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반세기 역사 피상적 나열에 맴돈 지성의 빈약
국립발레단 50년사, 김경희 지음, 국립발레단, 402쪽, 2012. 9.
김채현_본 협회 공동대표 / 무용원 교수

 

 

 

 



 국공립 단체, 역사에 빛을
 

 국립발레단이 ‘국립발레단 50년사’를 출간하였다. 국공립 춤 단체의 연혁을 담은 자료집이 드문 터에 ‘국립발레단 50년사’는 반가움으로 다가온다. 일반적으로 국공립 춤 단체의 연혁을 창고 속에 묵히지 않고 빛을 보도록 함으로써 기대되는 바는 다양하다. 해당 단체에 대한 연구를 활성화시킬 것은 물론, 해당 단체나 장르, 인물에 대해 이해를 깊게 혹은 새롭게 하여 여러 모로 긍정적인 효과를 낳을 것이다. 때문에 단체 연혁을 창고 속에 방치하는 것이 관행처럼 되다시피 하고 또 이를 당연시하는 듯한 풍토, 특히 해당 단체의 그러한 인식은 시정되어야 옳다.

 올해는 국립발레단이 국립무용단 이름으로 출범한 날로부터 50주년이고 ‘국립발레단 50년사’는 이를 기념하여 출간되었다. 이 책은 당연히 초대 임성남 단장 시기부터 지금의 제6대 최태지 예술감독 시기까지의 연혁을 서술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그리고, 책의 출간사와 해외 유수 발레단에서 국립발레단에 보낸 축하의 글, 집필 기준이 서두에 게재되었다. 후반부에는 여러 자료가 수록되었다. 먼저 부록에 정기공연 목록, 정기공연 작품 분류표, 역대 주역진 명단, 역대 지도위원, 이사진, 자문위원 명단 등이 수록되었다. 이어 원로 박용구 선생이 지난날 국립발레단 공연 팜플렛에 기고한 4편의 글이 특별기고 제목으로 게재되었다. 끝으로 역대 단장들의 회고담, 25주년 창단 기념 좌담회와 50주년 창단 기념 좌담회, 현재의 국립발레단 단원, 스탭, 이사회, 운영자문위, 후원회 명단이 수록되었다. 국립발레단 50년 역사는 그처럼 다양한 편집 항목으로 정리될 만큼 이제 와서 짧지 않게 느껴진다.

 

 

 평면적 소개로 관심 지속 한계

 공연 단체의 역사 즉 연혁을 소개하는 방식은 다양하게 상정될 수 있다. 그 연혁을 알리기 위해 간혹 배포되는 화보집처럼 단출하게 처리되는 것이 가장 소박한 방식일 텐데, 국립발레단 50년 역사라면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아무튼 ‘국립발레단 50년사’는 각 역대 단장의 시기를 순차적으로 싣고 또 각 단장 시기마다의 활동 역시 순차적으로 서술하였다. 일반적으로 채택하는 무난한 방식이어서 우선 이 책은 읽기 편하고, ‘국립발레단 50년사’가 있어 국립발레단을 더 가까이 하게 된다.

 현대사적 기반이 탄탄하지 않은 춤계를 염두에 두면 국립무용단, 국립발레단 50년의 의의는 각별하다.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국립발레단 50년사’ 책장을 넘기면 각 역대 단장 시기의 활동이 의외로 평면적으로 그리고 단조롭게 서술되어 있어 당시 공연 참가자들이 아니라면 읽어가는 데 우선 인내심부터 필요한 것 같다. 일례로 1977년 국립발레단이 임성남 재안무로 국내 초연한 <백조의 호수> 서술 부분을 살펴보자. 이 공연의 의의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의미심장하다. 이 책은 이 공연에 대한 서술을 모두 4개의 문단으로 처리하였다. 첫 문단에서는 임성남 단장의 소감, 두 번째 문단에서는 프로그램 특별 기고란에서 정병호가 발레학교 설립을 강조한 내용, 세 번째 문단에서는 국내 초연 당시의 주요 배역, 끝으로 네 번째 문단에서는 이후 임성남 단장 재임시 <백조의 호수> 공연과 주요 배역을 소개하였다. 그리고 여기서의 서술은 당시 프로그램의 내용을 인용한 것이 전부라 해도 무방하다.

