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에세이_ 북인도 춤문화기행(1)
삶과 죽음이 너무 편안한 바라나시(Varanasi)
이병옥_용인대 명예교수. 춤이론

 연말년시(2013.12.28~2014.1.5) 휴가기간을 이용하여 북인도 문화기행을 다녀왔다. 인도의 수도 델리와 바라나시, 카라주호, 아그라, 자아푸르를 쉼없이 이동하면서 인도의 역사와 종교, 그리고 춤을 형성한 문화환경을 파악하고 기존에 알고 있던 인도춤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흔히 아시아춤과 유럽춤은 서로 다른 동서양 문화권으로 대별하지만, 아시아 내부에서도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북문화권과 인도를 중심으로한 서남문화권으로 나눠지는 광역의 춤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다. 즉 아시아 북방과 남방 간에는 생태환경과 역사문화적 차이로 인류학적 춤 특징이 다르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인도는 더운 남방적 생태환경으로 인하여 도약같은 수직춤보다는 수평춤, 어깨춤보다는 골반춤, 동체춤보다는 말초춤들의 성향을 보인다. 그리하여 말초부위적인 눈춤, 손가락춤, 발춤 등이 특히 발달하였다. 또한 역사문화적인 측면에서는 다양한 종교의 발상지답게 떼얌, 카타칼리 같은 종교의식춤들이 발달하였고, 바라타나티얌과 같이 신들과 관련한 춤의 근원성을 가지며, 신화적 스토리를 표현하면서 춤과 극이 분화하지 않고 통합된 춤극형태이다. 그러므로 손짓, 발짓, 눈짓 하나하나에도 각기 다른 언어적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여러 인종과 종족이 섞여 살면서 소수민족의 춤들도 다양하다.

 

 

 



 이러한 춤문화를 피부로 느끼기 위해 설레이는 마음으로 출발한 인도행은 8시간 반 걸려 델리공항(인디라간디 델리 국제공항)에 저녁이 되어서야 도착하였다.
 델리의 날씨는 한국의 겨울보다는 덜 춥지만 먼지 스모그로 퀘퀘한 냄새와 뿌연 시야가 걱정되었다. 뿐만 아니라 도심은 복잡하고 도로포장도 엉망이었다. 난방개념이 없는 숙소환경은 한국인들을 지치고 힘들게 하였지만, 목표가 뚜렷한 여행자에게는 색다른 문화환경을 경험하는 과정이란 생각이 들었다.


 

강강(ganga, 갠지스 강)와 가트(ghat, 계단)의 화장의식

 

