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흐름

지속가능한 발전목표(SDGs)와 지구를 살릴 춤
당신이 춤추고 지나간 자리, 깨끗한가요?
유화정_무용학자

무용가 Y씨는 새해 다짐으로 지속가능한 하루 살아가기를 실천 중이다. 현대인이 무심코 소비하는 물, 전기, 일회용품들이 지구를 급격히 변화시키고 그 영향은 고스란히 인간의 삶으로 넘어와 다함께 대멸종을 향해 달리는 형국임을 들었기 때문이다. 지속가능한 하루는 잠을 깬 아침부터 시작된다. 뜨거운 물 샤워는 3분안에 끝내고, 화장솜 대신 손으로 얼굴을 두드리며, 현관문을 나서기 전 집안의 전기 플러그를 모조리 차단한다. 텀블러, 손수건, 장바구니도 잊지 않고 챙긴다. 연습실로 향하는 길,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동료 무용수들과 함께하는 점심시간은 제철 지역채소 위주로 섭취한다. 이로써 완벽하게 지속가능한 하루를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연습실 창고를 정리하던 Y씨는 사용되지 못한 채 적재되어 있는 지난 공연의 프로그램북 두 상자, 단 한번 입고 버려져 있는 공연 의상 수십벌을 발견하고 맥이 풀렸다. 자신의 지속가능한 일상과 무용활동 사이 모순이 있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과연 무용활동은 지속가능한 발전을 지지할 수 있을까?

‘지속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은 미래 세대의 행복한 삶을 저해하지 않는 방향의 발전을 말한다. 즉 현세대의 편의를 위해 무차별적으로 자연환경을 훼손했던 행위를 금하고, 소수의 안락함을 지지했던 불평등한 사회구조 등을 반성함으로써 인류와 자연이 공존할 수 있는 균형 잡힌 생태계로의 회복과 발전을 의미한다. 지속가능성을 원상 복귀가 가능한 탄성력으로 이해해도 좋다. 인간이 삶의 존속을 위해 자원을 소비하고 변형시키는 것은 불가피하겠으나 시간이 흘러도 원상 복귀되지 않을 정도의 위해를 가하는 것은 지속가능한 발전에 어긋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초기의 지속가능성 개념은 지구 환경의 오염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시작되어 하나뿐인 지구를 어떻게 보전할 것인지 논의하는 형태였으나, 이제는 전 인류의 인권 보장과 공존을 위한 사회적, 경제적 차원의 정책 마련 및 교육 목표까지 확장되고 있다. 특히 2015년에 열린 제70차 UN 총회는 모두를 포용하는 사회의 구현, 환경의 보전, 경제의 성장을 위해 2030년까지 달성해야 할 과제로서 17개의 지속가능한 발전 목표를 수립하였고, 한국 역시 이에 부응하여 ‘국가 지속가능발전목표(K-SDGs)’를 119개의 세부 목표 및 236개의 지표로 제시하였다.1)



ⓒ지속가능발전포털 국가지속가능발전목표(http://www.ncsd.go.kr/ksdgs?content=3)



흥미로운 점은 SDGs와 K-SDGs 모두 건강하고 아름다운 인간의 삶을 이루기 위한 각계각층의 실천을 요하고 있는데, 세부 목표 및 지표 전문에서 예술의 의미와 예술 종사자의 역할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K-SDGs가 내걸고 있는 ‘제4차 지속가능발전 기본계획(2021~2040)을 살펴보면 예술 관련 언급은 ’고용보험 및 산재보험 적용대상 확대를 통한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고용보험 적용대상을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및 프리랜서 예술인으로 확대한다는 부분, ’취약집단 노동자들의 권리 보호와 청년 구직난 해소‘를 위해 예술흥행 분야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들의 권익 보호가 시급하다는 내용이 전부다. 즉 지속가능발전 목표에서 예술의 자리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역할 하는 입장이 아니라 목표 달성을 통해 구제할 수 있는 사회적 약자에 머물러 있다.

더불어 예술이라는 모호한 단어로 무용, 미술, 음악, 연극 등의 세부 장르와 공연, 전시, 교육, 치료 등의 세부 구조들을 한 데 묶어 표현하고 있다는 점도 특기할 점이다. 현재 전 인류에게 확산되고 있는 지속가능한 발전 목표는 환경, 사회, 경제의 측면을 포함하는 거대한 물결로 우리의 눈앞에 닥쳤으나, 예술에는 좀처럼 곁을 주지 않은 채 앞만 보고 바삐 달려가는 형국이다. 그렇다면 무용예술은 어떤 전략과 태도로 새 시대를 맞이해야 할까? 본격적인 연구가 미비한 현시점에서 지속가능한 발전 목표에 대응하는 길잡이나 지원제도는 마련되지 못했으나, 무용 단체 및 무용가들이 자발적으로 길을 내며 실천해온 사례들을 살펴보자.


