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흐름

미디어아트 전시 〈포에틱 AI〉
AI가 수집한 데이터로 예술화를 시도하다
이슬기_〈춤웹진〉 인턴기자

글로벌 스튜디오 오우치(OUCHHH)의 〈포에틱 AI〉가 4월 7일~10월 6일 그라운드시소 명동에서 열린다. 롯데백화점 에비뉴엘 본점 9층에 위치한 그라운드시소 명동은 〈반 고흐 인사이드〉 〈클림트 인사이드〉 등 미어아트 전시를 공개해 온 제작사 미이어앤아트가 건립, 바닥면적 800², 높이 6m에 달하는 서울에서 유일한 몰입형 미디어아트 상영관이다.

엔지니어, 학자, 크리에이티브 코디, 미디어 아티스트, 모션 그래픽 디자이너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오우치는 ‘지식이 곧 경험을 창출한다’는 모토로 프로젝트를 구현해왔다. 과학과 예술의 경계를 넘어서는 초현실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한 이들은 이스탄불을 기반으로 파리, 런던, 베를린, 로스엔젤레스, 바르셀로나 등 52곳이 넘는 국가와 파트너십을 가지고 있으며, NASA, Google, Intel, Nike 등 손꼽히는 기관과 협력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글로벌 스튜디오 오우치(OUCHHH) 미디어아트 전시 〈포에틱 AI〉




AI 기술을 기반으로 구현되는 〈포에틱 AI〉는 ‘AI의 시적 여정’ ‘AI로 만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암흑 속 충돌’ ‘뮤지션의 영감’ ‘차원의 문턱에서’ ‘데이터의 파편’ 등 6개의 챕터로 구성, 약 30분간 상영된다. 상영관에 들어서면 양쪽 공간을 마주하게 되는데, A존은 관람객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반면, B존은 한 자리에 고정된 상태로 관람에만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다. 두 존은 관람 환경에 차이가 있을 뿐, 동일한 콘텐츠가 상영된다.

첫 챕터는 ‘AI의 시적 여정’으로, ‘머신러닝과 AI 알고리즘을 사용하여 수퍼 과학자의 의식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시작된 프로젝트이다. 2018년 오우치가 파리의 티지털 아트센터 ‘아틀리에 데 뤼미에르(Atelier des Lumières)’에서 처음 내놓은 이 프로젝트는 파리시민 100만 명 이상이 관람하고, 52개 도시에서 상영되는 등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미디어아트 전시 〈포에틱 AI〉




‘AI의 시적 여정’은 AI 알고리즘과 머신러닝을 사용해 빛, 물리학, 시공간에 관한 수천 권의 책과 기사를 발췌, 분석하여 아트 콘텐츠로 변형시킨 프로젝트이다. 스크린에는 알고리즘이 생성한 이미지들이 쏟아져 나온다. 영문과 숫자로 조합된 입자들이 곡선을 이루며 파동 형태로 요동치며, 추상적인 도형이 비정형적인 형태로 변조되어간다. 여기에 SF 영화를 연상케 하는 웅장한 사운드와 긴장감 넘치는 전자음이 더해져 영상의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는 이미지와 사운드는 관람객의 몸과 감각을 압도하며, 강한 물성을 느끼게 한다.




 

미디어아트 전시 〈포에틱 AI〉




두 번째 챕터 ‘AI로 만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제목에서 감지되듯이, 이탈리아 미술사 속 20,000점이 넘는 작품을 데이터로 수집하고 처리하여 거장들의 걸작을 조명한다. 이 챕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작품의 데이터를 학습한 AI가 구현한 ‘데이터 페인팅 기법’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인체비례도〉(Canon of Proportions)를 시작으로 파편화된 그의 작업 노트에 이어 〈모나리자〉(Mona Lisa), 〈수태고지〉(The Annunciation), 〈살바토르 문디〉(Salvator Mund), 〈지네브라 데 벤치〉(Ginevra de' Benci), 〈그리스도의 세례〉(The Baptism of Christ), 〈광야의 성 히에로니무스〉(ST. Jerome in the Wilderness)등이 투사된다. 그림을 형성하는 입자들은 분해되고,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 벽에 전시된 라페엘로와 보티첼리의 작품을 비롯해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The Creation of Adam) 속 인물들이 150억 개의 입자로 구성된 AI의 붓놀림으로 재탄생한다. 영상의 후반부에는 각 걸작들이 동시에 노출되며, 입자들의 다채로운 색깔들이 파도처럼 일렁인다.