 ‘국립발레단 50년사’에서 특히 역대 단장 시기들의 공연작들에 대한 서술은 국내 초연 <백조의 호수> 서술 방식과 대동소이하게 처리되었다. 이런 서술들에서 프로그램의 내용을 인용한 것이 문제인 것은 아니며, 다만 매 공연이나 활동(아니면 적어도 중요 공연이나 활동)에 대해 해설 또는 부연 설명이 제대로 가해지지 않은 점은 마땅히 재고(再考)되어야 한다. 50년사를 제대로 서술하는 것의 기준이 확정될 수 없는 이치라 하더라도, 공연이나 활동을 주로 인용된 프로그램 내용에 의지해서 소개하고 해설이나 부연 설명이 없거나 미약한 점은 이 책의 큰 흠결이 아닐 수 없다. 다시 말해 50년 역사를 재구성하는 입체성은커녕 제각각의 공연과 활동은 단편적으로 분산 서술되었다. 물론 책 후반부에 덧붙인 역대 단장들의 회고담이 이를 어느 정도 보완해줄 것으로 기대될지 모르겠지만, ‘국립발레단 50년사’는 국립발레단의 과거를 공적 시각에서 담아야 하므로 회고담이 보완해주는 구실에는 역시 한계가 있다. 

 




 

 '국립발레단의 기적', 뒷받침할 서술 요구돼
 

 국립발레단은 국가를 대표하는 공연 단체이다. 그런 단체의 연혁에서 가장 중시될 바는 작품인 것이며, 지난 50년간 한국의 공연 추세에 비추어 보면 더욱 그러하다. 공연작들을 역사(국립발레단의 50년 전체 역사) 속에서 소개한다면 그 양식적 특성 혹은 변별성에 준해 소개하는 것이 기본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국내 초연 <백조의 호수>에 대한 위의 서술 사례가 대표적이듯이, ‘국립발레단 50년사’는 국립발레단 역사에서 중요하거나 의의가 큰 공연작들에 대해서마저 양식적 특성이나 변별성을 제대로 서술하지 않거나 놓치고 있다.

 다시 말해, ‘국립발레단 50년사’에 소개된 국립발레단의 개개의 공연작들을 읽다보면 국립발레단 내부의 예술적 맥락 속에서조차 파악하기가 힘들고, 국립발레단 외부의 당대 춤계의 경향·흐름·상황에 비추어 국립발레단을 파악하기는 더더욱 불가능하다. 여기서 후자의 경우에는 국립발레단이 국내에서 왜 중시되어야 하는지, 당대 상황에서 어떤 특정의 어려움이 컸었는지 그 이유를 판별하기가 애매해진다. 말하자면 공연작들과 역대 단장 활동 소개에서 국립발레단의 내부적·외부적 맥락이 결여된 상태에서 각 공연작과 활동이 제각각 피상적으로 서술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국립발레단 50년사’가 독자들의 관심 또는 흥미를 유발할지부터 의문이다.

 게다가 국립발레단 50년 역사에서 2000년 1월 재단법인화는 일대 전기를 이루는 중대사였음에도 불구하고 본문에서 그에 대한 서술은 불과 몇 줄에 그쳤다. 이런 서술 태도에서는 역사에 대한 무감각마저 엿보인다. 책 서문에서 저자는 “지난 50년, 우리 국립발레단의 역사가 ‘기적의 역사’이듯, 그 시작부터가 ‘기적의 탄생’이었으며, 이후 ‘기적의 발전’이었다”고 밝혔다. 저자의 이러한 인식은 우선 존중되어야 할 터이고 공감을 살 만한 점도 없지 않겠으나, 실제 기술된 내용이 이를 설득력 있게 뒷받침하는 것 같지는 않다.

