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베트남 춤의 현장(2)
베트남 춤예술의 초석을 놓는 사람들
임선영_Imdance10 대표

베트남에서 지내는 4년동안 한국에서 영위하던 춤 환경과 직장 환경, 공연 환경, 풍부한 문화생활의 수준에 대한 기억을 소각해야 했고, 자아에 새겨진 유사한 경험을 그곳에서 기대한다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임을 깨닫았다. 그러고나서 나는 스스로 최소한의 것으로서 최선을 다해 찾기로 했다. 그리고 주어진 환경에 빨리 적응하고 만약 나의 모든 것을 제로로 전환시켰을 때 나에게 남겨질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이 나라에서 지내는 동안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신중해야 했다.
 나는 나 자신 속에 존재하고 거기서 일어나는 일에 집중하고 싶었고 내적인 충만함을 채울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 곰곰이 생각했다. 그 후, 찾게 된 나의 대답은 춤과 사람이었다. 어떤 방법으로 춤을 지속할 수 있는 방법과 춤과 함께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 이것이 내가 베트남에서 갖고 싶었던 유일한 것들이었다. 춤을 공유하고 춤을 통해 친구가 되어 준 많은 베트남 친구들을 기억한다.




무용가 Linh Rateau




 그 중 베트남계 프랑스인 Linh Rateau(Dancenter director)가 있다. 내가 살던 지역에 무용연습을 할 수 있는 Dancenter(단센터)가 있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고, 그곳에서 우연히 만나 이야기를 나눈 외국친구가 Director Linh Rateau를 만나보라는 조언에 나는 무작정 나의 portfolio를 들고 그녀를 찾아갔다. 처음 보는 나를 매우 반갑게 맞이해주며 환하게 웃던 그녀의 얼굴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현지에서 알고 있는 사람이 없으니 조금이라도 춤과 관련이 있다면 누구라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그녀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그녀는 프랑스에서 태어나 발레를 처음 배우고 춤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 그리고 The center international de la dance Jazz 학교에서 3년간 춤을 배웠으며, 프랑스에서 어머니가 운영하던 무용센터에서 수업을 맡아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 후, 자신의 아버지 고향인 베트남으로 2001년 이주하여 프랑스학교에서 무용을 가르치며 생활을 하였다. 가정형편이 어렵거나 춤을 추고 싶어 하는 베트남 청소년들에게 무료로 춤을 나누고 그들의 생활을 지원하는 봉사를 시작하였다. 그렇게 보살핀 아이들은 이제 성인이 되어 무용수가 되었고, 그녀의 센터에서 춤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성장하였다.
 2007년에 설립된 Dancenter는 2011년에 Thaodien 지역으로 장소를 옮겨 본격적인 무용교육활동을 진행하였다. 현재 미국, 프랑스 국적의 외국 무용강사들이 그곳에서 어린이와 성인을 위한 발레, 재즈, 힙합, 현대무용 수업을 가르치고 있다. 그녀는 2014~2016국제무용페스티벌을 아라베스크 무용단 디렉터 Mr. Tan Loc과 함께 주최하며 베트남 무용계의 예술시장 범위를 확장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현재 공연에 관련된 국제행사의 후원과 무용교육을 운영하는 민간기관으로 Dancenter의 활동은 아주 독보적인 것으로 알고 있다.




