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차진엽 〈춤, 그녀... 미치다〉
고도의 연출력과 춤의 정제미
이만주_춤비평가

 “… 우리만남은 빙글빙글 돌고 / 우리만남은 빙글빙글 돌고 …” 80년대 유행하던 대중가요 ‘빙글빙글’이 배경음악으로 계속 깔렸다. 무대장식인 벽채가 돌고, 차진엽이 돌고, 춤이 돌았다. 그녀의 춤 자체가 메시지였다.
 차진엽은 30대의 무용가로 지난 2014년 한 해, 유난히 활약이 많았다. 인천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 안무 총감독으로 개‧폐막식 춤 부분을 구성했고 그 밖에도 수개 작품을 안무했다. 또 여러 무용작품과 댄스 필름에 무용수로서 출연했다. 해가 저무는 12월 29-30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 올린 <춤, 그녀... 미치다.>는 2014년 그녀가 해왔던 춤 활동의 결산이기도 하면서 어찌 보면 그녀 춤 인생의 중간점검이기도 했다.
 국립현대무용단의 ‘2014 해외안무가초청공연’을 위해 내한한 이탈리아 무용가, 루이자 코르테시(Luisa Cortesi)는 그녀의 안무작인 <마우싱>(Mousing)에 차진엽을 무용수로 기용하여 협업으로 창작작업을 할 때, “나는 차진엽의 얼굴이 가장 마음에 든다. 단지 예뻐서가 아니라 흉내 낼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 무대 위에서 존재감 있는 무용수를 원했다. 그녀에게서는 무언가 특별한 아우라를 느낄 수 있다”라는 말을 했다.
 그런데, 어찌 얼굴뿐인가. 차진엽은 동양인으로서는 키도 크고, 긴 팔과 긴 다리, 무용수로서 훌륭한 신체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런 그녀가 ‘미치도록 춤추기’를 표방했으니 다양한 춤 동작이 아름다움을 넘었다. 공연이 끝나면 관객들이 금방 사라지는 여타 공연들과 달리 그녀의 작품과 춤에 매료된 관객들이 한참 동안 극장 로비에서 서성거렸다. 그 중에는 외국인 관객도 섞여 있었다.




 작품 <춤, 그녀... 미치다.>는 그녀의 이전 안무 작품들인 〈Rotten Apple〉(2012), 〈Sitting in〉(2013), 〈White Crowaa〉(2011), 〈Fake Diamond〉(2013), 〈The 1st〉(2010)의 일부 영상을 비춰주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차진엽은 “아마도 그 작품들을 만들 때의 심리상태들이 현재의 제 모습에도 남아있고 그런 분위기가 이번 작품에 어느 정도 복합적으로 반영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춤동작들이 그대로 옮겨진 부분은 없고, 모두 새로 안무했다”라고 했는데 그녀의 말대로 이전 작품과는 엄연히 다른, 새 작품이었다.
 작품은 ‘미치다’라는 것이 춤에 미쳤다는 것인지, 경지에 도달했다는 것인지, 정신 나간 미친 것’을 뜻하는지, 화난 것인지,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에, 아니면 2014년에 일어났던 비극에 미치겠다는 것인지, 말의 한 단어가 갖는 동음다의성(同音多義性, Ambiguity)을 활용하며 관객에게 상상을 불러일으켰다.
 작품은 전체적으로 ‘현대인의 고독, 인간의 원초적인 고독, 공연예술가가 갖는 무상함’을 그렸다고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제목인 ‘춤, 그녀... 미치다’가 보여주듯 작품은 춤 자체를 추구했다. 몸의 움직임인 춤은 그 자체가 의미이거나 아름다움이다. 춤에서는 몸과 춤 자체가 메시지 일 수 있다. 작품은 그런 춤의 특성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우리의 일상적인 삶의 동작들. 실내에서 걷고, 의자에 앉고, 눕고, 벽장에서 무언가를 꺼내고, 옷을 벗고, 갈아입고, 그런 모든 몸짓들이 훌륭한 춤이 될 수 있음을 이야기했다. 나아가 바닥에 누워 전후좌우로 구르기도 하고, 셔츠로 바닥을 훔치기도 하고, 벽에 계속 무언가를 붙였다. 그 모든 동작들이 미감을 유지하면서 매끄럽게 연결되었다.




