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김지영의 ONE DAY
쇼팽 프로코피에프를 넘나 든 농밀한 춤
장광열_춤비평가

안온했다.

대지를 적시는 비 소리가 점차 강해지면서, 스며들 듯 밀려오던 춤의 여운은 오히려 더 편안하고 따뜻해졌다. 네 명 댄서들의 각기 다른 이야기들, 다양한 춤의 잔상들은 어느 새 하나가 되고 있었다.

김지영이 예술감독을 맡아 구성한 ‘김지영의 ONE DAY’(3월 25일, 마포아트센터 아트홀맥) 2부에 선보인 신작 〈치카치카〉(ChicaChica)는 각기 다른 시간 속에 존재하는 네 명 댄서들의 춤 구성이 자주 보지 못하던 스타일만큼이나 색다른 묘미를 선사했다.

김지영이 스위스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안무가 김세현에게 의뢰해 만들어 이날 처음 선보인 30분 길이의 이 작품은, 네 명 댄서들의 안정된 기량과 현대적인 질감의 춤들이 서로 시너지 효과를 발했다.








  

  

〈치카치카〉에서 김지영의 솔로춤과 이승현과의 2인무 ⓒ김윤식




네 명 남녀 댄서들의 두 명의 커플로 구성된 춤과 개개 댄서들의 솔로 춤을 통해 차별적인 춤을 담아내려는 안무가가 의도는 어렵지 않게 발견되었다. 전반부와 후반부 2인무에서 팔과 상체 위주의 움직임 변주는 폭과 속도감 등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었고, 이는 댄서들이 표현해내는 미묘한 감정의 차이 만큼이나 같은 듀엣인 데도 다른 감성으로 다가왔다..


안무가 김세연은 ‘풋풋한 첫사랑에 가슴이 뻥하고 뚫려 버린 것만 같은 순간, 화창한 여름 날, 마냥 한창 의기양양한 젊은 날, 소중했던 것을 잃어버린 듯 아득하게만 느껴지는 중년 어디 즈음의 순간들, 그리고 마치 운명의 수레바퀴 마냥 덤덤한 움직임으로 이미 겨울을 닮아버린 것 같은 또 다른 시간속의 모습---‘ 등등 다양한 이미지 속에서 여러 이야기들을 담아냈다.

무엇보다 가장 눈에 띈 것은 안무가에 의해 세밀하게 조합된 댄서들의 움직임이 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Sergei Prokofiev)의 발레음악 〈신데렐라〉에서 차용한 피아노 선율과 절묘하게 만난 접합 점이었다.

네 명 남녀 댄서들이 두 명의 커플로 구성된 춤과 개개 댄서들의 솔로 춤에서 차별적인 춤을 담아내려는 안무가가 의도는 어렵지 않게 발견되었다. 전반부와 후반부 2인무에서 팔과 상체 위주의 움직임 변주는 폭과 속도감 등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었고, 이는 댄서들의 표현해내는 미묘한 감정의 차이만큼이나 차별화되었다.

박정은과 윤별의 듀엣은 서로를 많이 향하고 반응하게 했던 반면에, 김지영과 이승현의 2인무는 서로 한 방향 또는 어긋나는 등 마주하는 동작이 거의 없었던 것, 리프팅 동작에서의 높이와 두 팔을 활용한 움직임 라인, 적당한 어깨 턴과 회전 동작, 컨택에 의한 움직임 조합에서도 댄서들에게 각기 다른 차별성을 요구한 것이 그런 예이다. 2인무 속 댄서들의 춤은 마치 사랑이나 서로에 대한 감정이 아니라, 더 성숙한 자아가 힘겨워 하는 자신을 괜찮다고 격려하듯 바라보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안무가의 차별화 시도는 솔로 파트에서는 더 정교해졌다. 여성 무용수와 남성 무용수의 전체적인 동선을 다르게 하거나 두 여성 무용수의 춤에도 그 중심을 다르게 안배했다. 박정은의 춤에서는 둥근 동선과 통통 뛰는 바운스가, 김지영의 춤에서는 바닥과 수직상태에서 위, 아래로 사지를 많이 뻗치면서 움직이도록 한 것이 그런 예들이다. 이 들의 솔로 춤은 주로 사선을 그렸던 두 남성 무용수와의 움직임과 절묘하게 매칭 되었다.

