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창작탈춤패지기금지 〈수주 탈춤 예수전 1〉
가나안 골목과 거리예배굿의 탈춤 연행이 시사하는 것
정지창_연극문학평론가

〈수주 탈춤 예수전 1〉 탈춤 공연(2023년 2월 10일, 한국문화의 집 코우스)의 총연출 채희완에 따르면 수주(水洲) 박형규 목사(1923〜2016)의 한살매를 민중예수의 삶에 빗대어 탈춤 양식으로 엮어낸 노래·춤·탈 마당굿이다. 박형규 목사는 1970, 80년대에 민주화 투쟁과 빈민선교에 앞장섰고, 그후 민주화기념사업과 평화통일운동에 헌신했다.

이번 공연은 〈수주 탈춤 예수전〉의 1부에 해당하는 것으로, 앞으로 2부의 ‘예루살렘 입성과 가진 자들의 잔치’와 3부의 ‘빈민촌 골고다, 타는 목마름으로’ 등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전체 구성이 예수의 생애와 비슷한 구조임을 알 수 있다. 이런 대작을 기획하고 공연하기 위해서는 중장기적인 기획과 재정 지원이 필수적인데, 다행히 이전 정부의 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 사업으로 공연이 성사된 것이다. 2부과 3부의 공연이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어떤 난관이 닥치더라도 언젠가는 3부작 〈수주탈춤 예수전〉이 온전한 작품으로 공연되어 우리시대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할 것을 믿는다.

지난 연말에 올린 〈수주탈춤 예수전〉(2022년 12월 7~8일, 창작마루 광무대)에서처럼 1부 공연작으로서 작은 표제를 ‘가나안 골목과 거리예배굿’이라 이름지은 이번 재공연은 모두 다섯 마당으로 구성되었다. 각 마당은 서양 무대극의 막과는 달리 서로 긴밀하게 인과관계로 연결되기보다 다섯 폭 병풍처럼 독립적으로 나란히 놓여 있다. 이에 따라 각 마당의 표현양식과 출연진도 다르다.

우리 시대 오래되거나 젊은 기량을 가진 춤꾼들과 광대들의 농익은 춤사위와 몸짓, 사설 하나하나가 예술적 감흥을 자아냈다. 또한 역동성을 표현하는 안무도 더욱 세밀하게 다듬어 광대와 관객이 자연스럽게 함께 어우러져 마당판이 출렁이고 흥청거리는 신명을 자아냈다. 종전에는 탈춤을 출 때 발음이 분명치 않아 사설 내용이 관객의 귀에 잘 들리지 않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 공연에서는 이런 문제들을 기술적으로 해결하여 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뚜렷이 전달되었다.

· 열림마당: 7080민주해방열사(전태일, 김상진, 김경숙, 박종철, 이한열)들이 탈과 춤, 대사를 이용하여 오방신장무를 펼친다. 출연; 정연도 신재걸 민경서 박종관 최승집 .
· 첫째거리: 노래굿 〈공장의 불빛〉. 원작을 축약, 압축하고 군무(群舞)의 안무를 좀더 역동적으로 정교하게 다듬었다. 출연진은 요즘 청년 춤꾼들로 바뀌었다.
출연: 정승환 박소희 김희영 이채영 배진아 신건 목수연 안예은 최은선 형남수.
· 둘째거리: 부활절 남산연합예배 내란 모의재판 법정. 마당극 형식으로 검사의 억지 공안몰이와 이를 논파하는 한승헌 변호사의 해학과 풍자를 대조시켜 극적 효과를 증폭시킨다. 출연: 형남수 박종관 김헌근 최승집 김진희.
· 셋째거리: 혼례마당 뒤풀이와 첨탑. 깡패들에 쫓겨 교회 꼭대기에 갇힌 박 목사를 응원하기 위해 마당극 광대(김헌근)가 관객들로 하여금 인간사슬을 만들어 물과 밥과 기도와 찬송을 올려보내도록 유도한다. 출연: 형남수 김수보 민경서 신재걸 조현모 최승집 박종관 이은희 서지연.
· 넷째거리: 오장동 골목 예배굿 마당. 마당굿 형식. 〈‘공장의 불빛〉에 나오는 구사대가 역시 ‘돈타령’을 부르며 교회 안에 침투한 정보기관원과 용역 깡패로 등장. 거리예배는 거리굿으로 승화된다. 출연: 이노연 안혜경 진회숙 김경미 정기정 이미화 이은희 등 출연자 모두.



