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디지털 시대의 춤에 필요한 것은
송준호_주간한국 기자

디지털 매체 기술력이 세상을 급격히 변화시키고 있다. 초고속 광대역 인터넷 접속과 관련 기기의 보급이 보편화되면서 세상은 이제 본격적인 인터액티브 시대를 맞게 됐다. 노트북에서 스마트폰으로 압축, 진화된 디지털 기술은 이제 일상 속에 깊이 파고들어, 없으면 불편할 지경에 이르렀다. 넷세대들은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디지털 매체와 관련된 새로운 문화를 계속해서 만들고 있다.
 문화예술 환경에도 이 같은 흐름이 반영되어 다양한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다. 스마트폰과 함께 웹2.0 시대를 이끌고 있는 태블릿 컴퓨터는 전자책 산업의 태동을 부추긴 후 기존 문학 판에서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미디어 아트나 미디어 파사드는 회화나 건축 양식 읽기에 있어 새로운 국면을 가져왔다. 항상 그 자리에 있었지만 관람자의 시선을 잡아 끌 수 없었던 예술이 이처럼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것은 역시 디지털 기술의 힘에 기댄 바 크다.
 한때 ‘만화적 상상력’이라는 이름으로 표현 불가의 영역에 갇혀 있던 것들은 이제 디지털 기술의 힘을 업고 다양한 영상으로 표현되고 있다. 최근 공연계에서 등장한 홀로그램 기술이나 3D 프로젝션 맵핑, 하이퍼 파사드 등은 아날로그 몸짓과 공간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 효과적으로 활용되는 중이다. 특히 연극이나 국악처럼 표현 방식에 제약이 많은 장르의 경우 디지털 기술의 도입을 통해 전혀 다른 장르의 예술로 재탄생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는 침체된 장르의 예술도 매체의 활용에 따라 향수자와 소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해준 사례다. 

 반면 춤에서는 이 같은 디지털 환경에서 이루어지는 작품이 아직까지 크게 눈에 띄지 않고 있다. 간혹 미디어 퍼포먼스나 유튜브를 활용한 작품들이 있기는 했지만, 더 이상의 파급이나 확산 효과를 누리지 못한 채 잠잠해진 상태다. 또 사진이나 영상 등 시각예술가와의 협업에서는 무용인들이 주도적으로 작업을 이끌지 못하는 한계도 있다. 이는 무용인들이 그동안 몸에만 집중해온 탓에 디지털적 사고, 특히 사이버 공간에서의 창작과 유통에 아직 익숙하지 못한 이유가 클 것이다. 

 그렇다고 계속해서 시대와 동떨어진 공연 행태를 반복할 수는 없다. 장르 교배와 해체가 만연하고 일상과 예술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포스트모던의 시대, 모든 예술은 이제 새로운 정체성을 고민하고 그 영역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때문에 춤이 계속해서 몸과 몸 이외의 매체라는 구태의연한 이분법을 고수하다가는 ‘지루한 예술’의 멍에를 쓴 채 도태될 수 있다. 시대의 키워드인 디지털 매체에 대한 적극적인 연구와 함께 이를 활용한 작품의 창작, 유통 방식에 대해서 근본적인 사고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 새 상상력이다. 새로운 무언가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그 내용을 상상할 수 있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근래에 ‘인문학적 상상력’이나 ‘예술적 상상력’과 같은 용어들이 계속해서 회자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춤계에는 여기에 ‘기술적 상상력’이 더해질 필요가 있다. 디지털 매체에 대한 이해와 철학이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새로운 춤, 새로운 상상력은 창출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얼마 전 열린 서울디지털포럼에서는 이런 상상력이 돋보이는 가상합창단이 소개돼 눈길을 끌었다. 일면식도 없는 전 세계 58개국 남녀노소 2000여 명이 온라인을 통해 접촉해 하나의 화음을 완성한 것이다. 멀리 떨어져 있는 대중이 한 공동체의 일원으로 참여하며 호흡을 맞추는 모습은 소박한 감동마저 자아냈다. 비록 단순한 콘셉트에 예술적 성취는 낮을지 몰라도, 디지털 매체가 담고 있는 장점과 시대정신이 잘 구현된 공연이라고 할 만했다. 

 어쩌면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춤은 바로 이런 데서 출발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몸과 매체가 조화를 이루고, 그로부터 의미 있는 상상력을 발견하는 것. 이를 위한 춤계 관계자들의 즐거운 고민과 실천이 시작될 때다. 일상에서 사유와 표현 방식, 나아가 존재 방식까지 모든 것이 바뀌고 있는 지금, 예술에도 그에 걸맞은 새로운 상상력을 요구되고 있다.

2011. 06.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