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김치앤칩스 〈콜렉티브 비해비어〉
빛과 거울로 그리는 타자-되기의 욕망
김명현_춤비평가

한국인 미디어 아티스트 손미미와 영국인 앨리엇 우즈Elliot Woods가 2009년 결성한 다원예술 그룹 김치앤칩스의 첫 현대무용 작품인 〈콜렉티브 비해비어〉(Collective Behavior)가 공개되었다(서강대 메리홀, 1. 21-22.). 거울과 빛을 이용하여 독특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화제의 아티스트 그룹이 만든 현대무용이었기 때문인지 극장은 춤작품 현장치고는 보기 드물게 인파로 가득했다. 작품은 2018년에 덴마크의 안무가 시몬느 뷔로드Simone Wierøed와 함께 아이디어에 착안하였고 2019년 한국-덴마크 수교 60주년 기념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서울무용센터에서 오디션을 통해 무용수를 선발하고 네덜란드 코펜하겐에서 첫 쇼케이스를 열었다. 그 후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으로 국제교류와 공연활동에 제약을 받아 주춤했다가 2022년에야 완성작으로 공개된 것이다.

김치앤칩스는 그동안 거울과 빛을 이용하여 실재와 가상의 관계를 실험하는 작품을 발표해왔다. 2016년작 〈라이트 베리어〉(Light Barrier)는 거울에 반사된 빛으로 허공에 그림을 그리는 형식의 미디어 아트였다. 2018년 작 〈헤일로〉(Halo)는 태양의 궤도를 따라 움직이는 99개의 로보틱 거울들이 물안개로 태양빛을 반사하고 그 반사된 빛줄기가 허공에 원을 그리며 또 하나의 태양을 만들어내는 작업이었다. 2021년 작 〈응시〉는 빛의 굴절을 거의 만들지 않아 실재의 모습을 왜곡 없이 반사하도록 만든 특수 제작 거울을 이용하여 관람객이 거울 속에 비친 수많은 자신을 마주하며 응시의 주체와 대상 사이의 관계를 찰나와 무한대의 시차를 오가며 무한한 자기 복제를 경험하도록 하는 작품이었다. 이들의 실천적 예술 개념인 ‘허공에 그리기 drawing in the air’를 보여주는 작업들이라 하겠다.




 

김치앤칩스 〈콜렉티브 비해비어〉 ⓒKimchi and Chips




〈콜렉티브 비해비어〉도 이와 같은 작품 경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번에도 일반 거울full mirror, 반거울half mirror, 마일라mylar라고 하는 거울효과를 만들어내는 천을 이용하여 빛의 굴절, 반열림과 반닫힘의 효과와 착시를 통해 개인과 공동체, 주체와 대상 사이의 관계를 역동적인 움직임으로 만들어냈다. ‘콜렉티브 비해비어’는 한 사회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만들어내는 집단적인 움직임을 의미한다. 그런데 ‘비해비어’는 단순한 운동적 수행이 아니라 사회적 질서에 편입되는 행동과 사회구성원으로서 마땅히 갖추고 있어야 하는 태도, 즉 사회화된 몸의 언어를 의미한다. 따라서 콜렉티브 비해비어가 전제하고 있는 것은 선행하는 사회적 행동을 배우고 익히는 타자-되기다. 타자-되기의 과정은 주체가 상상계로부터 상징계로 진입하는 과정이고 거울은 주체가 자신을 객관화하기 위해 동원하는 장치다. 그러므로 〈콜렉티브 비해비어〉가 거울을 동원하는 것은 필연적이라 할 것이다.

공연은 긴 암전으로 시작되었다. 자연의 소리를 기반으로 한 감각적인 사운드가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가운데 오랜 시간 관객을 암전 속에 머무르게 하여 어둠에 익숙해지도록,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빛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3명의 무용수(전보람, 전우상, 송윤주)가 아주 작은 라이트를 들고 등장했다. 무용수들의 복잡한 움직임 시퀀스가 이어지는 가운데 라이트는 점등과 소등을 반복하여 관객들이 무용수의 몸과 움직임의 대략적인 윤곽만, 국소 부위만 선명하게 볼 수 있게 했다. 이어진 장면에서는 검은 천이 천장에서부터 길게 내려와 작은 사각의 공간을 만들었다. 이 천은 마일라라고 하는 안에서는 밖을 볼 수 없지만 밖에서는 안을 들여다볼 수 있게 만든 것으로, 이 검은 장막은 핸드폰의 검은 액정 스크린처럼 그 안에서 움직이는 무용수 전보람을 홀로그램 같은 환영으로 만들었다. 전보람의 건조한 움직임은 기계도 아니고 인간도 아닌 사이보그적 감각을 전달했다.




