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장선희의〈해월하〉 (海月下)
삶에 대한 적막한 명상
권옥희_춤비평가

 춤의 정신이 오롯이 살아있는, 아름다운 공연이었다. 부산에서 활동하는 장선희(‘춤터’ 대표)의 <해월하(海月下)>(11월 30일, 국립부산국악원연악당) 공연을 말함이다. 자신의 춤판이지만 자신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춤. 장선희의 춤을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서는 시선을 조금 옆으로 돌려 춤만을 자세하게 들여다 봐야한다는 생각을 잠깐 지우고, 무대를 다시 한 번 마음속으로 묘사해보는 것이 필요할 듯. 이때 그녀의 춤은 이제까지 알던 것과 다른 것이 되며, 그 무대로 인해 그녀가 춤을 대하는 정신이 지혜에 속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인상적이었던 춤 몇을 풀어본다. 장선희의 솔로, 김진홍류의 <살풀이>. 영남춤의 특징인 배김새가 고스란히 잘 드러나는 춤으로, 창살무늬가 그려진 무대바닥, 어두운 회색치마에 팥죽색 저고리를 입고 추는 춤. 달빛 아래 규방 여인네들의 한과 수심이 흥에 실렸다. 벽(창살문) 속에 억압되어 있던 원망과 분노의 감정이, 또는 사랑의 감정이 어느 순간 풀려나는, 감정의 바람이지만 애써 누른다. 한발을 딛는 동시에 다른 발(버선코)이 바닥을 가볍게 쓸어 올리며 호흡을 들고는, 휴지. 멈추는 듯 이어지는 춤의 유려함에서 우리 춤의 멋을 본다. 자진모리에서도 결코 가볍지 않게 속으로 눌러서 추는 춤이 그녀의 성품을 말해준다. 불행한 격정의 표현이랄까. 삶에 대한 적막한 명상과 처연한 사랑의 춤이었다. 이전의 춤보다 춤이 휠씬 고아해졌다. 몸짓은 물론 춤을 통해 보이는 정신의(춤) 깊이인 듯.
 흥이 한껏 오른 <영남입춤>. 바닥에 한 촉 난 그림. 1명의 남자 선비(김갑용)를 가운데 두고 네 명의 여자무용수가 W자로 줄을 지어 추다가 서로 섞여 모였다가 흩어져 흥이 이는 대로 자유롭게 추는 춤의 멋스러움이 두드러지는 무대. 추임새를 넣는 객석과 하나가 되어 무대는 흥과 멋으로 출렁인다. 투박한 듯, 깊은 맛이 있는 영남 춤의 특징이 고스란히 무대를 수놓는다. 선비는 선비대로, 여인네는 여인네들대로 흥과 멋으로 낭창낭창하다. 일제히 팔을 들어 올리다 손목을 턱 꺾어 내리고 다리를 들었다가 바닥에 턱 내려놓으며 호흡을 ‘흐읍’ 드니 어깨에서부터 흐르는 춤의 멋이 객석을 흔들어 소리를 지르게 만든다. 투박한 듯 보이나 짧게 춘 춤의 시간으로는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춤의 이력을 가진 이들이 꾸민 무대였다.
 이어진 장선희의 솔로. 박병천의 음악(제목)에 맞춰 큰 지전 두 개를 들고 추는 김진홍류의 <지전춤>, 너무 곱게 풀었다. 곰삭아 형체가 보이지 않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세상의 허망한 이치를 깨달은 것인지 한(恨)도 원(怨)도 보이지 않는다. 지전을 들고 휘두르다 아래로 툭 떨어져 주저앉는 듯하다가 곧 가볍게 위로 솟구쳐 오르는 춤사위는 생의 무게로 주저앉을 듯, 다시 일어나는 삶의 의지. 예술적 춤사위로 거듭난다. 양손을 펼쳐 드니 지전은 날개 같고, 이승을 딛고 선 춤의 몸에 실린 넋을 위무하는 춤이 이어진다. 노랫말 ‘세월아 가지마라, 이내 청춘 다 간다.’ ‘엊그제께 검던 머리 오늘에 보니 희어졌네, 엊그저께 곱던 얼굴, 오늘날 보니 주름이 졌네.’ 아무 그림도, 장치도 없는 검푸른 조명만 가득한 깊은 무대 공간에 흰 의상에 지전을 들고 홀로서서 음악을 신탁처럼 받으며 춤추고 있는 그 곳. 이승도 저승도 아닌 그곳은 어쩌면 그녀가 살아온 신산한 춤판일 수도.




