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공동체의 춤 신명천지 마당굿
어느 마당극패의 ‘자갈치적 전망’ 2
채희완_춤비평가

1987년 10월 부산의 극단 자갈치가 형제복지원 인권참상 사태를 소재로 마당극을 올린 지 27년이 지났습니다. 2014년 봄날 어느 신문지상에 다음 같은 조그마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형제복지원 피해자 한종선(38살)씨는 이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세상의 문을 두드리며 2012년부터 1인 시위를 시작하였고, 현재 국회에는 ‘형제복지원 피해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자 생활지원 등에 관한 법률이 발의돼 있다. 원장 박인근은 뇌경색 등을 이유로 재판 중지에 있다.”



2022년 8월 신문1면 보도 기사 ⓒ채희완



형제복지원에서 살아남은 청장년 한 사람이 8살 때 강제 입소당하여 3년간 겪은 무시무시한 참극을 세상에 밝히기 시작했다. 며칠 낮밤을 두고 혼자 시위를 하기도 하고 방송매체에 알리기도 했으나 세상 사람들은 그건 내 일이 아니라고 냉담했다.

그는 형제복지원에 어릴 때 같이 끌려간 누나와 나중에 끌려간 아버지가 모두 심신이 망가져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있다고 했다. 이 청장년은 이들과 흩어지지 말고 한 번만이라도 같이 한 집에 사는 게 소원이라 하였다. 그리고 이제부터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를 찾아다니며 생사의 고비를 함께 겪은 인생의 전우애를 나누자고 굳세게 마음 먹었다. 극심한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자고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스스로 모임을 결성하는 중이라 한다. 이에 동조하여 몇몇 문화평론가들이 동참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이윽고 부랑자 감금을 제도화한 박정희나 전두환이 우리에게 사죄할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남한이라는 이 사회가 사죄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한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마당극패로서 어느 누구보다 일찍이 형제복지원 참상사태를 자신의 당면한 현실과제로 삼았던 극단 자갈치로서는 이러한 국면을 맞아 참으로 비통해하였습니다. 현재진행형인 과제를 남달리 먼저 제기해 놓고 나 몰라라, 20여년을 무책임하고, 무관심한 것에 저리는 반성과 함께 동참의 길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동안 소식이 멀어진 한종선씨를 비롯해 피해자 박승우, 박순이, 하안거(가명)씨 등을 곳곳에 찾아 잘못을 빌고, 이들이 바로 마당극의 중심인물임을 서로 동지애로서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들이 현사회를 비판하고 새로이 요청하는 바가 마당극에서 절절히 반영되지 않고서 ’자갈치적 전망‘을 밝게 가져가는 것은 아무리 마당극이라 할지언정 그것은 예술적 허위이기 때문입니다.

이 땅의 전통 민중연희는 사건의 당사자가 “지 얘기 남 얘기듯 남 얘기 지 얘기하듯’ 넉넉하고 푸근한 자기객관적 시선으로 세상을 말합니다. 오늘날 새롭게 연행될 마당 극의 시각도 이를 이어받습니다.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가 마당극을 그렇게 짜서 올립니다. 그렇게 하여 부산의 마당극패 자갈치는 2014년 10. 29.~11.2. 민주공원 소극장에서 〈복지에서 성지로 2〉를 올렸습니다. 1987년 처음 올린 〈복지에서 성지로〉의 극중 중심인물은 장년층 피해자였으나. 〈복지에서 성지로 2탄〉은 당시 8, 9살 어린이와 여성피해자가 중심입니다.

형제복지원에서 있었던 인신감금, 폭행, 살생 등의 끔찍한 사례는 다음의 일화가 가장 단적인 것입니다. 복지원에서 도망치다 잡혀온 소년들을 복지원 내 예배당 예배시간에 뒷자리에 끌고와 앉히고선 박원장이 검은 장갑을 낀 주먹으로 손수 살인 펀취를 날리는 대목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송가의 가락에 똑 맞아 떨어지는 검은 장단입니다. 젊어 권투선수였던 그에게 검은 장갑의 권투 리듬은 얼마나 그립고 정겨운 장단이었겠습니까? 그러다가 그 가락에 사람이 죽기도 하였는데 박원장은 이로써 하나님 전에 제물로, 희생양으로 올려 바쳐졌습니다.

이번 마당극에서는 박원장의 집 담을 타고 침입한 피해생존자가 그의 생일 축하예배파티에서 한 판 복싱경기를 벌여 치고 받는 피흘림으로 하나님 전 제단에 바쳐 올려 보기로 합니다.



2014년 극단 자갈치 공연작 〈복지에서 성지로 2〉 소개 내용 ⓒ채희완



〈복지에서 성지로 2〉 극 틀거리 짜기

박원장, 그를 납치하여 아버지와 누나 앞에 무릎 꿀리고 자신의 죄를 인정케 한다면 아버지와 누나가 가진 마음의 병이 치유되진 않을까? 그러지도 못하더라도 최소한 그것이 정의가 아닐까? 이도저도 아니라면 어쨌든 후련한 개인 복수라도 되지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에 몸무림치던 한역전은 어느날 박원장 집 담을 넘는다. 마침 이곳에서는 박원장의 88번 째 생일축하예배 파티가 벌어지고 있다. 형제복지원을 둘러싸고 불법 감금과 노동갈취, 살생 등 온갖 폭력과 갖은 비리를 가능케 한 역전의 인물들이 모였다. 우여곡절 인질극 끝에 박원장과 한역전은 사후 끝판 무제한 권투 경기를 벌인다.

이렇게 첫째마당을 연다. 그 앞에는 앞놀이로 춤판을 벌인다. 점차 뜨거워지는 물 속에 차거운 두부를 던져주면 미꾸라지들은 살 길을 찾아 두부 속으로 파고든다, 두부와 함께 익어가는 미꾸라지들, 이들이 형제복지원피해생존자임을 천명하는 춤판이다.

다음 둘째마당은 〈까만콩두부 미꾸라지숙회〉 포장마차 개업식이다. 여성소대 출신 하안녕의 개업식날 무단 주거침임, 살인미수범으로 3년을 복역관 한역전이 출소한다. 폭행, 강간, 약물중독의 아수라장 같은 여성소대에서 과감히 탈출한 하안녕의 무용담이 펼쳐지고 역전의 피해생존자 모임의 결성을 자축한다. 춤판이 벌어진다. 미꾸라지들이 이제는 장어가 되어 힘차게 헤엄치려 하나 이들 뒤에는 메기나 고래의 검은 그림자가 덮쳐오고 있다.

자, 여기에서 오래된 ‘자갈치적 전망’은 어떻게 비춰나오는 것일까요? 어두운 전망이 눈 앞을 가린다면, 우선 그렇게 만드는 요인부터 없애는 것이 순서이겠지요.

채희완

부산대 명예교수, 〈(사)민족미학연구소〉 소장, 〈부마항쟁기념사업회〉 이사, 〈창작탈춤패 지기금지〉 대표를 맡고 있다. 저서로 『공동체의 춤 신명의 춤』, 『한국의 민중극』(엮음), 『탈춤』, 『한국춤의 정신은 무엇인가』(엮음), 『춤 탈 마당 몸 미학 공부집』(엮음), 『지극한 기운이 이곳에 이르렀으니』 등을 펴냈고, 그밖에 춤, 탈춤, 마당극, 민족미학에 관련된 논문과 춤 비평문이 있다.​

2024. 2.
사진제공_채희완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