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경기도무용단 〈경합〉
춤 공연에서 스펙터클은 당연하지 않다
최찬열_춤비평가

경기아트센터(수원시 팔달구 소재)에서 있은(9월 30일~10월 3일) 경기도무용단의 〈경합〉(THE BATTLE, 競合, 안무 최진욱, 연출 정구호)은 1910년대의 수원 권번 기생의 삶과 일상을 소재로 이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새롭게 무대화한 춤 공연이다. 객석에 들어서면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무대와 객석을 가르는 대형 문짝이다. 메인 막이 있어야 할 자리에 7개의 문짝이 드리워져 있다. 문짝들은 창호지가 없고 전통 문양이 도드라져 보인다. 그리고 무대에서는 예비 기생들이 소리 수업을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경기도무용단 〈경합〉 ⓒ경기도무용단




객석에 불이 꺼지면, 무대의 상수와 하수 맨 앞에서 두 명의 주인공, 연희(이예닮 분)와 초희(이나리 분)가 걸어 나와 맞서서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한다. 이들이 퇴장하면서 무대가 열린다. 무대는 앞쪽에 넓은 공간을 마련하고 뒤쪽에는 길고 넓은 계단식 단이 설치되어 있다. 여백을 강조한 간결하고 시원스러운 무대이다. 권번의 아침이다. 무대 양옆에는 다리-막 대신에 각각 4개의 대형 문짝이 드리워져 있다. 막 잠에서 깬 어린 기생들이 몰려 나와 청소한다. 바쁘게 청소하던 기생들은 걸레를 이용해 춤을 추고, 장난도 치면서 밝고 상쾌한 아침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런데 여기서 춤과 놀이, 곧 퍼포먼스는 2차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 장면에서 무엇보다 눈에 드러나는 것은 춤과 놀이가 아니라 어린 기생들이 입고 있는 의상과 문짝, 그리고 문양이다. 연두색과 분홍색이 주조를 이룬 의상은 무대 전체를 은은한 분위기로 감싼다. 겉으로 확 드러나지 않고 아슴푸레하며 흐릿한 의상 색은 문짝과 의상에 새겨진 전통 문양, 연한 조명 빛 등과 어우러져 시각적인 볼거리를 만들어낸다. 이를테면 이 장면에서 춤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의상과 무대 세트, 그리고 조명 등이 전면으로 나섰다는 말이다. 퍼포먼스가 가진 몸적 힘을 드러내기보다는 스펙터클을 만드는데 주안점을 둔 공연임을 쉽게 간파할 수 있는 장면이다. 또한, 이는 이 공연이 안무가보다는 연출가에게 기운 작품임을 말해준다.




경기도무용단 〈경합〉 ⓒ경기도무용단




아침 청소가 끝나자 기생 수업이 시작된다. 수업은 예절 교육뿐 아니라 악가무(樂歌舞) 시서화(詩書畵) 일체를 익히는 시간이다. 기본 사위를 익히는 군무를 춘 후, 학생들은 장고춤과 검무, 화관무 등을 대형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춘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소고춤, 살풀이춤을 추며 기량을 뽐내는 이도 있고, 권번을 통솔하는 교장 선생과 강사들의 춤도 있다. 매일 매일의 수업과 일상은 반복되고, 무대 중앙의 회전 무대가 서서히 돌아가면서, 세월은 흘러가고, 어린 기생들은 성숙해 간다. 대형 문짝들이 다 사라지고, 조명기 대신 25개의 긴 직사각형 등이 매달린 조명 바텐이 내려와 중간 높이 정도에서 멈추면, 무대는 장터로 변한다.






경기도무용단 〈경합〉 ⓒ경기도무용단




장터에서는 풍물패가 놀고 있고, 몇몇 학생은 이를 구경한다. 우렁찬 풍물 소리와 함께 버나를 돌리는 등 각종 놀이가 펼쳐지고, 흥겨운 북춤과 소고춤 등이 어우러지면서 장터는 한층 시끌벅적하다. 여기서 기생들은 한 무리의 선비를 만나고, 이들은 한데 섞여 놀고, 눈이 맞은 두 쌍의 남녀는 풋풋한 사랑춤을 춘다. 스토리텔링은 지나치게 단순하고 쉽다. 플롯이 너무 허술하고 빈약하다는 말이다. 게다가 춤은 스토리텔링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지 못하고, 둘은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지 못한 채 겉돈다. 심지어 춤은 스토리텔링을 전하기 위한 도구로만 보이기도 한다. 또, 군무는 주로 질서 있게 늘어선 형태, 곧 2차원적 조형성을 만드는 데 주안점을 두는데, 이러한 춤은 단순한 전시 그 이상은 아니다.




경기도무용단 〈경합〉 ⓒ경기도무용단




드디어 경합의 날이다. 연희와 초희를 중심으로 검무 팀과 화관무 팀으로 나누어진 예비 기생들은 최고의 예인이 되기 위해 경합에서의 승리를 다짐한다. 무대에는 모든 예비 기생들이 질서정연하게 도열해 있고, 강사들과 선비들, 풍물패 등 모든 등장인물이 다 나와 있다. 마침내 화관무 팀의 승리로 춤 경합은 끝나고 공연은 절정을 향해 치닫는다.

