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독일 현지취재_ 댄스컴퍼니 올덴부르크의 홍승엽 신작
시적인 댄스시어터
정다슬_<춤웹진> 해외 통신원

 “승엽 홍”. 반가운 한국 이름이 들렸다. 그리고 그의 이름 앞에는 ‘Korean Choreographer’ 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었다.
 국립현대무용단 초대 예술감독 홍승엽이 임기를 마치자마자 독일을 찾았다. 바로 독일의 시립 무용단 중 하나인 댄스컴퍼니 올덴부르크(Tanzcompagne Oldenburg)가 그에게 신작 안무를 요청한 것이다.



<…그들을 움직이는 것> 독일 현대무용으로부터 받은 이상을 토대로 구성
 

 홍승엽은 8월 초부터 3개월 간 독일 현지에 머물며 올덴부르크 컴퍼니와 함께 작업했다. 공연 작품은 <…그들을 움직이는 것(…was sie bewegt)>. 10명의 무용수가 출연하는 75분 길이의 작품으로 11월 8일에 있었던 초연에 이어 2014년 1월 19일까지 이번 시즌 총 9번의 공연이 편성 되어있다.

 

 



 그의 작품을 보기 위해 12월 12일 늦은 저녁 올덴부르크 극장을 찾았다. 극장에 걸려 있는‘홍승엽’이라는 이름과 벽을 도배한 기사들을 보니 같은 한국인이어서일까, 추운 날씨에 움츠려 있던 어깨가 절로 펴지는 듯 했다.
 공연에 앞서 작품에 대한 간단한 설명회가 마련되었다. 유럽에서는 보통 공연이 초연이거나 2~3일 정도의 단기간 공연일 경우에만 작품설명회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번 홍승엽의 작품은 이례적으로 초연이 한 달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설명회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장 로비에는 설명회를 듣기 위한 사람들로 이미 꽉 차 있었으며, 곳곳에는 자리가 없어 선 채로 지켜보는 관객들도 눈에 띄었다.
 설명회는 올덴부르크 극장의 예술감독인 호네 도만이 한국에서 온 안무가와 그가 안무한 작품에 대한 소개를 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극장을 찾은 관객들이 모두 경청하는 가운데 안무가가 이번 작품에서 올덴부르크 무용단과 함께 작업했던 방식은 물론 작품의 어떤 부분에서 동양적 터치를 찾아 볼 수 있는지, 한국 안무가가 바라보는 독일 춤에 대한 해석 등에 관한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그들을 움직이는 것>은 독일 댄스시어터의 대표적인 안무가 피나 바우쉬가 말한 바 있는“나의 관심은 무용수들이 어떻게 춤추는 지에 있지 않다. 나의 관심은 무엇이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지에 있다”라는 문장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미 제목에서 나타나듯 이 작품은 안무가가 독일 현대무용과 그 선구자들에게서 받은 인상을 토대로 구성되었다.
 20세기 독일의 댄스시어터가 무용계 역사에 남긴 가장 큰 업적은 아마도 피나 바우쉬의 말처럼 인간 내면의 감정을 시작점으로 삼아 솔직하고 직설적인 움직임을 탐구함으로써 관객이 춤의 언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게 한 점일 것이다. 이렇듯 움직임의 내적 동기를 탐구하는 독일 현대 무용의 발화점에는 피나 바우쉬와 함께 그녀의 스승이자 독일 현대무용의 선구자인 쿠르트 요스가 있다. 안무가 홍승엽은 본인이 줄곧 지니고 있던 독일 무용에 대한 깊은 관심을 독일의 대표 안무가인 쿠르트 요스와 피나 바우쉬의 삶과 작업으로 자연스럽게 연결시킴으로써 이 작품을 위한 첫걸음을 내딛었다.
 <…그들을 움직이는 것>은 크게 세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작품의 첫 장에서는 쿠르트 요스가 안무한 <녹색 테이블(Der Grüne Tisch)>(1932)의 사진과 한국의 전설인 ‘견우직녀’의 이미지를 결부시키고 있다. 부적절하게 행동하는 정치인들과 전쟁이 유발하는 공포의 불필요함에 대해 강조한 쿠르트 요스의 작품과 일 년에 단 한번 까마귀와 까치가 놓은 다리 위에서 만나게 되는 견우와 직녀의 이야기에서 나타나는 전통적인 이미지가 홍승엽에 의해 현대적 감각의 이미지로 변환되었다.

