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홀라당!〉
K-Pop 문화에 잠식당한 춤추기의 욕망, 커뮤니티댄스의 후퇴
김명현_춤비평가

현재 한국무용계의 대표적 대중스타는 김보람 예술감독이 이끄는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다(이하 앰비규어스). 이날치 밴드와의 협업으로 만든 <범 내려온다>의 히트로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이들과 함께 춤추고 싶어하는 일반인들의 요청은 늘 앰비규어스의 유튜브 채널에 넘쳐난다. 그래서일까 앰비규어스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중장기창작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일반인 참가자를 참여시키는 프로젝트를 구상했다. 사공이 많으면 산으로 간다는데 함께 산으로 가자는 슬로건을 내세운 앰비규어스의 집단지성 프로젝트는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를 통해서 참가자를 모집했고 40여명의 지원자를 안무, 음악, 음향, 무대기술, 조명, 의상, 홍보·마케팅 등 모두 6개 파트로 나눠 공연제작 전반에 참여시켰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의 준비과정은 유튜브 채널에 깨알같이 차곡차곡 업로드되었다.

중2 학생부터 40대 주부까지 다양한 세대와 직업을 가진 이들은 앰비규어스의 유튜브 채널 구독자 애칭인 ‘곶감’의 멤버들이다. <범 내려온다>를 통해 유명해진 앰비규어스가 범이라면 이들보다 더 무서운 구독자/관객이기에 ‘곶감’인 모양이다. 이들은 짙은 선글라스, 네온색 티셔츠에 반짝이 자켓, 알록달록 색동 원피스를 입고 흥겨운 리듬감의 몸짓을 장착하여 전문무용수와 비전문무용수가 함께 무대를 채웠다. <홀라당>이다(토월극장, 2월 18~20일). ‘홀라당’은 홀(Whole), 라(Like), 당(Dankeschön)을 조합한 것으로 ‘홀로 있는 게 좋아, 감사해! 모두 함께 가는 것도 좋아, 감사해!’라는 뜻을 담았다. 극단적인 개인주의의 시대이면서도 몰개성한 시대에 개인의 개별적 개성도 좋지만 함께 하는 것의 힘을 보여주는 무대를 보여주겠다고 했다.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홀라당!〉 ⓒSang Hoon Ok




<홀라당>은 크게 3개의 장으로 구성되었다. 막이 오르면 무대는 무채색의 실루엣으로 등장한 무용수들이 네온색 아래에서 감각적으로 움직이는 마치 앰비규어스가 광고모델로 활동한 바 있는 애플의 아이폰 광고를 보고 있는 듯한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리고는 짙은 선글라스, 네온 티셔츠에 반짝이 자켓, 알록달록 색동 원피스를 입은 12명의 비전문무용수와 8명의 전문무용수가 등장하여 PT체조인 듯도, K-Pop 댄스의 동작인 듯도 한 움직임 시퀀스를 보인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크게 구령을 하면서 같은 움직임 시퀀스를 반복한다.

처음에는 한 명씩 하다가 둘이 되고, 셋이 되고, 다섯, 일곱, 열둘, 스물이 된다. 8박자 10장단으로 구성된 같은 움직임 시퀀스가 반복적으로 길게 이어진다. 모두 니트 마스크를 뒤집어써 얼굴을 가리고 있어 누가 누군지 알 수 없다. 옷은 각자의 개성을 한껏 드러내지만 마스크를 씀으로써 얼굴을 감추고 모두가 익명의 존재가 되게 했다. 모든 예술 장르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는 마당에 굳이 전문무용수와 비전문무용수의 경계를 두지 않겠다는 의도다.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홀라당!〉 ⓒSang Hoon Ok




두 번째 장은 로켓 포탄이 거꾸로 매달린 것 같은 거대하고 웅장한 조명 장비가 내려와 무대를 압도하고 바닥에 그려진 원형의 공간에 20명이 분산되어 동작한다. 게임에서 들을 수 있는 뿅뿅뿅~ 하는 전자사운드와 애니메이션 캐릭터적인 움직임이 앞선 장에서와 마찬가지로 일정한 시퀀스로 반복된다. 조명은 다시 네온색의 화려한 둥근 조명으로, 다시 골드와 실버의 미러볼 조명으로 바뀌며 극장 전체를 무도장으로 변신시켰다. 그리고 그들이 일렬로 열을 맞춰 섰을 때, 무대는 그들을 프로시니엄의 중간 높이까지 들어올린다. 마치 거친 숨을 과장되게 몰아쉬는 K-Pop 스타들의 엔딩무대처럼 힙하고 패셔너블한 의상을 입은 20명의 헐떡이는 몸이 그야말로 공중부양까지 되면서 전시된다.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홀라당!〉 ⓒSang Hoon Ok