피날레에서 연출가는 무대 메커니즘을 총동원해 물량 공세를 퍼붓는다.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곧 강렬한 스펙터클을 구축하기 위함이다. 무대 뒤, 그리고 양옆의 상수와 하수의 하늘-막과 다리-막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대형 문짝들이 웅장하게 걸려 있고, 모든 조명 바텐도 중간 높이 정도로 내려와 눈이 부시도록 다채로운 빛을 쏘아댄다. 또한 모든 등장인물이 입은 의상 색이 무대 위에 한꺼번에 노출되면서 휘황찬란한 볼거리를 만들어낸다. 남색과 옥색이 주조를 이룬 의상에 노란색과 빨간색 끈을 꼬아 만든 띠가 둘러쳐진 검은 모자, 그리고 금빛 띠로 포인트를 준 검무 복장과 빨간색이 주조를 이룬 의상에 꽃분홍색 족두리와 금색 장식이 새겨진 띠로 포인트를 준 화관무 복장이 관객들의 시선을 강하게 잡아끈다. 여기에 교장 선생의 검은색 의상과 지도 선생들의 쪽빛 의상들이 한데 모이고, 이들이 다 함께 군무를 추며 빙빙 돌 때 살짝 드러나는 연두색과 연분홍 속치마 색이 보태지면, 무대는 마치 모든 화려한 색이 뿌려진 현란한 화선지 같다. 여기서 마치 불꽃놀이처럼 관객들에게 잠깐 위로와 즐거움을 안긴다.




경기도무용단 〈경합〉 ⓒ경기도무용단




그런데 이 일련의 경향들, 곧 전통춤에 스토리텔링의 입혀 대중성을 강화하거나 시각성을 강조한 스펙터클을 구축함으로써 춤을 브랜드화하려는 흐름은 마치 유행처럼 보인다. 이를테면 국립무용단에서 시작된 이러한 경향은 다른 공공 무용단으로 서서히 번져나가 전국의 시, 도립무용단 등에서 어느덧 가장 선호하는 공연 형태로 수용되는 것으로 보이고, 경기도무용단의 이번 공연 〈경합〉도 이러한 흐름에 편승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다른 공공 무용단도 마찬가지이겠지만, 경기도무용단이 자칫 국립무용단의 아류 혹은 2중대로 보일 수 있다는 말이다.

대중성과 스펙터클은 공적 자금이 투여되는 공공 무용단에서 일제히 추구해야 할 만큼 소중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현대사회는 이미 언제나 스펙터클 사회이고, 상품화된 각종 스펙터클로 넘쳐나는 상품 물신 사회에서, 공공 무용단의 춤 공연에서 굳이 또 하나의 스펙터클을 더 보탤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것보다는 권력과 자본이 조장하는 각종 클리셰에 포획된 몸의 일상적 감성 체계를 뒤흔들만한 힘을 가진 공연을 생산하는 데 주력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경기도무용단이 국립무용단뿐 아니라 여타의 다른 공공 무용단과 구별되는 특성을 가진 무용단으로 자리 잡아야 할 것이다.

경기도무용단의 이번 공연은 단순하고 쉬운 스토리텔링과 2차원적 조형성을 강조한 군무, 조화와 질서를 갖춘 춤을 통해 대놓고 대중성을 표방하는 것으로 보인다. 춤이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게 하는 노력은 필요할 뿐만 아니라 중요하다. 하지만 춤의 대중화를 꾀한다면서 춤을 보고 즐기는 대중들의 안목을 애써 하향 평준화할 필요는 없다. 노동자이든 지식인이든, 일반 관객이든 전문가이든, 모든 이의 취향은 평등하다. 쉽고 단순한 것이 대중적인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누구나 훌륭한 공연을 알아보는 안목 정도는 갖추고 있을 것이다. 대중이 쉽고 단순한 공연만 이해하고 즐긴다고 전제하는 것도 대중을 무시하는 처사이다.

또한, 이번 공연에서는 대중성을 강화하기 위한 주된 방편으로 스펙터클을 추구하였는데, 이는 퍼포먼스보다는 다채로운 색의 조화를 강조하며 시각적으로 디자인된 의상과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소도구, 한층 공을 들인 문짝과 문양, 그리고 현란한 조명 빛을 통해 완성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스펙터클은 양가성이 있다. 한편으로 스펙터클은 대중들의 시선을 쉬이 빨아들이는 매력이 있다. 이 측면에서 보면, 스펙터클은 춤 공연에서 어느 정도 필요하다. 하지만, 휘황찬란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스펙터클은 주로 자극적인 것, 기만적인 것, 눈가림하는 것, 속이는 것과 연관이 깊은 것으로, 대중의 감성을 코드화하는 자본과 권력의 주된 장치로 기능한다. 그러기에 춤 공연에서 스펙터클이 과하게 전면에 나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춤 공연에서 스펙터클이 언제나 당연한 것은 아니다.

최찬열

인류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여러 대학과 대학원에서 춤과 공연예술, 미학과 관련된 과목을 강의했다. 지금은 몸의 예술과 인문학에 기반한 통섭적 문화연구에 몰두하며, 춤문화연구소에서 미학과 춤 역사를 강의한다.​

2021. 11.
사진제공_경기도무용단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