찰 이시다를 내세운 어긋난 설정도 수정되지 않았다.(춤웹진, 2021년 9월호 참조) 〈안중근〉에서 주요 인물들 사이의 빗나간 대결 구도가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안중근의 히로부미 암살이 그를 민족의 영웅이게 하는 중대한 사건이며, 내러티브적으로도 〈안중근〉의 클라이맥스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안중근〉도 히로부미가 하얼빈역에 도착하는 기차 장면에서 토월극장 전체를 두어 바퀴 도는 기차장면의 거대한 미디어 파사드적 연출에 공을 들였을 것이다. 그런데 히로부미가 안중근이 암살을 결심할 만큼 위협적인 인물로 그려지지 않고 주변부에 머물렀을 때 관객은 그의 암살에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며, 그의 행위는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가. 그리고 히로부미가 주변인에 머물렀을 때, 기차 장면의 위용이 과연 의도한 효과를 성취했을지에 대해서도 의문이다. 서사 자체보다 시청각적 내러티브로 작품을 이끌어가는 동시대적 공연예술의 특징이라 할 시노그래피(scenography)적 관점에서 극적 내러티브와 조우하지 않는 시각적 스펙터클은 그저 스펙터클을 위한 스펙터클로서 기술적 전시에 머물 뿐이다.






M발레단 〈안중근,천국에서의 춤〉 Ⓒ예술의전당/김일우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연회장면만 해도 그렇다. 고전발레는 대규모 연회장면을 통해서 시각적 볼거리와 함께 우연한 만남이나, 갈등, 암투, 모사 등의 사건을 전개한다. 발레단의 모든 기술적, 기교적 역량을 집약시킨 스펙터클과 서사적 복선을 결합시켜 뒤에 이어질 장면과의 개연성을 구축하고 드라마성을 견인한다. 이런 고전발레의 양식적 특성을 차용한 히로부미의 통감 취임 축하연 장면은 기모노를 응용한 가운 드레스 차림의 여성 무용수들의 춤이라는 눈요기에 비해 조선의 운명을 가를 위험한 인물들의 등장과 조선에의 위협은 미약했고 다음 장면으로 이어지는 독립군의 활동장면과도 맥락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안중근〉의 서사가 계속해서 지적되는 건 이미 다 알려진 스토리라는 전제하에 드라마성을 위한 작품의 내적 논리 구축에 소홀하기 때문이다. 인물 간의 관계 구도나 비중은 어긋나있고, 장면들은 필연성과 개연성 없이 짜깁기식으로 연결되어 있다. 안중근을 의로운 행동을 했으면서도 인간적 고뇌를 가졌던 입체적 인물로 관객에게 다가가게 하기 위해서는 캐릭터와 서사에 공을 들여야 한다. 그런 설득적 노력 없이 안중근을 영웅으로 그리는 것은 우상화에 지나지 않는다.






대한민국발레축제x예술의전당(안무 허용순) 〈로미오와 줄리엣〉 Ⓒ대한민국발레축제/BAKI




허용순 안무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유럽에서 오랜 기간 무용수로서, 안무가로서, 교육자로 활동해온 그녀의 이름에 걸맞은 작품이었다. 2007년에 초연되어 네 번째 제작되는 레퍼토리이기에 그렇기도 하겠지만 우선 춤 어휘적 유창함이 돋보였다. 고전발레에 정통하면서도 현대적 움직임을 구사하며 각 캐릭터의 표현과 군무진의 역동을 오가는 안무적 구성에서 그의 역량은 충분했다. 파랑색, 빨간색이 섞인 어두운 보랏빛으로 작품이 전제하는 비극적 정조를 드러낸 조명과 무도회 장면의 연출은 상당했다. 당구 클럽에서 시작하여 무도회장으로, 줄리엣의 침실에서 발코니로, 두 사람의 죽음이 펼쳐지는 교회로 이어지는 공간적 내러티브의 다채로움도 보였다. 특히 반달 모양으로 공간을 잘라서 관객의 시선을 낮추고 그 아래에 제단을 배치하여 제단으로 시선이 집중되도록 하여 죽음을 연출한 것은 극적 몰입을 강화했다.

각 캐릭터를 연기한 무용수들의 연기도 좋았다. 특히 유모의 모습은 한국의 창작발레에서는 보기 힘든 캐릭터가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로미오와 줄리엣의 캐릭터가 그동안 익숙하게 보아온 고전적 캐릭터에 기반한 전형적인 모습이었던 점은 아쉽다. 예를 들면, 작품은 시작부터 캐퓰럿가와 몬태규가의 해묵은 갈등을 드러내는데, 빨간색과 파란색 의상을 입은 여성무용수들이 당구 큐대를 들고 예측불가능하고 통제불가능한 10대들의 팽팽한 힘의 대결을 보여준다. 꽤나 신선하게 느껴졌던 이 장면이 보여준 다소 거친 10대 소녀들의 모습에 반해 핑크색 침대를 배경으로 등장한 줄리엣은 익히 알려진 ‘로미오와 줄리엣’이 전제하는 사랑에 빠져드는 연약한 소녀일 뿐이다. 로미오의 등장도 처음엔 스트릿보이로 무도회장에선 웨이터로 위장하여 등장하는 등 꽤 신선한 설정이지만 그가 로미오임을 알아차리기까지는 꽤나 시간이 걸렸을 정도로 로미오의 캐릭터도 매력적이진 않았다.