 지난 50년간 현대 한국의 춤 혹은 춤 역사 그리고 국립발레단을 서술한 단행본이나 자료는 이제 적지 않을 것으로 안다. 반면에, ‘국립발레단 50년사’처럼 국립발레단의 내부적·외부적 맥락이 결여된 서술에 안주한다면 그 같은 자료들은 그다지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욱이 국립발레단의 공연과 활동을 대상으로 매우 많이 양산되었을 평문 자료도 거의 인용되지 않았다. 단적으로 말해, 참고문헌 란에 소개된 단행본, 시평, 평문이 고작 18점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이 책의 빈약성을 대변한다고 생각된다. 국립발레단이 우여곡절 끝에 쌓아온 역사가 과연 이렇게 빈약하게 기술되어도 좋단 말인가? 50년 역사에서 해당 단체에 관한 문헌이 그 정도일 뿐이라면 춤계의 나태함 아니면 역으로 해당 단체의 낮은 성과 때문이라 생각하기 십상이다.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은 터인지라, 국립발레단 반세기 역사 관련 소개 참고문헌(단행본, 시평, 평문) 합산 18점은 춤계와 국립발레단 모두를 실상과 달리 초라한 지역으로 오해받게 만드는 엄청난 부작용마저 유발할 것 같다.
 

 



한국적 발레 개념 설정, 가급적 명료해야

 ‘국립발레단 50년사’는 ‘한국적 발레’라는 조금은 새로운 명칭을 사용하여 국립발레단의 역사를 재구성하려는 열의를 보였다. 이러한 시도는 어떤 점에서 필요하고, 그 타당성 여부를 떠나 중시되어야 한다. 이 책은 국립발레단 정기공연작들을 고전 발레(전막 또는 단막), 현대 창작 발레(전막 또는 단막), 그리고 한국적 발레로 3분하여 분류한다. 여기서 주목되는 바는 한국적 발레 용어로서, 그간 <왕자 호동> <처용> <춘향의 사랑> 등 임성남 단장을 비롯하여 근래에 이르기까지 국내 안무자들이 창작한 일부 공연작이 한국적 발레로 분류되어 있다. 그런데 일례로 <왕자 호동>을 ‘한국 창작 발레’(‘국립발레단 50년사’, 23쪽)라 명명한 점에서 한국적 발레가 한국 창작 발레의 동격 또는 상위 개념임을 짐작케 한다.

 그리고 1964년 6월 “주리 안무의 <푸른 도포>와 임성남 안무의 <허도령>이 발표되었다... 임성남은 ‘민족 발레’를 창조하고자... <허도령>을 발표했다. 이 두 안무자들은 각각 ‘코리언 발레’ ‘민족 발레’란 다른 용어를 사용했지만, 이들 모두 ‘한국적 발레’를 구축하고자 했다”(32쪽, 43쪽)고 서술한 대목에 이르면 한국적 발레가 민족 발레, 코리언 발레, 한국 창작 발레, 일부 창작 발레를 수렴하는 상위 개념임이 명확해진다. 참고로 1974년 <지귀의 꿈> 프로그램을 인용하면서 이 책은 “임성남은... 우리 민족성과 사상을 바탕으로... 창조적 민족 발레를 만들겠다는 취지로, 대본을 맡은 이두현은 국적성을 갖는 민족 발레를 창조해야 겠다는 신념으로, 작곡을 맡은 이남수는... 우리 것과 서양 음악 그리고 발레를 조화롭게 융합하여... 작품 창작에 임했다”(45쪽)고 소개하였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창작 발레라는 명칭이 범용(汎用)되었고, 그 개념과 내용은 대개 이 책에서 사용하는 한국적 발레와 유사하다. 이 책에서 박용구 선생도 <왕자 호동>을 창작 발레라 지칭하였다(329쪽).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새로운 명칭 혹은 개념을 제시하고 있으며, 특히 국립발레단에서 발간한 책에 국립발레단 스스로 그간의 작품들에 새 명칭을 붙이고 있다는 사실은 꽤 주목을 요하는 대목이기도 한 것이다. 한편, 이 책에서는 국내외 안무가들에 의해 창작된 작품을 현대 창작 발레로 분류하였다. 예컨대 임성남 안무작 <카르멘>과 <오줌싸개의 향연>, 김학자 안무작 <길가에서>, 제임스 전 안무작 <오델로>,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 안무작 <로미오와 줄리엣>가 <도베 라 루나>, 보리스 에이프만 안무작 <차이콥스키> 등이 이 책에서는 현대 창작 발레에 속한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는 국내인들에 의한 현대 창작 발레 가운데 소재나 음악 측면에서 한국적인 것일 경우 ‘한국적 발레’로 재분류되는 것 같다.