 <아쟁산조 춤>. 스승이자 연주자인 ‘박대성류아쟁산조’(박대성류아쟁산조는 산조의 창시자인 한일섭의 1세대 수제자로 자신의 류를 개척. 부산광역시지정 무용문화재 제16호이다)가 시작되자 장선희, 무대 한 쪽에서 돌아 앉아 한 쪽 무릎을 세운 채 음악을 듣고 있다. 연주자인 스승의 음악을 받드는 것, 이윽고 시작 되는 춤, 단아한 춤으로 스승의 음악을 몸에 싣는다. 기교가 없는 담백한 춤이다. 녹음이 아닌 한 거장들의 연주는 무대에 따라 늘 조금씩 다르다. 리허설도 마찬가지. 그러다보니 춤을 미리 맞춰놓을 수가 없는 노릇, 오래한 세월과 서로의 마음을 따라 노는 수밖에. 6박의 느린 진양조 가락에 모든 고뇌와 번뇌, 한(恨)과 원(怨) 그 모든 것이 담겨있다. 이어 느린 12박의 중모리 장단, 그리고 중중모리, 자진모리, 다시 느리게 풀어서 맺어지는 장단은 그대로 춤이었고, 춤은 또 장단이었다. 오래된, 예술적 교감이 없다면 가능하지 않을 무대였다.
 아쟁은 장선희가 30여 년간 배우고 연주해온 악기다. 춤꾼으로서는 특이한 이력으로, 장선희는 우리악기를 먼저 익히고 춤을 익힌 것이다. 그러하니 음악을 듣는 귀가, 그 음악을 몸으로 옮겨놓는 춤이 남들과 다를 수밖에. 그녀에게 음악과 춤은 ‘참, 팔자다’라는 표현이 좋을 듯. 흔히 팔자라는 말이 재능에 대한 평가뿐만이 아니라, 그 재능과 예술적 열망으로 인해 세상과 춤판에서 겪어야 할 신산한 삶에 대한 안타까움도 끌어안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녀의 삶에는, 붙잡고 있어야 할 춤과 음악이 있어야 했을 것이다. 어쨌든 춤판에서의 신산한 삶이란 춤의 정신이 철저하다는 것과 같은 말이기도 하다.




 이윽고 춤 스승을 모시고 추는 장선희의 <승무>. 김진홍류 (부산광역시지정 무형문화재 제14호. 동래한량춤 예능보유자. 김진홍류의 승무는 유독 춤이 돋보이는 완전한 예술형식을 지니고 있다. 동작 하나하나가 정교하고도 아름답게 다듬어져 있는 것이 선생의 춤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춤이다) 공연의 백미였다. 스승인 김진홍선생이 무대에 올랐다. 느린 염불장단부터 시작된 춤이 도드리장단을 마칠 때까지 여든 연세에도 불구하고 장삼자락 끝 하나 허투루 떨어뜨리지 않는다. 타령장단에 스승과 제자의 춤이 한 무대에서 펼쳐지니, (정신과 춤이)아름답기 그지없다. 타령장단을 같이 춘 뒤, 이어지는 굿거리장단과 자진모리장단을 추는 장선희의 솔로. 경지에 오른 듯한 스승의 춤과는 또 다른 고아하면서도 정직한 춤이다.
 이어지는 김진홍선생의 승무 북장단. 2장까지의 북장단이 다소 아쉬웠으나(김진홍류의 승무 북가락은 3장) 특유의 수려하기 짝이 없는 북 가락은 듣는 이를 매혹케 한다. 끊어질 듯 이어지던 북가락이 뚝, 갑자기 북채를 툭 아래로 던진다. 손을 천천히 들어 올리곤 북의 모서리에 조용히 올려놓더니, 북을 가만가만 어루만진다. 뒷머리가 찌릿. 굽은 등, 처연하고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들리지는 않으나 들리는 말, ‘참 수고했네, 고맙네’ ‘오랫동안 이렇게 아름다운 소리를 내주어서...’ 혹은 ‘내 오랜 춤 곁을 지켜줘서 참 고마웠네’는 말을 전하는 듯. 아마도 북은 선생에게 ‘부처’요, 자신을 증명해 줄 그 어떤 것이겠거니.
 눈물을 찍어내는 관객들. 이어 장삼자락을 벗어 두 손에 받쳐 들고 무대 가운데로 걸어 나온 뒤 객석을 향해 천천히 앉으며 객석을 향해 큰절을 한다. 마치 새색시가 혼례를 치를 때 하는 듯한 노장의 겸손한 큰 절. 해석이 많을 수밖에 없는 절이다. ‘당신들도 고맙소’ 아니 어쩌면 ‘ 내(내사), 춤으로 당신들과 평생을 하기로 약속을 했소, 절을 올리는 이유라오’ 고 하는 듯. 스승의 이런 춤의 정신을 받은 제자의 춤이 겸손하고 우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객석으로 전해지는 작품의 파급효과는 작품을 접하는 관객들 개개인의 체험과 연결되어 있다. 슬픔이든, 고통이든 춤 작품이 개인의 영혼에 충격을 줄 수 있으면 있을수록 그 작품은 그 개인에게 그만큼 더 의미심장한 작품이 되는 것은 자명한 일. 춤은, 무릇 예술은 이런 것이 아닐까. 공감하고 소통하는 것 말이다.

 스승의 춤을 이어받아 추는 것이 단지 춤의 동작, 기술만은 아닐 것이다. 정신, 태도 등. 춤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법도 있을 것이고. 그곳에서 자신만의 춤과 음악의 류가 다시 가지를 치고 뿌리를 내리며 확장, 변주되어야 할 것이다. 스승은 제자의 무대에서 자신의 춤으로 격려하고, 춤에 대한 자신의 고뇌를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 인간으로 나와 몸짓(舞魂)을 누리고 있는 한 춤꾼에게 어지러움과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고, 그리고 그 스승은 ‘은행나무가 무성한 자유시장과 평화시장 사이 길을 걷다가 대낮에도 머리위에 춤추고 있’는 보이지 않는 무엇을 보고, 그 ‘천국이면서 지옥 같은 환각증세와 관련된 유사광증’의 시달림을 마다 않고 평생 춤을 춰왔다고. 그 스승의 곁에서 스무 해가 넘도록 춤 공부에 정진한 제자. 스승의 춤에 대한 드높은 경외감과 겸손함이 드러난 무대였다. 장선희가 춤판에서의 보낸 고난의 시간 또한 아마도 이런 명상의 시간과 수없이 겹쳤을 것이다.

2015. 01.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