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김용걸댄스씨어터 〈Inside of Life〉
박진감 있는 춤, 변화무쌍한 전환
이만주_춤비평가

 근래, 발레에 별 관심 없던 사람들도 전율을 느끼면서 김용걸의 발레를 보는 재미에 빠졌다. 전율은 무서움에 가까운 감정이지만 그 무서움이 김용걸의 발레에서는 계속되는 경이에서 비롯되는 것이기에 행복한 전율이다. 그의 안무작은 스피디하고 박진감 있는 춤과 함께 변화무쌍한 전환으로 흥미로움을 넘어 황홀함을 제공한다.
 제14회 서울국제공연예술제 국내초청작품으로 공연된 〈Inside of Life〉 (10월 12-13일, 아르코예술극장대극장)는 김용걸 안무의 또 하나의 경이를 보여주었고 앞으로의 그의 발전을 더욱 주목하게 만들었다.
 그는 국립발레단 주역무용수로 활동하던 어느 날, 고국에서의 보장된 지위를 버리고 더 큰 세상에서 자신을 시험하고자 프랑스행을 택했다. 파리국립오페라발레단에 5개월 견습단원으로 들어간 후, 각고의 노력 끝에 동양인 최초로 종신단원이 되었으며 급기야 솔리스트 지위에까지 올라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실기과 교수로 귀국하게 되는 2009년까지 파리에서 생활했다. 가족과 떨어져 발레리노로서 하이어라키(Hierarchy)의 계단을 오르는 데에만 골몰해 있던 파리의 10년 세월 동안 그는 수많은 영광과 좌절을 경험했다. 그 신산의 시간을 보내면서 그는 고독 속에서 삶과 죽음이라는 문제를 깊이 생각하곤 했다.




 이번 작품은 바로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인 삶과 죽음에 대해 그가 발레로 쓴 해설서였다. 무거운 주제이면서도 발레라는 춤예술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고뇌가 잘 교직되어 작품은 관객에게 신비로움을 선사하며 성공했다.
 그 먼 옛날, 인간이 다른 짐승들과 마찬가지로 네 발로 기었을 때, 인간의 꿈은 직립하는 것이었다. 직립하여 하늘을 보게 되자 다시 꿈은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으로 바뀌었다. 바뀐 꿈의 의지가 밖으로 나타난 것이 건축 양식에서는 고딕이요, 마천루이며, 춤에서는 발레이다. 고전발레는 하늘로 날아오르고자 하는 시도였고 따라서 중력을 벗어나려는 노력이었다.
 현대무용(Modern Dance)이 처음 생겨났을 때 하늘의 춤인 발레가 땅으로 내려온 것이라고 했다. 현대무용은 머리는 하늘을 향하고 있으나 두 발은 땅을 딛고 있는 인간의 현실을 인정한 것이고 밖의 이야기에서 인간 내면의 의식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현대무용의 자유스러움을 차용한 김용걸의 컨템포러리 발레(요즘 세계적인 추세는 Modern Ballet나 Creative Ballet 대신 Contemporary Ballet라는 용어를 씀)는 지상의 발레라는 개념에 가까이 와 있다. 따라서 하늘의 발레에서는 누가 더 높이 도약(Jete, Sautee)하고, 누가 더 오래 떠 있나(Ballon)가 중요했지만 김용걸의 발레에서는 다른 어휘가 필요한 것이다.




 그는 작품 〈Inside of Life〉에서 그가 조어(造語)한 발레의 어휘들을 많이 사용했다. 무대 양쪽에서 번갈아 이루어지는 변화 있는 2인무 등도 색달랐고 눕는다든가 엎드리는 등의 지면에 붙는 동작들도 있었다.
 성(性)스러움을 성(聖)스러움으로 바꾸어 천상의 춤으로 만드는 것이 발레의 미학이다. 자유로운 동작을 위해 타이즈를 입힌 여성 무용수들의 몸을 어두운 조명과 스모그로 실루엣이 되게 했다. 신비스러움이 배가되었다.
 막이 오르면 성가가 배경음악으로 흐르는 가운데 무용수들이 작은 원안에 모여 있다. 좁은 공간에 빼곡히 모여 각기 다른 모습으로 구부리고 있는 모습이 씨눈들을 연상케 했다. 생명의 발아인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삶은 희로애락, 생로병사를 겪으며 진행된다. 인생이 우여곡절을 겪으며 엮어져 나가듯 독무, 이인무, 사인무 등 여러 형태의 춤이 추어졌다.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과 인연을 여자 무용수들의 군무로 보여주었다. 그럴 때는 타이즈 대신 의상이 검정 원피스로 바뀌었다.