대한민국발레축제x예술의전당(안무 허용순) 〈로미오와 줄리엣〉 Ⓒ대한민국발레축제/BAKI




〈로미오와 줄리엣도 잘 알려진 서사에 기대어 있어서일까 각 장면마다 ‘그랬다 치고’ 하는 식의 표현적 비약과 스토리적 도약이 느껴졌다. 물론 세익스피어가 의도한 ‘로미오와 줄리엣’의 전개는 빠르다. 원작이 5막 24장에 걸쳐 전개되는 장대한 서사이기 때문에 장면들이 빠르게 전환되기도 하지만, 10대들의 사랑이라는 통제하기 힘든 상황과 뒤늦게 전달되는 신부의 편지에 비해 너무나 빨랐던 로미오의 성급함이 결정적 비극을 불러들이는 만큼 이 시간적 ‘스피드’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특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용순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느긋한 사랑의 달콤함도 없이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것은 아쉽다.


더욱이,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빠질 수 없는 발코니 장면에서 공간의 수직적 사용이 보이지 않은 것은 무척 아쉽다. 아래에서 위를 쳐다보면서 사랑을 갈구하는 로미오와 천상에서 지상으로 하강하듯 내려와 로미오를 마주하는 줄리엣이 사랑에 빠지는 간지러운 장면을 연출하는 것은 일종의 국룰이다. 발코니도 없고, 앙상한 나뭇가지만 한 그루 있는 건조한 무대에서 빠르게 전개된 둘의 사랑 장면도 이미 너무나 비극을 전제하는 조급함으로 느껴졌다. 둘이 키스하면서 바닥을 구른 장면도 뒤에 죽음을 마주하는 장면에서 반복되는 데 두 장면의 차이가 거의 없었다. 앞의 장면에서 보였어야 할 사랑의 달콤함도, 뒤의 장면에서 보였어야할 운명적 애절함도 보이지 않았다.




아함아트프로젝트 〈Nothing〉 Ⓒ아함아트프로젝트




이렇게 〈안중근〉이나 〈로미오나 줄리엣〉이 시각적 스펙터클에 의지하여 서사적으로 전개될 때, 소극장 공연이었던 아함프로젝트의 〈Nothing〉(함도윤 안무)은 청각적 스펙터클이 서사를 이끌어간다. 〈Nothing〉는 인류의 종말적 사건을 마주하여 아무도 신뢰할 수 없는 소통불안의 사회를 그린다. 우연한 무선통신에 의지해 간신히 한 장소에 모인 생존자들이 약속되지 않은 상황을 마주하여 서로에 대한 불신을 쌓아가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구체적 상황과 대화 내용이 내레이션으로 전달되기에 스토리에 대한 이해에는 어려움이 없다. 오히려 사건의 전개나 캐릭터에서 움직임이 언어에 종속된 부차적인 것이 되어버리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아함아트프로젝트 〈Nothing〉 Ⓒ아함아트프로젝트




〈Nothing〉은 2인조의 밴드가 2층에 자리하여 라이브로 기타를 연주하고 각종 소리가 불안과 긴장을 만들며 디스토피아적 세계를 그린다. 거대 사건의 발생인 양 천둥소리가 들리고 모스 부호 같은 소리, 지지직거리는 라디오 소리, 흐느껴 우는 소리, 여러 채널들이 혼선되는 소리, 생존자를 찾는 소리, 번호를 붙이는 소리 등이 차례대로 전개된다. 그리고 서로를 불신하게 되는 직접적 계기인 약속되지 않은 누군가가 나타나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서 긴장이 극대화된다. 청각적 스펙터클을 사용하였다는 점에서 꽤나 참신했다. 그러나 점차로 불신이 팽배해져 가던 스토리는 곧 누군가의 상상 속에서 전개된 이야기라는 설명으로 마무리되며 싱겁게 끝난다. 겨우 30분 남짓한 길이의 작품인 때문일 수도 있지만 대본 작가의 도움없이 서사를 완성하기에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춤에서 서사적 빈약이 발레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유독 발레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호모 나렌스(Homo Narrans), 즉 모든 것을 이야기화하여 이해하는 ‘이야기하는 인간’으로서의 본능이 서사를 기반으로 하는 발레에서 더 직접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잘 알려진 서사에 기반하여 제작되는 것이 유리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잘 알려진 서사라도 당연시되는 결말을 향해서 달려가기보다는 개별 작품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함을 창조해야 한다. 호모 나렌스인 관객들의 지각은 서사 자체의 구조뿐만 아니라 미세한 시청각적 차이도 감지하여 서사로 구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사에 기반한 발레 작품의 연출은 관객들의 미적 경험에 훨씬 민감해야 한다. 그래서 발레에서도 서사와 시노그래피와 시청각적 효과를 조율할 드라마투르그의 역할이 요청된다고 하겠다.

김명현 

학부에서는 한국무용을, 석사과정에서는 예술경영을, 박사과정에서는 문화콘텐츠를 전공했다. 무용 작품의 기획에서부터 제작, 생산, 유통, 비평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에서의 언어의 작동에 관심이 있다. 팟캐스트 플랫폼 네이버 오디오 클립에서 〈심플리 댄스〉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

2022. 8.
사진제공_예술의전당/대한민국발레축제, 김일우, BAKI, 아함아트프로젝트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