리드미컬하게 쓰레기를 주우면 그 또한 춤이니까

오른손에는 집게를, 왼손에는 봉투를 들고 등산로를 뛰어다니며 쓰레기를 줍는 댄서들이 있다. 무용 단체 댑댄스프로젝트(공동대표 김호연, 임정하)가 환경을 정화하는 행위로서의 〈그린댄스〉(Green Dance)를 웹상에 주기적으로 게시하며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이다. 조깅을 하며 쓰레기를 줍는다는 합성어 ‘플로깅(Plogging)’을 연상시키는 이들의 행위는, 환경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지지하는 안무적 실천의 참신한 사례이다. 이들에게 쓰레기는 즉흥적 움직임을 유발하는 소품이고, 쓰레기가 널린 환경은 장소 특정적 공연의 무대이다. 〈그린댄스〉의 안무구조는 깔끔하고 거침없다. 쓰레기를 발견한 무용수가 쓰레기 가까이 이동하여, 갖고 있던 집게로 쓰레기를 집고, 또 다른 쓰레기를 찾아 이동하는 A-B-A 형식의 구조이다. 고난도의 기술이 필요한 움직임도,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창의력도 필요치 않다. 쓰레기 없는 깨끗한 환경을 만들고 싶은 마음과 편안한 옷차림만 있다면 누구나 〈그린댄스〉에 참여할 수 있다.



댑댄스프로젝트 〈그린댄스〉 ⓒhttps://www.instagram.com/greendance_/



“춤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지는 아직 잘 모르지만, 춤추며 지나간 자리는 바꿀 수 있습니다.”, “작품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라 말하는 이 젊은 춤꾼들은 스스로의 목적과 방향성에 무게를 싣지 않은 채 담담하게, 그리고 격 없이 행동하며 은은한 존재감을 발산한다. 흥미롭게 느껴지는 현상이라면 적극적으로 돌파하고, 예술가로서의 위치와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역할 간 경계를 과감히 해체하는 동시대 무용가들의 특성이 〈그린댄스〉에 담뿍 묻어있다. 안무의 주제와 의미에 대해 답을 내리기 거부하며, 기성세대가 구축한 움직임 메소드로부터 힘을 뺀 채 이유와 목적 없이 표현하기를 원하는 컨템포러리 댄스 행보와도 연결된다.

긴 역사 동안 인간의 몸을 주 도구로 사용해온 무용예술은 자본주의의 대량 생산과 소비, 그로 인한 환경 훼손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지 않은 비교적 착한 분야이기에, 지속가능성의 물결 앞에서 회한에 가득 차 반성문을 쓸 의무까지는 없다. 오히려 우주와 자연의 원초적인 힘을 인지하고 신체 내부와 외부의 연결고리를 강조하는 움직임 예술로서 환경과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오래도록 성찰해온 장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무용예술을 작품화하고 관객에게 전달하는 관습적 행위에서 남겨지는 탄소발자국(인간의 행위에서 배출되는 탄소의 총량)에 대해서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점에서 댑댄스프로젝트의 〈그린댄스〉는 안무에 대한 열린 시각으로 환경친화적 실천에 유쾌하게 다가선 사례로서 괄목할만하다.


초대합니다. 자연 보러 오세요.

일본 태생의 퍼포머 Eiko & Koma는 호수, 숲, 바다표범 서식지, 9.11 테러를 겪은 세계무역센터 등 거대한 자연과 도시 등지로 관객을 초대하여 춤추는 인간의 취약한 몸을 드러내고 환경과 인류에 대한 공감과 통찰을 이끈다. 펜실베이니아주의 델라웨어(Delaware)강에서 70분간 진행된 작품 〈River〉(1995)는 작은 나뭇가지 조각과 함께 물의 흐름에 몸을 맡긴 두 명의 무용수가 강의 상류부터 시작하여 하류로 느리게 헤엄쳐 나가는 시공간을 연출했다. 강물에 몸을 담근 무용수들은 한참을 표류하다가 어느 지점에서 자연스레 멈추고 또다시 나아가는 여정을 지속했으며, 관객들은 이들의 동선을 따라 함께 이동하며 자연에서의 평온한 성찰의 시간을 보낸다.