Dancenter에서 어린이 발레공연을 준비하는 Linh Rateau




 호치민에 공식적인 예술학교는 호치민국립무용학교와 Soul Academy가 있다. 정부관할인 호치민국립무용학교는 발레와 베트남 전통무용을 가르치고 있으며, 학교 활동을 외부로 공개를 하지 않고 있으며, 다른 기관에 비해 폐쇄적인 것을 알 수 있었다. Soul Music Performing Arts Academy는 Ted Farraday 교장이 운영하고 있다. 베트남 청소년을 대상으로 음악과 발레 수업과 재즈, 힙합 수업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사설 기관이다. 나는 이 학교 컨템퍼러리 무용교사로 채용된 바 있으며, 현재 코로나로 모든 학교가 잠정 휴교한 상태이다.
 나의 방문 이후로 그녀와의 만남은 자주 이루어졌고, Linh은 나에게 연습실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공간을 지원해주었다. 사람은 단독으로 행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나이가 들며 깨닫는다. 다른 사람과 공동의 관계에 있을 때 서로 긴밀함을 느끼고 즐겁게 함께 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 자신이 어떤 점에 상대에 대한 신뢰감을 품을 수 있는지, 어떤 점에서 어떤 종류의 호감을 가질 수 있는지에 따라 그 관계가 진정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런 점에서 Linh과 나는 서로 통했고 베트남에서 이루어지는 공연에 관해 의견을 나누며 우리는 오롯이 춤과 함께 무엇을 설계하고 공유할 수 있을지 고민하였다.
 한국에 오기 전에 '컨템퍼러리 여성안무가 3인(베트남, 미국, 한국)의 밤'을 함께 구상하던 중이었는데 코로나로 공연은 연기되고, 나는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녀는 나에게 늘 말했다. 자신이 무용센터를 운영하고 있고 자신과 함께 일하는 무용수들이 있지만 그들을 자신의 품 안에만 두려고 하지 않는다. 최대한 기회를 열어 주어 그들이 성장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자신은 만족한다고 하였다. 어린 시절 경제적으로 여유 없는 상황에서도 춤을 통해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는 그녀. 단센터를 만든 이유는 어려운 무용수들을 위한 지원의 일환으로 베트남 무용수들이 편안하게 집처럼 생각하고 춤을 출 수 있는 공간의 필요성을 느꼈고, 나아가 많은 예술가들과 춤을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 발전하기 위함이었다고 했다. 춤과 삶의 관한 그녀와의 대화는 나에게 마음의 재산이 되었고, 그녀에게 받았던 인상, 건강함, 아름다움, 기질, 성향, 인품, 지성 등은 어떤 특별함으로 내게 다가왔다. Linh이라는 타인의 생애에 일어난 일들을 통해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이 내 마음을 쾌활하게 만들고 순간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었다. Linh Rateau는 Dancenter 디렉터로서 나눔의 춤을 생성하고 끊임없이 활동하는 방법을 보여준 아름다운 사람이다.




무용가 Khai Ngoc Vu




 돌을 물처럼 만지며 춤을 추던 무용수 Khai Ngoc Vu는 베트남 젊은 안무가이며 무용수이다. 공연이나 전시 기회가 많지 않아 늘 문화생활에 갈증을 느끼던 나에게 춤을 보고 춤에 대한 희열을 느끼게 만든 베트남 무용수, Khai를 기억한다. 베트남에서 컨템퍼러리 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2019년 12월 21일 Army Theater로 찾아갔다. 뉴질랜드 안무가인 Ross McCormark 안무작 〈Method〉는 Ross가 받은 베트남의 영감을 바탕으로 그가 베트남의 전통음악을 수집하고 그것을 현대음악과 믹스하여 작품을 만든 것이다.
 국가소유의 극장 Army Theater, 호치민 중심부에서 40분 정도 떨어진 지역에 위치하고 있었고, 관객의 절반이 베트남 군인들로 채워진 이색적인 공연장 분위기에 너무 놀랐었다. 낯선 공연장 분위기로 인해 공연에 대한 선택을 반신반의하며 공연을 보았다. 공연이 시작되자 텅 빈 무대에 무용수들이 춤이 시작되었고, 긴 대나무와 돌덩이를 옮기며 서서히 작품이 진행되었다. 상반신 전체에 문신을 한 거친 남성 무용수, 아주 작은 키에 몸이 빠른 여성 무용수, 2명의 남성 무용수 등 총 6명의 무용수들이 출연하였다.
 베트남 전통음악과 전자음악이 조화롭게 가득 찬 공간에 무용수들이 소리와 움직임에 집중한다. Duy Phuong(무용수)이 텅 빈 사막에 놓인 바위 위에 올라서서 사자처럼 돌 위에서 연신 중심을 잡았다. 다른 남성무용수 Khai Ngoc Vu가 무거운 돌덩이를 들어 올리며 마치 갓난아기를 쓰다듬으며 만지듯 만지기를 반복하고 베트남 자장가 같은 부드러운 노래를 불렀다. 그의 반복되는 손의 움직임은 마치 돌이 녹아 흘러내릴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고, 나의 시선을 그의 춤에 송두리째 빼앗겨 버렸다. 유난히 긴 팔과 잘 훈련되어져 보이는 몸과 에너지, 그리고 다른 무용수들과 달리 부드러운 움직임의 연결이 세련되어 움직임에 많은 경험과 교육이 되어 있어 보였다. 긴 대나무와 돌덩이들을 작품의 오브제로 사용하여 자칫 진부해 보일 수 있었던 작품이 무용수 Khai Ngoc Vu의 춤으로 흥미롭게 살아났다. Khai가 5분 동안 불안정한 돌덩이 위에 올라서서 자신에게 집중하는 모습 또한 인상적이었다. 몸이 몸을 잊고 돌이 되어버릴 것 같은 모습으로 집중하는 그의 모습, 객석에서 바라보는 그는 춤을 즐기는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그가 만지고 움직이던 그 무거운 돌덩이는 무게를 잃어버리고 그의 손에 휘저어지는 듯 했다. 춤을 보는 내내 얼마 만에 느끼는 공연 관람의 기쁨이었는지 아직도 그 두근거림과 장면이 생생하다. 작품의 완성도보다 작품 안에서 존재하는 춤추는 무용수를 발견한 나는 공연이 끝나고 그를 찾아가 인사를 했다.




