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부퍼탈 현지 취재] PINA 40


지난 2009년 6월 30일, 암 발병 5일 만에 급작스레 세상을 떠난 세계 무용인들의 전설 피나 바우쉬.
피나의 부퍼탈 탄츠 테아터 예술감독 취임 40주년을 기념하며 추모형식으로 <PINA 40>페스티벌이
2013-2014년 시즌에 걸쳐 계속되고 있다. 페스티벌 현장을 부퍼탈 탄츠 테아터 단원으로 20여년 동안
피나의 작업에 참여했던 김나영씨의 인터뷰와 함께 소개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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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 바우쉬 없는 탄츠테아터 부퍼탈의 현재

 


장지영 _ 국민일보 기자



 20세기 후반 탄츠테아터(Tanztheater)로 현대무용계에 혁명을 일으킨 피나 바우쉬가 세상을 타계한지 올해로 4년이 지났다. 그녀가 지난 2009년 6월 암 진단을 받고 손쓸 사이도 없이 세상을 떠난 뒤 피나가 이끌던 무용단 ‘탄츠테아터 부퍼탈’은 현재 어떤 모습일까?
 탄츠테아터 부퍼탈은 올해 무용단 창립 40주년을 맞이했다. 엄밀히 말하면 그녀가 부퍼탈 발레단을 맡아 이름을 바꾼 것을 시작으로 창단한지 40년이 됐다. 이에 따라 무용단은 2013-2014시즌을 ‘PINA 40’이라는 연간 페스티벌(www.pina40.de)로 기획했다. 그녀 생전에 2004년과 2008년에 ‘피나와 함께 하는 NRW(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국제 무용 축제’를 한달 정도 개최한 적이 있지만 이렇게 1년간 하는 것은 처음이다.

 




2014년 5월까지 1년 동안 독일 3개 도시에서 열려

 

 지난 9월 5일 부퍼탈 오페라하우스에서 시칠리아를 소재로 한 <팔레르모 팔레르모>를 시작으로 개막한 이 축제는 내년 5월까지 부퍼탈, 뒤셀도르프, 에센 3개 도시의 여러 극장 등에서 열린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영감을 받은 <푸른 대지(Wiesenland)>, 인도를 다룬 <뱀부 블루스>, 로마에서 위촉받은 <빅토르> 같은 도시 시리즈를 비롯해 <카네이션> <스위트 맘보> <반도네온> <카페 뮐러> <봄의 제전> 등 그녀의 작품 12개가 잇따라 무대에 오르고 있다.

 

 

 

 그리고 그녀와 친밀했던 마츠 에크-안나 라구나 부부, 윌리엄 포사이스, 린 화민, 안나 테레사 드 키에르스마커, 시디 라르비 셰르카위 등 안무가들이 소품을 공연하거나 워크숍을 하러 부퍼탈을 찾고 있다. 또 메릴 탕카드 등 탄츠테아터 부퍼탈 무용수 출신의 젊은 안무가들의 작품도 공연되고 있다.
 이외에 탄츠테아터 부퍼탈의 40년을 되돌아보는 자료 및 사진 전시회, 그녀의 오랜 연인이자 무대 디자이너였던 롤프 보르직 및 또다른 예술적 파트너였던 무대 디자이너 페터 팝스트와 의상 디자이너 마리온 치토 등의 전시회도 잇따라 열리며 <여제의 한탄> <댄싱 드림즈> <PINA>등의 관련 영화, 다큐멘터리도 상영 중이다.
 또한 그녀의 작품 중에 사용됐던 음악을 들려주는 콘서트나 함께 작업했던 뮤지션들의 콘서트도 열리고 있다. 이 가운데 공명과 어어부밴드 등 한국 뮤지션들은 11월 29일 콘서트를 열 예정이다.
 40년에 걸친 무용단의 과거를 되돌아보고 미래를 조망하기 위해 마련된 만큼 PINA 40의 프로그램은 대단히 화려하다. 하지만 그 화려함 뒤에는 불안이 드리워져 있었다. 관객들은 새로움에 대한 기대감이 아니라 향수와 미련을 가지고 극장을 찾는 듯이 보였다.
 지난해 런던 올림픽 당시 새들러스웰스 극장과 바비컨 시어터에서 ‘세계의 도시’라는 타이틀 아래 10개 도시 시리즈가 공연됐고 이번 시즌에도 한국(2014년 3월 LG아트센터에서 <보름달> 공연)을 포함해 7개국 10개 도시 투어가 진행될 정도로 무용단의 인기는 여전하지만 피나 바우쉬 타계 이후 신작이 한 편도 나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현지 언론은 이번 축제에 대한 기사를 쏟아내면서 이런 불안을 전하고 있다. 한결같이 무용단이 피나 바우쉬의 전설적인 유산을 유지하는 동시에 새롭게 혁신해야 한다는 과제를 지적하고 있다. 독일의 국제방송인 도이체벨레(DW)의 경우 지난 4월 새로운 예술감독이 된 루츠 푀르스터(60․Lutz Förster)의 인터뷰를 전하면서 무용단이 두 과제를 충족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우려하고 있다.



