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프랑스에서 보내는 엽서 15
소중함이란 어떤 것일까
남영호_재불무용가

모든 것(소중히 여기는 것, 좋아하는 것)을 잃어버린 것 같은 그러나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몇 해 전 나는 모나코 한국수교 1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에 한국대사관에서 초대받아 프랑 스 남쪽 옆의 모나코로 가게 되었다. 한-불 페스티벌을 진행하고 있으니 거기 가서 사람들도 만나고, 페스티벌 홍보도 할 마음으로 페스티벌 기획자 사라와 같이 가기로 했다. 어렵게 모나코 호텔도 예약하고, 일년에 몇 번 참석하는 행사에서 입을 생각으로 가진 멋진 옷과 가방 구두, 장식물, 화장품, 생활용품 등등 멋내는 데 필요한 모든 것들을 오랜만에 챙겨서 조그만 여행 가방에 따로 넣었다.

모나코까지는 당시 몽펠리에 한인회장 내외의 차로 같이 가기로 되어있었다. 만나기로 한 장소까지 전동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가면서 사라와 페스티벌에 대해 그날 저녁 행사에서 말 할 얘기에 대해 열띤 회의를 하면서 전차에 가방을 두고 내린 사실을 잊어버린 채 전동차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만나는 장소에 도착하자 기억이 났다. 늘 갖고 다니던 가방만 생각하고, 모나코 저녁 행사에 필요한 모든 것을 넣어둔 가방을 잊고 있었다. 한 순간 멍해지는, 다시 집에 가서 다른 것을 가져올 시간은 없었다.

전동차 사무소의 유실물 신고처에 일단 신고를 했다. 그러나 그것을 찾는 건 불가능하다. 그 가방 안에는 내 이름과 주소, 아무것도 없다. 오로지 소지품만 있을 뿐이었다. 급히 근처 가게에 들어가 모나코에서 입을 옷 한 벌과 신발을 샀다. 난 청바지와 운동화 차림이었고, 그 행사에는 정장을 해야 했다. 가게 주인은 아주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이것저것 보여 주었다. 간단한 목걸이도 하나 구입했다.

약속 장소에 몽펠리에 한인회장 내외가 도착하였고, 우리는 차로 모나코로 떠났다. 차 안에서 난 그 가방 안에 무엇이 들어 있었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그리고 혹시 내 주소를 남긴 적이 있는지도 생각했다. 언니가 준 모 한국 디자이너의 윗도리, 엄청난 시간을 투자해서 찾은 어느 프랑스 디자이너의 치마, 너무 비싸서 세일을 기다렸다가 산 디자이너의 구두, 가방, 오랜만에 산 메이크업 세트, 그동안 가지고 있던 모든 금을 녹여 만든 하나밖에 없는 목걸이, 생일 선물로 받은 보석 반지, 몇 달 전에 맞추었던 안경, 선글라스…. 내가 가진 제일 비싸고 귀하다고 여겨서 아끼던 것들만 들어 있었다. 가슴이 철렁, 뭔가가 훅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헉하는 한숨소리와 함께 칠칠치 못한 나 자신을 원망했다. 정말 기운이 빠졌다.

회장님 차로 가면서 시간이 많이 걸렸고, 차도 많이 막혀서 우리 일행은 거의 콘서트가 시작하려는 순간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표 받고 콘서트장에 들어갔다. 그날 모나코 저녁 행사에는 한국에서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왔었다. 국악관현악단의 여러가지 레퍼토리 음악과 거기에 프랑스 음악도 연주해서 사람들에게 갈채를 받고 웃음을 선사했다. 거의 50명 이상은 온 것 같았다. 나는 그들의 음악을 들으면서, 그리고 행사에 내가 아는 분들이 많이 와서 그분들과 얘기들을 하면서 내가 물건들을 다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호텔로 와서야 난 내가 물건들을 다 잃어버렸다는 걸 다시 잠시 인식하고 있다가 너무 피곤해서 바로 잠이 들어버렸다. 그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또 부랴부랴 아는 분 차로 부탁해 몽펠리에까지 돌아왔는데, 집에 온 후 갑자기 혼자 있게 되면서 그때 잃어버린 모든 물건들이 다시 생각났다.

아! 내가 그렇게 좋아해서 아끼던 가죽 자켓, 신발
​. 그 후 아끼는 습관은 없어졌다. 아끼다 무엇이 된다는 말도 알고 있었고, 또 이렇게 잃어버리면 그 허무함! 다시 철렁하는 가슴을 안고 피곤해서 잠이 빨리 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빨리도 지나갔다. 일주일, 이주일, 한 달…. 이상한 것은 그렇게 소중한 것들이라고 여긴 것들을 잃어버렸는데 생각보다 아쉬움이 크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침마다 일어나서 바쁘게 지내다 보니까 생각할 겨를이 없었나 보다'고도 생각해봤다. 그러면서 물건에 대해서는 그리 가치를 두지 않는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꼭 갖고 싶은 것이라면 후에 시간을 두고 다시 똑같은 것을 사기도 한다. 대학교 때 잘 들고 다니던 가방을 잃어버리고 바로 똑같은 가방을 다시 산 기억이 난다. 가방뿐 아니라 신발도 그랬고, 화장품 등 물건들은 다시 살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소중한 사람이 준 물건이라도 내가 필요한 것이 아니면 과감히 없애버리든지, 그것을 필요로 할 다른 사람에게 주기를 더 좋아한다. 그래서 가끔씩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기도 했다.


한 가지 에피소드. 내 아는 사람 중 어느 프랑스인은 중국에서 소중한 사람에게서 중국 음식 소스를 선물 받았다. 그 사람은 중국 음식을 전혀 할 수 없는 분 이었다. 그래서 내가 “그냥 들고 있다가 썩여 버리는 것보다 중국식당에 주는 것은 어떠세요?” 하고 제의하니까, 그 사람은 놀란 듯이 나를 보면서 이 소스는 소중한 사람에게서 선물 받은 것인데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느냐는 답이었다. 그래서 나는 “ 어차피 당신은 그 소스를 먹지 않을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 썩혀버릴 것인데요? 이곳 중국식당에 주면 참 유용하게 잘 쓸 것 같은데요. 나도 누군가 가 나에게 한국 소스를 준다면 너무 고맙게 잘 먹을 것 같아요. 안 그러면 썩어서 버릴 거예요” 라고 했더니 그분은 차라리 그 편을 택하겠다고 하였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남영호

현대무용가. 1991년 프랑스에 간 이래 남쪽의 몽펠리에 지역을 중심으로 현대춤 활동을 해왔다. 2015년부터는 한국문화를 프랑스에 소개하는 축제인 '꼬레디시'를 매년 가을 주최하는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2022. 10.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