 

김치앤칩스 〈콜렉티브 비해비어〉 ⓒKimchi and Chips




이 작품의 가장 핵심적인 장면은 압도적인 시각효과를 드러낸 마지막 거울장면이었다. 무대의 맨 앞 두 장의 반거울이 있고, 그 뒤에 세 장의 반거울이 또 있고, 무용수들을 그 사이에 위치했다. 무용수들은 번갈아가며 위치를 이동하여 각각의 거울 앞에서 동작을 수행했고 그들의 모습은 가장 뒤에 설치된 무대 전체를 가로지르는 전체 거울을 통해 역동적인 움직임을 만들어냈다. 여섯 장의 거울이 3중으로 겹쳐진 공간 구조에서 아주 치밀하게 계산된 빛의 움직임, 점등과 소등의 타이밍이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어지러움을 느낄 정도로 현란한 시각적 움직임으로 만들었다.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일상생활에서 흔히 느끼게 되는 싫음, 좋음, 미안함, 거북함 등의 감정을 표현하는 제스처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 움직임들은 움직임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기보다는 이미지적인 변화에 더 중점을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1~15번까지의 동작들로 만들어진 시퀀스가 1분 30초 길이의 분량이 된다면 그것을 음악적 리듬에 맞추어 1~3번까지는 1번 무용수가 4~7번까지는 2번 무용수가 진행하는 식으로 시퀀스를 분할했고, 점등과 소등의 타이밍도 이 사운드의 리듬에 맞춰 프로그램되었다. 무용수는 거울 앞에 서 있을 뿐이지만 조명과 특수한 거울들은 그 모습을 굴절시키고 반사하여 끝없는 이미지의 복제를 만들어내면서 심지어 그것들이 이리저리 휘어지고 반대의 상을 만들어내면서 스스로 역동적인 운동성을 만들어 내도록 했다.




 

김치앤칩스 〈콜렉티브 비해비어〉 ⓒKimchi and Chips




이 작품이 시각예술이 아닌 춤예술로서 의미를 가진다면 무용수의 몸을 떠난 운동성에 있을 것이다. 춤예술이 그 매체적 본질로 삼았던 움직임과 운동성은 현대 무용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실험 주제이다. 90년대 유럽의 무용가들이 몸과 움직임을 분리시킴으로써 몸을 춤예술의 매체로서 중심화했다면, 2020년대의 춤예술의 실험 주제는 운동성에 있는 듯하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이 운동성, 즉 모빌리티에 대한 관심은 예술의 각 분야로 퍼지고 있는데 춤예술 또한 무대 공간이 2차원의 디지털 세계로 확장되면서 미디어나 기술과 결합하여 새로운 운동성을 만들어내는 것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무용을 만들어내는 방법인 코레오그래피choreography에 대한 개념적 접근이 더 한층 심오해진다. 그동안 코레오그래피에서 ‘그래피’는 쓰기로서의 라이팅writing이란 개념이었다. 이 용어가 처음 등장했던 17세기에는 ‘종이에 쓰기’를 의미했던 것이 20세기에는 ‘공간에 쓰기’로 이동했다. 〈콜렉티브 비해비어〉가 보여주는 그래피는 쓰기보다는 ‘그리기’에 가깝다. 빛으로 그리는 라이팅lighting이라 할 것이다. 이는 김치앤칩스가 추구하고 있는 실천적 개념인 허공에 그리기drawing in the air 개념과 맞닿는 것이기에 이들의 도전이 〈콜렉티브 비해비어〉에서 멈추지 않을 것이라 예감하게 한다. 1990년대 이후 무용으로부터 분리되어 나온 코레오그래피가 하나의 독립된 장르가 되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 이즈음에 〈콜렉티브 비해비어〉는 확신의 한 방울을 더해준다.

또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춤계에서 처음 시도된 NFT(대체불가능토큰)의 발행이다. 김치앤칩스가 NFT를 발행한 것은 티켓 판매 대금의 90%를 지원기관에 지불해야 했기 때문이다. 티켓을 파는 것보단 무료공연을 통해 많은 관객을 모집하고 NFT를 판매하여 수익금을 높이는 것이 유리하다 판단했기 때문일까 이런 전략을 취했다. 그리고 이것의 지속적인 확장을 위해 자체 NFT 플랫폼인 Toi, Toi, Toi도 구축했다. 이것은 대규모의 제작비를 국가지원이나 기업후원 없이 수행하기 위해 드로잉이나 콜라주, 인쇄물 등을 판매하여 스스로 경비를 벌어서 충당했던 대규모 공공예술 프로젝트로 명성이 높았던 장-클로드와 크리스토(Jeanne-Claude & Christo)의 자기 펀딩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여타의 것들과 타협하지 않는 예술 행보를 위해 예술 소비자가 직접적으로 프로덕션을 지원하기를 바라며 플랫폼를 구축하고 있다고 한다. 나도 〈콜렉티브 비해비어〉의 NFT를 구매했다. 비평가도 경제적 독립이 어려운 때문에 NFT를 통해 수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다. 단지 춤계 최초의 NFT 발행이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가는지 그 추이를 지켜보기 위해서다. 비평가가 소장했었다는 이유만으로 토큰의 가격이 상승하는지 두고 볼 일이다. Cross your fingers!!!

김명현 

학부에서는 한국무용을, 석사과정에서는 예술경영을, 박사과정에서는 문화콘텐츠를 전공했다. 무용 작품의 기획에서부터 제작, 생산, 유통, 비평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에서의 언어의 작동에 관심이 있다. 팟캐스트 플랫폼 네이버 오디오 클립에서 〈심플리 댄스〉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

2022. 3.
사진제공_Kimchi and Chips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