새 예술감독 루츠 푀르스터, 무용단의 새 방향성 천명

 

 에센 폴크방 예술대학 교수 출신인 푀르스터는 피나 바우쉬 타계 이후 무용단을 이끌어온 도미니크 머시(Dominique Mercy)와 로버트 스툼(Robert Sturm)을 이어 어려운 과제를 떠맡았다. 1975년부터 탄츠테아터 부퍼탈에 무용수로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피나 바우쉬의 작품에서 오랫동안 춤을 춰온 그는 무용단 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예술감독으로 낙점됐다. 다만 그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부담감 때문에 이사회의 제의를 여러 차례 거절한 끝에 받아들이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우선 그는 탄츠테아터 부퍼탈 40주년을 맞아 ‘PINA 40’ 축제를 통해 피나의 작품들을 차례차례 선보이며 관객들에게 ‘독일 최고의 문화상품’으로 꼽히는 그 가치를 재확인시키고 있다. 피나 바우쉬의 안무 스타일이 혼자서 모든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무용수들과 함께 만들어나가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그녀 타계 이후에도 각각의 작품에 출연했던 오리지널 멤버들이 주축이 되어 예전 작품을 손상하지 않은 채 재현할 수 있다. 다만 50~60대에 이르는 오리지널 멤버들이 좀더 나이가 들어 무용단을 떠나게 되면 어떤 방식으로든 피나 바우쉬의 작품에 변형이 오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독일 현지에서 만난 무용단의 한국인 단원 김나영은 “피나가 타계한 후 무용단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은 것을 알고 있다. 물론 피나의 빈 자리가 큰 것은 당연하지만 현재로선 큰 변화 없이 잘 해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40년간 쌓아온 무용단의 역사가 있는데, 하루 아침에 사라지겠는가? 물론 피나가 갑자기 타계한 이후 당황한 단원들 사이에 갈등도 있었지만 오리지널 멤버들을 중심으로 무용단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한편 푀르스터는 2015~2016년 시즌까지는 신작을 발표하는 등 무용단의 방향성을 재정립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무용수 출신으로 안무가가 아닌 그는 객원 안무가들을 초청해 신작을 만드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실제로 무용단은 피나 바우쉬 타계 이후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한 방편으로 외부에서 안무가를 초빙하는 한편 내부에서 단원들에게 안무를 시도하도록 권유하고 있다. 김나영 역시 소품 위주로 직접 안무에 나서기도 했다.
 다만 여타 무용단과 달리 40~60대의 나이든 무용수들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탄츠테아터 부퍼탈의 특성상 활기를 찾기 위해 젊은 무용수들을 대거 뽑아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하지만 예산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젊은 무용수들을 새로 뽑는 게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무용단의 경우 주로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와 부퍼탈 시의 지원을 받고 있는데, 부퍼탈 시의 경제상황이 좋지 않아 지원 금액이 줄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지금은 무용단을 그만두는 단원을 대신해 충원하는데 그치고 있다.
 40년이라는 뜻깊은 해를 맞았지만 탄츠테아터 부퍼탈은 거대한 도전의 한가운데 서 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좀더 시간을 가지고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인터뷰: 부퍼탈 탄츠테어터 단원 김나영
내년 3월 컴퍼니와 함께 내한, 개인 작업도 병행 예정


 

 


장승헌
: 세계 도시 시리즈 가운데 인도를 배경으로 한 작품 <밤부 블루스(Bamboo Blues)> 를 보고난 후 이렇게 만나 반갑다. 근황이 어떠한지 궁금하다.

김나영: 지난 6월 이후, 연중 페스티벌이 진행되고 있다. 공연이 계속 이어지는 관계로 연습실과 극장에서 거의 모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조금은 피곤한 상황이다. 그리고 이제 몸이 휴식을 필요로 한다(웃음). 특히 무용수로서 적지 않은 나이라 조심스레 체력관리의 중요함을 느끼고 있다. 아울러 공연 연습 때마다 영상자료를 지켜보며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단원들과 열심히 땀을 흘리고 있다. 이번 페스티벌에 올려지는 대부분의 작품에 출연하고 있으며, 부대행사로 일반인들을 위한 워크숍 마련과 함께 개인적으로는 내년 2월과 4월 부퍼탈에서 있을 약 20분 정도의 솔로나 듀엣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 갑작스레 피나 바우쉬가 서거하고 난 이후 무용단의 활동과 정체성 그리고 앞날에 대해 걱정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라 안팎에서 많이 들려오고 있다. 실제로 분위기가 어떠한가?