 

 

 
 
   그는 대조적인 이미지의 결합과 변화를 위해 <녹색 테이블>이 가지고 있는 직선적이고 각진 움직임은 배제하고, 주로 굴곡지고 굵은 선으로 나타나는 움직임을 사용하였다. 특히 <녹색 테이블>에서 무용수들이 규칙성을 보이며 공간을 가로질러 걷는 장면은 빠르고 잰 발동작으로 변형되었으며, 이는 마치 한국무용의 잔걸음을 연상시키며 매우 인상적으로 연출되었다. 전통적인 이미지들을 도구 삼아 삶의 모습을 뒤쫓고, ‘다리’의 상징성을 통해 삶과 인간을 끊임없이 연결한다는 주제는 작품 전반에 걸쳐 계속해서 찾아 볼 수 있었다.
 작품이 진행됨에 따라 독일 댄스시어터의 언어와 무용수들의 개인적 이야기에 좀 더 집중하고 있었다. 무용수들이 갖고 있는 문화의 다양성과 무용수로서의 삶에 대한 관찰이 이루어진 것이다. 올덴부르크의 무용수들은 무엇이 그들을 움직이는 지에 대한 홍승엽의 물음에 대해 매우 개인적인 답을 제시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안무가는 보다 변화무쌍하고 색채감 넘치는 장면을 연출해냈다. 동화 같은 풍경과 사랑 이야기, 빨간 진주 목걸이, 깃털 펜으로 양피지에 써 내려가는 편지 등 흥미로운 오브제들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오브제들이 시각적으로는 매우 인상 깊었던 반면 정작 무용수들의 답은 모호할 정도로 추상적으로 표현된 점은 아쉬웠다.
 작품의 마지막 장에서는 독일 춤의 현재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는 피나 바우쉬의 대표작 중 하나인 <카네이션>을 모티브로 선택하였다. 각각 카네이션을 받아 든 무용수들이 무대 위를 가로질렀고, 손에 들린 붉은 꽃은 또 하나의 무대 공간과 움직임으로 형상화되며 막을 내렸다.

 

 



 현지의 반응은 상당히 호의적이었다. 4~5차례의 커튼콜이 이어졌고, 이후 예술관련 잡지와 지역신문, 무용 관련 사이트에는 홍승엽의 인터뷰와 그의 작업에 대한 기사들이 실렸다. 언론은 대체적으로 51세의 중견 안무가가 외국 무용단과 처음으로 작업을 시도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한편으로는 독일 댄스시어터에 대해서 춤으로 이야기한다는 주제 자체가 호기심을 자극한 것 같았다.
 올덴부르크 극장의 예술감독인 호네 도만은 그의 작품에 대해 “홍승엽의 작품은 매우 시적인 댄스시어터이다. 역동적이면서도 동시에 부드럽다. 가끔은 춤에 생기가 돌고 삶의 쾌활함이 전달된다”고 평하기도 했다.
 안무가 홍승엽 본인에게도 이번 프로젝트는 큰 의미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그는 노트베스트 신문(Nordwest Zeitung)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곳에는 잘 준비된 무용수들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무대도 완벽히 준비되어 있다. 무용수들은 자신감이 넘치고 자신만의 생각을 갖고 있으며, 모든 디테일에 적극적으로 호기심을 보인다”라고 밝혔다.
 독일의 직업 무용단을 위해 신작 안무를 한 홍승엽, 지난 해 자신의 작품을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에 수출한 신창호 등 한국의 안무가들이 점차 세계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해외무대 진출의 신호탄을 쏜 이들을 발판 삼아 더 많은 대한민국의 안무가들의 작품을 해외 시장에서 만나길 기대해본다. 

2014. 01.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