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흐름

어둠 속에서 감각에 집중하는 ‘어둠 속의 대화’
시각보다 전체 감각을 되찾는다
이슬기 〈춤웹진〉 인턴기자

국내에서 ‘어둠 속의 대화(Dialogue in the dark)’가 열리고 있다. 1988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안드레아스 하이네케 박사(Dr.Andreas Heinecke)에 의해 출발한 ‘어둠속의 대화’는 유럽, 아시아, 미국 등 전 세계 160여 지역에서 1,200만 명 이상이 경험한 국제적인 전시이다. 한국 전시는 2010~2014년까지 신촌에서 진행됐고, 2014년 11월 북촌 전용관으로 자리를 옮겨 현재, 북촌과 함께 2021년에 동탄에 개관한 제2전시장에서 운영되고 있다.







비장애인은 시각, 후각, 미각, 청각, 촉각 등 오감을 통해 세상을 관찰하며 이해해 나간다. 그들이 습득하는 정보의 80%는 오직 시각에 의존한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는 것처럼, 감각 중 가장 발달하고 많이 사용하는 것은 단연 시각일 것이다. 이것이 비시각장애인이 어둠을 낯설고 두려워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시각 의존성이 낮을 때 오히려 새로운 걸 발견하곤 한다. 와인을 음미하거나 명상할 때, 마음을 움직이는 노래를 들을 때 등 눈을 감는데, 비로소 살아나는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이처럼 시각을 차단하게 되면, 상대적으로 다른 감각에 대한 몰입도가 높아진다. ‘어둠속의 대화’ 시각을 벗어나서 다양한 감각으로도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을 일깨우게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물리적인 관계를 단절시키는 ‘어둠’이라는 상황을 통해 시각 이외의 감각을 활용한 ‘진정한 소통의 발견’이라는 발상에서 ‘어둠 속의 대화’는 시작된다. 아래 내용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니, 주의하길 바란다.







북촌 한옥마을에 위치한 ‘어둠 속의 대화’에 입장한 체험객은 좌측 사물함에 디지털 전자 기기와 부딪힐 위험이 있는 소지품을 수납하고 엘리베이터에 탑승하여 빛이 차단된 내부로 진입한다. 체험객은 시각 장애인들이 사용하는 스틱을 받은 후, 완전한 어둠 속에서 100분간 함께할 로드 마스터를 따라 여행을 떠난다. 2명씩 4팀으로 나누어 팀의 호칭을 정하고 스틱으로 바닥을 짚거나 앞사람에 의지한 채 첫 번째 장소로 이동한다.

대나무로 이루어진 벽, 바닥에 깔린 잔디, 졸졸 흐르는 물소리, 그리고 싱그러운 나무 냄새는 자연 속 공간임을 유추하게 한다. 로드 마스터는 팀원 중 한 명을 의자에 앉히고, 청각을 곤두세워야 하는 상황을 연출한다. 남겨진 사람은 의자에 앉은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그 사람을 찾아야만 한다. 그렇게 다시 만난 팀원들은 서로의 소감을 나누며, 감각을 공유하는 시간을 갖는다.

스틱을 더듬어가며 흔들리는 다리를 건너면 어느새 선착장에 도착하게 된다. 로드 마스터는 배에 시동을 걸어, 어딘가를 향해 항해한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배, 모터와 갈매기 소리, 얼굴에 튀는 물은 다채로운 감각을 느끼게 하고 상상의 폭을 확장시킨다. 배를 타고 각자 떠올렸던 종착지에 도착하면, 사람들의 말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온다.

세 번째 장소는 시장터이다. 촉각과 청각을 동원해 매대에 진열된 상품들을 파악하는 시간이다. 느낌으로 무엇인지 알지만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는다. 이어서 2팀으로 나누어 감각을 사용하여 어떤 상품인지 알아맞히는 게임을 하는데, 서로 볼 수 없는 상황에서 한 팀을 이루어 편견과 선입견 없이 대화를 나누며 상품을 유추하다 보면 어느새 가까워진 것을 느끼게 된다.

네 번째 장소는 대청마루이다. 체험객은 마루에 누워서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며 저마다의 추억을 회상한다. 누군가는 아침이 밝아오는 순간을, 또 누군가는 가족과 함께했던 추억이나 밤하늘을 밝히는 별을 보았던 소중한 추억을 꺼내어 본다.

체험객은 어느 순간 마지막 장소인 카페에 다다르게 된다. 각자 다른 음료를 받은 후 의자에 앉아 미각만으로 테스팅한다. 익숙한 맛이지만 혼란스러움을 느낌과 동시에 비시각장애인이 얼마나 시각에 의존하고 판단했는지 다시금 깨닫게 된다. 체험이 끝나갈 때 쯤, 로드 마스터의 숨겨진 비밀을 알게 되는데, 이는 직접 전시를 체험하며 들어야 큰 의미로 다가올 것라 생각된다. 어느새 훌쩍 100분이 지나고, 아쉬움을 남긴 채 함께한 여정은 끝이 난다.

시각의 한계는 명확하다. 가려진 것은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후각과 청각은 가려진 것이 무엇인지 느끼게 해주고, 촉각과 미각은 다채로운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어둠속의 대화’에서 ‘어둠’은 인간이 가진 무한한 상상력을 끌어내는 매개체가 된다. 각자 쌓아온 과거의 경험과 기억을 토대로 무의식 속에 잠재된 상상력을 발휘하는 체험객은 같은 체험을 하더라도, 각자 다른 의미를 구성하게 된다. 체험하는 동안 서로 대화하는 시간이 주어지는데, 이 과정을 통해 자신과 달리 다른 것을 떠올리는 상대방을 이해하고 진정으로 소통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이번 전시가 주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의미는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이다. 시각이 차단되면서 혼자가 아닌 함께하는 것에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어둠 속을 함께한 사람에게 의지하며 두려움을 극복하면서 진정한 교감을 배워나가는 것이다.







한편, ‘어둠속의 대화’는 효과적인 소통과 안전한 여행을 위해 회차당 입장 가능 인원을 최대 8명으로 제한하고 있으며, 1일 37회의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관람 연령은 8세 이상부터 70세 이하이며, 관람료는 성인 3만 원, 청소년 2만 원이다.

이슬기

춤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춤현장을 취재하는 〈춤웹진〉 인턴기자. 현대무용과 무용이론을 전공, 현재 관객참여 춤의 특질과 관객성에 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2022. 10.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