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우리

춤, 미디어를 만나다 19
공연을 일으켜 세울 데이터와 내러티브 자본
이단비_방송작가, 춤칼럼니스트

최근 MZ세대를 중심으로 급속하게 퍼지는 것이 16가지 심리 유형을 파악하는 MBTI이다. 카를 융의 초기 분석심리학 모델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성격 유형 검사 도구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건 1980년대 말~90년대 초반. 심리검사에서 주로 사용돼 왔는데 최근 들어 열풍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정도로 널리 퍼졌다. 요즘 방송가와 OTT 채널들에서는 리얼리티쇼를 앞 다투어 만들고 있는데 MBTI도 여기에 합세해서 16가지 유형을 가진 인물들이 한 공간 안에서 살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은 영상 콘텐츠 〈MBTI INSIDE〉를 제작하기도 했다. 첫 에피소드가 조회수 170만 회를 넘어설 정도로 관심을 받았다. 이제 현상은 공연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런 현상을 중심으로 현재 춤과 공연의 기획과 마케팅 전략 방향은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지 이야기해보려 한다.




MBTI 16유형의 인물들이 함께 생활하는 모습을 담은 리얼리티쇼 ‘MBTI INSIDE’ @미션 파서블




데이터 비즈니스가 뜨고 있다!

최근 롯데콘서트홀이 ‘MBTI 유형별 좌석 추천’ 내용을 만들어서 SNS에 공개하면서 눈길을 끌었다. 라움아트센터는 오는 4월 12일 갖는 앙상블 클럽M의 올해 첫 연주회를 앞두고 ‘클럽엠비티아이’란 제목으로 연주자들의 MBTI 유형을 올리며 악기의 특성과 연주자의 상관관계에 대해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우선, 롯데콘서트홀에 자주 가는 관객들은 이미 내 귀에 어느 자리의 소리가 마음에 드는지, 시각적으로는 어떤 위치에 앉는 게 괜찮은지 자신의 취향을 파악하고 있을 테니 이 좌석 추천내용이 결정적인 가이드가 되지는 않겠지만, 자신이 선호하는 좌석이 여기서 추천하는 좌석과 얼마나 일치하나 재미 삼아 한 번쯤은 들여다보게 된다. 롯데콘서트홀에 처음 방문하거나 공연을 보러 갈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가이드대로 좌석을 선택해볼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클래식 음악 공연을 전문으로 올리는 공연장에서 MBTI라는 트렌드를 적용해서 무언가를 내놓았다는 사실 자체가 재밌게 다가온다. 마케팅 측면에서는 결코 손해날 접근은 아니었다. 라움아트센터에서 앙상블 클럽M의 연주회 홍보를 MBTI에 적용한 것도 그렇다. 과연 음악과 악기와 연주자 사이에 MBTI의 특성은 어떤 영향을 미칠까. 호기심이 일어나게 된다. 역시 클래식이 갖는 무거움이 이 홍보물을 통해 한층 편하고 친근하게 다가오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본다.




  

  

롯데콘서트홀에서 SNS홍보용으로 제작한 ‘MBTI 성향 별 좌석추천’ @롯데콘서트홀




    

앙상블 클럽M의 연주회 포스터 및 홍보를 위해 만든 ‘클럽엠비티아이’ @라움아트센터




춤과 공연 마케팅에서 이런 흐름은 ‘데이터 비즈니스’가 그만큼 중요해졌다는 걸 의미한다. 분석과 유형화된 정보들은 데이터 자본이 되고 비즈니스에 적극 활용되게 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빅데이터가 중요한 요소로 떠오른 것도 이런 이유다. 다시 MBTI로 돌아가서 보자면, 갑자기 MBTI가 MZ세대를 중심으로 급속한 관심을 받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어느 전문가는 어릴 때부터 코칭과 과외를 받으며 자란 MZ세대가 성인이 되어서 스스로 무언가를 결정하고 선택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유형화와 분석은 취향을 파악하고 무언가를 선택하는 데 중요하게 작용하면서 앞으로도 MZ세대를 중심으로 각종 마케팅과 비즈니스에 적극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가장 쉬운 예로 들 수 있는 게 알고리즘이다. 넷플릭스나 유튜브 등 OTT와 SNS 채널만 봐도 사용자의 관심도를 데이터 분석을 통해 사용자 본인보다 더 빨리, 정확하게 파악해서 취향 저격의 콘텐츠를 소개해준다. 코칭을 받지 않으면 불안한 심리를 이용한 것이다. 같은 콘텐츠를 추천받더라도 A는 장르, B는 출연배우 등 추천 이유는 달라진다. 여기서 마케팅의 ‘세그멘테이션(segmentation)’이란 개념이 등장한다. 세그멘테이션은 공통적인 수요와 구매행동을 가진 사람들을 중심으로 그들의 욕구에 맞춰서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최근 비즈니스 업계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한다. 이런 세분화 작업은 수요가 있을 거라고 생각되는 잠재 고객그룹에 맞춰 진행되기 때문에 기업의 입장에서는 실패 확률이 그만큼 적어진다. 예를 들어 춤 공연에 대한 홍보를 불특정 다수를 향해서 하는 게 아니라 기존에 춤 공연을 본 이력이 있는 사람, 여기서 더 나아가 공연 관람 이력이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이다. 즉, 데이터 분석을 통해 세그멘테이션으로 분류된 그룹에 적극 홍보를 할 경우 공연에 관심을 갖고 보러 올 확률은 높아진다.