〈River〉 by Eiko&Koma ⓒhttps://eikoandkoma.org/home



유사한 구조의 작품인 〈Tree Song〉(2003)은 무용수가 나무와 흙이 자리한 풍경 일부가 되어 신체의 오감을 통해 자연을 탐구하는 현장으로, 나무와 인간의 생애주기를 암시하는 움직임이 한 시간 동안 진행된다. 초대받은 관객들은 자연 일부분으로 녹아드는 무용수들의 신체에 자신의 존재를 반영하면서 나 또한 자연 일부분임을 인지하는 시간을 경험할 수 있다. 인간이 지닌 거울 신경세포는 특히 춤을 볼 때 활발하게 작용하는데 내 앞에서 몸을 움직이는 사람에게 깊이 공감하여 그와 유사한 신경 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물, 흙과의 일체화를 보여주는 춤은 인간의 신체가 자연의 산물임을 강렬하게 인식시킬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자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인간의 사고방식과 행위 변화를 촉진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Eiko&Koma 〈Tree Song〉 ⓒhttps://eikoandkoma.org



환경과 예술, 모두 잡는 무용가에게는 든든한 뒷배가 있었으니

국문화예술위원회(Art Council England)는 영국 내 예술가 발굴 및 지원을 담당하는 정부 산하 기관으로 2012년부터 현재까지 예술 지원 제도에 지속가능성의 요건을 포함해왔다.2) 즉 인류와 자연의 지속가능한 공존을 실천하는 예술가 및 단체를 우선으로 지원함으로써 지속가능한 발전 목표를 지지할 수 있는 예술의 역할을 활성화하고, 예술가에게는 새로운 영감과 수입원을 찾을 수 있도록 도모한 것이다. 이들은 환경의 지속가능성을 깊이 고민하고 실천하는 예술가가 자체적으로 수입을 증가시키는 방안을 제공하기 위해, 문화예술과 지속가능성의 동행을 돕는 국제 비영리단체 ‘Julie’s bicycle’과 협력하였다. 친환경 예술 활동을 실천하고자 하는 예술가에게 정기적인 교육과 개별적 자문을 취하고, 예술활동이 남기는 탄소발자국의 양과 세부 정보를 파악할 수 있도록 탄소 계산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다른 예술단체의 탄소 배출량을 열람할 수 있는 지표를 공유했다. 또한 지속가능한 예술활동의 홍보를 돕고 후원 모임을 기획함으로써 그간 예술에 닿지 못했던 잠재적 후원자를 발굴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3)

캐나다의 무용단체인 ‘Kidd Pivot'은 무용단의 기본 수입을 충족하는 세계 순회공연이 일반인의 연간 탄소 배출량의 배를 넘는 양을 기록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탄소상쇄회사인 'Offsetters'와의 프로젝트를 통해 환경친화적인 무용단 운영에 앞장섰다. ’Offsetters’는 무용단이 탄소 배출량을 감소시키는 행동을 할 때마다 자본으로 환산시킬 수 있는 시스템을 제공하였고, 각종 환경보호 관련 기금사업 및 정부, 기업, 민간의 후원인들과의 네트워킹을 활성화할 수 있도록 도왔다.4) 이처럼 예술활동과 지속가능한 발전 목표의 만남을 매개하는 전문 기관들은 예술가의 환경친화적 실천이 그들의 새로운 수입원으로 직결될 방안을 찾고 데이터화하는 데 주목한다. 예술가에게는 가장 어려운 문제로서의 자본 조달 방식을 건드려 실질적으로 유효한 지속가능성을 도모하는 셈이다.



탄소상쇄회사 Offsetters의 투자 시스템 ⓒhttps://ostromclimate.com/offsetters-community/offset/



파타고니아의 전략, 무용예술에도 통할까

무용가들의 안무적 실천, 관련 제도 및 기관과의 협업까지 영향을 미치는 지속가능성의 개념은 불시에 우연히 떠오른 화두가 아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이르러 미디어와 기술에 피로감을 느낀 현대인들이 사람과 자연에 관해 관심을 돌리게 된 반사적 반응이라고 말하기도 충분치 않다. 인류는 그간 훼손해온 자연환경의 역습을 극복하며 대가를 치러야 하는 시점에 도달했으며 그 증거는 기후변화에 따른 사막화, 빙하감소, 홍수와 가뭄으로 우리의 일상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예술가인 동시에 사회구성원이며 환경의 변화 앞에 취약한 인간으로서의 무용가들은, 각자의 상황에서 가능한 실천을 자발적으로 해나가고 있으며 그것은 안무적 실천 외에도 친환경적 공연홍보물의 제작, 재활용이 가능한 의상과 소품의 제작, 주변을 아우르는 커뮤니티 댄스, 신체의 원초적 지각을 회복하는 소매틱스(Somatics) 등의 다양한 유형으로 나타난다.