창작탈춤패지기금지 〈수주 탈춤 예수전 1〉 ⓒ김채현



열림마당은 7080 민주해방열사 다섯 분을 모시는 청신맞이굿이다. 전태일, 김상진, 김경숙, 박종철, 이한열의 탈을 쓴 광대들이 등장하여 그들이 목숨을 바쳐 이루고자 했던 민주화와 노동해방의 염원을 외친다. 이들이 추는 오방춤은 강증산이 말하는 ‘천지굿’, 즉 후천개벽 세상으로 가는 배 위에서 밑바닥 민중들이 추는 해방춤인데, 김지하의 〈남녘땅 뱃노래〉 표지에 실린 오 윤의 판화에 형상화되어 있다. 반주 음악(‘아침바다 뱃노래’)은 최태현이 작곡한 것이다.

이어 진행자인 광대 김헌근과 김진희가 등장하여 탈춤의 영감·할미 마당을 활용하여 오장동 제일교회에서 열리는 노래굿 〈공장의 불빛〉 공연장으로 관객을 끌고 간다.





창작탈춤패지기금지 〈수주 탈춤 예수전 1〉 ⓒ김채현



첫째거리로 펼쳐지는 〈공장의 불빛〉은 1978년 12월 제일교회에서 〈놀이패 한두레〉가 공연했던 노래굿을 압축, 재현한 것으로 당시 어느 방직공장 여공들이 노조를 설립하는 과정에서 겪는 사측의 각종 방해공작과 구사대의 폭력을 고발한다. 김민기가 작·편곡하고 가사를 바꿔 사용한 노래들은 그 양식의 다양성과 폭발적인 현장감과 민중정서를 파고드는 호소력으로 이후 노래운동과 노래극 양식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서정적이고 애잔한 발라드풍의 ‘공장의 불빛’과 ‘이 세상 어딘가에’, 경쾌하고 자극적인 트위스트 곡 ‘돈타령’과 국악풍의 ‘두어라 가자’, 구전가요와 군대의 속요를 활용한 ‘야근’까지 김민기의 음악적 재능은 그야말로 백화제방식으로 펼쳐진다. 결국 그러한 다양성은 현실의 모순을 날카롭게 고발하고 전복시키는 전투적 해방감으로 고양된다.





창작탈춤패지기금지 〈수주 탈춤 예수전 1〉 ⓒ김채현



1978년 당시 〈공장의 불빛〉 제작진과 출연진은 극히 어려운 여건 속에서 어느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하고 이대 방송반에서 하루 낮에 녹화를 마친 다음 카세트테이프 2천 개를 복사하여 은밀하게 배포했고, 김민기는 잠적했다. 테이프 2면은 노래 반주만 들어 있어 노동 현장에서 반주에 맞추어 공연할 수 있도록 제작되었다. 이 테이프는 음질은 떨어지되 후에 나온 CD에서는 도저히 맛볼 수 없는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 (이 대목은 진회숙의 책 〈우리 기쁜 젊은 날〉을 참조하기 바란다.)

이 노래굿에서 가장 인상적인 노래는 ’돈만 벌어라‘가 아닐까. 일명 ’돈타령‘으로 불리는 이 노래는 경쾌하고 강렬한 트위스트 풍의 선율로 개발독재 시대의 뻔뻔한 황금만능주의를 직설적으로 표현한다. 대장동 비리로 50억을 받은 전직 검사 곽상도가 무죄 판결을 받은 날 불쑥 떠오르는 노래도 바로 ’돈만 벌어라‘이다. 김민기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어느덧 이 노래는 대한민국의 국민정서와 자본주의 시대의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국민가요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 같다.

개같이 벌으랬다 돈만 벌어라
더러운 돈 좋아하네 돈만 벌어라
새 돈 헌 돈 따로 있나 돈만 벌어라
아무거나 시키세요 돈만 벌어라
인정 찾고, 양심 찾고
개소리를 허덜 마라
정승처럼 쓰면 됐지
돈 벌어 돈만 벌어