: 사실 너무 급작스레 당한 일이라 우리 무용단 내부에서도 처음에는 동요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게 염려할 수준은 아니다. 현재 거의 대부분 단원들이 흩어지지 않은 채 계속 부퍼탈과 다른 공연장, 그리고 투어공연도 차질 없이 진행해오고 있다. 물론 피나 선생이 계실 때 만큼의 분위기는 아니지만 부퍼탈 시와 NRW주, 그리고 독일 정부 차원에서 우리 무용단의 역사성과 중요성, 그리고 존립에 대해 특별한 애정과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고 지원도 이루어지고 있는 만큼 무용수로서 큰 변화는 느끼지 못하고 있다. 창단 단원인 도미니크와 행정가 출신 로버트씨가 공동 예술감독으로 지난 3년간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무용단을 이끌어 왔고 금년부터는 폴크방 탄츠 스튜디오(FTS) 학장이며 객원단원인 루츠씨가 신임 예술감독으로 취임해서 이번 페스티벌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 오늘 본 <밤부 블루스>에서도 김나영씨는 인상적인 춤으로 관객들에게 박수갈채를 받았다. 특히 며칠 전 공연했던 헝가리 부다페스트 배경의 <비젠란트(Wiesenland)>라는 작품에서 1부와 2부 막간 사이, 직접 진도 아리랑을 부르며 작은 수건을 들고 춤추는 장면은 우리에게는 친숙하지만 외국 관객들은 다소 의아할 수도 있겠다.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

: 이 작품은 지난 2000년에 처음 제작되어 수차례 공연되고 있는데 공연 때 마다 이곳 현지 관객들은 물론 외국 관객들의 반응이 매우 뜨겁다. 노래 가사의 의미보다는 헝가리 집시들의 상처와 우리 민족의 한이 겹겹이 쌓인 아리랑이란 가락에 어쩌면 감성이 묻어 있다고 생각했다. 이 작품이 만들어 지기 전 여름휴가차 한국을 방문했을 당시 작고한 공옥진 선생의 공연을 본 적이 있는데 아리랑을 부르며 춤추시던 모습이 마음속에 각인되어 지인으로부터 가사를 구해 열심히 연습해서 휴가가 끝난 뒤 나름 휴가 선물로 피나 선생에게 보여 준 일이 있었다. 피나 선생이 이 장면을 다음 신작의 한 장면으로 넣을 것을 적극 제안해 공연의 일부분으로 진행되고 있다.

: 지난 해 영국 런던 올림픽 당시 무용단의 세계도시 시리즈 14편중 10여 편이 차례로 공연되어 졌는데 한국작품인 <러프 컷>이 빠져 아쉬웠다.

: 나는 물론 우리 무용단원들도 <러프 컷> 작품을 매우 좋아한다. 이따금 영상을 봐도 좋은 곳이 참 많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하지만 무대장치가 극장 사정에 맞질 않아 부퍼탈과 서울 그리고 파리에서 공연하고는 자주 못하고 있는 듯하다. 런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얼마 전 LG아트센터에서도 공연 요청이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기회가 닿으면 꼭 다시 올려 지길 희망한다.

: 향후 계획은 어떠한가?

: 내년 시즌까지 계속되는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다음 작품인 <1980>과 <반도네온(Bandoneon)> 공연을 준비하고 있으며 2014년 봄 시즌, 아시아 투어인 일본과 홍콩 공연작에 출연하기 때문에 곧 연습에 돌입한다. 아울러 3월 말에 있을 서울 공연 <보름달(Vollmond)>에 출연하지는 않지만 무용단원들과 함께 내한하여 홍보와 공연 뒷일을 도울 예정이다. 그리고 부산에 계신 어머님과 가족들을 만날 생각이다. 한편으로는 무용단 고참 단원으로서 젊은 무용수들과의 의사소통에 좀 더 시간을 할애하고 나의 개인 작업에도 열정을 쏟고자 한다. 멀리서 격려를 부탁한다.


* 서울예고를 졸업하고 세종대 무용과 재학 중 독일 유학을 떠난 김나영은 폴크방 무용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피나 바우쉬 부퍼탈 탄츠테아터 무용단원으로 20여년 째활동 중이다.

2013. 12.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