 앞서 소개한 대로 ‘국립발레단 50년사’는 국립발레단 정기공연작들을 고전 발레, 현대 창작 발레, 그리고 한국적 발레로 3분하여 분류하였다. 이 3분법 내에서 한국적 발레는 현대 창작 발레와 대등한 격으로 사용된다. 이와 함께 창작 발레 가운데 소재나 음악 측면에서 한국적인 것만 따로 가려내어 한국적 발레로 분류하는 것도 일관성이 있어 보인다. (이 책의 어느 부분에선 임성남의 작업 가운데 일부를 ‘한국적 창작 발레’(71쪽)로 명명하여 다소간 혼선이 없지도 않다.) 그간에 춤계에서는 창작 무용을 비롯하여 창작 발레 등의 명칭에 대해 많은 논의가 있었고 이제는 창작이라는 꼭지를 뗄 만한 시기가 아닌가 하는 분위기도 일부 있는 줄로 안다. 어쨌든 ‘국립발레단 50년사’는 국내외 안무가를 막론하고 고전 발레를 제외한 발레를 창작 발레로 명명하고 또 창작 발레 가운데 일부를 한국적 발레 혹은 한국적 창작 발레, 한국 창작 발레라 칭하고 있다.

 개념이 바로 잡혀야 방향도 바로 잡힌다는 차원에서 명칭 문제는 결코 소소하지 않다. 국립발레단이 세계를 향해 비약하는 데 있어 오늘날 한국적인 것을 현대적 발레 발상으로 수렴해들이는 것 또한 주요한 소재로 인식되고 있다. 이 점에서 창작 발레, 한국적 발레, 한국적 창작 발레, 한국 창작 발레 등으로 제시된 용어는 춤계 범위에서 재정리될 필요가 있다. 물론, 타당한 명칭을 구하는 일이 말처럼 용이한 것은 아니다. 이런 이유에서 한국적 발레 명칭을 사용하는 것이 일견 이해되는 한편으로, 한국적 발레의 개념이 이 책에서는 사실상 정의되지도 설명되지도 않아서 독자 스스로 그 개념을 구해야 하는 입장에 놓이게 되는 점은 그다지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다. 

 

 

 

 

 

 

 국립발레단 50년사 같은 공연 단체의 역사는 다양한 형태로 편집 출간될 수 있다. 에세이처럼 일반교양서처럼 아니면 학술서처럼... 심지어는 이북(e-book)처럼 상정될 만한 형태는 무척 유동적이다. 어떤 형태, 문체, 내용이든 그 50년 역사를 생동감 있게 살려 전달한다면 그로서 족하다. 하지만, ‘국립발레단 50년사’에서 50년 역사는 씨줄과 날줄로 엮이지 못한 채 피상적으로 나열되었다. 그래서 이 책은 마치 여느 공연 단체가 임의로 만들어도 양해되는 연례 보고서나 단편적 연감처럼 느껴진다. ‘국립발레단 50년사’가 출간되었다지만, 국립발레단 반세기 역사는 다시 조명되기를 기다리는 듯하다. 이 책의 출간을 두고 춤계 일각에서 오히려 춤 지성의 후퇴를 우려하는 것도 아주 무리는 아니다.

 

2012. 12.
사진제공_김채현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