 다음날 조식 후에 여행의 첫 시작지인 바라나시(Varanasi)로 가기위해 국내선 비행기를 탔다. 바라나시가 소재한 우타르프라데시(Uttar Pradesh)주는 대부분 지역이 갠지스 강 상류유역에 자리 잡고 있다. 북쪽은 네팔 및 티베트와 접하며, 라마와 크리슈나 신(神)이 탄생했다는 지역으로, 고대로부터 힌두교와 힌두 문화의 중심지였다.
 19세기 영국이 벵골에서 서쪽으로 점차 세력을 넓혀나가자 우타르프라데시 주는 1857년 영국의 지배에 반기를 든 인도 폭동의 주요거점이 되었으며, 인도 독립운동의 최전선 역할을 하면서 인디라 간디와 인도 초대 총리 등 3명이 이곳에서 배출되었다. 이 지방의 노래와 춤들은 미르자푸르와 바라나시의 카자리(kajari), 민속서사시인〈알라 우달 Alha Udal〉, 마을 단위로 발달해온 여러 춤들이 유명하다.
 바라나시에 도착한 일행들은 호텔에 짐을 풀고 저녁 무렵 사이클 릭샤(자전거 인력거)에 나눠 타고 갠지스강이 흐르는 가트(ghat, 계단)로 향했다. 인구 110만 정도의 도시지만 순례자들이 전국에서 몰려오는 까닭에 거리는 너무나 많은 인파와 지저분한 거리를 피해가기 위해 릭샤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타오르는 화장터 불길을 목격한 일행들은 긴장감이 역력했으나 반대로 현지인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거행하는 화장풍경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현장에 근접하여 죽은 자들을 화장하는 역한 냄새까지 생생하게 느끼면서 3천년 동안 불씨가 꺼지 않았다는 현지인의 이야기를 듣고 인도인의 종교관과 생사관, 그리고 오랜 역사문화의 근원성에 대해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바라나시(Varanasi)는 인도 힌두교의 성지이다. 바라나시를 흐르는 갠지스 강은 힌두교도에게 성스러운 젖줄로, 가트에는 강에 몸을 담그고 그 물을 마시기 위해 모여든 신도들로 북적거렸다.
 그들은 강가(Ganga, 갠지스강)가 인도의 어머니이며 시바신이 내려주는 생명수라고 믿는다. 때문에 힌두교도들은 이곳에서 생을 마감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그들은 이곳 강가에 몸을 담그면 영혼이 정화되어 윤회의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강가는 히말라야에서 발원하여 흐르지만 지금도 길일이면 수많은 힌두교들이 목욕의례를 하기 위해 전국에서 이곳으로 모여들어 꿈브멜라(Kumbhamela) 축제를 만들어 냈다.
 쿰브멜라 축제는 흰두교 최대 축제로 12년에 한번씩 열린다. 힌두 창조신화에 따르면, 신과 악마들이 불멸의 음료인 신주가 들어있는 주전자(쿰브)를 차지하기 위해 12일간 싸움을 벌였고, 힌두 3대 신의 하나인 비쉬누가 손을 뻗어 이 쿰부를 낚아채어 하늘의 안전한 장소에 도착하기 전 4곳에서 멈췄다고 한다. 그곳이 바로 알라하바드, 나리드와르, 나시크, 우자 라고 하는데 이 4곳에서 돌아가며 축제가 열린다. 이번 여행에서 꿈브멜라축제를 직접 볼 수는 없었지만 갠지스강에 몰려든 순례인파와 화장장면을 통해 축제의 의미와 분위기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아르띠 뿌자(Arti Puja, 흰두의식)의 향불춤

 

 갠지스강의 가트(계단)의 이모저모를 살피다가 저녁이 되자 매일 밤 6시경에 열리는 흰두의식(Arti Puja)을 관람하려는 인파가 모여들었다.
 아르띠(Arti, 불) 뿌자(Puja, 의식)는 힌두교의 주요 신들 중 하나인 '시바 신'에게 바치는 제사이다. 제사를 거행하는 사람들은 인도의 카스트 제도 속에서도 가장 최상층인 '브라만‘(승려)으로 6, 7명의 사제들이다. 강가를 향해 각기 작은 제단에 의식도구들을 올려놓고 향, 향로, 황동촛대, 화로, 깃털을 들고 흔들며 사방으로 돌면서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향불의식이었다.
 뿌자의식은 먼저 강물을 떠서 제단에 바친 후 요령을 흔들어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시작한다. 먼저 중앙사제단에 나란히 모여 손뻑을 치며 의식노래를 부르고 각자의 제단 앞으로 나가 향불을 피워놓고 작은 소라나팔(나각)을 불고 난 후 노란 꽃잎 뭉치를 앞으로 뿌린다.
 왼손으로 요령을 흔들어 소리를 내면서 한 발 무릎을 꿇고 앉아 오른손에 향다발을 들고 허공을 향해 휘돌리는 향불춤을 추고, 다음 일어서서 사방으로 돌면서 똑같이 행한다. 다음은 요령을 흔들면서 향불화로를 들고 앉아서 흔들고 일어서서 사방을 돌면서 행한다. 계속해서 향촛불을 환하게 밝힌 커다란 촛불다발을 들고 같은 방식으로 사방의식춤을 추고 난 후에 갠지스강에 물을 돌려보내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향 연기를 피워 올리며 진행하는 모습이 경건하였고, 요란스런 나팔소리, 요령소리, 북소리에 향다발을 들고 향불춤을 추는 힌두의식이 바라나시 춤기행의 절정이란 생각이 들었다.