마지막 장은 스트릿댄스에서 특화된 춤 배틀이다. 두 편으로 나뉜 무리들은 처음에는 한 명씩 나와 나중에는 무리를 지어 춤대결을 펼친다. 이때도 전문무용수와 비전문무용수 사이의 구분은 두드러지지 않는다. 앞선 두 장에서 보았던 춤의 특질과도 다르지 않다. 전문과 비전문의 경계를 과도하게 없애고자 한 부작용일까 배틀임에도 불구하고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배틀이 추구하는 승부를 내는 목표가 애초부터 없기 때문에 그저 정해진 순서대로 등장해 정해진 몸짓을 시전하며 갈등도 없는데 어깨동무를 하며 화해의 몸짓과 함께 경계없는 평화로움을 보여준다. 훈련되지 않은 몸에서 나오는 흥과 신명으로 전문무용수의 세련되고 화려한 기교를 이겨먹는 일반인 참여자의 패기와 끼도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이미 ‘전문가’의 우월함과 ‘비전문가’의 열등감을 전제하고 있는 행동이며, 겉으로는 ‘경계 없음’을 내세우지만 속으로는 이미 ‘위계’를 전제하고 있는 구성이다. 그래서 그들은 즐거울지 모르나 관객은 앞에서 보았던 동작들이 다시 지루하게 펼쳐지는 그들만의 리그를 소외된 채 바라보아야 했다.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홀라당!〉 ⓒSang Hoon Ok




<홀라당>은 춤으로 하나 되는 춤의 공동체를 구축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커뮤니티댄스다. 그런데 앞 세대의 커뮤니티댄스가 같은 역사적 경험을 공유했거나, 사회적 매뉴얼을 습득한 세대와, 직업, 성별로 나뉘어 구성되었다면 <홀라당>의 멤버들은 뉴미디어, 즉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 의해 매개되어 세대도 다르고, 직업도 다르고, 성별도 다른 이들로 구성되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이들을 하나의 커뮤니티로 묶는 공통적 요소는 춤이고 오직 춤만이 그들의 존재 이유다. 음악도 아니고 미술도 아니고 오직 춤을 추고 싶어서 모였고, 춤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한 ‘무도병’이 <홀라당>을 구성한 원동력인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춤추기의 욕망을 시전한 <홀라당>은 앰비규어스표 무대를 기대한 관객들의 기대를 홀라당 깨버렸다. 이들이 보여준 춤은 K-Pop이 지배하고 있는 한국의 대중문화 현상 속에서 ‘칼군무’로 요약되는 포드주의적 무의식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이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를 충실히 수행하며, 구획된 공간을 벗어나지도 않고, 생산적이고 기능적인 몸짓에서 탈주하지도 않는다. 키가 크고 작고, 뚱뚱하고 날씬하고의 차이는 있어도 반짝이는 의상과 여덟 박자의 구령아래 일상의 몸짓마저 규격화하고 기능화한 동작들로 춤을 만들어 그것을 한 치의 리듬감에서 벗어남 없이 수행한다. 이전 세대의 커뮤니티댄스가 서글픈 한국사 속에서 부정당한 몸짓을 길어 올리는 고고학적, 계보학적 작업이라면, <홀라당>은 그런 한국사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의, 미디어가 투영하는 반짝이는 몸짓을 복제하는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의 욕망에 충실하게 복무한다.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홀라당!〉 ⓒSang Hoon Ok




