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공동체의 춤 신명천지 마당굿
어느 마당극패의 ‘자갈치적 전망’ 1
채희완_춤비평가

1988년 3월 4일 서울 미리내소극장에서 부산의 ‘극단 자갈치’가 마당극 〈복지에서 성지로〉 공연을 올린 후 관중과의 대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때 극단의 기획자 강희철씨가 인사말과 함께 경과보고를 하던 중 ‘자갈치적 전망’이란 말이 나왔습니다.



 

‘극단 자갈치’ 마당극 〈복지에서 성지로 2〉 (2014) 팸플릿 표지




‘자갈치적 전망’이란 말의 발설 경위

우리(극단 자갈치의 단원들)는 ‘자갈치적 전망’을 품어 안고 이 마당극을 짰고, 1987년 10월 18일 부산대 넉넉한 마당에서 첫 공연을 올린 이래 부산, 경남의 여러 대학 교정을 돌며 순회공연을 하였다. 그리고 부산YMCA 강당과 부산의 소극장에서 며칠씩 판을 짜서 올려 ‘자갈치적 전망’을 시민대중에게 전파하고 공감권을 형성하는 일을 하였는데, 그것 또한 ‘자갈치적 전망’의 구체적인 실현인 셈, 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이번 민족극한마당에 참가하는 이유도 부산의 극단으로서 ‘자갈치적 전망’을 서울에 전파하고 민족극한마당에 동참하는 각 마당연희패의 기획자와 구성원들에게 ‘부산의 자갈치적 전망’을 공지하여 이를 공유케 하려는 의도라고 하였습니다.

강희철씨의 말대로 그래서인지 부산의 극단 자갈치의 〈복지에서 성지로〉공연이 제1회 민족극한마당의 첫 열림판으로 설정되었습니다.

첫회 민족극한마당은 전국 9개 도시 18개 극단 및 놀이패가 참가하여 300명을 수용하는 미리내소극장에서 두 달간 쉬는 날이 거의 없이 거행되었습니다. 총기획자 유인택씨의 용의주도한 기획 마인드와 새 시대 마당극 또는 마당굿을 지향하는 각 지역 연희패들의 열정이 응결된 민족극한마당은 당시 대한민국연극제와는 그 바탕부터 성격을 달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부산의 자갈치적 전망’을 전지역의 광대패들이 공유하고 이를 확산하면서 전국적인 행사로 옮긴 그 공동체의 실행력이 토대를 이루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세를 몰아 부산지역에서는 그해 7월 16~17일 수영민속놀이마당에서 영남지역 민족극한마당(부산, 대구, 진주, 마산)으로 이어지고, 같은 해 12월에는 전국의 마당연희패들의 집합으로 ‘전국민족극운동협의회’의 결성을 보았습니다. 이는 각 지역 단위 마당연희패들 사이 ‘우리 지역의 전망’의 수렴과 확충의 결속체라고 보아 좋을 것입니다.



 

‘극단 자갈치’ 마당극 〈복지에서 성지로〉 포스터 (1988년 3월 4일 서울 미리내소극장 공연)




‘자갈치적 전망’이란 무엇인가


〈복지에서 성지로〉 공연을 하고 나서 관중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에 적지 않은 질문과 비평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 작품의 배경은 무엇이고 왜 이런 마당극을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작품의 소재는 부산의 부랑민 수용 사회복지시설인 형제복지원의 인권 유린사건이고 이 마당극은 이런 사회적 참사를 폭로하는 실화극 같은데, 이를 보는 엄정한 사회과학적 시각이 결여된 마당놀이판이 아니냐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질의에 대한 응답은 관중과의 대화시간을 넘어 뒤풀이자리에서도 오고 갔습니다.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형제복지원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87년 초였다.

당시는 1986년 아시안 게임을 치루고 1988년 하계 올림픽을 앞두고 있어 대한민국 정부가 대대적인 부랑인 단속에 나선 것이 이 사건의 배경이 되었다.

