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댄스씨어터 창 〈봄의 제전〉
선명한 메시지, 슬픔을 돌파하는 현대판 씻김
방희망_춤비평가

 사회적인 이슈들을 예민한 눈으로 지켜보고 작품 활동으로 전개하는 안무가 김남진이 이끄는 ‘댄스씨어터 창’은 SPAF 기간 동안 신작 <봄의 제전>을 공연했다. (10월 10-11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그가 불과 한 달 전 컴퓨터 게임과 스마트폰 등으로 황폐해진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다룬 신작 <바늘>(9월 19-20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을 올린 터라, 이런 왕성한 작품 활동은 그가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사회 문제들이 그만큼 많다는 반증이라 씁쓸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다작(多作)으로 인해 작품성이 희석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갖게 한다.
 지난 달의 <바늘>은 연극으로 출발하여 무용으로 넘어온 김남진이 가진 장점-작품에 대한 상(象)이 뚜렷하고 거기에 효과적으로 잘 수렴시키는 연출력-은 잘 드러났지만, 안무의 구성이 빈약한 나머지 연극이라 부를 수도 무용이라 부를 수도 없이 정체성이 모호하다는 짙은 아쉬움을 남겼다. 메시지는 좋았지만 그것을 실어 보내는 작품의 힘이 약하면, 메시지조차 공허한 메아리가 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봄의 제전>은 여러모로 그가 시간을 두고 별러 공들인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만큼 눈에 띄게 신선한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수많은 안무가들이 여러 가지 버전으로 발표했으나 원시적인 본능에의 충동을 표현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었던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은 김남진에 이르러 새로운 의미로 재정립된다.




 안무가는 올봄 전 국민을 깊은 충격과 슬픔에 빠뜨렸던 세월호 사고를 소재로 하여 현대판 살풀이로 풀어냈다. ‘봄’은 ‘참 좋은 시절’에 져 버린 ‘꽃다운 생명’들을, ‘제전’은 어른들의 욕심에 ‘희생 제물’로 바쳐진 그들의 영혼이 위로받아 새롭게 태어나길 바라는 ‘염원의 진혼무’이기 때문에 이 시대 한국 사회와 구체적인 연결고리를 갖게 된다.
 그러면서도,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T.S. 엘리엇이 말했던 그 표현 그대로 도무지 회복될 수 없는 절망감과 광포한 분노를 표현하는데 스트라빈스키 음악이 고스란히 가진 정서를 활용하였다. 그래서 안무가는 전곡을 통째로 이어서 사용하지 않고, 팀파니와 금관 등의 악기가 강렬하게 분출되는 부분을 위주로 편집하였고 그것도 전반부와 후반부에 뚝 잘라 사용하였다.
 첫 장면에서는 다운복지관의 장애우 두 명에게 천사가 연상되는 의상을 입혀 출연시켰다. 그들이 무용수들과 함께 모여 지구, 이 땅을 뜻하는 사각의 흰 판을 내려다보는 퍼포먼스는 마치 신화 속의 신들이 천지창조에 관여하는 것 같다. 음악 <봄의 제전> 중 1부 ‘대지에의 경배’는 여기서 만물이 이제 막 역사를 시작하던 때의 순수한 설렘을 표현한다.
 그러나 유년기의 천진함도 잠시, 플랫칼라의 교복 혹은 상복을 연상시키는 흰 의상을 입은 무용수들은 어느새 자신들의 이권을 챙기느라 타락한 종교의 어른, 부패한 정치의 어른, 화려한 미디어로 포장하는 어른으로 변신하여 추악한 모습을 보여준다(김남진은 이 장면을 유명 정치가와 영화배우 등의 가면을 씌워 연출하였다).
 이것으로 앞서 등장한 지적 장애우들이 오히려 순수하고 맑은 영혼들이고 천사들이라는 것을 에둘러 말한다. 이대로라면 우리에게 구원이라는 것이 있을까 비통한 심경에 잠길 무렵, 흰 사각 틀 안에 호스를 통해 물이 차오른다. 음악의 2부 ‘제물’ 부분을 편집한 이 장면에서 무용수들은 의자에 묶여 교실에서, 배 안에서 가만히 있으라던 명령에 순종하며 죽어간 어린 학생들의 영혼이 된다.
 마침내 그들이 의자를 밀어내고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다 깨어나면서 춤을 출 때, 그것은 스스로의 아픔을 씻어냄과 동시에 세상의 더러움을 씻어내는 적극적인 구원 행위가 된다. 거대한 물은 신이 오물로 가득 찬 인간 세상을 쓸어버리는 도구이기도 했고 이젠 모두의 가슴에 춥고 시린 바다로 기억되기도 하지만, 진화론에선 생명의 기원이 있는 공간이고 우리가 잉태된 어머니 뱃속 양수이기도 하다.
 거기에 두려움으로 묻히지 아니하고 물과 일체가 되어 움직이는 무용수들의 모습, 그들 위로 튕겨져 오르는 수천수만의 물방울들이 빛이 되어 부서져 내리는 것을 지켜보면서 딱딱한 가슴 속 돌덩이가 뜨거운 눈물로 녹아내리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김남진은 그간 현실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발언하는 작품을 만들어온 보기 드문 안무가이다. 춤계에서 프로젝트 성으로 일반인들을 참여시키거나 재능의 나눔 차원에서 소외계층과 예술을 향유하려는 노력들도 있어 왔지만, 장애우가 가진 조건 자체를 작품의 주제와 결부시켜 출연토록 한 것은 평소 사회 문제를 대대세세 살펴 온 김남진이라서 가능한 시도일 것이다. 또한 세월호 사고 이후 거기에 영향 받은 다른 안무가들의 작품이 절절한 슬픔에 머물렀다면, 적극적인 ‘씻김’으로 ‘가만히 있는 슬픔’을 돌파해 나간 뚝심과 저력 또한 김남진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이번 <봄의 제전>이 백 퍼센트 만족스러운 작품이라고 할 수는 없다. 대사 처리가 세련되지 못해 직전까지 잘 꾸려오던 작품의 흐름을 뚝 끊어 생경하게 만든다거나, 안무의 참신함과 섬세함이 떨어져 정작 안무가로서의 입지가 불분명하다는 문제는 그가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후반부 물속 장면도 젖은 머리카락을 공중으로 흔든다던가 하는 비교적 적은 터치로도 강렬한 효과를 낼 수 있었기에 가려졌지만, 무용수들의 동작은 패턴화되어 단순하게 반복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역할로 변화를 꾀하며 작품 안에서 열연한 무용수들의 단합된 의지가 보인 흐뭇한 무대였고, 무엇보다 스트라빈스키가 참신한 기법으로 당대 파리의 관성에 젖은 음악계에 혁신을 가져왔듯 이제는 고전이 되어버린 원곡을 현대 한국 사회로 가져와 새롭고 구체적인 의미를 붙인 김남진의 구상이 좋은 선례로 기록될 만한 공연이었다.

2014. 11.
사진제공_2014SPAF/옥상훈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