사회적 책임과 예술적 가치가 동행할 수 있을지에 대한 문제는 첨예한 논쟁을 부를 수 있는 지점이다. 굳이 예술가까지 지속가능한 발전에 동행해야 하는지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측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국제적으로 수립되고 있는 지속가능한 발전 목표는 눈앞에 닥친 인간 멸종의 위기를 늦추기 위한 최우선의 과제이며, 무용예술계 역시 이를 외면하고서는 미래를 계획할 수 없다. 이 시점에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함으로써 고객의 지갑을 열게 한 회사, 파타고니아(Patagonia)의 전략을 생각해본다. 파타고니아는 환경에 대한 철학을 최우선적으로 실천함으로써 사회적 문제에 관심이 높은 대중을 자극해 성공적인 경영 신화를 남긴 기업이다. 옷을 광고하면서 ‘이 옷을 사지 마세요’(Don’t buy this jacket)의 슬로건을 내걸고, 매출의 1%를 ‘지구에 내는 세금’(Earth Tax)의 명목으로 환경 단체들에 지원하며, 자연보호구역을 축소하겠다고 선언한 대통령을 고소하기도 했다. 파타고니아는 민감한 주제에 관해서는 몸을 사리는 게 상책이라던 통념을 부수고 적극적으로 정치에 관여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으며 그 결과는 기업의 수익으로, 문화의 변화로 귀결되었다.

국제사회의 모든 이념을 지배할 정도로 급격한 확산 속도를 보이는 지속가능성의 물결 앞에서 파타고니아의 전략은, 무용가의 생존 전략과 맞닿을 수 있다. 긴 역사 동안 관객, 후원자, 지원제도를 찾는 데 적잖은 공을 들여온 무용예술의 생존 활동은 지금 이 순간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환경에 대한 무용가의 관심도는 개인마다 다르겠으나 춤추고 지나간 자리에 쓰레기가 남기를 원하는 예술가는 없을 것이다. 파타고니아의 전략을 뛰어넘는 창의적인 방식으로 사회적 책임과 예술적 가치의 동행을 실현하는 무용가들의 시도가 계속되기를 기대하며, 이들을 지지하는 촘촘한 제도적 지원과 관련 연구 역시 속히 촉발되기를 바란다.

(본고의 일부는 2023년 3월 17일, 한국예술연구소 춘계학술대회 ‘지속가능한 발전목표와 예술, 예술교육’에서 발제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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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1) ‘제 4차 지속가능발전 기본계획(2021~2040)’ http://www.ncsd.go.kr/ksdgs?content=3
2) Growing Environmental sustainability in the performing arts sector. (2012, September 28). Dance UK.
3) Julie’s Bicycle & Arts Council England.(2015). Sustaining great art environmental report: 2012-2015 results and highlights. Manchester, England.
4) Beauchesne(2015), Beyond the ephemerality of dance: The positive impact artists can have in the fight against climate change, The Dance Current. - https://thedancecurrent.com/article/beyond-ephemerality-dance/

* Jullie’s Bicycle 공식홈페이지 - https://juliesbicycle.com/our-work/arts-council-programme/
 - Julie’s Bicycle의 친환경 프로그램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youtu.be/E2CKouX-OYw, https://juliesbicycle.com/about-us/about-jb/
* Art Council Engrland 공식홈페이지 - https://www.artscouncil.org.uk/
* Eiko&Koma 공식홈페이지 - https://eikoandkoma.org/home



 

 

유화정

현 댄스&미디어연구소 이사. 이화여대 무용과 초빙교수, 국립극장 공연예술아카데미 강사, 미국 서던캘리포니아 대학 방문학자 역임. 어릴 적부터 춤춰온 몸의 기억을 머리와 손끝으로 전달해 좋은 글을 쓰고자 한다. 무용학 전반의 연구와 강의를 하고 있다. 

 

2023. 4.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