부산 형제복지원은 부산광역시 사상구 주례동에 위치한 국내 최대 부랑인 수용시설이다. 당시 약 3천명을 수용한 이러한 시설은 수용인원에 따라 국가에서 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역 앞에서 길거리에서 하릴없이 떠도는 사람들은 말할 나위도 없고 무연고 장애인, 고아, 부산에 놀러온 사람들, 부모를 기다리다 길가에 나온 아이들까지 무고한 사람들이 거리의 청소, 부랑인 선도라는 명목으로 영문도 모른 채 거기로 끌려갔다.

내부는 그야말로 인권유린의 참사 현장이었다. 수용자들의 강제 노역, 구타, 감금, 성폭행, 암매장까지 자행되었으며, 1975년 이래 형제복지원이 운영한 12년 동안 552명이 사망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것은 사건이 아니라 사태요, 참극이며 참살의 용광로였다. 1987년 1월 사건의 주범 박인근 원장은 불법감금, 폭행, 살인 등의 죄상은 묻혀진 채 업무상 공금횡령 혐의 등만 인정돼 징역 2년 6개월을 받아 구속되고, 6월에는 수용자 전원이 형제복지원에서 풀려났다.

그러나 풀려난 이들 중에 많은 이들이 아무런 보상도 대책도 없이 삶의 자리를 잡지 못한 채 팽개쳐져 또다시 다른 수용소로 끌려갔다. 사지멀쩡한 사람도 그 생지옥을 거쳐나오면서 심신이 망가지고 정신병동 등지로 세상에 내쳐졌다.

얼마 안가 박원장은 옥중에서 부랑자복지시설협회 회장에 출마, 재당선되었다. 세상은 변한 게 없었다. 군부독재 아래 신음하던 시민들도 87 민주대항쟁의 역사적 물결을 타고 민주정권의 쟁취가 눈앞에 생생하게 다가왔으나 양김세력의 자기분열로 지리멸렬, 또다른 독재정권 아래로 교체되었을 뿐이었고. 민초들의 부랑민적 삶은 복지사회 건설의 최일선 형제복지원에서 또다른 복지시설의 첨단 성지원으로 이름만 바꿔 옮겨졌을 뿐이다. 이를 두고 부산의 〈극단 자갈치〉 가 〈복지에서 성지로〉라는 마당극을 짜서 세상에 올린 것이다.

사건의 증시자의 시선이 아니라 형제복지원에 감금돼 수용당한 사건 피해 당사자의 시선으로 짠 것이다. 실제로 겪은 제 얘기를 남 얘기하듯, 보고들은 남얘기를 제 얘기하듯, 당사자의 제 입으로, 제 몸으로 발설하는 것이 복지원 수용원 스스로의 마당극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우리 극단 자갈치의 출연자는 사건 당사자를 대행하여 우리 얘기 가지고 모의쟁투로 싸우듯이, 살풀이하듯 놀 듯이, 마당극을 한다는 것이다.


이런 얘기가 오가는 관중과의 대화 시간에 마지막까지 자리를 뜨지 않은 한 청중이 이윽고 사회자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두 시간이나 되는 〈복지에서 성지로〉라는 작품을 호기심이 나서 꾹 참고 봤는데, 그런데, 그래서 ‘자갈치적 전망’이란 게 무어란 것이지요?”

그 자신에 대한 자기소개도 없이 질의한 이는 알고 보니 한국근현대연극사 연구의 태두이자 한국가면극연구의 정립자인 이두현 교수였습니다. 평소 탈춤의 현대적 계승에 남달리 관심을 보이기는 하였으나 잘 안 알려져있던 민족극한마당의 첫 공연현장에 모습을 보인 것은 뜻밖이었습니다. 다소 지루해지기 마련인 ‘관중과 대화의 시간‘의 마지막 쯤에 돌연 출연자와 청관중을 향해 던진 질문이 칼날처럼 날카로워 모인 사람들은 충격 속에서 잠시 말문이 잠겼습니다.