 다양한 연출이 시도되었다. 막이 반이나 3분의 2쯤 내려왔다 올라가는 것을 몇 번 반복했다. 색다른 느낌으로 와 닿았다. 무대 미술이나 소도구 대신 다양한 영상으로 변화를 주었다. 구름이 지나가는 하늘. 빗소리. 천둥소리 아래 비 맞는 잎들. 철조망. 홍수. 십자가. 풍력을 얻기 위해 도는 바람개비들. 바다. 양보할 수 없는 생명인 작은 벌레들. 누워 있는 개. 풀.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갯벌 등.
 아르코 대극장의 회전무대를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마지막 부분에서 9명이 나와 서있고 무대가 회전하는 장면은 영화 <타이타닉 호>에서 모든 등장인물들이 나와 인사를 고하는 끝 장면과 같은 임팩트로 와 닿았다. 흑백사진이 오히려 컬러 사진보다 이미지를 더욱 강렬하게 부각시킴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작품의 전체적인 색조를 검정으로 끌고 갔다. 김용걸 자신도 까만 슈트를 입고 두 번 등장했다. 끝맺음(Ending)은 무용수들이 작은 원안에 빼곡히 모여 있던 시작과 똑같은 장면이 연출되었다. 다시 죽음은 생명의 시원(始原)으로 회귀한 것이다. 조명이 꺼지지 않았는데도 관객이 작품의 끝남을 알 수 있는 인상적인 엔딩이었다. 작품이 지적인, 창의적인 것에 대한 욕망을 채워주기에 40분 공연을 보고 나와서도 감동과 흥분 상태가 여운으로 길게 이어졌다.




 러시아에서 유럽을 거쳐 미국으로 건너와 발레의 신고전주의를 연 조지 발란신(George Balanchine, 1904-1983)은 발레에 새로운 문법을 만든 사람이다. 클래식 발레가 의존했던 동화나 사랑 이야기의 줄거리를 따라가는 대신, 음악 자체에만 의존하기도 하고 추상성의 개념을 도입하여 발레로서 추상화를 그린 것이다. 하지만 발란신은 여전히 하늘의 발레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기에 대부분 기존의 발레 어휘에 의존했다.
 김용걸은 발레라는 언어로 에세이를 쓰고 싶은 것이다. 사유와 관념을, 더 나아가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를 다루는 철학적인 에세이를 쓰고 싶은 것이다. 그런 목적을 위해 발레의 새로운 문법이 필요하고 그 자신의 어휘들이 필요한 것이다. 김용걸은 자신있게 자신의 새로운 발레 문법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에 의해 발레의 어휘가 확장되고 있다.
 기존의 발레를 끊임없이 부수면서 외연을 확장시켜 나간 윌리엄 포사이드(William Forsythe, 1949- )처럼 김용걸도 발레의 확장성에 관심을 두고 있다. 그는 국제적 경쟁에서 이긴 경험들도 있고 그에서 우러나오는 자신감과 카리스마도 있다. 그의 나이 40대 초반. 한국에서 발레의 금강석이 다듬어지고 있다.
 나는 그가 앞으로 얼마나 많은 작품을 쏟아낼지, 또 어디까지 발전할지에 흥미를 갖는다. 앞으로의 한국 발레의 미래를, 아니, 세계의 발레를 그의 천재성과 뚝심에 기대를 걸면서.

2014. 11.
사진제공_2014SPAF/옥상훈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