MBTI와 같은 유형화, 세그멘테이션, 알고리즘, 빅데이터, 데이터 비즈니스, 이 모든 것은 하나로 이어져 있다. 우리가 SNS나 OTT 채널에 남기는 ‘좋아요’나 구독의 흔적, ‘보고싶어요’나 관심 있는 콘텐츠라고 클릭한 부분들은 고스란히 데이터로 쌓여서 나도 모르게 나의 취향 패턴의 알고리즘을 형성한다. 공연에 있어서도 관람 이력, 관심을 표시한 부분 등 내가 남긴 흔적은 하나의 데이터로 쌓이고, 이후 마케팅 관계자가 전략을 세울 때 주요 세그멘테이션 대상자로 지목된다. 이것을 관객이 아니라 공연 관계자나 기획자의 입장으로 바꿔서 이야기한다면, 이런 분석과 세분화야말로 지금 시대에 마케팅을 하기 위한 첫 단추가 된다는 뜻이다. 공연의 기획과 홍보전략에서 데이터 비즈니스는 중요하게 봐야할 부분이다.


막강해진 내러티브 자본의 힘

또 한 가지 공연기획과 마케팅에서 앞으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내러티브 자본’이다. ‘내러티브 자본’(Tell Me Your Narrative)은 김난도 〈트렌드코리아 2022〉에서 언급된 2022년 10개의 트렌드 중 하나이다. “서사는 힘이 세다. 강력한 서사, 즉 내러티브(narrative)를 갖추는 순간, 당장은 매출이 보잘 것 없는 회사의 주식도 천정부지로 값이 오를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서사가 얼마나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는지 명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이제 물건을 하나 팔아도 그 안에 히스토리와 전후좌우 맥락, 즉 ‘내러티브’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제품력으로 승부가 되는 시대는 끝났다는 걸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공연은 기예와 예술성이 뛰어난 아티스트를 무대 위에 올리는 것으로는 더 이상 승부를 낼 수 없다. 좋은 연주자, 좋은 무용수만으로 공연을 보러 오는 게 아니라 공연의 내러티브를 보러 오는 관객이 늘었고, 마케팅의 포인트도 그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지난해 해외 유명 무용 스타들을 초청한 한 갈라 공연이 기대보다 관객들의 관심을 크게 받지 못했던 경우가 있었는데 그 사례가 이런 현상을 여실히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내러티브 자본은 다른 산업군뿐 아니라 무용 작품을 만들고, 홍보하는 데에도 중요한 요소이다.

정치나 경제에서 내러티브 자본은 전환의 기수를 꽂는 지점이 된다. 그 내러티브가 나의 마음을 흔들 때 나는 특정 후보자에게 표를 던지고, 물건을 사기 위해 지갑을 열게 된다. 이 개념은 앞서 말한 ‘세그멘테이션’과 이어지는 부분이 있다. 그에 대한 욕구, 그에 대한 필요성이 가장 강한 단 한 명의 사람을 위해 그 물건을 만들 때 그 사람은 반드시 그것을 사게 된다. 공연 작품은 나라는 사람이 겪은 경험과 나만의 콘텐츠이지만 그건 비슷한 감정이나 상황에 있어 보았던 한 관객의 심장에 정확하게 화살을 꽂는 작업이다. 내 이야기를 내놓는다, 단 한 명의 관객을 위해 작품을 만든다, 이런 접근이 모두의 이야기가 되고 모두의 공감을 일으키는 작품으로 남으며, 그런 시각으로 마케팅할 때 세그멘테이션 된 관객들은 움직인다.

그동안 무용 공연의 홍보는 해당 예술단체나 아티스트가 ‘저희 이런 공연 합니다’라는 공지 그 이상의 의미를 갖기가 힘들었다. 특히 현대무용의 경우 애초에 무용 관계자나 전공자가 아닌 일반 관객들을 끌어오는 데는 어려움을 겪어왔고 반쯤은 이 부분은 포기한 상태로 공연을 진행하는 게 현실이기도 하다. 작품을 제대로 만드는 데 모든 에너지를 쓰기 때문에 얼마나 수요가 될지 모르는 홍보나 마케팅에 힘을 쓸 여력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계속 ‘우리끼리의 잔치’로만 멈출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관객 동원을 위한 다양한 시도와 실험도 필요하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점은 있다. 첫째, MBTI 유형검사 결과에 따라 자신을 모두 맞춰서 움직일 필요도 없는 것처럼 데이터 분석을 통해 나온 결과들에 100% 의지할 필요도 없다. 다만 ‘무작위’로 접근했던 시각을 과학적, 분석적으로 접근하다는 점에서 유용하고, 이걸 어떻게 활용하느냐도 공연을 만드는 사람의 손에 달려있다. 춤 공연에 전혀 세그멘테이션되지 않은 쪽에 춤 공연을 경험할 수 있는 자리와 기회를 만들어서 관객개발의 범위를 확장할 수도 있다. 관객동원의 새로운 방식을 시도해 볼 자료로서 가치가 있음은 확실하다. 둘째, ‘내러티브 자본의 강조’는 작품 자체에서 내러티브가 강해야 한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 내러티브가 강한 작품이 아니더라도 그 작품을 홍보하고 알릴 때는 내러티브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획과 마케팅은 통합적으로 이뤄지는 게 좋다. 작품과 예술단체, 혹은 예술가가 자신만의 내러티브를 갖는다는 것은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이단비

방송작가, 춤칼럼니스트. KBS 교양 프로그램에서 방송작가를 시작, SBS 보도제작국, YTN 보도제작국, MBC 시사교양국 〈문화사색〉 작가 등 다양한 매체에서 방송작가로 일해오고 있다. 춤 경험과 방송작가 이력의 융합으로 공연예술 다큐멘터리 제작, 발레와 무용 칼럼 집필 작업을 해오고 있으며 최근에는 공연 구성과 기획, 대본 집필 등 공연 창작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2022. 4.
사진제공_미션 파서블, 롯데콘서트홀, 라움아트센터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