 


 

 

 

불교성지 사르나트(Sarnath)

 이튿날 새벽 일행은 다시 갠지스 강가로 나갔다. 어슴프레하게 밝아오지만 스모그가 워낙 심해 해돋이를 볼 수 없었다. 배를 타고 갠지스강을 돌아보며 어제의 복잡한 모습과는 아주 다른 조용한 아침광경을 보며 각자의 소원을 담아 꽃불을 강물에 띠웠다.
 조식 후 바라나시의 불교성지인 사르나트(Sarnath, Sarnātha, 인도 왕이 사슴을 풀어놓아 기르던 곳이기도 해서 ‘녹야원’이라함)로 행했다.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은 붓다가 처음으로 설법을 펼친 곳이다. 이곳은 붓다가 태어난 네팔의 룸비니, 깨달음을 얻은 인도 동부의 보드가야, 그리고 열반한 장소인 쿠시나가르와 함께 불교의 4대 성지로 꼽힌다.


 

 



 이곳 사르나트는 복잡한 갠지스강변과는 달리 평온함을 느꼈지만, 차우칸디 스투파(Chaukhandi Stupa), 다멕 스투파(Dhamek Stupa)를 제외하면 사실 볼만한 것이라곤 거의 없는 폐허였다. 무슬림이 점령한 후 거의 모든 건축물을 파괴하고 흙으로 묻어 버렸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부처님이 처음 설법을 행한 자리로 추정되는 곳에 세운 다르마라지카 스투파(Dharmarajika Stupa)는 아쇼카 대왕이 처음으로 스투파(탑)를 세웠으나 현재는 직경 31.5m에 달하는 거대한 탑의 기단부위만 남아 있었다.
 6세기에 세워진 다멕 스투파(Dhamek Stupa)는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후 6년간 같이 고행을 수행하던 5명의 비구에게 처음으로 설법을 펼쳤다는 곳을 기념하고 있다. 깨달음을 얻은 5명의 승려는 승가(출가수행자의 교단)를 결성하고 붓다의 가르침을 전파하여 60명으로 늘어났으며, 이들이 인도 전역으로 불교를 전파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지금도 인도와 여러나라에서 스님들과 불자들이 이곳을 찾아와 탑돌이를 하고 수행하고 있다.

 

 

 



 한국의 탑돌이는 사월초파일이나 큰 재(齋)가 있을 때 사찰에서 거행하는 불교의식으로 승려가 염주를 들고 탑을 돌면서 부처의 큰 뜻과 공덕을 노래하면, 신도들이 그 뒤를 따라 등을 밝혀 들고 탑을 돌면서 극락왕생(極樂往生)을 기원하는 불교의식이었으나, 불교가 대중화하면서 국태민안(國泰民安)까지 기원하는 민속놀이로 변천되었다.
 탑이라는 것이 원래 부처님의 사리, 유골을 모시는 대상물로 사용되어졌고, 탑 자체의 뜻이 '스투파' 즉, 부처님 자체이기 때문에, 탑 주위를 도는 것은 바로 부처님 주위를 도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탑돌이춤은 공연무대에서 불교의식을 표현할 때도 있지만, 실제로 김덕명(91세, 양산사찰학춤전승자, 전 진주한량무보유자)에 의해 고증하여 통도사에서 전승된 사찰계춤 12종중의 한 종목으로 지난해 부산에서 신은주에 의해 연등바라춤으로 재현한 바 있었다.
 바라나시는 힌두교의 성지 갠지스 강 뿐만 아니라 불교의 성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이곳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인도 전역에서 몰려오는 순례자들로 북적대는 지저분한 거리풍경과 길거리의 소나 개 등 동물들까지 뒤섞여 너무나 편안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살다가 죽어가는 생의 초월자같은 모습을 볼 때, 문명보다 영적인 세계를 우위에 두고 살아가는 민족임에는 틀림없었다.

 

* 다음 호에는 리얼한 성애(카마스투라)춤장면들이 부조된 사원지 카라주호의 춤기행이 연재됩니다.

-참고자료-
Raj Verma & Vipul Jain,『바라나시』(한국어판 화보집), 인도: 미탈출판, 2013.
http://www.minc.kr/travel/travel_abr/india/5_religion/god6_ganga.htm
http://cafe.daum.net/youngchuk/4GOy/745?q=%B3%EC%BE%DF%BF%F8
http://cafe.daum.net/youngchuk/4GOy/745?q=%B3%EC%BE%DF%BF%F8 

2014. 02.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