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윤상은 〈Coppelia-입을 다문 존재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 같아〉
자연스러운 몸짓, 부족했던 무대 장악력
방희망_춤비평가

 문래예술공장의 MAP(Mullae Arts Plus) 2014는 ‘젊은 예술가의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그의 발표를 위해 제작지원금, 공간-장비, 멘토링, 크리틱을 지원하는 문래예술공장의 입체적 예술창작지원 프로그램’을 표방한다.
 이 프로그램의 8개의 작품 중 무용 공연으로 유일하게 선정된 윤상은의 〈Coppelia-입을 다문 존재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 같아〉(1월 17-18일, 문래예술공장 박스시어터, 평자 18일 관람)는 발레 작품 〈코펠리아〉에서 컨셉트를 따왔으나 전혀 다른 방향으로 새롭게 풀어낸 작품이다.




 윤상은은 발레를 전공하였지만 현대무용의 창작 작업에 매력을 느껴 그간 여러 작가들의 퍼포먼스에 꾸준히 참여하며 활동해 왔다. 작년에 그녀가 섰던 무대로 여민하, 최승윤과 공동 창작한 한팩 마로니에 축제 참가작 〈Forget 츄(but I will archive you)〉를 들 수 있다. 아카이빙을 목표로 했던 작품 성격상 그녀가 2012년 안무가로 처음 이름을 올린 〈일상적인 것의 변용, Presentation〉이나 노경애 안무의 〈Mars〉, 최은진의 〈신체하는 안무〉까지 되짚었기에 발레에서 현대무용으로 넘어오기까지의 동기와 고민을 읽을 수 있었다.
 가을에는 LIG문화재단 Young Artist Club 시리즈인 최은진 안무의 <유용무용론> 무대에도 섰는데 공교롭게도 두 작품 모두 세 명의 퍼포머가 무대에 등장했던 터라 그 속에서 윤상은의 위치와 성격이 자연스럽게 비교되었다.
 윤상은은 자신만의 목소리를 먼저 과감하게 내지르는 스타일이라기보다는 뒤에서 돕거나 튀지 않게 균형을 맞추려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런 면에서 이번 〈Coppelia-입을 다문 존재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 같아〉는 안무가로서 주체로 나선 것 같으면서도 여전히 전면에 드러나길 꺼려하는 듯한 그녀의 성향이 접점을 찾은 작품 같았다.




 안쪽에서부터 길게 흰 바닥을 깔고 양쪽에 보호망을 제거한 큰 선풍기를 놓은 상태에서 등장한 윤상은과 허윤경 두 사람은 프로코피에프 피아노협주곡 3번 1악장과 선풍기 날개의 회전에 맞추어 양팔을 수평으로 뻗은 채 제 자리에서 회전하는 경쾌한 모습으로 작품을 열었다. 특별하게 전문적인 안무로 고안했다고 보긴 어렵지만 이후 음악 없이 조용하고 끈기 있게 진행해야할 즉흥 모티브, 시연과 관찰 작업을 위해 가벼운 환기를 일으키는 효과가 있었다.
 두 사람의 유연하던 움직임은 저항을 받으면서 점점 소멸하였다. 잠깐의 암전 후 식빵, 테이프, 연습복, 물병, 비닐봉지 등 다양한 질감과 무게를 지닌 오브제들이 바닥에 널린 것을 테마로 삼아, 물체가 낙하할 때의 모양을 몸으로 흉내 내면서 ‘생명을 가진 몸에 물체의 내면을 싣는다면’의 질문을 담은 구성을 이어 나갔다.
 이어 무대 양편으로 허윤경과 윤상은이 각자 마주 보고 섰을 때, 그것은 마치 유도의 대련이 시작되는 느낌이었다. 한 사람이 동작을 먼저 시연하면 다른 한 사람은 그것을 자기 방식으로 따라하면서 풀어 나갔다. 이를테면 비보이들의 격렬하고 거창한 배틀과 비교했을 때 어이없을 만큼 소소하고 일상적인 동작구들이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의외의 즐거움, 허윤경의 거칠고 무뚝뚝한 듯 굵은 동작선과 윤상은의 소담하고 부드러운 동작선을 발견하게 된다.




 팜플렛에는 2014년 4월부터 2015년 1월까지 두 사람이 작업하면서 남긴 그림과 글을 담았는데 야외로 나가 자연의 움직임을 관찰했던 것을 토대로 물결 움직임, 수증기 움직임 등을 춤으로 만든 것도 선보였다. 방식은 그들이 팜플렛에서 말한 바대로 ‘행위자의 즉흥춤을 보고 상대방이 기록한 것을 다시 그 행위자가 재현하였다. 이를 3번 반복하였다.’ 이 과정은 사물이 되었든 사람이 되었든 일단 누군가의 시야에 포착된 순간부터 그 눈을 통해 또 다른 의미로 재탄생되는 ‘원본’이 유사한 ‘복제본’을 받아들이고 따라가기도 하는 상황에 대한 은유처럼 읽혔다.
 그럴싸하고 아름답게 양식화된 춤을 포기하고 일상을 살아내는 몸, 생명을 담은 몸의 가치에 주목하여 사물을 관찰하면서 몸과 비교하며 그 의미를 하나하나 다시 찾아가는 윤상은의 작업은 어쩌면 뉴턴이 바닷가에서 조약돌이나 조개껍질을 줍는 어린아이의 모습에 빗대었던 것처럼 ‘발견’ 자체에서 의미를 찾아야 할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철도 선로가 근처에 자리하고 기름칠된 기계들이 밀집된 공업사들의 군락으로 둘러싸인 문래예술공장을 모태로 태어나는 예술의 방향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의식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그렇더라도 여전히 자기의 발언을 분명히 하길 머뭇거리며 관찰자의 입장에 머무르려는 듯한 윤상은의 태도는 안무가로서의 짧은 경력과는 별개로 더욱 주체적으로 변화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고대의 피그말리온부터 코펠리아, 현대의 인조인간에 대한 숱한 이야기들은 인간이 피조물의 위치에서 조물주의 역할까지 나아가고자 하는 욕구에 대한 변주들이다. 윤상은이 작가로서 발돋움하는 마당에 좀 더 자신만만하게 무대를 장악해도 괜찮고, 아니 오히려 그래야 ‘코펠리아’라는 제목을 따온 것이 걸맞을 듯하다.
 작년부터 윤상은의 무대를 보았을 때 줄곧 느껴지는 다소 수줍고 위축되어 보이는 움직임, 특히 관객과 정면으로 맞추어내지 못하는 시선 등은 그녀가 퍼포머 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독립된 작가로서 자리매김하기 위해 극복해내야 할 과제라 생각한다. 이번 작품의 후반부 무대도 허윤경의 허물없이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연기에 힘입은 바 컸다.
 일상에 주목하는, 그간 함께 작업해왔던 작가들의 관심사와 궤를 같이 하며 바톤 터치 받은 듯한 작품전개에서 윤상은의 색깔과 몫을 어떻게 더 꿰어낼 것인가 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2015. 02.
사진제공_문래예술공장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