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코로나19 사태 / 한국 뮤지컬계
얼어붙은 석달, 해빙 막막한 빙하기
송준호_문화칼럼니스트

지난 몇 달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의 여파로 공연계는 비상 상황에 돌입했다. 초반에는 개막 연기나 공연 취소가 불가피했지만, 차츰 무관중 공연과 온라인 생중계를 병행하거나 녹화 중계를 제공하며 관객들의 갈증을 달래주는 작품들도 있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제작비가 소요되는 뮤지컬에게 공연은 생계와 직결되는 문제였다. 사회적 불안감이 팽배한 가운데 오프라인 공연을 이어가는 작품들이 있었고, 이에 따른 부작용이 발생하기도 했다. 명실공히 코로나바이러스와 동행해야 하는 시대. 이제 뮤지컬 공연장의 풍경도 새로운 변화를 맞고 있다.


최악의 불황에 빠진 뮤지컬계

국내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온 1월 20일 이후 공연계 상황은 4월까지 점점 더 악화됐다. 공연예술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1월에 약 406억 원이던 매출액은 2월에는 210억 원대로 반토막났다. 이후 3월은 91억여 원, 4월은 36억여 원으로 곤두박질쳤다. 이는 공연 수의 감소(1월 484건, 2월 357건, 3월 84건, 4월 75건)에 따른 것이기도 했다.
 특히 코로나19가 ‘위기’에서 ‘심각’ 단계로 상향된 후 뮤지컬계는 기약 없는 빙하기로 들어가 헤어나오지 못했다. 공연장을 찾는 관객의 발길이 먼저 끊겼고, 제작사 자체적으로도 공연 일정을 연기하거나 전면 취소하기도 했다. 전설적인 록밴드 ‘퀸’의 명곡 24곡을 이야기로 엮은 뮤지컬 〈위윌락유〉와 90년대 동명의 홍콩영화를 무대로 옮긴 〈영웅본색〉 등 대형 뮤지컬들은 공연을 일시 중단했다. 이들은 추후 상태를 지켜보며 재공연을 기다렸지만, 사그라지지 않는 바이러스의 위세에 결국 공연 회차를 다 채우지 못한 채 폐막할 수밖에 없었다. 2017 창작산실 선정작으로 기대를 모았던 〈줄리앤폴〉 역시 이런 상황을 반영해 폐막을 20일 앞당겼고, 〈보디가드〉는 부산 공연 일정을 취소했다.
 3월에는 코로나19의 확산세가 거세지면서 초유의 ‘사회적 거리두기’까지 권장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사태를 지켜보며 공연 재개 여부를 저울질하던 일부 제작사들도 공연을 완전히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3월 8일 공연을 끝낸 〈셜록홈즈〉는 사전 예고 없이 갑작스럽게 폐막을 결정해 이 같은 사태의 심각성을 체감하게 했다. 이후 〈맘마미아!〉, 〈마마, 돈 크라이〉, 〈로빈〉, 〈올 아이즈 온 미〉 등도 관객과의 만남을 다음으로 미뤘다.




뮤지컬 〈올 아이즈 온 미〉 개막 연기 안내




 뮤지컬을 포함한 공연계는 지난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도 이처럼 바이러스의 직격탄을 맞은 바 있다. 당시 연극과 뮤지컬은 상황이 가장 심각했던 여름에 티켓 판매액이 27%나 극감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19로 내수가 얼어붙는 것은 물론 해외 교류까지 전면 중단되면서 현장의 신음은 계속되고 있다.


마스크, 문진표, 체온 측정 … 새로운 공연장 풍경

학생들은 화상수업, 직장인들은 재택근무로 보냈던 초유의 상황. 밀폐된 공간에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공연장은 이제 모두가 예민할 수밖에 없는 장소가 됐다. 공연이 없는 날은 대대적인 방역도 이뤄진다. 공연 시작을 앞두고는 매표소부터 입장 통로까지 분주한 모습이다. 단순히 티켓만 발권하면 바로 입장이 가능했던 이전과 달리, 체온 측정과 문진표 작성이 필수적인 통과의례가 됐기 때문이다. 마스크 착용은 이제 전 국민의 당연한 의무사항이라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다. 이쯤 되니 티켓 확인은 뒷전으로 물러나는 모양새다. 공연장에 들어서도 ‘관람 도중 절대 마스크를 벗지 말라’는 어셔의 당부가 길게 이어진다.
 이런 과정은 처음에는 번거롭다는 인식도 강했지만, 확진 판정을 받은 관객이나 배우가 자신도 모르는 채 공연장에 머문 사례가 경각심을 일으키며 필수적인 절차가 됐다. 관객이나 배우가 확진 시 이들의 동선 추적은 매우 중요하다. 같은 공간에 있은사람 모두가 자가격리 대상이고 추가 검진도 필요할 수 있기 때문에 문진표의 정보는 절대적인 근거가 된다.
 이를 잘 보여준 공연이 〈오페라의 유령〉이다. 월드 투어 팀으로 치러지는 이번 내한 공연에서 캐나다인 발레리나와 미국인 배우가 잇따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것이다. 이에 따라 공연장인 블루스퀘어는 방역 당국의 조처에 따라 4월 1일부터 14일까지 임시 폐쇄에 들어갔고, 관람객 8500여 명은 주최 측의 모니터링 대상이 됐다. 다행히 2명의 확진자를 제외한 배우와 해외 스태프는 재검진을 통해 음성 판정을 받았지만, 이 사건은 밀폐된 공간의 잠재된 위험성을 알린 계기가 됐다.