 차진엽은 2014년 국립현대무용단의 기획프로그램인 <마우싱>(9월)과 <춤이 말하다>(12월)에서 무용수로 출연했다. 가상의 세계를 넘나드는 <마우싱>에서는 춤의 분위기가 몽환적인 파스텔화 같았다. <춤이 말하다>에선 한때 흉내 내던 남성춤과 밤의 사적인 공간을 보여주는 춤이 유화 같은 느낌을 주었다.
 이번 작품은 전반적으로 수채화 같으면서 파스텔화와 유화의 분위기를 아우렀다. 이런 표현이 가능한 것은 그녀가 다양한 춤사위를 구사하며 그녀의 춤집이 너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부 추어진 남자 무용수와의 2인무가 특이했다. 남녀의 관계를 뜻할 수도 있겠고 인간이 부딪치는 수많은 관계를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겠는데, 격렬함 대신 담백한 동작으로, 지극히 절제되어 있는 춤으로 처리했다. 마치 모든 관계라는 것이 그저 그런 것이라고 얘기하고 싶다는 듯이… 김지욱은 그런 역할을 개성 있게 해내며 차진엽의 존재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작품의 전반부에서 두 개의 밝지 않은 백열전등이 내려왔다 올라가며 명멸하는데 그 단순한 장치의 설정이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었다. 앞면에는 2-3인용 의자, 탁자, 문, 벽장이 달려 있고 뒷면은 그저 벽면뿐인 흰 색의 직사각형 벽채가 작품의 주되는 무대장식이었다. 미니멀리즘의 조형작품 같은 느낌을 주었다. 중간 중간, 이 벽채를 돌려놓는 것이 무대에 가변효과를 주었다. 무용수들이 그 벽채의 문을 드나들며 춤을 이어나갔다. 끝날 무렵에는 벽채에 물감이 흘러내리는 것 같은 영상을 비추었다. 영상은 색깔과 형태를 계속 바꾸었다. 그 자체로 설치미술(Installation)이었고 전체적으로 볼만한 영상예술이었다.
 계속되는 노래 ‘빙글빙글’ 사이에 음악 담당인 오래미가 생음악으로 피아노를 연주했다. 대중가요와 피아노 음악이 마찰 없이 어울리며 작품의 격을 높였다. 옷을 갈아입는 것이 장면을 바꾸는 효과를 주었다. 센서(Sensor) 장치가 되어 있는 장난감(Stuffed Toy) 강아지 5마리가 소도구로 사용되었다. 강아지들은 그녀가 건드릴 때마다 무대 바닥에 뒹굴며 ‘왁왁’ 짖어댔다. 마치 살아 있는 강아지들 같았고 춤을 추는 것처럼 보였다. 유머였다.
 작품은 인간의 몸짓을 넘어 인간이 연출한 물체와 영상의 움직임도 춤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며 늘 그녀가 지향하는 총체예술(Total Art)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단지 ‘춤에 미치다’라는 주제를 갖고 60분간을 거의 혼자 어떻게 끌고 갈까하는 우려를 불식시키며 한 무용수가 무대를 장악하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춤, 그녀... 미치다.>는 춤에 미친, 춤에 미치고 싶은 열정을 지닌 야심적인 젊은 무용가가 보여주는 춤의 미학이었다. 고도의 연출력과 춤의 정제미(精製美). 2014년 마지막에 올려진 이 작품은 차진엽이 이즈음 한국 현대춤(Contemporary Dance)의 젊은 아이콘임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었다.

2015. 02.
사진제공_Kim Wolf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