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흐름

MoMA가 주목한 미디어 아티스트들
뉴욕 MoMA 미디어 & 퍼포먼스 컬렉션
이슬기 〈춤웹진〉 인턴기자

현대카드가 뉴욕현대미술관(MoMA)의 미디어 소장품 전시를 최초로 개최한다. 6월 10일~9월 25일 현대카드 스토리지에서 열리는 ‘Pervasive Light: Works from MoMA’s Media and Performance Collection(스며드는 빛: 뉴욕 MoMA 미디어 & 퍼포먼스 컬렉션)’은 2006년부터 현대카드와 파트너십을 맺어왔던 MoMA와 긴밀한 협력을 통해 기획되었다. 이번 전시는 마틴 심스(Martine Syms), 아메리칸 아티스트(American Artist), 하룬 파로키(Harun Farocki), 산드라 무징가(Sandra Mujinga), 트레버 페글렌(Trevor Paglen) 등 5인의 작가가 참여한다.




마틴 심스 〈Lessons I-CLXXX〉, 〈GIRRRLGIRLLLGGGIRLGIIIRL〉 ⓒ춤웹진




한강진역 3번 출구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현대카드 스토리지는 현대카드 바이닐앤플라스틱 건물 우측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발견할 수 있다. 관람객은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매표소에서 티켓 교환 후, 비디오와 퍼포먼스, 설치 등의 장르를 활용하여 흑인 문화, 페미니즘, 언어 등을 주제로 작업하는 마틴 심스(Martine Syms)의 두 작품을 만나게 된다. 보라색 벽에는 페인팅 작품 〈GIRRRLGIRLLLGGGIRLGIIIRL〉와 함께 세 개의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다. 스크린에는 영상 작품 〈Lessons I-CLXXX〉이 무작위로 재생되며, 마틴 심스는 유튜브, 80년대 TV쇼, 인터뷰 영상, 개인 영상 등에서 발췌한 영상들을 편집하여 보여준다. 180개로 구성된 푸티지 영상에는 흑인 반란이 일어난 디트로이트, 대중대체에 투영되는 고정된 흑인의 이미지, 연회장에서 식사하는 흑인, 흑인 음악 제작사인 모타운 레코드, 흑인영가를 부르는 합창단, 개인이 촬영한 영상 등 흑인의 문화/역사와 단편적인 일상이 담겨있다. 마틴 심스는 이를 통해 디지털 문화 속에서 흑인 정체성에 대한 개념이 어떻게 형성되고 신화화되며 해석되는지 보여준다.




아메리칸 아티스트 〈2015〉 ⓒ춤웹진




이어 지하 3층으로 내려가면 차례로 네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미국 작가’라는 기존의 관념에 도전하기 위해 개명한 아메리칸 아티스트(American Artist)는 〈2015〉를 선보인다. 작품명은 뉴욕 경찰이 테러를 방지하기 위해 범죄 예측 프로그램을 도입한 연도를 의미한다. 아메리칸 아티스트는 작품을 통해 범죄 예측 프로그램의 악용 위험성을 경고, 미국에 만연한 인종차별을 고발한다. 〈2015〉는 순찰 중인 경찰차에 설치된 블랙박스 시점에서 전개되는데, 영상 중앙에는 가까운 장래에 범죄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곳이 표시되며 우측 하단에는 수시로 강도, 살인, 폭행, 강간, 절도 등과 같은 범죄기록이 뜬다. 범죄 발생 가능성을 예측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세상을 그려낸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마이너리티리포트〉가 더 이상 미래에 있을 법할 일이 아니라는 걸 새삼 알게 된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에는 오류와 편견이 발견되곤 한다. 흑인과 소수 인종이 사는 지역을 타깃으로 삼아 백인 동네에 비해 검문을 벌이며 인종 차별적인 치안 유지 패턴을 오히려 강화시킨다는 것이다. 작품 영상을 따라가다 보면, 이미 범죄를 저질렀다고 가정하고 ‘범죄차단’이라는 문구가 뜨는데 아메리칸 아티스트는 관람객이 색안경을 낀 채 잠재적 범죄 현장으로 인지하게 한다.




