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ing 즉흥 그룹 〈두번째 시도〉
탐구와 변형, 다국적 아티스트들의 크로스오버 즉흥
장광열_<춤웹진> 편집위원

 

 

 즉흥이 공연의 한 장르로 자리 잡은 이후 수년전부터는 유명 컴퍼니의 안무가들도 1시간이 넘는 공연을 즉흥으로 꾸미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목격되고 있다.
 베를린을 베이스로 하고 있는 샤샤 발츠의 경우 평자가 본 공연만도 몽펠리에 댄스 페스티벌 야외무대에서의 1시간 짜리 즉흥 공연과 2년전 드레스덴에서 열린 독일 탄츠 플랫폼에서 타악기 현악기 연주자들과 함께 샤우스필 하우스의 무대와 객석을 사용한 즉흥 공연을 펼쳤었다.
 이즈음 들어 공동 제작과 레지던시를 통한 춤 국제교류가 활성화되면서 다국적의 아티스트들이 공동으로 하는 공연이나, 춤이 중심이 되면서 다른 장르의 아티스트들이 조인하는 크로스오버 형태의 즉흥 공연 작업도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우리나라 춤계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어서 즉흥 워크숍 뿐만 아니라 공연 작업에서도 외국 아티스트들과의 즉흥을 통한 공동작업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2012년 프랑스, 미국, 한국의 아티스트들이 중심이 되어 다국적 크로스오버 그룹을 표방하고 만든 ing 즉흥그룹의 출범 역시 이 같은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지난해 서울국제즉흥춤축제에서 8명의 아티스트들이 공연한 <조율>(On Going Conversation)은 기다림을 메인 플롯으로 한 무용, 음악, 연기, 비디오 아트, 사진 등을 융합한 작업이었다.
 한국 무대에서 이들의 본격적인 두 번째 공연(9월 24-25일, 강동아트센터소극장 드림, 평자 24일 공연 관람)의 제목은 <두번째 시도>(The 2nd Try 'Going Ahead'). 4명의 댄서와 배우, 라이브 연주자, 비디오 아티스트, 희곡작가, 사진작가가 작업에 참여했다.

 



 이번 공연 출연자들의 면면을 보면 라이브 연주자가 교체된 것을 제외하면 지난해 <조율>에 출연했던 동일한 아티스트들이다. 이들이 표방한 작품의 내용은 대한민국에서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로 인해 남은 자들의 슬픔을 무대를 통해 떠나보내는 것. 언뜻 세월호 참사를 염두에 둔 작업임을 감지할 수 있었다.
 움직임을 동반한 5명의 퍼포머들은 메인 무대와 객석, 그리고 이층 발코니 객석까지 극장 공간의 구석구석을 활용했다. 무대 높이가 1미터도 되지 않은 메인무대 바로 아래 객석 앞자리 왼편 공간에 자리 잡은 연주자(우광혁)는 객석과 무대 사이의 일 미터 남짓한 공간을 활용한 Moving 연주로, 플래시의 불빛까지도 공연과 연계시킨 사진작가(옥상훈)도 이 공간을 통해 여타 퍼포머들과 소통했다.
 고악기 외에도 생활도구를 활용한 우광혁의 다양한 사운드 창출에 의한 댄서들의 즉흥적인 움직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등 놀이적인 요소들, 한국의 장례음악에 실린 독무(김삼진), ‘Happy Birthday" 등 퍼포머들의 대사. 흑백 톤이 곁들여진 비디오 영상 등이 어우러진 1시간 남짓한 무대는 즉흥 공연이 갖는 우연성과 예기치 않은 변주가 만들어내는 묘미가 쏠쏠했다.

 



 퍼포머들에 의한 컨택 즉흥이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점, 크로스오버를 표방한 만큼 접점에서 만들어지는 예술적인 감흥이 더욱 강렬하게 살아나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ing의 대표을 맡고 있는 최문애는 “ing 즉흥그룹은 구조적 즉흥(Structure Improvisation) 형식을 지향한다. 장르의 경계를 허물고 다국적 예술가들이 펼치는 즉흥 무대는 하나의 작품 주제를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틀을 먼저 구성한다. 예술가들의 영감, 움직임, 텍스트, 소리, 음악, 영상, 이미지들을 두고 사전 연구과정을 거친 뒤 바로 그 틀 안에서 즉흥적으로 자유롭게 풀어내는 방식이다”라고 작업과정을 밝혔다.
 ing 즉흥 그룹의 다음 일정은 오는 11월 프랑스 Chacun Ses Utopies 축제에서의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사진제공_옥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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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후 미니토크_ 참여 아티스트들의 한마디


김삼진_한국무용/즉흥

공연이 끝나 “통쾌하다” “후련하다”가 아니라 그동안 말로 하지 못하고 응어리처럼 가슴앓이 했던 것들,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것들을 몸으로 마음껏 물어본 느낌이었다.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 뿐만 아니라 국경을 넘어 해외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동참해서 울어주고 같이 공감하는 작업을 했다는 점에서 고마움을 느낀다. 아주 잠깐이지만 ‘위로를 받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Lortta Livingston_미국 컨템포러리/즉흥

공연을 마친 후에 내가 생각한 이 작품의 가치는 연결의 복잡성이다. 예술가간의 연결, 관객들과의 연결, 작품주제와 이야기 구성간의 연결 등등... 많은 연결고리들이 함께 모아져서 공연장 안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커다란 감동을 주었다고 느낀다. ING 그룹의 각각 구성원들은 ‘Going Ahead’ 라는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장르의 독특한 특성을 유지하면서도 복잡하게 잘 연계시켰고, 관객들 역시 이 같은 연계성에 공감할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최문애_한국 컨템포러리/즉흥

작업을 하면서 먼저 간 사람들의 아픔과 그리고 남은 자들의 감정을 좀 더 깊게 살펴 볼 수 있었다. 막연히 뉴스나 라디오에서 일어나서는 안 될 비극적인 소식을 듣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들의 입장에서 그 상황을 좀 더 깊게 들여다보고 표현하면서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이번 즉흥 공연을 통해서 먼저 간 사람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남은 자들의 상처를 조금이나마 치유할 수 있다면 좋겠다. 관객들도 모두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Claire Filmon_프랑스 컨템포러리/즉흥

공연을 마치고 나서 크게 세 가지 감정이 내 마음속에 남았다. 첫 번째는 즉흥작업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한국에서 10일 간의 강도 있게 진행된 작품 구성 과정 시 Iing 즉흥그룹 구성원들과 같이 보낸 시간에 대한 고마움, 공연이 끝난 후 느낀 ing 구성원들 간의 화합, 그리고 관객과 공연자들이 하나가 된 느낌이 그것이다. 나는 내가 무대 위에서 공연하면서 표현하고 싶었던 것들 또 내가 ing 그룹 작업을 하면서 경험한 소중한 감정들을 관객들도 같이 느꼈으면 한다.



Kara Miller_하와이/댄스 비디오

하와이에 살고 있는 내가 세월호 소식을 들었을 때 마음이 많아 아팠다. 시작부터 작년에 서울국제즉흥춤축제에서 우리가 발표했던 즉흥 작업과는 아주 다르게 리허설이 시작되었다. 나에게 작업은 내 인생의 도전과 같다. 우리는 삶에서 많은 것들을 위해서 만나고, 마주치고, 표현하고, 주고, 지지하고, 대항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서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사랑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작업한 공연은 말로 표현되지 못한 선물을 관객들과 공유하면서 치유의 과정을 도와줄 수 있는 독특한 능력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2014. 10.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