창작탈춤패지기금지 〈수주 탈춤 예수전 1〉 ⓒ김채현



둘째거리 다음에는 찬송가와 흑인 영가들이 나오는데, 그중에서도 김지하 작사, 김민기 작곡의 ’금관의 예수‘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이 노래는 1972년 가톨릭 원주교구에서 초연된 연극 〈금관의 예수〉(김지하 대본)의 주제곡으로 유신시대에 민주화운동을 하는 기독교 청년들이 찬송가처럼 즐겨 부르던 애창곡이었다. 긴급조치 위반으로 투옥된 김지하 등 민주인사들이 영등포 교도소에서 석방될 때 얼어붙은 새벽에 청년들이 부르는 이 노래를 듣고 취재 현장의 기자들도 감동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양희은이 부른 ‘금관의 예수’도 좋지만, 김민기가 나지막한 저음으로 부르는 노래가 이번 공연과 절묘하게 어울렸다. 같이 공연을 본 극작가 안종관 선생은 작곡·작사에 천부적 재능을 가진 김민기가 뛰어난 가수이기도 하다는 것을 실감했었다고 털어놓았다.





창작탈춤패지기금지 〈수주 탈춤 예수전 1〉 ⓒ김채현



당시 소외된 민중을 외면하고 금관을 쓴 예수의 우상만을 섬기던 기득권 교회를 통렬하게 비판한 연극 〈금관의 예수〉는 나중에 제일교회에서도 기획되었다. 〈공장의 불빛〉(김민기 대본 작곡/ 채희완 연출 안무)이나 〈청산별곡〉(원제는 〈진오귀굿〉, 김지하 대본, 임진택 연출)같은 작품들이 제일교회에서 공연될 수 있었던 것은, 박형규 목사의 적극적인 격려와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당시 대학생으로 〈공장의 불빛〉에 여공으로 출연했던 임정희 씨(현 ‘문화연대’ 대표)는 공연 중 교회를 꽉 둘러싼 곤봉 든 경찰들은 보이지도 무섭지도 않았는데, 춤 동작이 틀린 것이 더 신경쓰였다고 회고했다. 출연자들은 공연이 끝나 관객들이 전경의 진입을 막아주는 틈에 옷을 갈아입고 도망칠 수 있었다.



창작탈춤패지기금지 〈수주 탈춤 예수전 1〉 ⓒ김채현



우리 시대에 와서 현대의 탈춤은 그동안 세상천지의 갖가지 어지러운 면면들을 들추고 새 세상을 여는 전망들을 펼쳐왔었다. 그런 중에 〈수주 탈춤 예수전 1〉은 70년대, 80년대 민주화운동의 불씨를 지펴온 사람들의 현장 활동을 절절하게 담았다. 그 시절에 탈춤을 탐색하고 몸으로 실천했던 주역들이 수십 년 세월 동안 흔들리지 않고 지속해왔던 작업의 연장선에 〈수주 탈춤 예수전〉이 놓인다. 민중 예수의 삶과 민중 노래 같은 장치들은 탈춤이 민주 사회를 염원하며 살아 숨쉬어 왔음을 여실히 증언한다. 여느 탈춤과는 다르다. 또한 탈춤이 생활 공동체에 뿌리박았던 것처럼 〈수주 탈춤 예수전 1〉에서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다수의 사람들이 출연진으로 출연하였다. 동시에 주목할 점으로서, 이제는 나이든 중년층 출연자와 제작진들은 오늘의 역사 속에서 꿋꿋하게 탈춤을 다듬어온 실행가들이고 그들이 신진들과 힘 모아 무대를 꾸렸다.

〈수주 탈춤 예수전〉은 회고담이 아니라 탈춤의 어제와 내일을 잇는 고리로서 오늘 지금의 탈춤으로 재인식되어야 한다. 우리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온 사람들의 탈춤인 것이다. 그러므로 아주 매끈한 공연작보다는 이번처럼 생활 공동체의 연행 같은 투박하되 진정성을 간직한 탈춤도 좋을 것이다. 오늘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꿈꾸는 더 나은 세상이 2부와 3부에서 질펀하게 그리고 꿋꿋이 펼쳐지기를 기대한다.



총연출: 채희완
연출: 정승천
총제작: 박종렬
탈제작: 이석금 황병권
음악: 김민기 최태현
안무: 이노연 정기정 정승환 박소희

정지창​
연극평론가·문학평론가. 영남대 독문학과 명예교수.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이사장을 역임했고, 저서 〈서사극 마당극 민족극〉 〈호르바트의 민중극〉, 산문집 〈오늘도 걷는다마는〉, 역서 〈상어가 인간이라면〉 등 다수가 있다.
2023. 3.
사진제공_김채현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