<홀라당>은 일반인 참가자들이 왜 그토록 춤을 추고 싶어하는지, 그 알 수 없는 ‘무도병’의 근원도 징후도 드러내지 못했다. 오직 춤을 통해서만 드러낼 수 있는 그들의 개성과 이야기는 온데간데 없고 화려한 조명아래 반짝이는 의상을 입고 얼굴을 감춘 채 복제된 몸짓만 드러내는 ‘힙하고 싶어’하는 욕망의 전시로 끝나버렸다. 무용을 전문적인 직업의 영역으로 추구하지 않는 이들이 굳이 유명 예술가를 선택하여 함께 춤추고자 한 춤추기의 욕망이 ‘집단지성’, 혹은 ‘경계 없음’, 혹은 ‘힙하다’와 같은 그들 주변을 배회하는 유령 언어에 의해 억눌린 것은 아닌가? 이로 인해 춤추기의 욕망이, 춤을 통해 나를 드러내고자 했던 욕망이 그저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의 욕망에 머물게 된 것은 아닌가.

그동안 커뮤니티댄스를 주도했던 것은 ‘힐링’ 코드다. 그리고 그 주요 대상이 중년의 주부계층이었기에 커뮤니티댄스를 그저 소외된 자아를 치유하기 위한 민간요법 정도로 치부하며 예술적 가치를 폄하하기도 한다. 그러나 힐링은 춤을 통한 자아 찾기 여정의 결과로서 나타난 기능적 효과에 부여된 용어일 뿐이다. 커뮤니티댄스가 추구하는 것은 사회로부터 부정당하고 배제되고 억압된 것들을 ‘막춤’이라는 몸짓을 통해 귀환시킴으로써 자아를 발견하고 완성하는 자기-서사의 글쓰기다. 그것이 2000년대 초반부터 무용계에 불어 닥친 자기가 자기를 이야기하는 ‘자기서사’(autoethnography) 붐을 이끌어간 힘이다. 그런 자기서사를 통한 치유의 경험이 힐링을 당시 커뮤니티댄스의 핵심과제이자 가치로 인식되게 한 것이다.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홀라당!〉 ⓒSang Hoon Ok




그리고 예술가는 오랜 시간 사회 문제를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시선을 제시함으로써 해결책을 찾아내도록 촉진하면서 ‘힐러’로서의 역할을 수행해 왔다. 앰비규어스도 힐러로서의 역할을 통해 대중적 인기를 확보했다. <범 내려온다>로 유명해지긴 했지만 그들은 전통을 소재로 여러 작업을 해왔으며 ‘살아있는 전통’을 앰비규어스의 예술적 가치로 내세운다. 무겁고 어렵고 고리타분한, 어쩌면 죽어있던 전통을 따라서 노래 부르고 따라서 춤추고 싶은 살아 숨쉬는 전통으로 소생시켜 현재의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 죽어있는 것에 숨을 불어넣어 소생시켰으니 힐러보다도 더 한 마술적 힘을 가졌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예술감독의 역할을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김보람 예술감독은 안무의도에 대한 질문에 “최대한 곶감들의 의견을 잘 반영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고 전했다. 여기서 예술감독의 역할이 ‘서포터’의 역할에 기울어 있음을 엿보게 된다. 설사 일반인 참가자들이 원한 바가 그와 같더라도 비전문인들에게 예술적 경험의 장을 마련하고 그들의 의견을 충실히 구현해주는 역할에 그쳐서는 안 되는 것이다. 예술감독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비예술적인 것으로부터 예술성을 창안해 내는 사람이다. 예술감독의 역할은 ‘경계 없애기’의 전략이 봉제선이 보이지 않도록 같은 색으로 채색하는 것이 아니라, 봉제선이 하나의 미학적 전략이 되어 빨주노초파남보가 그라데이션으로 변화하듯 자유로운 넘나듦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김보람 예술감독에게 기대하는 것은 경계선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확장시키면서 새롭게 창안하는 것이다. 미디어에 의해 매개되는 커뮤니티의 시대에 새로운 춤의 형식과 춤의 공동체를 창안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김명현 

학부에서는 한국무용을, 석사과정에서는 예술경영을, 박사과정에서는 문화콘텐츠를 전공했다. 무용 작품의 기획에서부터 제작, 생산, 유통, 비평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에서의 언어의 작동에 관심이 있다. 팟캐스트 플랫폼 네이버 오디오 클립에서 〈심플리 댄스〉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

2022. 4.
사진제공_Sang Hoon Ok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