〈오페라의 유령〉 공연을 위한 특별 방역




 이후 〈오페라의 유령〉 측은 공연 중단 기간에 전반적인 안전 점검에 나섰다. 우선 극장 출입구에 열화상 카메라를 설치해 체온 37.5도 이하일 경우에만 공연 관람이 가능하게 했다. 만약 체온이 높게 나왔을 경우 비접촉 체온계를 통해 추가로 체온을 측정해 일시적인 발열 가능성을 한 번 더 걸러냈다. 개막 전부터 이어온 방역도 빈틈없이 지속했다. 관객과 배우, 백스테이지의 스태프 동선을 분리하여 정기 방역을 실시했고, 항바이러스 방역을 따로 주 2회 시행하는 등 점검의 수위를 높였다. 또 백스테이지에서는 의상, 가발, 소품에 대해 매회 소독을 진행하며 출연진과 스태프의 위생에도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이런 철저한 방역을 통해 이 작품은 3주 후 공연을 재개할 수 있었다. 이처럼 마스크와 문진표, 손소독제, 열화상 카메라와 체온계가 있는 공연장은 관객에게 어느덧 익숙한 풍경이 되어가고 있다.


떠오르는 온라인 공연, 미완의 과제

그럼에도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화된 현실에서 공연장 출입은 예전 같지 않았다. 최근의 재확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순간의 방심과 안일함이 최악의 결과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대체재로 떠오른 것이 온라인 공연이다. 물론 코로나19 이전에도 온라인 공연의 예가 없지는 않았다. 세계 각국의 공연제작사는 일찌감치 유튜브를 통해 유무료의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고, 국내에서도 몇 해 전부터 네이버 공연을 통한 중계 플랫폼 네이버TV와 V-라이브를 활용해왔었다.




2016 데스노트 쇼케이스 중계




 뮤지컬에서 첫 실험은 2015년 〈데스노트〉 쇼케이스를 통해 이루어졌다. 이후 2016년에 〈팬레터〉가 처음으로 전막 실황을 중계하면서 온라인 공연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이때 업계에서는 유료인 뮤지컬을 무료로 제공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우려와는 달리 이 공연은 오프라인 관람으로의 통로 역할을 했고, 실제로 티켓 판매가 늘어나는 효과로 이어졌다. 〈레드북〉 또한 이 같은 온라인 공연의 순기능을 톡톡히 본 사례다. 2016 창작산실을 통해 관객들과 처음 만난 이 작품은 개막 후 예상보다 평범한 반응을 얻고 있었지만, 네이버 전막 중계에서 대중의 호응이 쏟아진 후 오프라인 공연을 매진시키는 성공을 거두었다.
 이는 마니아 문화가 활성화돼 있는 뮤지컬의 특성과도 무관하지 않다. 온라인 공연은 중계되는 동안 댓글창을 통해 즉각적인 반응과 소통이 가능하다. 뮤지컬이라는 장르나 해당 작품이 익숙지 않은 일반 대중에게 이들의 댓글은 흥미를 자극하는 일종의 해설 역할을 한다. 배우별 매력이나 연출의 중점, 무대미술의 특징 등 관전 포인트를 짚어주는 이들의 애정어린 댓글은 그대로 공연장으로 향하는 계기가 된다. 코로나19의 위세가 거세던 지난 3월, 녹화 중계로 역대 최다 조회수를 얻은 〈마리 퀴리〉는 이런 과정을 거쳐 오프라인 공연 재개 후 티켓 매출이 급증하는 성과를 거둔 바 있다.