Khai Ngoc Vu 독일 무용단 활동




 그는 아라베스크 단장 Tan Loc과 절친한 사이였으며, 나 또한 아라베스크에서 무용수들을 위한 수업을 진행 중이었던 때라 서로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Khai Ngoc Vu는 1985년생으로 Vietnam academy of Dance에서 7년간 무용을 배웠으며, Codarts Rotterdam dance Academy에서 장학금을 받고 1년간 공부를 하였다. 그 후 2007년부터 2019년까지 유럽(스위스, 독일, 네덜란드, 이탈리아)에서 다양한 무대 경험을 한 베트남 무용수이다. 2020년 자신의 무용단 1648kilometer를 창단하였다.
 나는 그에게 무용단 이름에 대한 질문을 한 적이 있었는데, 베트남의 남북의 길이가 1648km여서 베트남을 무용단을 통해 상징적으로 알리고 국가를 대표하는 무용단으로 성장하고자 국토의 길이를 무용단 이름으로 사용했다고 했다. 그는 현재 호치민에서 거주하며 하노이와 호치민을 오고 가며 자신만의 예술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창무국제무용페스티벌에서 〈NON〉(농:베트남 전통모자)이라는 작품으로 초청되어 공연한 바 있으며, 베트남 아라베스크 무용단의 리허설 디렉터로 활동한 바 있다. 내가 만나 본 그는 매우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사람으로서, 다양한 방법으로 예술활동을 시도하는 예술가였다.






Khai Ngoc Vu 〈NON〉 ⓒ2017창무국제공연예술제




 베트남은 해외에서 공부하고 활동한 신흥 부유층의 젊은 친구들이 이제 고국으로 돌아오기 시작했으며, 본국에 자신의 회사를 만들고 해외와 네트워크하며 성장의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 이것은 경제 분야뿐만 아니라 교육, 디자인, 패션 부문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안무가 Khai 또한 오랜 해외 예술활동을 통해 컨템퍼러리 춤에서 많이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춤 작업 방향과 시도를 지속하고 있으며, 베트남 무용계를 이끌어 갈 젊은 안무가로 성장하고 있는 무용가 중 한 명이다.

임선영
2018년 국제예술교류 예술가로 선정베트남과 한국 교류 작업을 진행하였다춤의 본질움직임에 대한 연구와 함께 춤확장에 대한 작업을 하고 있다.
2021. 10.
사진제공_임선영, 2017창무국제공연예술제 *춤웹진