하룬 파로키 〈Eye/Machine〉 ⓒ춤웹진




독일 영화감독이자 미디어 아티스트로 활동 중인 하룬 파로키(Harun Farocki)는 군사, 의료, 민간 영역에서 작전용, 교육용, 홍보용으로 만든 푸티지 영상을 결합, 재배열한 2채널 영상 작품 〈Eye/Machine〉을 출품했다. 한 채널에는 영상 추적 장치가 있어 표적의 움직임을 자동으로 감지하는 기계, 촬영된 이미지와 저장된 지리적 데이터를 비교해 갓길의 블록과 교통 표지판, 차량을 감지하는 자율주행시스템, 문과 문패를 찾기 위해 돌아다니는 실험 로봇, 민수품 생산에 사용되는 기계, 최적의 경로를 계산하는 전술임무 관리시스템, 개복이 필요 없이 최소화된 수술을 돕는 로봇, 레이더 신호가 감지되자마자 조향 명령으로 변환하여 미사일을 목표를 향해 타격하는 안내 시스템의 영상을 통해 군사 산업과 기술 산업 간의 유사성을 보여준다. 또 다른 채널에는 기계에 탑재된 카메라 시선이 담겨있다. 〈Eye/Machine〉은 전자감시체계, 사물 인식, 가상 시뮬레이션으로 비치는 카메라의 눈을 통해 재현되는 전쟁의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작품 말미에는 “우리는 1991년 이라크 전쟁과 같은 모습을 보았다.”, “자율 기계 전쟁을 상상해본다면, 바로 그건 노동자가 없는 공장과 같은, 군인 없는 전쟁일 것이다”라는 텍스트가 나오는데, 파로키는 현대화된 전쟁의 지능적 기술에 대한 의존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과 함께 전쟁의 냉혹함을 소개한다.




산드라 무징가 〈Pervasive Light〉 ⓒ춤웹진




노르웨이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산드라 무징가(Sandra Mujinga)는 감시와 통제의 사회 속에서 타의로 조정되는 가시성과 이미지 정치 사이를 탐구함으로써 개인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들을 주제로 작업하는 작가이다. 이번 전시 제목과 동명 작품 〈Pervasive Light〉는 대중문화 속에서 흑인성에 대한 조건부적 재현이 경험의 확장을 제한하고 있음을 은유하는 작품이다. 전시 공간에 진입한 관람객은 세 개의 모니터에 둘러싸인다. 모니터에는 빨간 망토를 두른 노르웨이 흑인 뮤지션 마리아마 엔듀르(Mariama Ndure)이 등장한다. 천천히 걷는 그의 모습이 나타났다가 채도가 높은 색의 흔적만 남기고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마치 카메라의 시선을 피하려는 듯 보인다. 산드라 무징가는 사회에서 흑인이 사라지는 것을 비판함과 동시에 역설적으로 사회에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모습을 감추는 능동성을 찾아간다.




트레버 페글렌 〈Behold These Glorious Time!〉 ⓒ춤웹진




마지막으로 소개되는 작품은 트레버 페글렌(Trevor Paglen)의 〈Behold These Glorious Time!〉이다. 트레버 페글렌은 미국 작가이자 지리학자로 사진, 조각, 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보이지 않는 세계’를 주제로 작업한다. 〈Behold These Glorious Time!〉의 도입부에는 인공지능 네트워크가 사물, 얼굴, 몸짓, 표정을 볼 수 있게 훈련시키는 과정을 보여준다. 영상에는 다채로운 사람의 표정을 보여주고, 앉기, 전화하기, 먹기, 악수하기, 손뼉 치기 등 일상의 행위와 자전거를 타거나 철봉에 매달리고 번지점프와 같은 운동성이 강조된 움직임이 끊임없이 나열된다. 이는 AI 네트워크가 인간의 얼굴, 몸짓, 표정을 훈련시키는 과정이다. 이후 AI가 꽃, 사물, 과일, 사람, 지문, 총기, 표지판, 음식 사진을 해석하기 위해 이미지를 가장 기본적인 선, 픽셀, 회색으로 분류하는 것을 보여준다. 페글렌은 AI 훈련 라이브러리를 채우고 있는 이미지들이 결국 인간이 선정하고 분류한 것으로, 사회 기반 시설과 환경에 침투한 ‘스마트’ 기계에 내포된 편견을 코드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만든다. 동시에 디지털 이미지는 인간 없이 기계가 읽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기술과 매체가 우리의 삶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는 전시 ‘스며드는 빛’은 화요일 ~ 일요일 운영되며, 현대카드 DIVE 앱과 멜론 티켓에서 예매할 수 있다.

이슬기

춤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춤현장을 취재하는 〈춤웹진〉 인턴기자. 현대무용과 무용이론을 전공, 현재 관객참여 춤의 특질과 관객성에 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2022. 7.
사진제공_춤웹진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