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춤의 도시 뉴욕, 무용 프로듀서로 10년 살기 11
다시 피어오르는 국제교류 속 한국 물결
박신애_코리아댄스어브로드 대표

미친 듯이 비가 내렸다. 시원하게 쏟아지는 비에 두 달 동안 투어로 쌓였던 피로감도 씻겨나가는 것 같았다. 고요하고 한산한 낭트의 봄은 프랑스에서 일곱번째 큰 관광도시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고즈넉했다. 마치 오랫동안 살고 있던 마을, 작은 회관에 주민들이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듯 공연장을 찾아든 관객들의 온기와 정겨운 봄밤의 분위기는 오랫동안 감동으로 남을 것 같다.




  

낭트 한국의 봄 포스터 ⓒ양승관, 낭트거리 ⓒ박신애




프랑스 낭트 ‘한국의 봄’ 축제는 2012년도에 설립된 한국의 봄 협회와 (주)프랑스 한국문화원의 공동 주최로 낭트시에서 열리는 한국 문화축제이다. 2013년에 시작한 ‘한국의 봄’ 축제는 낭트시에 있는 스테레오 멀티 대극장과 낭트 국립극장인 류유닉, 오페라 하우스, 그리고 국제 교류재단 코스모폴리스 복합 문화 공간 등에서 매년 5~6월에 열리는 축제로 한국의 전통에서부터 현대 장르에 이르는 다양한 공연들과 영화, 전시, 워크숍, 컨퍼런스 등 20여개 이상의 행사를 개최해왔다고 한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멈췄던 극장들이 재개되면서 취소된 공연들과 미리 기획된 공연들이 겹쳐 스테레오극장을 제외한 나머지 극장들과 협업이 힘들어져 축소된 형태로 Madeleine Champ DE Mars의 아뜰리에에서 공연을 진행했다.




  

낭트 Madeleine Champ DE Mars의 아뜰리에 공연장 입구, 부대행사중인 공연장 앞마당 ⓒ양승관




낭트는 프랑스 북서부에 위치한 도시로 파리에서 남서쪽으로 342km 떨어져 있다. 대서양과 인접해 있어 해양성 기후로 비가 자주 온다고 했는데 우리가 있는 동안에도 자주 비가 내렸다. 한 가지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이번 축제에 참여한 한인 안무가 중 이보경의 〈Big mouth ll〉 공연이 끝나는 순간마다 비가 내려 짙은 감동의 눈물을 흘렸던 관계자들과 함께 “그녀의 쎈 춤의 기운이 하늘에 닿아 마른하늘에 비를 뿌리는 것 같다”는 소리를 농담처럼 하기도 했다. 


 축제 기간에는 음악, 전통과의 협업무대, K-pop, 태권도 등 다양한 방식으로 한국문화와 연결되는 공연 및 부대 행사가 이어졌는데 현지에 한국인이 많지 않기도 했고, 찐 현지인들이 한국문화를 즐기기 위해 모이고, 돕고, 즐기며 열정을 다하는 모습이 국제교류에 대한 많은 생각을 다시금 하게 해주었다. 케이팝 안무를 완벽하게 외워 춤을 추면서 떡볶이를 서빙해 주던 현지 청년들의 모습은…. 뭐랄까 참 뿌듯하기도 어색하기도 했다.




낭트 공연이 끝나고 스탭들과 함께 ⓒ코리아댄스어브로드




개인적으로는 이번 투어의 마지막 도시여서였을까. 도시에서 묻어나는 여유로움과 따듯함 그리고 상당히 유럽스러운(?) 거리와 시민들이 함께하는 이상적인 축제의 모습 모든 조각조각이 매우 특별하게 느껴졌다. 팬데믹 동안 오래 잊고 있었던, 투어의 묘미를 다시 느낄 수 있는 시간 이기도.

이번 투어 중 프랑스에서는 두 도시의 다른 축제를 다녀왔는데 하나는 앞서 소개한 낭트의 ‘한국의 봄’(Printemps Coreen) 페스티벌이고, 다른 하나는 파리 ‘S.O.U.M.’(Spectacle Of Unlimited Movements) 페스티벌이다.

숨 페스티벌은 필자가 대표로 이끄는 코리아댄스어브로드와 프랑스 현지의 S.O.U.M. 협회가 협업파트너로 교류하고 있는 축제인데, 최근 유럽 내 한국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고 다양한 한국문화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시대적 현상을 반영하여 프랑스 내 한국 현대무용에 관한 관심을 고취 시키고자 2019년 기획되었다. 페스티벌의 출범과 동시에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여러 차례 온라인 페스티벌 및 상영회로 대신하여 진행해 오다 드디어 올해, 대면으로 관객을 만날 수 있었다.




파리 ‘S.O.U.M 페스티벌’ 포스터




유럽에 다양한 무용 축제가 많지만 S.O.U.M 페스티벌은 그 본성이 한국 무용가들을 세계에 알리고 현지 예술가들과 협업작업을 통해 장기적인 프로젝트공연으로 확장하는 데에 있기에 다른 무용 축제들과 차이를 보인다. 2020~22년 현재까지 22개 단체의 작품을 프랑스에 진출시켰으며, 또한 한국 무용가들을 집중 조명하는 페스티벌인 점에서 특별함이 있다.