 

미디어아트 전시 〈포에틱 AI〉




리플렛에 의하면 세 번째 쳅터 ‘암흑 속 충돌’은 아원자 입자의 충돌이라는 물리학적 개념을 다뤘고, 네 번째 챕터 ‘뮤지션의 영감’은 음악가의 두뇌에서 전기 활동을, 다섯 번째 챕터 ‘차원의 문턱에서’는 NASA의 AI 천문 연구 데이터를 활용했으며, 마지막 여섯 번째 챕터 ‘데이터의 파편’은 터키 남동부 아나톨리아 지역 ‘괴베클리 테페(Göbekli Tepe)’의 데이터를 학습하여 30억 개의 픽셀로 구현했다고 한다. 네 개의 영상이 하나로 통합된 마지막 장에서 각 챕터를 구분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꼈으나, 전반적으로 오우치는 AI가 생성한 넘쳐나는 이미지를 통해 초월적 시공간을 표현하는 듯했다. 각 챕터에서 어떤 기술을 활용했고, 어떠한 방법으로 구현했는지 명확하게 짚어준 소개가 있었다면 관람객들의 공감을 더욱 끌었을 거라 생각된다.

오우치의 설립자 프레드 알리치(Ferdi Alici)는 이번 전시를 “디지털 데이터를 페인트로, 알고리즘을 브러시로 사용한다”고 설명한다. 이처럼 〈포에틱 AI〉의 특징은 AI가 수집한 데이터를 재해석하여 예술로 구현했다는 것이다. AI가 그려내는 이미지들은 온몸을 휘감는 느낌을 자아내며, 어떨 땐 물리학적 경이로움까지 느끼게 한다. 춤계에서도 역시 AI를 활용한 좋은 선례가 있다. 국립현대무용단에서 기획한 신창호 안무가의 〈비욘드 블랙〉이 그것이다. 신창호 안무가는 ‘슬릿스코프’팀과 8명의 무용수가 함께 256분 분량의 움직임을 창작, 크로마키 촬영을 통해 추출한 이미지를 AI에 주입/학습시킨 후 1,000분 가까이 되는 움직임을 만들어냈고, 그 움직임을 무용수가 재학습하여 〈비욘드 블랙〉을 탄생시켰다. 미디어아트와 춤을 결합하는 것은 오늘날 보편적으로 자리 잡은 현상인데,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사례로는 차진엽 안무가를 꼽을 수 있다. 그는 몸을 캔버스 삼아 작품을 그려내는데, 작년에 〈원형하는 몸: round 1, 2〉에서 미디어아트를 적극 활용해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했고 지난 4월 국립무용단 ‘더블빌’ 중 〈몽유도원무〉에서 이상세계인 도원에 이르는 과정을 담아냈다.




 

미디어아트 전시 〈포에틱 AI〉




이번 전시는 인터파크 예매율 3위에 진입(4월 첫째주 기준), 주말 매진을 기록하는 것으로 미루어보면, 대중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분명하다. 디지털 페인팅 한가운데로 초대받은 관람객은 작품의 일부가 되어 이미지 속을 유영하는 듯한 느낌을 받고, 빛의 물감에 흠뻑 젖어 온몸으로 빛을 감각하게 된다.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는 화려한 빛의 향연, 예쁜 인증샷을 남길 수 있는 포토존 등은 젊은층의 인기를 끈 요소로 작용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실제로 이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 관객의 모습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 〈포에틱 AI〉는 서울을 시작으로 베를린, 뉴욕, 타이완 등에서 열릴 예정. 이번 전시는 10월 6일까지 열리며 관람료는 15,000원.

이슬기

춤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춤현장을 취재하는 〈춤웹진〉 인턴기자. 현대무용과 무용이론을 전공, 현재 관객참여 춤의 특질과 관객성에 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2022. 5.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