당신네의 ‘자갈치적 전망’이란 과연 무엇이냐? 하는 이두현 교수의 정곡을 찌르는 질문에 답변이 참 궁색했으나, 사회자가 일차적으로는 ‘작품이 제시하는 비전’을 뜻한다고 하면서 그것만이 아니라 ‘자갈치 극단의 앞으로의 행로’이기도 하다고 답하였습니다. 이에 여럿이 의견을 내어, 그것은 부산 ‘자갈치 아지매의 삶의 소망’이 담긴 것이고, 나아가 ‘부산 민초들의 삶의 지향성’이며, 한편으로는 극단 자갈치의 예술행동의 이념이자 ‘민족극으로서 부산문예의 민중적 성격을 가름짓는 것’ 이라고 의미를 보태었습니다. 그래 그래서 ‘자갈치의 전망’의 구체적인 실상과 그 실천내용은 과연 어떠하다는 것인가, 라는 물음에는 여전히 답을 내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전망’ 展望 perspective이란 무엇인가

사전 상의 뜻풀이로 전망은,
1) 내다보이는 앞으로의 상황, 멀리 내다보이는 경치, 넓고 먼 곳을 멀리 내다봄입니다.
2) 여기에 조망, 조감의 뜻을 포함시키면, ‘좌우를 살피며 내다보고 건너다보고 헤아려보아 다가오는 정황’입니다. “전망이 밝다”거나 “‘어두운 전망’이 내다보인다”라고들 말하지요.
3) 예술작품으로서 전망은 주제의식과 연결되어 메시지, 비전, 예감, 예측케 하는 것을 뜻합니다.
4) 예술의 정의를 내리면서 ‘예술의 전망’이란 무어냐고 하면 ‘자연의 모방’과 ‘미래의 실현’을 동시 가능케 하는 ‘전위적인 것’을 말하기도 합니다.

이 때 ‘자연’은 있는 것, 있음직한 것(가능태), 있어야 할 것(당위), 있음의 파괴 혁신(전위) 등의 의미를 두루 내포한 말입니다.

마당극 〈복지에서 성지로〉의 ’전망‘은 그 극적 성격상 자신을 떠받들어 주는 것으로,

첫째 1980년대 정치사회 상황의 마당극적 메타포를 들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부랑민‘ 복지시설의 인권유린을 비롯한 정치국면의 부랑화 가속화가 숨어 있고, 한편으로는 민주화 쟁취의 결정적 계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미증유의 설레임이 꿈틀거리는 때, 그러나 양김 세력의 자기분열과 민중배반이 새로운 국면 전환에 결정적 장애요인이 돠고 말았습니다.

둘째 마당극 속의 마당극들(소갈비짝 쟁취 모의쟁투, 호남선을 가운데 둔 신부쟁탈전의 혼례식, 형제복지원 개원 12주년 창립기념식 등)입니다. 탈출, 해방의 기회와 무산, 민중항거의식의 고양과 패퇴, 민주정권 수립의 호기와 상실, 양김 갈등과 자기분열에 결국은 체제 안존(복지-〉성지)의 마당판적 암유들입니다.

세째 사건피해 당사자의 시선과 그 몸으로 그 형편으로, 현장증시자로서의 전지적 시선과 합류되어. 남이 제 얘기 하듯, 제 애기 남이 하듯 모의쟁투하듯 살풀이하듯 싸우며 놀아 민증적 신명을 도출시키는 마당판을 제시한 것입니다.

네째 ’전망‘을 유도하는 극중인물로서는 거리의 여자였던 호남선과 아홉 살짜리 땅꼬마, 그리고는 이윽고 탈출에 성공한 개미회두목인 가상의 털보 등입니다. 이 중 특히털보의 사회활동의 행선이 ’자갈치적 전망‘을 담아낼 것으로 예측할 수 있습니다.


(다음호 계속)

채희완

부산대 명예교수, 〈(사)민족미학연구소〉 소장, 〈부마항쟁기념사업회〉 이사, 〈창작탈춤패 지기금지〉 대표를 맡고 있다. 저서로 『공동체의 춤 신명의 춤』, 『한국의 민중극』(엮음), 『탈춤』, 『한국춤의 정신은 무엇인가』(엮음), 『춤 탈 마당 몸 미학 공부집』(엮음), 『지극한 기운이 이곳에 이르렀으니』 등을 펴냈고, 그밖에 춤, 탈춤, 마당극, 민족미학에 관련된 논문과 춤 비평문이 있다.

2024. 1.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