올 5월 개최된 3회 정규프로그램에서는 안제현, 양승관, 이보경, 이선아 4인의 안무작을 선보였는데, 역시 코로나로 인해 애초의 계획된 현지 협력극장인 무용전용극장 Le Regard du Cygne과 파리시립 무용센터 Micadanses에서는 진행을 하지 못하고 주 프랑스 한국문화원의 도움을 받아 문화원 오디토리움에서 공연을 하였다.

숨 페스티벌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점 중 하나가 자원봉사로 참여한 스태프들이었다.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프랑스 현지 학생들이라고 했는데, 너무나 프랑스인인 외모로 유창히 한국어를 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순간순간 깜짝 놀라기도 했다. 셋업에 들어가니 급해진 마음에 나는 영어로, 그들은 한국말로 대답하는 재미있는 광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한국에 대한 유럽 특히, 프랑스 내 관심이 높아진 것을 몸소 느낄 수 있는 지점이기도 했다.

공연에 많은 관객이 몰려들었다. 사전예약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틀 118석의 오디토리움을 채우고도 모자라 옆 통로까지 관객들이 빼곡히 앉아 관람해야 했다. 일반 관객의 문화 수준이 높은 나라여서인지 관객 수준도 남달랐던 기억이다. 특히, 
목발을 활용하는 양승관의 〈Try Again, Fail Again〉 작품을 공연하는 날 실제로 장애가 있는 관객 한 명이 목발을 짚고 객석에 등장했는데 과연 이 작품에 대하여 어떤 반응을 보일지, 혹여나 선입견이나 불쾌함을 느끼지는 않을지 노심초사했다. 공연이 끝나고 그 관객은 친히 안무가를 찾아와 너무도 감명을 받았다는 이야기와 함께 작품에 대해 느낀 점을 자세히 전달 해주었고 이에 우린 모두 감사한 마음까지 들었다. 또, 현지의 공연예술 매체의 필진으로 활동하고 있는 기자 한 분은 노트에 그림까지 그려가며 작품에 대한 질문과 애정을 표해 주었고, 이런 관객 반응은 한국에서 공연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부분이라 안무가에게는 특별하고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고 했다.




  

파리 공연예술 매체 기자님의 노트 ⓒ양승관




파리는 참 신기한 도시였다. 그렇게 많은 나라와 도시를 투어하면서도 이렇게 말이 안 통해 답답한 대도시는 또 처음이었다. 프랑스어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이 도통 없었다. 다음번에 이 땅을 밟을 때는 내 몇 마디 회화라도 배워오리라 다짐할 정도였고, 그러다 지내는 일정이 길어질수록 답답한 내가 스스로 우물을 파 몇 마디씩 프랑스어를 배워가며 써먹고 있는 모습이 우습기도 했다. 초반엔 그들의 언어에 대한 자긍심, 그리고 배려 없음에 조금 감정이 상하기도 했는데, 계속 지내보니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매력 있는 도시가 또 있을까 싶은 생각 역시 들기도 했다. 너무 아름답고 고풍스러웠던 파리 어느 골목길과 야간에 몽마르트에서 마시던 코냑 한잔을 생각하면 설렘이 밀려오고, 또 그 불친절한 사람들과 거리 위 쓰레기들을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지기도 한다. 적어도 내가 본 파리는 그랬다.




파리 공연 커튼콜 ⓒ박신애



파리 공연이 끝나고 스탭들과 함께 ⓒ코리아댄스어브로드




투어를 하면서 매번 참 많은 사람과 새로운 인연을 맺고, 추억을 만들게 되는 것 같다. 이번 투어도 빠질 수 없는 인연들이 있었다.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며 궂은일 도맡아 해주던 그 프랑스인 친구, 돌아가는 그 날까지 우리의 디저트를 책임져 주던 한인 유학생, 만삭의 배로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종횡무진이던 스태프 언니, 그저 존재 자체가 아름다웠던 노부부 관객. 나를 너무 사랑하던 두 마리의 고양이까지…. 새로이 피어나는 국제교류 물결 속에, 애증이었던 프랑스와 또 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그들과 다시 만날 그날을 기약해 본다.

박신애

민간무용단체의 해외진출을 돕는 비영리기관인 코리아댄스어브로드의 박신애 대표는 무용 국제교류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국제프로듀서이다. 2014년부터 2020년까지 뉴욕92Y 하크니스 댄스센터에서 아시아/코리아 릴레이티드 프로그램의 게스트 큐레이터로 활동하였으며 현재 국제 솔로 댄스페스티벌인 ‘모노탄츠서울’의 예술감독, 프랑스 파리 ‘S.O.U.M(Spectacle Of Unlimited Movements) 페스티벌’의 큐레이터를 맡고 있다.​​​

2022. 8.
사진제공_양승관, 박신애, 코리아댄스어브로드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