〈마리 퀴리〉 전막 중계 실황




 다만 이런 성공 사례는 아직 일부인 데다, 모든 작품이 온라인 공연을 할 수 있는 여건도 안 된다는 점에서 공연의 대체재를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무엇보다 온라인 공연은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 그중에서도 초기부터 계속 제기돼왔던 불법 녹화(다운로드) 문제는 최우선 과제다. 관계자들은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이 문제에 대처하고 있지만, 이조차 완벽한 해법은 아니다. 창작자들에게 저작권은 가장 중요한 문제인 만큼, 불법 녹화와 무단 배포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또 이와 관련해 법규 신설과 개정도 필요하고, 다가올 온라인 공연 유료화 시대를 맞아 유통과 배급 같은 시스템 구축도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


사각지대 해소 위한 궁극적 해법 필요

이처럼 공연-관람 환경의 급격한 변화 양상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 논의들이 자본력을 갖춘 대형 제작사, 공연장, 관객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무료 온라인 공연 서비스가 오프라인 유료 티켓 판매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자본력이 약한 제작사나 프리랜서 배우, 창작진, 소형 공연장들은 당장 생계의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작은 규모의 극장 종사자나 무대 뒤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환기할 필요가 있다.
 정부와 서울시가 발표한 ‘한 칸 띄어 앉기’ 방침도 비슷한 맥락이다. 지난 3월 서울시는 ‘관객 간 거리 2m 유지’ 지침과 함께 강력한 참여 촉구 메시지를 대학로 소극장에 보냈다. 공연 강행으로 확진자 발생 시 진단과 진료, 방역 등의 비용에 대해 구상금을 청구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소극장에서 관객들을 2m씩 떨어져 앉게 하면 객석의 75%가 비게 된다. 실제로 〈빨래〉와 〈브라더스 까라마조프〉 등의 뮤지컬이 이런 지침을 따르다 결국 공연을 중단하고 말았다. 이 때문에 ‘현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대극장 기준으로만 판단해 지침을 무작정 하달한다’는 현장 관계자들의 반발이 일제히 불거지기도 했다.




지그재그 좌석제로 〈레베카〉 공연이 취소된 성남아트센터




 이 같은 ‘관객 간 거리두기’ 방침은 심지어 대극장 뮤지컬도 피할 수 없다. 정부와 재난안전대책본부가 얼마 전 국공립 공연장에 권장한 ‘지그재그로 한 칸씩 띄어앉기’의 여파다. 재연될 때마다 티켓팅 전쟁이 일어나는 인기작 〈레베카〉는 이번에도 전 공연이 매진된 상태에서 5월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뒤늦게 도입된 ‘지그재그 좌석제’를 따르려면 제작사뿐만 아니라 예매한 관객의 절반도 함께 피해를 떠안아야 했다. 절반의 ‘강제 취소’ 관객을 선별하는 기준도 모호해 여러모로 골치 아픈 작업도 필요했다. 결국 〈레베카〉는 공연 자체가 취소될 수밖에 없었고 막대한 피해를 떠안아야 했다. 단지 성남아트센터가 공공 공연장이라는 이유로 야기된 문제인데, 민간 공연장에서는 이 좌석제를 도입하지 않고 있어 실효성 논란도 여전하다.
 이처럼 코로나19로 인한 공연 중단이나 취소의 최대 피해자는 공연 제작에 관련된 모든 종사자들이다. 배우와 스태프, 무대장치 관련 기기 회사들은 지난 3개월 간 사실상 실업 상태에 머물렀다. 또 인건비와 제작비 등 사전 비용이 발생한 사례들도 있지만 현재로서는 보상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코로나19 같은 전 사회적인 재해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5년 메르스 때에도 감염 위험으로 인해 공연이 취소되는 일이 발생했었고, 앞으로 또 다른 바이러스가 출현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때문에 현장에서는 이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궁극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메르스나 이번 코로나19의 경우 상황이 발생한 다음에야 사후 지원을 통해 피해자들을 구제하는 식이었지만, 이제는 금융 지원이나 공제조합, 재난보험 같은 대안을 마련해 이번과 비슷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코로나19의 여파는 뮤지컬을 포함한 공연계의 모습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이 사태가 장기화할 때 업계 종사자와 관객 모두 어떤 자세로 새로운 시대에 임해야 할지 생각해봐야 할 시점이다.

송준호

문화 전문 기자. 한국예술종합학교 대학원에서 무용미학을 전공했다. 주간한국과 한국일보, 더뮤지컬을 거치며 문화 예술의 각 분야를 두루 취재했다. 춤과 공연예술의 다양한 변화를 주시하며 이를 바탕으로 대학에서 춤 글쓰기를 강의하고 있다.​ 

2020. 6.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