김지영과 이승현의 안정된 파트너십과 윤별과 박정은의 움직임 질감도 작품의 완성도에 힘을 보탰다. 전반부의 2인무 동작에 비해 후반부에서 남녀 무용수들의 2인무는 파트너링에서 더욱 정교해졌고, 컨택에 의한 움직임의 연결은 더 크고 다채롭게 변주되었다. 윤별은 〈돈키호테〉 등 화려한 테크닉의 작품에서 보아오던 기교적인 댄서의 이미지를 탈피했고, 박정은은 현대적인 질감의 컨템포러리댄스가 특히 잘 어울린다는 것을 입증해보였다. 이승현의 격조 있는 움직임과 특유의 감성에 여전히 아름다운 바디라인, 발끝과 손끝까지 에너지의 흐름을 전달하는 김지영의 농익은 춤 역시 숨어있던 댄서들의 매력이 안무가에 의해 새롭게 발현된 순간이었다.




  

〈치카치카〉에서 박정은과 윤별의 2인무 ⓒ김윤식





〈산책〉에서 김지영과 이승현의 2인무 ⓒ김윤식 





김지영과 윤별, 이승현의 3인무와 김지영, 이승현의 2인무 ⓒ김윤식




이날 김지영은 외국의 컴퍼니에서 무용수로 활약했던 두 명 안무가의 작품에 출연했다. 김용걸과 김세연이 그들이다. 파리오페라발레단에서 활동했던 김용걸이 안무한 〈산책〉에서는 이승현과 함께 쇼팽의 음악(피아노 신재민)​ 섬세함과 기교적인 움직임을 결합한 춤으로 서막을 열었고, 네덜란드 국립발레단 시절 함께 활동했던 김세연의 〈치카치카〉에서는 세 명의 무용수들과 함께 피날레를 장식했다.


스위스 취리히발레단, 네덜란드 국립발레단, 스페인 국립발레단에서 수석 무용수로 활동했던 김세연은 여러 안무가들과 많은 작품을 작업한 이력이 말해주듯 이번 〈치카치카〉 외에도 그동안 선보인 국내 공연에서 다양한 움직임 조합과 이미지 만들기, 음악에 대한 해석력과 춤의 조합에서 안무가로서의 남다른 감각을 선보이고 있다.

이번 공연은 마포아트센터와 김지영, 그리고 김지영의 매니저가 함께 기획에서부터 제작까지 참여했다. 이즈음 들어 컴퍼니와 무용축제, 그리고 공공극장이 공동으로 춤 공연의 제작을 늘려가는 추세는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지난해 창무국제예술제와 강동문화재단, 그리고 4월에 있을 모다페와 대전문화예술의전당, 그리고 오래 전부터 시행되고 있는 제주국제즉흥춤축제와 제주돌문화공원의 협업 등이 그런 예들이다. 이번 '김지영의 ONE DAY'의 경우, 여는 공연과 다르게 언론의 보도가 활성화 된 사례 역시 이 같은 협업의 결과이다.

〈치카치카〉 전 1부 순서에 선보인 5개의 소품 공연에서, 코로나 확진자로 인한 출연자 교체와 일부 댄서들의 컨디션 난조로 기대한 만큼의 공연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 옥의 티였지만, 발레 안무가들이 그리 많지 않은 국내 상황에서 외국의 메이저 발레 컴퍼니에서 활약했던 댄서 출신 유능한 안무가들과의 협업 작업을 시도한 예술감독으로서 김지영의 선택은 주목할 만했다.

장광열

​춤비평가. ​1984년부터 공연예술전문지 〈객석〉 기자, 편집장으로 20여 년 활동했다. 춤비평집 『변동과 전환』  『당신의 발에 입맞추고 싶습니다』 등의 저서가 있으며, 1995년 무용예술을 중심으로 한 국제교류를 위해 설립한 국제공연예술프로젝트(ipap) 대표, 한국춤정책연구소장, 서울과 제주국제즉흥춤축제 예술감독 등을 맡아 춤 현장과 소통하고 있다. 숙명여대 무용과 겸임교수로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다.​​

2022. 4.
사진제공_김윤식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